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피난처
이현래 2018-06-12
시편에는 주께 피한다는 말이 수 없이 많다.
다윗은 여호와를 자신의 피란처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경험이 없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분이며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때
갑자기 밤중에 도적에게 침범 당한 것처럼
감당할 수 없는 환란을 당했던 것이다.
50년 전(31세 때) 목회 길에 있었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중앙위원회
(내가 속했던 교단의 최고 집행부)에서
이유를 모르는 제명통지서가 날아왔다.
그 이유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4년간을
교회의 도움으로 버티었으나
결국 내 심령은 피폐해지고 교회 역시 가뭄에 논바닥이 마르듯이 메마르고 갈라져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됨으로서 교회를
사임하고 나왔던 것이다(주의 손에 이끌려-
나의 자서전에 실린 내용이 있음)
그 때 나는 감당할 수 없는 환란을
당했으나 피할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다윗은 위태로울 때마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오” 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피할 곳을 얻지 못해서
오로지 “나의 정당함”이라는 방패 뒤에
몸을 피하고 그 불화살들을 피하려고
발버둥 쳤으나 결국엔 싸우다 보니 나도 불의해지고 영혼은 극도로 피폐해져서
감사와 찬송이 사라져버린 메마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다윗은 “주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였건만 나는 그 피할 곳을 알지 못해서
처참하고 가련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께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나는 내가 환란 날에 찾아 갈 피난처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그가 미리 알아서 나를 큰 바위 밑에 숨기시고 큰 손으로, 자비의 손으로 그 때
그 때 나를 덮으셨기에 감사와 찬송 속에
살았지만 내가 어디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부모에게 보호 받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와 보니 역시 나의 피난처는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힌 바로 그 사람인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그의 한량없는 은혜를 입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못지않은 은혜를 입었고, 이스라엘과 같이 각종 많은 혜택을 입었으나
그들이 환난 날에 찾아가던
여호와의 성전도 없었고,
인류의 구속을 위해 오셨다는 예수,
하나님 아들을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예수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특별히 나를 위해 십자가를,
또한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그 예수는 아무리 읽고 들어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과 같았다.
은혜와 혜택을 입었으나 여호와 자신은 알지 못했고 그의 아들이라 하는 예수는 더욱 알지 못했는데 그들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엄격히 말하면 나는 신약시대의 유태인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예수로 인하여 거듭난 사람이 아니었고
다만 여화와 하나님에 의해서 은혜를 입고
부름 받은 사람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환난 날에 피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기도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피난처가
되지 못했고 나의 정당함도 완전한 방패가
되지 못했다.
나는 사면 초가였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창수가 나니 피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모든 것이 끝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래도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나를 그냥 그 환란의 곳에 두지 않으시고
건져내서 다른 곳으로 옮기셨던 것이다.
또 다시 기회를 주시고 손을 잡아
인도하셨던 것이다.
그 때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천애 고아처럼 버려졌다가 살길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나를 부르시고 인도하신 그의 손길은
멈추지 않으셨다.
나에게 배정 된 영원한 피난처를
알 때까지 그는 나에게 신실하셨다.
그 피난처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이스라엘에서는 2km마다 피난처를
설치해 놓고 비고의적인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사장이 상시 거주하고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부지중에 남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을 때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에 정해진
보복을 면하기 위해 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내가
환란을 당할 때 어디로 피신하라고 하셨던가?
그저 기도하는 것 밖에는 알지 못했던
나는 나름대로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으니
길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기도가 충분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길 밖에 모른 나로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구했지만 공허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나를 위해서 예비 된 피난처,
내가 바로 찾아 갈 수 있는 곳에
항상 설치되어있는 피난처,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
살아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함께 그의 형상(금을 입은 조각목)으로 나타나시고, 죽어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 참 사람(금을 벗은 조각목)으로 드러난 사람, 나와 온 인류를 포함한 이 사람,
사단의 불화살을 완전 무효화 시키고 나와
온 인류를 구속한 이 사람을 만난 것이다.
영원한 피난처, 나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유일한 피난처, 곧 환난 날에 나의 피난처,
다윗이 경험했던 그 피난처보다 더 확실하고 실제적인 피난처,
살아서 완전하게 하나님 같이 되시고,
죽어서 완전하게 사람이 되신 예수!
나의 영원하고 완전한 피난처 예수!
장대에 매달린 놋뱀,
십자가에 달려 뛰어내리지 못한 예수!
언제 어디서고 내가 그 안에 있고
그가 내 안에 있는 함께 계신 예수! 임마누엘!..........
아멘, 할렐루야!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