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의 축일.
우리 기도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4월 5일로 표기해 놓았다. 나중에 바로 잡을 일이다.
영등포 성당에서는 성주간 목요일 아침까지 아침 성찬례 대신 <십자가의 길>예식을 하는 터라, 축일 미사를 드리지는 않았다.
다만, 예전에 축일 미사를 드리며 나누었던 강론을 되찾아 읽고 그 요약을 여기에 올려, 성인의 신앙과 삶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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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애비 성당 서쪽 문 벽에는 현대 순교자 열 명의 입상을 세웠습니다. 그 가운데 두 분은 성공회 기도서(2004년)의 교회력에 담아 축일을 지킵니다.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입니다.
오늘은 미국 침례교 목자이자 시민 인권 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의 축일입니다. 세상은 위인의 탄생을 기념하는 달력을 만들지만, 교회는 전례력으로 성인이 죽은 날을 축일로 지킵니다. 이 세상의 죽음은 하늘나라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순간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요, 죽음은 곧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에 관해서 잘 알고 계십니다. 특히, 미국의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시민 인권 운동에 헌신한 그의 삶과 가르침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며, 세상을 정의와 평화, 자유의 가치로 변혁하는 방법은 비폭력 저항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천했던 분입니다.
그 가르침과 실천을 모든 신앙인은 두고두고 헤아리며 따라야 하겠습니다. 다만, 불민한 저는 그의 생애를 되새기면서, 그가 보여준 신앙의 세 단계를 발견하여 성찰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신앙의 유산을 마음에 깊이 새긴 분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목사였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온갖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신앙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보살피는 신앙의 삶을 이어주었습니다.
아버지 목사님은 독일의 종교개혁 역사를 살피고 돌아와서 종교개혁의 아버지인 마틴 루터의 이름으로 자기 이름으로 바꾸었고, 아들에게도 그 이름을 물려주었습니다. 복음에 따라 교회의 개혁에 헌신하는 삶을 아들 킹 주니어는 배우며 자랐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어야 할까요?
둘째, 그는 새로운 만남과 도전을 선뜻 받아들여 동참했습니다. 1954년, 스물다섯 나이에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의 작은 교회 목사로 부임했습니다. 이듬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로자 파크스라는 여인이 백인과 유색인종을 구분한 버스 좌석 규칙에 저항하여 백인이 앉는 앞자리에 앉아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킹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여 저항하는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저항은 들불처럼 번져서, 버스 좌석 차별 철폐로 이어지고, 이어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 인권 운동이 미국과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그는 이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1964년, 35살의 나이에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셋째, 그는 다음 세대가 이룰 꿈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명을 던졌습니다. 놀라운 변화와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가 되어 명예가 드높았지만, 그는 언제나 억압받는 사람들 곁에 가서 그들과 동행했습니다. 1968년 4월 3일 밤,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열린 흑인 노동자들을 위한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말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들을 탈출시킨 뒤, 40년간의 광야 생활 끝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모세를 이야기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 그 약속된 땅을 바라보던 모세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었습니다.
모세처럼 그는 산꼭대기에 올라왔지만, 그 약속된 땅을 바라보고도 들어가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명예도 지위도 장수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미련이 없었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자신의 끝을 아는 사람이지요. 다음 날인 1968년 4월 4일, 그가 머물던 작은 모텔 발코니 앞에서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을 받아 숨졌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에서 가르치시며 당신의 생명을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로 끌고 가시는 예수님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행동을 자살 행위라고 했지만, 주님은 그 희생으로 인간을 죄의 사슬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킹 목사님은 모세와 더불어 예수님을 그대로 따른 분이었습니다. 며칠 후 우리는 주님과 똑같은 길을 걸었던 디트리히 본회퍼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 모세의 손을 쓰시어
당신의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 내시고,
종내에 그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교회가 당신이 보내신 예언자 마틴 루터 킹의 모본을 따라,
주님의 사랑의 이름으로 억압에 저항하게 하시고,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자유의 복음을 지켜나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