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4월 고령에서 개최되는 "대가야체험축제"를 거의 빠짐없이 구경해 왔는데 축제장소가
대가야박물관,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생활촌 등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이 일대 역사유적은 많이 구경했으나 아직 덜 알려진 숨은 명소들이 남아있어서 화창한 봄날에
도보하이킹 겸해서 둘러보고 왔습니다^*^
(기행코스)
우륵박물관~가얏고마을~대가야종묘~대가야국성지~고령향교~개경포기념공원
#고령과 우륵
대가야는 농업생산력과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5세기후반 가야 여러 소국들중 가장 강력하게 성장하였고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오늘날 영호남지역을 아우르는 고대국가로 발전하였으며 불교와 유교사상을 수용
하면서 이룩한 문화적인 성장을 토대로 수준높은 음악예술을 향유하였고 특히 가실왕은 기술과 학문 등
문화적 역량을 종합하여 천재예술가인 우륵에게 가야금12곡을 작곡하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가야금 연주소리가 정정하게 울렸다하여 마을이름도 "정정골"이라 불려오고 있답니다.
#악성 우륵
대가야 가실왕과 신라 진흥왕(534~576)당시 활동한 천재음악가로 대가야 성열현출신이며 가실왕의 부름을
받아 궁중악사로써 가야의 음악을 통합 발전시켰고 가야금을 제작하고 가야 각 지역의 향토성짙은 음악을
고급예술로 승화시킨 우리나라 3대 악성(왕산악,우륵,박연)중 한사람입니다.
우륵은 대가야가 혼란해지자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였는데 551년 진흥왕은 우륵을 하림궁으로 불러
연주를 시켰는데 그자리에서 "하림과 눈죽"을 새로 작곡하여 연주한 바, 크게 감탄한 진흥왕은 우륵을 국원
(지금의 충주)에 머물게 하고 신라의 관료인 계고(대나마:가야금을 전수), 법지(대나마:노래를 전수), 만덕(대사:춤을 전수)을 파견하여 배우게 하여 신라의 궁중음악인 대악으로 채택, 우리나라 음악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우륵12곡
상가라도,하가라도,보기,달기,사물,물혜,상기물,하기물,사자기,거열,사팔혜,이사
1.우륵박물관(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가야금길 98)
1)악성 우륵상(우륵박물관 들어가는 입구에 있음)
2)악성 우륵의 가야금연주상(우륵박물관 들어가는 입구에 있음)
3)우륵박물관 전경
4)우륵박물관내 전시물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들
흙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기로, 고대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로 유난히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이 많이 표현되며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통해 풍류를 즐겼던 것을 알수 있음.
*삼국사기 악지(樂志)
고려 인종23년(1145) 김부식 등에 의해 편찬된 삼국시대 정사로 본기28권(고구려10권,백제6권,신라와 통일
신라12권), 지9권, 표3권, 열전10권으로 구성되며 권32에 수록된 악지는 신라음악을 중심으로 고구려,백제의
음악기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가야금의 유래, 전승과정, 곡조 등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가야금의 모든 것
신라의 궁중음악으로 수용된 가야금은 이후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악기로 사랑받게 되었고 일본으로 전파되어
현재 일본왕실의 보물창고인 동대사(東大寺)의 정창원(正倉院)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신라금은 양이두가 있고 뒷면을 통으로 판 점에서 오늘날 정악가야금의 구조와 형태가 매우 비슷하여 1200년전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금에 표현된 봉황,난초 등의 금박장식을 통해 뛰어난 악기제작기술을 엿볼수 있음.
1)가야금 제작재료
*줄 : 가장 좋은 누에고치를 사용하는데 제1현(제일 굵은 줄)은 80가닥, 제12현(제일 가는 줄)은 30가닥
*안족 : 산벚나무,배나무,박달나무,대추나무 등으로 제작
*현침 : 산벚나무,살구나무,산배나무로 제작
2)가야금 제작과정
3)가야금의 구조
정악을 연주하기 위한 정악가야금과 민속악을 연주하기 위한 산조가야금이 있습니다.
가야금은 악기의 몸통과 12현, 현을 지탱해주는 안족으로 구성되며, 가야금연주때 오른손이 놓이는 부분에
좌단,현침,돌괘 등이 있고, 왼손 아래쪽으로 몸통에 줄을 걸기위한 부들, 부들과 줄의 연결부분인 학슬이 있음.
정악가야금은 부들을 매는 부분이 양의 귀와 닮아 양이두, 산조가야금은 봉황의 꼬리와 같다고 하여 봉미라고
하며 가야금 뒷면에 소리의 울림을 위한 울림구멍이 있는데 정악가야금은 크고 산조가야금은 작습니다.
4)가야금의 부속들
5)가야금 제작도구
6)가야금의 종류
(정악가야금)
궁중음악이나 선비들의 풍류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가야금으로 풍류가야금,법금이라고도 하는데 우륵이 제작한
가야금과 가장 흡사하며 9세기무렵 통일신라에서 일본궁중으로 전해져 신라금으로도 불립니다.
음색이 깊고 부드러워 비교적 느린 아정한 음악연주에 쓰이며 오늘날 여민락, 평조회상 등의 대편성 관현합주곡과 영산회상, 천년만세, 보허사 등의 줄풍류편성 합주음악이나 가곡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됨.
(산조가야금)
19세기말 민속악의 연주에 맞도록 기존 가야금보다 음역이 높고 빠른 가락들을 연주하기 편하게 개량된 가야금으로 남도무속음악과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산조라는 새로운 음악양식을 탄생시켜 대표적인 음악이 됨.
