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어느 토요일(2004년 8월 21일) 오후에 KBS2 TV에서 '아테네 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8강 전'의 중계방송이 있었다. 아나운서는 『유수호』이고 해설자는 『안00』이었다. 나는 아나운서를 몰라서 방송국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유수호』임을 알았다. 중계방송 도중에 해설자 『안00』이 우리선수인 『유승민』을 가리켜서 『저희나라 선수』라고 하자 『유수호』아나운서가 이를 저지하고『우리나라 선수』로 급히 말을 바꾸었다.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진정 자격이 있는 『훌륭한 아나운서』로 평하고 싶다.
문득 그때의 일이 생각나서 『저』와 『저희』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저희'는 '저'의 복수이다. '저희' 뒤에는 '들'이 따라와서 '저희들'로 되어야 한다. 소유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저희 ○○'라고 할 수가 없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저희나라'라고 해서는 안 된다. 각 나라는 상호 동등의 입장에 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예전에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이 중국 앞에서, 일본 앞에서, 미국 앞에서 구걸하느라고 '저희나라'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올바른 말이다.
우리겨레는 '자기를 낮추기'하는 겸손을 '군자덕목(君子德目)'으로 본다. 우리겨레는 상대를 높이지 아니하고, 자기를 낮추기 한다. 일본겨레는 '자기를 낮추기'하지 아니하고 '상대 높이기'를 한다. '자기를 낮추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이기에 '자기를 낮추기'하는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한 것이다. 상대를 칭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수준 이상 되면 상대를 칭찬할 수가 있게 된다. 상대를 높이기하는 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된다. 사기꾼과 소인배들이 상대 높이기를 잘한다. 우리겨레는 '자기를 낮추기'하는 겸손을 최고에 이르는 덕으로 치부한다. '자기를 낮추기'하기 때문에 '나'를 '저'로 '우리'를 '저희들'이라고 한다.
부모에게 자기를 일컫는 말이 '저'이다. 부모에게는 '저가' '제가'라는 자기 낮춤말을 사용해야 한다. 스승과 같이 부모와 견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저가' '제가'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학생에게 말할 때에는 '내가' '나는'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내가' '나는'이라는 말은 '자대(自大)로 되고 '저가' '제가'라는 말은'자소(自小)' '자비(自卑)'로 되는 것이다.
2. 잘못 쓰이는 부름말
가. 손주 : 며칠 전 방송출연 제의를 받고 녹화를 하기 위해 방송국에 갔다. 우리 어른을 비롯해서 아이들까지 3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서 무게가 있었다. 녹화 전 리허설에서 진행을 맡은 MC와 작가가 우리 어른 앞에서 아이를 보고 ‘손주’라고 불렀다. 프로듀스와 작가에게 ‘손주’를 ‘손자’로 고쳐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그리고 덧붙여 잘못된 부름말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미안하다며 고쳐주었다.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손자를 손주라고 부른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말 사전에 「손주=손자」로 버젓이 기재되어 있다. 그렇다. 우리말의 뿌리를 누가 잘못 만들어 놓았다. 얼른 고쳐야 할 일이다.
'아들의 아들'이 '손자(孫子)'로 된다. 그런데 '손주(孫主,孫冑,孫誅)'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 손주(孫主)라고 적으면 아들은 죽었고 손자(孫子)가 주인이 되는 말이다.
● 손주(孫冑)라고 적으면 애비가 죽고 없는 맏손자(주손:冑孫)를 말한다.
● 손주(孫誅)라고 적으면 손주조(孫誅祖)에서 나온 말로 풀이가 되어서 할애비를 때려서 죽이는 것으로 된다.
위와 같이 어떠한 경우에도 '손주'란 말은 맞지가 않다. 그런데 우리말 사전에는 표기하기가 모호하므로 '손주 → 손자'라고 하여서 버젓이 기록해 놓고 있다. 손주란 말은 쓸 수가 없는 말이다. '손자(孫子)'가 맞는 말이다.
나. 손녀딸 : 손녀(孫女)를 보고 '손녀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손녀는 '아들의 딸'이다. 외손녀(外孫女)는 '딸의 딸'이다. 그리고 '손녀딸'이란 '손녀의 딸'이다. 그런데 손녀를 보고 '손녀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부름이다. 그러다 보니 '조카딸' '조카사위' '이(고)모 할머니' '이(고)모 아제' 등의 이상스런 부름말이 퍼져있다. 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보다 낫게 보이려고 그러한 겹말을 만들어 도리어'바보의 짓'을 하고 있다.
