자유인 조동화 그는 누구인가? 趙東和는 1950년 6.25 동란중 부친 조병옥과 모친 延日鄭氏 정순봉사이에서 김제시용지면와룡리267번지에서 長男으로 태어났다. 옛날 이름은 조재곤이라 하였고 金堤趙氏 시조 조연벽의 24세손으로 문량공 趙簡의 후손이다. 김제 와룡의 기차길옆 나의집에서 어린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기차가 검은연기를 내품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렁차게 움직이는 기차의 기관사의 꿈을 갖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종친 조찬익(당시 익산기관차사무소 운전조역)할아버지한테 국립철도학교 원서를 가지고 와 기관사과에 지원 합격후 1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20살 약관의 나이에 청운의 꿈과 희망을 안고 철도청공무원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다가 군에 입대 3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1975년 복직하여 40여년 철도를 天職으로 알고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청춘의 젊은이가 2009년 停年退職했다. 세월은 현역을 떠나게 만들어 퇴직하여 자유인으로 옛날 근무했던 은퇴한 직원, 학교 동창들, 후배들과 어울리며 세월을 낚고, 일가를 찾아보며 자연과 벗하며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답니다. 오늘 해야 할일이 있다면 바로 시행하고,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의 자원임을 꼭 기억하며 사리라.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다. 1970년도에 처음 철도에 들어 올때에는 증기기관차로 철도수송을 하였으나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 KTX고속열차시대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은 세상을 많이도 바꾸어 놓아 격세 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 발령을 받았던 시절 아마도 모든 대지의 사람들이 잠든시간에 어둠을 헤치고 검은 연기와 기적소리를 내품으며 천지를 진동시키고 달리던 아련한 추억의 시절이 그리워 증기기관차의 달리는 위용을 담아 봅니다. 증기기관차가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며 칙칙폭폭 애환서린 기적소리와 디젤기관차의 경적소리가 함께 힘찬 출발의 시동을 온 누리에 알렸던 시기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인생여정 나의 철길인생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산길 물길을 돌고 돌아 드넓은 대지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젊음의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았던 지난시절, 꼬불꼬불 가파른 고갯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철마에게 고운모래 뿌려대며 거북이걸음으로 기어올라 고갯길을 넘고 넘어 긴 숨을 달랬던가! 오직 희미한 유油등 신호기에 의지하며 작은 눈 크게 뜨고 고요하기만 했던 어느 시골역에 정적을 깨뜨리며 철길을 누볐던 아련한 추억들, 천둥 번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레일이 녹아내리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도, 폭설에 기찻길을 하얗게 덮어버린 길 없는 철길을 오직 철마에 의지하며 용케도 달려 왔던 무용담을 자랑이라고 했었던가? 내가 기관사직무를 수행 중 서대전-대전간 운행시 교량상에서 6-7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는것을 발견 교량 한가운데 급정차하여 소중한 생명을 구했던일, 기억에도 생생한 1977년11월11일 21시15분 익산역폭팔사고로 숨진 동료직원들을 밤새껏 운구하던일 등 수많은 일들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세월이란 돌아올수 없고 이젠 조용히 추억에 젖어 증기기관차의 추억과 함께 옛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움을 향한 인생여정의 여행을 뜻깊게 달려 가자. 1970년 철도청 침대원 이야기 야간열차에는 침대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야간에 편안히 잠을 자면서 여행목적지까지 가려는 사람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침대차에는 상단과 하단이 있으며, 하단이 상단보다 요금이 비싸다. 상단은 열차운행시 차의 흔들림이 심하다. 반면에 하단은 상단보다 안정적이며,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불편이 없다. 침대차를 처음 이용해 보는 사람은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덜그락대는 열차바퀴 소리와 고속으로 달리는 진동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잠을 잘 자는 사람도있다. 침대차에는 침대차를 관리하고 승객을 안내하며, 차내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도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침대원이 불침번을 선다. 침대차에는 절대로 동침은 안된다 다만 6세미만의 유아만 가능하다. 1970년대 초의 일이다. 강릉에서 청량리까지 운행되는 열차의 침대차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침대원의 이름은 황모씨 였다. 황모씨는 걸국 서울지방철도청의 징계를 받고 파면되었다. 침대칸에 돈을 받고 동침을 허용했다는 것이 그의 죄명이다. 당연한 죄값인지도 모르겠다. 청와대 모 비서관이 강릉에 출장을 갔다 돌아올 때 침대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침대차에서 편히 잠을 자고 내일 근무에 임해야 했던 비서관은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윗간인지 옆칸인지 알 수 없었으나, 둔다한 열차소리와 더불어 이상한 남녀간의 소리가 들려와 신경이 날카로워셔 버린 것이다. 애써 귀를 막고 잡을 청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밤새 화기 나있던 그는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하여 침대차에 서 내리려다 안녕히 가라고 인사하는 침대원을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는 밥새 잠음못 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침대원이 오히려 화를 내듯 말하였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그 비서관은 침대원의 항변이 괘씸하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아침에 출근하자 말자 철도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침대원을 피면시기라고 요구했다. 