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제목 선구자 안드레
요한복음 1:35-42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한 발짝 먼저 나선 사람을 선구자라고 합니다. 안드레가 바로 선구자입니다. 선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귀하지만 나 자신이 선구자적인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선구자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안드레는 선구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본래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입니다. 안드레는 스승의 안내를 따라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아무런 이적을 행하시기 전입니다. 더구나 그의 스승 세례요한의 인기가 절정에 이른 때입니다. 그렇지만 안드레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안드레는 본래 앞장서는 성품은 아닙니다. 그의 형제인 베드로처럼 요란하지 않습니다. 신중하고 과묵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신속했습니다. 안드레의 생애 중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시간을 기록해 둠으로. 예수님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났던 10시는 역사적인 시간입니다.
우리 역시 많은 만남이 있지만 예수님을 만남보다 더 소중한 만남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며, 어둠에서 광명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은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며, 역사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선구자입니다. 선구자는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남이 가지 않는 좁은 길을 걸어갑니다. 세상과 거꾸로 가는 길입니다. 우상숭배로 충만한 집안에서 먼저 예수님을 믿는 일은 선구자적인 삶입니다. 500년 역사를 지닌 대대마을에도 믿음의 선구자들이 계십니다. 강영온, 김재철, 김영호 장로님과 한분여 김대순 서평엽 김덕심 권사님 같은 분들입니다. 새벽마다 남들보다 앞장서서 기도하는 분들이 선구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직장생활에서도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선구자적인 사고를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대신 중학교 만들어서 사람을 키운 것도 선구자적인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노인대학을 한 일도 선구자적인 일입니다. 시청에서 순천시 34개 읍면동 복지공무원을 모아놓고 우리 교회 노인대학을 소개하게 했고 그 일로 34개의 노인대학이 생겨났습니다. 아동센터도 그러했습니다. 시청 아동복지 담당 직원은 새로운 센터를 열기 위해 찾아온 민원인들에게 우리 교회 아동센터를 소개하여 먼저 가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교회가 수천 명의 대학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일도 한국교회에서 처음 하는 일이었습니다. 수련원 사역도 당시엔 순천 시내에서 우리 교회만 있는 유일한 수련시설이었습니다. 농촌 교회에서 도서관 사역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평화 병원 선교, 다문화 프로그램 운영도 선구자적인 일입니다. 자연생태 보전을 위해 앞장을 선 것도 선구자적인 일입니다. 교회는 시대마다 선구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선구자가 되려면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안드레가 첫 번째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1:35-37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안드레와 요한이 그의 스승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선구자적인 행동을 감행했습니다.
선구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비전의 책이며, 선한 목표를 갖게 합니다. 설교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비전으로 삼으면 듣지 못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한 일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이 복이라는 목사님 설교를 듣고 신학교에 갈 생각을 했습니다. 목회하려는 생각보다 복 받는 삶을 살려면 말씀을 잘 배우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좋은 책을 읽어도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링컨은 엉클 톰이란 책을 읽고 노예 해방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국의 모든 공무원들에게 <주식회사 장성군>이라는 책을 읽으라고 권장했습니다. 당시 장성군수는 무소속으로 3선을 김흥식 씨입니다. 그가 부임하여 먼저 했던 일이 <장성 아카데미>입니다. 선진 사고를 갖게 해주면 군이 발전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공무원들의 생각이 바뀌니 많은 중소기업을 유치했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기업 이익의 일부는 동네마다 배당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도 선구자가 되었다면 세례요한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면 더 나은 선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생태칼럼을 쓰고 있는데, 책을 읽고 자연생태의 지식을 얻습니다. 일반 학자들은 자연의 생태와 신비를 말하지만 진화의 관점으로 해석하니 어긋나고 맙니다. 저는 학자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는 안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뛰어난 생각하게 되고, 선구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선구자는 나누는 사람입니다
안드레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즉시 그의 형제인 베드로에게 증거합니다. 요1:41-42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오라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선구자는 다른 사람과 축복을 나눕니다. 선구자는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의욕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선구자는 내가 아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줍니다. 내가 경험한 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경험하도록 안내합니다. 선구자의 삶은 다른 사람을 유익을 끼치는 매우 비싼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알고 있는 바를 나누면 두 배, 열 배가 됩니다.
아동센터 제도가 시작할 때 목사님 한 분에게 아동센터를 안내하는 강좌에 초대했습니다. 그 강좌를 듣고 아동센터를 시작했고 가족과 친족들의 일자리까지 만들어 주었고 지역사회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김종배 목사님도 우리 교회 노인대학과 도서관을 배워서 소문날 정도로 잘합니다.
앞선 경험을 나누어도 복이 된다면 내가 믿는 예수님을 전하고 믿음을 나누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 믿는 믿음을 나누는 일은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나누는 선구자입니다. 벧전2:9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28:18-20 천하 만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을 나누고 선한 경험을 나누는 선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구자는 이 인자가 될 각오도 해야 합니다
선구자라고 해서 항상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드레는 가장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선구자이지만, 예수님의 제자 명단엔 베드로 다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할 때도 그 현장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가까운 곳에 두셨습니다. 안드레의 인격과 신앙이 다른 제자들보다 모자라서 그랬다고 볼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의 인격이 원숙함 때문에 스스로 설 자리를 그렇게 결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교회에 베드로 같은 인물이 많아서는 안 되며 안드레 같은 인물이 많아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은 튀고 싶어서 난리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행하는 안드레와 같은 신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지난날에는 카리스마적인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지만, 지금은 섬김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가장 먼저 제자 된 자로서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위대한 선구자는 자신의 명성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높아짐보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앞서 결단하여 나감을 큰 가치로 여깁니다. 낮은 자리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고 하나님 나라의 정신에 부합되는 일입니다. 선구자란 으뜸의 자리를 얻음이 아니라, 으뜸으로 섬기는 것임을 기억해 두시기를 바랍니다. 섬기는 선구자가 되십시오.
결론
그리스도인은 선구자입니다. 믿음의 일, 선한 일에 앞장서는 선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웃과 믿음과 선한 가치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알아주는 자가 없더라도 믿음의 길, 다른 사람을 유익 되게 하는 길로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선구자의 길을 걷고, 선구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