(18현가야금)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작곡된 곡을 연주하기 위해 줄수를 늘려 다양한 음을 낼수 있도록 하고 울림폭을 넓힌
가야금으로 새롭게 작곡된 곡들 연주에만 사용되고 있음.
(21현가야금)
1990년이후 창작독주곡이나 국악관현악에서 다양한 음계로 연주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21줄가야금으로 연주
수법에 있어, 전통가야금에서 비중있게 자리한 왼손농현법이 개량가야금에서는 오른손위주나 양손뜯기위주로
변화되었음.
(25현가야금)
저음,중음,고음의 선율연주를 위해 새롭게 고안된 것으로 1995년부터 활발하게 연주되고있는 개량가야금으로
기존가야금의 줄수를 늘려 음역을 폭넓게 하고 몸통의 여음을 풍부하고 길게 울리도록 한 장점이 있어 가야금
창작음악에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가야금연주세계의 폭을 넓히는데 큰 역할을 함.
5)가야금연주체험실
6)금장지(琴匠址) : 가야금을 만들던 곳
우륵박물관이 위치한 곳이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한 곳으로 일명 "정정골"이라 불리는데 우륵과 제자들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소리가 정정하게 들려서 붙여진 이름이며, 지금은 가야금을 제작하는 전문장인이 우륵
국악기연구원을 운영하고 있어 이곳에 오면 가야금연주와 제작을 직접 체험할수 있습니다.
2.가얏고마을(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정정골길 55) : 우륵박물관근처에 위치
1)가얏고길
2)가얏고마을입구
3)우륵의 집(가야금을 만든 우륵을 기념하기 위해 2009년에 지어짐)
4)악성 우륵선생추모비
5)가얏고(2010년8월 이동철 작가가 제작한 가야금모형)
6)가얏고문화관
7)가얏고체험관
8)우륵정
3.대가야종묘(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왕릉로 27) : 고령군청옆에 위치
시조 이진아시왕을 비롯하여 역대 국왕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서기42년부터 562년까지 16대 520년간 철기
문화를 토대로 가야를 대표하는 국가로 발전했고 562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 지금까지 대가야왕들의
추모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대가야왕릉제"란 이름으로 추모식을 거행해 왔는데 군민의 뜻을 뫄 후기가야의
맹주였던 대가야왕들의 덕을 기리고 찬란했던 대가야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대가야종묘를 건립함.
2018년부터 3년간의 노력끝에 2020년5월 준공후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추모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1)숭령전
2)대가야관
3)상현제
4.대가야국성지(大伽倻國城址) : 고령향교옆에 위치
1)대가야국성지비 건립취지문
"이곳은 서기42년 뇌실주일(惱室朱日)이 대가야국을 세워 그 왕조와 문화가 16대 520년간 번영했던 유서깊은
성터로 일제때인 1939년4월 당시의 조선총독 南次郞으로 하여금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고대일본이
대가야국을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함과 아울러 한국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임나대가야국
성지비를 세우게 하였으나 광복후 비문속의 任那와 南次郞 등 문자만 삭제하고 존속해 오다가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요청으로 성지비를 역사전시자료로 삼기 위하여 1986년12월5일 독립기념관으로 옮김.
이제 우리조상의 슬기를 찾고 올바른 민족정신과 국가관을 정립하며 찬란했던 대가야문화를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군민의 뜻을 모아 다시 이자리에 대가야국성지비를 세웠다" 1990년12월 고령군수
2)대가야국성지비
5.고령향교(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향교길 29-18)
1)고령향교 안내문
2)명륜당
3)대성전
6.개경포기념공원(開經浦 : 경북 고령군 개진면 오사2리)
개경포는 개진면 개포리앞 낙동강변에 있는 포구로써 개포나루, 개포진, 개산강, 개산포, 개산진, 가시혜진 등으로도 불리며 개경포라는 이름은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낙동강을 거쳐 개포에서 내려 이운한 것에서 유래
팖만대장경은 몽고군의 침략기였던 1236년에 시작하여 1251년에 완료, 강화도의 선원사에 봉안했다가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안전한 보관을 위해 해인사로 옮긴 것으로 보이며, 팔만대장경의 이운시기와 경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개경포를 통해 해인사로 옮겨진 사실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합니다.
개경포는 선사시대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오는 물산의 집산지로, 수로교통의 중계지이자 교역장이었고 특히 대가야시대 중국,일본,삼국으로 수출되었던 철기,토기,장신구 등의 물품과
조선시대 도자기와 기와도 이곳을 통해 반출되었으며, 1592년6월 송암 김면과 박정완 장군 등의 의병이 왜군을 격파한 개산포전투의 전승지로도 유명합니다.
1)개경포 안내석
2)대장각판 군신기고문 기념비(1237년 이규보가 구국을 염원하여 작성한 기도발원문)
3)팔만대장경 이운행렬 조형물 및 기념행사 모습
4)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조형물
대승불교 반야사상의 핵심을 담은 경전으로 그 뜻은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으로 풀이되는데 수백년에 걸쳐 편찬된 반야경전의 중심사상을 260자로 함축해 서술한 경전입니다.
불교의 경전중 가장 짧은 것에 속하며 한국불교의 모든 의식때 반드시 독송되고 있으며 현장법사의 한역본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데 그중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널리 알려진 구절입니다.
5)팔만대장경 이운 조운선모형
조운선은 조세로 거둔 쌀을 운반하던 배로 깊이가 얕은 강을 따라 내륙으로 이동하거나 해변을 항해하는데
적합한 구조로 이 조형물은 팔만대장경을 실어 개경포까지 옮긴 조운선을 재현한 것임.
6)개경포주막 풍경
7)개경포공원 탐방로안내도 및 등산로입구
8)개경포앞 낙동강포구의 흔적
첫댓글 구경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