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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기 전에는 못 간다고 전해라
조연조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간다. 시골에 내려 온지도 어언 일 년이란 세월을 뒤로하고 있다. 봄부터 가을이 오기까지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는 고된 일상의 생활을 하다가, 추석 연휴를 맞아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기위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벨이 울려도 거의 받지를 않다가 늦은 시간이기에 전화를 받아보니 김영순 사무국장이 사진 몇 점을 부탁한다. 그렇지 않아도 원고 부탁을 거절한터라 마음이 편치 않았었는데, 넘어진 김에 쉬워가고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사진 보내면서 글도 한 편 보내는 것이 글을 쓰는 회원의 도리라 생각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어 한 편 쓰기로 했다.
글을 쓰기위해 일어나 보니 계절의 흐름을 재촉이나 하듯 방문 앞 바랭이 풀에 추색이 찾아들은 그 위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이 바랭이 풀은 볏과의 한해살이풀로 밭 길가에 가장 흔한 잡초로 잎에 털이 나고 여름과 가을철에 백색 꽃술이 핀다. 집 주변에 온통 그것들이 점령군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것들이 싫지가 않음은 왜일까 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소 꼴 로서 이만한 풀이 없기 때문이다.
정에 약한 사람은 떠나는 계절에 마음이 흔들린다고 한다.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 역시 이 계절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충만할 것이다. 혹자는 글이란 언제나 쓰고 싶을 때 쓰면 되는 것이지 무슨 계절에 관계가 있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가하고 배부르고 시간이 많은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평소에 나는 글이란, 다른 사람들이 읽고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읽고 난 다음 아 이 글은 나에게 유익했다고 생각하는 그런 글을 써야 한다는 지론이다. 대단히 미안 하지만, 무미건조한 글을 읽고난 다음 에이 이것도 글이라고 썼느냐는 소리릏 들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런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시골로 내려왔다.
그런데 경제적인 문제가 있어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이유는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면서 한 분에게 진 빚이 억이 넘게 있어서이다. 출판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았지만 요즈음 책들을 많이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수입은 겨우 생활비 정도이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016년도 신문학지에 게제 했지만, 반복하면 무리한 사업으로 인해 빚이 많아 매에는 장사 없다고, 부도라는 쓰라린 아픔을 격어야만 했다. 그 충격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다. 엎친데 덥친 다고 가족들의 외면과 냉대로 노숙도 하며 그야 말로 인생 밑바닥 생활을 해오다 한국사진 작가협회 자문위원 이신 이일로 장로님이 재기 하라고 아무 조건 없이 1억 원이란 거금을 빌려 주어서 배운 도둑질이라고 하던 출판 일을 계속해 오다가 글을 쓰기위해 탈 서울을 했던 것이다.
가족도 외면한 나에게 거금을 융통해준 빚에 대한 부담이 나를 압박한다. 다소간의 빚을 갚는다 해도 필요하면 또 빌려 쓰기 때문에 빚이 줄지를 않는다. 그래서 형식적이나마 이자란 명목으로 월 삼십만 원씩을 드리고 있다.
빚을 빨리 갚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없이 불알 두 쪽 달랑 달고, 그리고 반신불수에다 노숙자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믿음 하나로 돈을 차용해 주었는데 그 믿음에 대한 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늘 나를 엄습하고 다그친다.
그래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글을 쓰는 것 아니면 출판 일을 계속 하는 것, 이 둘다 불확실하다고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냔 말이다.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으면서 아무 대책도 없이 거금을 빌렸느냔 말이냐. 참 미약하기 짝이 없는 웃기는 나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언제 쯤 돈을 반제해 줄 가를 애태우며 기다릴 텐데 말이다.
고향에서 주유소를 하는 친척 분인 장로님이 전도 주일이라고 교회를 나오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 주일학교도 다니고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다녔으며, 그리고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신학교엘 다니기도 했다. 신학교를 한 학기를 다녀보니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혈기 왕성한 때라 세상의 유혹이 많은데 그걸 이긴 다는 것이 어려워 늘 속 다르고 겉 다르게, 즉 위선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싫고 적성에도 맞지 않아 목사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터라 교회에 나가는 것을 미루다가 권한장사 밑 안진다고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체할 수 없도록 흐른다. 하나님 아버지 타락 할대로 타락한 이 불쌍한 죄인에게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베푸시어서 앞으로 십년의 세월을 내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해 이일로 장로님께 진 빚을 갚게 도와주시길 바란다는 기도가 눈만 감으면 하게 된다.