손녀딸은 '손녀'로, 조카딸은 '조카'로, 조카사위는 '○서방'으로, 이(고)모 할머니는 '왕(존,대)이모/왕(존,대)고모'로 그냥 부르면 된다. 그리고 이(고)모아제는 이(고)모부 이지만 부를 때에는 그냥 '새 아제'라고 부르면 된다. 쓸데없이 혹을 붙여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헛갈리게 하는 행위를 삼가야겠다. 이모부를 이모아제로 부르면 조부는 할베의 아베가 되어 증조가 된다.
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 ‘크다’와 ‘작다’는 사물의 형태를 두고 가름하는 말이다. 사람 중에는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먼저 태어났다고 모두 크고 나중에 태어났다고 모두 작을 수는 없다. 「백부(伯父)」와 「중부(仲父)」는 부름말이 있다. 백부는 맏아버지를 일컫는 말이고 중부는 둘째아버지을 일컬음이다. '큰아버지'와 '맏아버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데 같은 뜻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밝혀 두고자 한다.
'아버지 형제' 중에서 첫째 되시는 분이 '맏아버지'이다. 다음은 '둘째, 셋째, 끝'이라는 차례로 된다. 걸림말인 백부(伯父)의 '백(伯)'字는 '맏아버지 백'字이다. 내 아버지가 '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셋째일 경우, 첫째를 '맏아버지[백부(伯父)]'로 부르고 다음부터는 '둘째아버지[중부(仲父)]와 끝아버지'로 부르면 좋다. 사람에게 '크다, 작다'는 쓰지 않는 것이 좋으므로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피해야 한다. 굳이 그 뜻을 살피자면 '큰아버지'는 아버지의 형,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의 동생이 되어야 되겠다. 아버지의 형인 '둘째아버지'를 아버지보다 낮추어서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 형(兄)을 두고서 '큰형' '둘째형'이라고 하는 것도 '첫째형 혹은 맏형(백형:伯兄)''둘째형(중형:仲兄)'이라고 하면 좋다.
라. 자형과 매형 : '누나의 남편'을 '자형(姉兄)', '누이의 남편'을 '매부(妹夫)'라고 한다. '매형(妹兄)'이란 말은 없다. 잘못된 '우리말 사전'에 '매형(妹兄)'을 '①손위 누이의 남편, ②자형'이라고 했다. 백성을 우롱하는 처사다. 사람을 말할 때 '손위, 손아래'라고 해서도 안 되며 '여동생(누이)'을 일컫는 '누이 매(妹)'字를 써서 '매형(妹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설령 여동생의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여동생을 따라서 동생이 되므로 '형(兄)'이라고는 부를 수가 없다. '누나의 남편'을 부르는 말은 '자형'이라고 하며 '새형'이라고도 한다.'자(姊,姉)'字는 누나를 일컫기 때문이다.'누이의 남편'을 '매부(妹夫)'라고 하지만 '걸림 말'이기 때문에 부를 때는 그냥 성을 따서 '○서방'으로 부르면 된다. '누나'는 나의 여형이고 '누이'는 나의 여동생 관계입니다. '누이동생'이란 말은 있어도 '누이 형'이란 말은 없다. 손아래 누이가 '누이동생'이면 손위 누이는 '누이 형'이 되어야 되는데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 당숙 : ‘종숙(從叔)’을 ‘당숙(堂叔)’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있다. 특히 경인지방에서 많이 부른다. 심지어는 ‘5촌 당숙’이라고도 부른다. 역시 틀린 말이다. 우리말 가정언어의 걸림 말에는 ‘숙(叔)’ ‘종숙(從叔)’ ‘재종숙(再從叔)’ ‘재재종숙(再再從叔)’등으로 이루어진다. 3촌이 숙(叔)이며, 5촌은 종숙(從叔), 7촌은 재종숙(再從叔), 9촌은 재재종숙(再再從叔)다. 5촌을 당숙이라 부르면 7촌은 재당숙, 9촌은 재재당숙이 되어야 되는데 그런 말이 우리 언어에는 없다. 예전 대가족 제도에서 한 집안에 살던 숙부를 통칭하여 부르던 것이 당숙이지 5촌을 두고 당숙이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