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꽃 김복동 지구는 자전하면서 24시간 하루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것은 내일이라는 약속된 미래를 안겨주는 그래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희망을 걸게 하는 크나큰 선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 틀 속에서 나 역시 나름의 꿈을 꾸면서 스위트 홈을 꾸미려고 선하면서도 부지런함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래된 유행가 가사의 첫 구절이다. 요즘 들어 이 노래가 내 안에 둥지를 틀고 앉아 시시때때로 눈물 나게 하고 목메게 한다. 이 정처 없는 발길은 먼 시베리아 벌판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내 처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동병상련의 설움을 느끼게도 한다.
함박꽃같이 환한 얼굴로 온 나의 첫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그 어렵다는 공직에 입문하여 부모에게 든든한 배경이 돼 주었다. 고명딸은 중등 교사로 재직 중이고 차남은 약사로서 대단치는 않아도 남 부러워할 이유 없는 가족사였다. 이때만 해도 세상에 더 욕심낼 일 없었다.
자식들의 체취가 남이 있는 집에서 쓸쓸하다기보다 본가를 떠난 자식들이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 임무를 다할 것을 바라면서 그리움을 참으며 살았다. 직장 관계로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도 대소사가 있을 때면 불원천리 먼저 달려오는 그 반가운 맛에 행복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도 장남의 안부 전화를 받았다. 출장을 가게 되었다기에 잘 다녀오라며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예기치 못한 불행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알고 말았다.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인가. 며느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병원이라고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엔 의식불명인 채 아들이 누워 있었고 사고를 낸 장본인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경찰에 의하면 취중에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하였고 겁이 난 운전자는 술이 깬 아침에야 자수하게 되었다고 했다.
3일이 지나도록 아들은 깨어나지 못했다. 백세시대라고 소리 높이는 시대에 55세에 생을 접다니 이럴 수는 없다. 기적의 문이 열리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그 문은 열리지 않았고 신마저 못 본 채 한 6일이 지나갔다. 정녕 선한 신은 이 세상에 없었다. 술이 뭐길래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난폭하게 트럭을 몬 운전자와 험한 세상을 향해 분하고 원통해서 못 살겠다며 내 아들 살려내라고 악다구니를 쳤다. 불길에도 뛰어들 수 있는 어미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 대신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식을 앞세운 어미는 할 말 없는 죄인이다. 건강하게 살라며 생일이 돌아오면 빠지지 않고 해주던 붉은 수수 경단. 그랬는데 자식보다 내가 더 오래 살아서 이렇게 큰 죄가 될 줄은 몰랐다. 오열, 절규, 통곡 인간의 말로는 형용하기조차 어렵고 또한 창자가 끊어지고 피눈물이 강이 되고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갔다. 함박꽃이 가시 꽃 되어 가슴을 찔러대도 아프다고 울기만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서럽고 잔인했다. 모든 사람이 보내는 위로나 복 없는 어미라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음악을 들어도 아들이 보이고 꽃을 보아도 기쁘지 않았다. 수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하늘과 바다를 닮은 쪽빛 수국을 사랑했다. 야하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처럼 더없이 넉넉해 보이는 꽃이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쪽빛 나는 수국을 내 생일 선물로 주었는데 올해도 꽃은 슬픔처럼 아프게 피어있다.
49재를 마치던 날 절 마당 나무 위에서 새가 울었다. 처음 들어보는 새 소리에 빠져 있었다 밖은 겨울로 가는 싸늘한 날씨인데 법당에선 영가를 보내는 기도와 눈물로 흥건했다. 스님의 독경 소리 따라 연꽃 피는 마을로 가볍게 훨훨 날아가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스님에게 여쭈었다. 나무 위에서 우는 저 새의 이름이 뭐냐고? 스님은 모르겠다고 한다. 어쩌면 그 새의 울음은 나만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답지만 슬프게 들리는 저 새 소리는 이승을 떠나면서 아들이 어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것이라 생각했다.
하도 보고 싶어 하니 아들이 꿈에 나타났다. 생시와 같이 단정한 옷차림새로 함박꽃 같은 온화한 표정으로 아득히 보이는 청산 한가운데 서 있다. 나 좀 보라며 나 좀 데려가라며 손을 흔들어도 본 듯 만 듯 한참을 서 있다가 그냥 돌아서 버린다. 냉정하게 돌아선 모습이 홀연히 사라질 때까지 망연히 서서 바라보았던 꿈. 사람들은 말한다. 망자가 꿈에 보이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애써 부인을 하고 있다. 편안해 보이는 표정 그대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으니까. 어쩌다 꿈을 꾸어도 청산이다.
언젠가는 나도 가야 하는 길. 내 안에 가시 꽃이 피었다. 그때까지 나는 돌무덤 같은 가슴에 뿌리가 잘 내리도록 흙을 채우고 가시나무 줄기로 물을 올려주리라. 영양분을 주어 늘 푸른 잎이 피고 가시 꽃이 부드러워지도록 다독거리리라. 가슴이 아파서 울고 외로워서 울고 하지만 날 마음의 지주라고 믿고 있는 아들딸 자부들 때문에 더는 걱정하지 않도록 그만 울어야겠다.
받을 사람도 없는 손전화 번호를 눌러 본다. 허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이 행위에 또 울컥한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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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구!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참으로 아깝습니다.
늦게서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현명하게 잘 참아서
별탈없이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부디 건강하소서.
평강님
어려울 때 격려의 말씀 늘 주심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김복동 선생님
귀한 글 읽고난 후
저의 명치 끝이 아픕니다ㅠ
귀한 아드님 아픔도 슬픔도 없는
그 곳에서 편히 쉬시고 계십니다
선생님도 늘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함 선생님. 지면에서 뵙기는 하지만
이렇게 인사를 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가 밝아옵니다. 모든 소원 이루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복동 선생님. 무슨 말도 드리지 못함을 용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