언제나 대 예배 시작 2~30분 전 교회에 나가 찬송가를 부르면 지난 날 불렀던 찬송가가 유행가를 부르는 것보다 훨씬 잘 불러지고 그로인한 은혜가 나를 감동케 한다. 그리고 침체 되었던 내 생활에 활력과 자신감도 생긴다. “도대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기도가 생활의 일상이 되다시피 한다”
평소 나는 내가 편저한 도서 중 “6,25전쟁 비화 전 5권과” 우리 먹거리와 약용식물의 이해“ 그리고 웰빙 채소 기르기의 실제 이 세 가지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남다르다. 만일 내가 죽어 신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신다면 거침없이 위 도서를 세상에 업적으로 남기고 왔다고 말 할 것이다. 그만큼 자부심이 가는 도서를 편저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도서이기에 그러느냐고 물으면,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은 8,15해방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까지의 전 과정을 사진과 함께 편저 했으며, 우리 먹거리와 약용식물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초의 먹거리”의 전반적인 것을 사진과 함께 해설을 곁들여 편저 했다. 그리고 웰빙 채소 기르기의 실제는 채소 노지에 기르기와 용기에 기르기를 사진과 함께 편저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세 도서는 내가 만들지 않았으면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하는 도서란 말이다.
약용식물 중 허브라는 식물이 있다. 허브<Herb>란 라틴어로 “헬바” 즉 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생활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식물이라는 것이 그 정의이지만, 이 말에는 보다 넓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허브라는 말속에는 의식주 다시 말하면 인간이 생활 하는데 필요한 “향초” 즉 향기가 나는 식물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현실이다.
따라서 지중해에서 자생하는 자소 과의 식물, 예를 들면 로즈마리, 캐모마일, 민트, 라벤다, 장미 등 이런 식물들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허부식물로 알려져 있으나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곡물과 채소, 과실까지도 허브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약용식물 중 허브에 대한 유용함을 편저한 나로서는 “로즈마리”라는 식물의 효능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로즈마리 기르기 기르기를 해보자고 다소 엉뚱한 결심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3천 여 만원의 돈이다. 매월 출판사에서 입금 되는 백오십 여 만 원은 생활비와 이자로 지불되고 조금 저축된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고민을 하다가 어릴 적 불알친구에게 말 했더니 그런 몸으로 작물을 기른다는 것이 가능 하느냐고 하면서 작물은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라고, 웃기지 말라는 조소가 따른다.
염치없게 또 이 장로님을 찾아가 허브를 기르려 하는데 돈이 필요하니 오백만 원만 빌려 주시라고 하니, 친구처럼 그 몸으로 힘든 노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기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니, 카드로 오백만 원을 주시면서 매월 백만 원씩 이자와 함께 갚으라고 하신다. 사람은 한 번 도와준 사람이 또 도와준다는 것이 평범한 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돈이 부족하다. 우선 시작부터 해 보자. 하다보면 무슨 길이 열리겠지, 언제 내가 통장에 돈 너 놓고 일 했나 생각을 하고, 천 여 평의 땅을 임대했다. 땅을 갈고 퇴비를 넣고 종묘를 심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그 돈 가지고 편하게 살지 늙고 병든 몸으로 무엇을 한다고들 수군거린다. 어디 두고 보자 내가 해내나 못해내나 하는 오기가 발동했다.
준비를 다 해 놓고, 지난번에 거절을 한 기현이란 친구를 다시 만나 설득을 시작했다. 내가 진지하게 부탁을 하니, 푼푼이 모아 놓은 돈 7백 여 만원을 빌려 준다. 그리고 부족한 돈은 주유소 하는 친척인 장로님을 찾아가 차용했다. 이 장로님 역시 친척 중 유일하게 돈이 필요해 부탁을 하면 거절을 안 하고 인자한 웃음과 함께 해결해 준다. 이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로즈마리라는 식물 기르기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편저한 나인지라 처음은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식물이 커갈수록 의문 투성 이다. 아 이론과 실제가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싶었다. 예를 들면 로즈마리라는 품종 중 포복성인 크리핑로즈마리란 것이 있는데, 유럽에서는 추위에 약하다고 알려져 있어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더위에도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옥한 땅보다는 박토가 좋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비옥한 땅과 박토에 심어 봤더니, 박토에는 식물이 비실비실 해 잘 자라지를 않는다. 평소에 비옥한 땅 그리고 마사토나 모래땅이 적지라고 생각한터라 그렇게 했으니 망정이지 척박한 땅에 많이 심었더라면, 그러면 그렇지 젊은 사람들도 어려운 일인데 늙고 병든 몸으로 하며, 인생 늘그막에 정말 비참한 생활과 망신을 톡톡히 당할 번했다.