그 침대원의 이름은 황모씨 였다. 황모씨는 결국 서울지방철도청의 징계를 받고 파면되었다. 침대간에 돈을 받고 동침을 허용했다는 것이 그의 죄명이다.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죄값인지도 모르겠다. 비서관은 그 후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비서관은 아침에 출근하다가 이상한 광 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허름한 옷차림에 한 손에는 깡통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매일 보게 된 것이다. 수상하게 생각한 비서관은 어느 날 그 사람을 불러 물어 보았다. “당신은 왜 내일 여기 서있는 거요?" 그러자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밥줄을 끊어 놓으니, 내가 같곳이 어니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소리를 들은 비서관은 내심 뜨끔 했으리라. 자초지정을 알게 된 비서관은 고심끝에 그에게 야단도 쳐보고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보았으나 허사였다. 그 침대원 황씨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어느 날 비서관은 고심 끝에 부인과 상의하여 부인이 잘 설득해 보기로 했다. 비서관이 출근하자 부인은 황씨를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권했다. 그리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10만원짜리 수표 3장을 황씨의 손에 쥐어 주면서 생활에 보태 쓰라고 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황씨는 부인에게 물었다. “이 돈을 정말로 저에게 주시는 것 입니까?" “물론이지요. 가져다 생활비에 보태쓰세요." "정발 저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정말 저에게 주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반복해서 재차 3번을 묻고는 그 아까운 수표를 갈기갈기 찢어서 마당에 화 뿌리고 마루에서 일어나 대문으로 향하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저 아이들이 불씽 하구먼. 마루에서 놀고있는 두 아이들을 두고 한 말이다. 부인은 깜짝 놀랐다. 수표를 찢어버린 행동이며,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더욱이 황씨가 들고 있넌 깡통에서 휘발유 냄새가 역하게 풍기던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던 것이다. 혹시나 밖중에 우리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이라도 지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을 지울수가 없었다. 운수 계통 열차승무원들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있다. “죽어도 꽥하고 죽지 그냥 죽지 않는다"고..... 하루에도 수백명씩 여객을 상대하고 항상 자신들의 행동과 일처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철도청 윗분들이나, 감사관실 사람들, 심사사무소 직원들, 공안원들, 그뿐인가 지방철도청 감사실, 운수과 직원들, 심지어는 역 주재 형사들, 군 보안대 직원들, 어쭙잖은 신문기자들까지도 승무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뜬어 내려는 무리들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대항 수단 또한 강해지지 않을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승무원들은 닳고 닳은 사람이 되어가고, 자기 나름대로 뒤에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소위 백을 만들어 놓곤 하였다. 누군가 돌보아 주는 사람없이는 승무원 생활이 어려웠다. 아무리 맑고 깨끗하게 일하려고 해도 사회가 용납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봉급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웠고 먹고 살 수는 있어도 체면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승무를 나가서는 밥도 사먹어야 하고, 승무원 숙소에 쳐 박혀 있기가 무료하여 다방에 가거나 술이라도 한잔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승무를 마치고 사무소에 들어와서는 열차조역이나 교번원 또는 회계담당자에게 얼마씩을 주어야 하는 것이 당시에는 관행이었다. 황씨는 얼마 후에 그 비서관이 마련해 준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늙음에 대하여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늙음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현재의 행복에 최선을 다함이 삶이요,
이러한 삶이 오래되어 편해짐이 늙음이요,
영원히 쉬는 것이 죽음 이라면 틀린 말일까?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양면성을 지닌다.
생과 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또
어떤 이들은 쉽게 죽어 버리려고 한다.
한편 젊은이들은 젊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늙고 쭈글쭈글하고 볼품없는 것은 싫어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죽게 마련인 것이다.
인간들 외에도 모든 생물은 열매를 맺는다.
벼 이삭도 쌀을 맺으면 그 줄기와 이파리는
누렇게 시들고 볼품 없어지는 것이다.
사과 나무도 사과를 영글게 할 무렵이면
그 이파리는 벌레 먹어 흉한 모습이 된다.
사람도 이와 같이 그 열매 곧 아들과 딸을 장성시키면
늙고 병들어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우리는 그와 같은 모습에 오히려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늙고 추하게 변해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또한 죽음을 두려워 해서도 안 된다.
늙으면 쉬게 되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기 때문에 더 편히 쉬게되는 것이다.
인생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 것과 같으며,
강 저편에 다으면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가서
마을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육신은 버리고 가야만 하는 배요,
영혼은 마을로 들어가는 나그네인 것이다.
그 나그네는 거기서 영원히 사는 계속적인 존재인 것이다.
-- 좋은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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