여기서 감히 말한다. 체험도해 보지 않고 좆도 모르면서 탱자탱자 하면서 거름 짐 지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확실히 모르면 모른체 있으란 말이다. 괜히 아는 채 해서 생사람 잡지 말란 말이다. 이 사이비 지식인들아. 그리고 공부 좀 하길 바란다. 흔한 말로 공부해서 남주냔 말이다.
4월이 이식 적온이어서 옮겨 심었더니, 내 고달픈 처지를 이해를 해서인지 쑥쑥 잘도 자라준다. 이대로라면 그 고마운 이 장로님 빚을 내년이면 갚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무가 자라면, 전정을 해주어야 한다. 다른 일들은 일꾼들을 시키면 되지만 전정 작업은 나무 수형을 잡는 일이기에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 일을 하는데 한 쪽이 마비가 된 몸이라 이랑사이 고랑을 다니다 보면 넘어지기 일쑤 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넘어져도 온 몸을 비틀며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을 치면서 일어날 수 있지만, 비가 올 때 넘어지면 그야말로 낭패다. 고랑이 미끄러우니 온 몸이 흑 탕 물로 범벅이 된다. 그런데 비가 온 날이 일 하기엔 훨씬 편하다 더위를 피할 수 있기 있기 때문이다. 아침 여섯 시에 나가 12 시까지 일하고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쯤 휴식을 취하고 2 시 경 일을 시작한다.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마을회관 스피커에서는 노약자들은 외출을 삼가 하라고 나발을 불어댄다. 폭염 주의보가 발령 되었다고 말이다. 그래 누가 염천 더위에 일을 하고 싶어 하느냔 말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 이 말이다. 이 탁상머리 공무원들아. 더우니까 윗옷은 메리야스와 하의는 시골이라 마땅한 것이 없어 5일장 날 후줄그레한 여자 옷 같은 것을 입고 일을 하다가 일꾼들이 새참이나 다른 심부름을 시키면 입은 옷을 벗고 입고가 어려워 입은 옷 그대로 면 소재지의 가게나 농협마트 그리고 은행을 드나드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한 때 정신 이상자로 오해들을 한 모양이다. 글을 쓰는 작가인데 몸이 불편해서 그런다는 말을 듣고 이해들을 해 주어서 그런대로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말이 나온 김에 일꾼들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하루에 품삯이 남자는 십만 원, 여자는 육만 원이다. 그리고 새참과 점심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있다고 해야 6~70이 된 고령층이다. 앞으로 농촌에 있어서 일손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일 것이기에 대책이 필요하다 하겠다. 다행히 나는 대 여섯 군데의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발행한 도서들을 기증해 점수를 따서 전화만 하면 몇 팀들은 언제나 달려온다.
단 하루 전에 부탁을 해야 한다. 하루는 일하는 여인들이 다섯 명 중 세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오고 두 여인은 자가용을 타고 온다. 해서 나는 순천시 여자 오토바이 근로 대를 만들어야겠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에 따라 농촌의 여인들도 많이 변했다. 오토바이와 자가용을 타고 일 하러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자전거도 없어 못 타던 시절의 이 땅의 여인들이 말없이 슬어져 간 그 고달픈 삶들을 설명키 어렵다.
여기서 한 여인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못 베기겠다. 그녀 임 여사는 일하는 것에는 프로 중 프로다. 일 할 때 머리가 내려와 귀찮다고 머리띠를 질근 동여 맨 모습이 마치 노동자들이 데모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물이 자라가는 과정에서 경험에 의해 영양제와 병, 해충 방제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루는 내 손에 벌레를 몇 마리 손바닥에 놓아 준다. 이것이 응애 라는 해충이니 약제를 살포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응애 라는 해충은 식물의 대나 줄기에서 진액을 빨아먹어 식물이 고사하게 된다. 이것을 흡 즙 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번식력이 대단해서 몇 일간만 방제시기를 놓쳐도 그 피해가 말 할 수 없이 크다.
이튿날 분무기를 메고 와 응애 약과, 살충제 그리고 영양제를 함께 해 주어야 한다며 같이 식물 약국을 가 약품들을 1.000 여 평 면적에 살포할 양을 구입해, 2000/1로 각각 희석해 약물 20L가 든 분무기를 짊어지고 한 손으로는 펌 핑 작용을 하고 한 손으로는 식물에 고루고루 약제를 살포를 한다.
임 여인의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한다. 남자도 짊어지기 버거운 분무기를 메고 하루 종일 이 이랑 저 이랑을 다니면서 약제를 살포하면서 응애 가 있으면 직접 손으로 잡아서 으깬다. 식물에 있어서 해충을 직접 포살하는 방법이 최상이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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