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7 - 구 후루카와 저택에서 장미를 보고 걸어서 리쿠기엔 정원을 찾아가다!
11월 7일 도쿄역 야에스 기타구치 (八重洲 北口) 건너편 골목에 에 자리한 도요코인
호텔을 나와 도쿄역 에 도착해서는 기계에서 “도쿄 프리깃푸” 를 구입 합니다.
그러고는 기계에 표를 넣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시게 반대 방향으로 가는 야마노테센 (山手線) 전철을
타고 코마고메 Komagome 駒込 역에 내려서는 구 후루카와 정원 (旧古河庭園) 에 도착 합니다.
다이쇼(大正) 시대 에 만들어졌다는 정원에는 활짝 핀 예쁜 장미꽃 이 지천으로 보이니 그 향기를
맡다가 문득 푸른 장미 가 없나 싶어 찾아보는데 현실에 파란 장미는 실존하지 않았습니다.
꽃에서 푸른색 을 내게하는 색소는 델피니딘 으로 장미에는 델피니딘을 생산하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인데 2014년 산토리사는 푸른 장미 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유치원생인 듯한 어린이들이 단체로 구경을 온 장면을 보고는 구 후루카와 정원을 나와 시내 지도를
보면서 리쿠기엔 六義園 으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걷는데 도로변에서 분리수거대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에도막부 때에 야나기사와 요시야스가 만들었다는 지천회유식 정원 인
리쿠기엔 에 도착했는데, 여긴 후문이라 문이 닫혔으니 들어갈수가 없는지라
긴 담을 따라 한참동안을 걷노라니 정원의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윽고 모퉁이에 도착해서는 우회전을 해서 조금 더 걸어서는 드디어 리쿠기엔 정문
으로 들어가는데 매표 창구 에 보니..... 조금 전에 본 후루카와정원 공통
입장권이 100엔이 싼 것을 본 와이프는 사전에 미리 살펴보지 않았다고 핀잔 을 줍니다.
특히나 울 마눌은 이런 푼돈에 민감 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데.... 해서 짜증이 나는지라
나도모르게 “아, 몰라!” 라고 한마디 했더니 그걸 들은 마눌은 “아, 몰랑?” 하고 되묻습니다!
여기서 왜 아몰랑이 나오지? 아마도 내가 “아, 몰라!” 라고 한 것을 마눌이 잘못 알아들었지 싶은데.... 문득
동아일보에 실렸던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에 나오는 “‘아몰랑을 생각해 보면” 이란 글이 떠오릅니다!
“지인의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떠들다가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 ‘아몰랑’ 이란 말에
선생님이 “쓰레기 단어 쓰지 말라” 며 발끈했다는 것이었다. 여성혐오 단어 라고 한다.“
“‘모르겠다’ 의 장난스러운 표현 인줄 알았다.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서 봤고, 뉴스에도
무책임을 꼬집는 제목으로 뽑혔기에 유행어 인가 보다 했다. 검색해 보니
고연전에 고려대 응원단이 내건 현수막이 재치있다. ‘아몰랑! 그냥 연대 자체가 짜증나.’”
“‘아몰랑’ 은 원래 여성혐오 사이트에서 유행한 말 이라 한다. 한 여성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에 쓴 글을 혐오 사이트 회원들 이 퍼다 조롱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녀는 ‘대한민국에 비리가 너무 많다’ 고 썼는데 지인이 무슨 비리가 많냐고
묻자.... ‘몰랑! 그냥 나라 자체가 짜증나’ 라고 대답했던 데서 유래 됐다.”
“여성학자 윤보라 씨는 방송에 출연해 “여성에 대한 편견, 예를 들어 ‘무지하다,
혹은 비합리적 이다’ 등과 맞아떨어져 유행하고 있다” 라고 분석했다.
객관적 사실을 논리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자기 생각과 감정대로 행동 하는 일부 여성의
특성을 과장한 혐오 표현이 ‘아몰랑’ 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감정 안테나 가 남성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 고감도 안테나를 가진 여성에게 ‘싫은 느낌’ 은 실질적 고통이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회로를 차단할수 밖에 없다. SNS 여성의 ‘아몰랑’ 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혐오 스럽다’ 는 쪽이다. 둔감한 남성도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안테나가
어떤건지 알수있다. 조금만 아파도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오는 고향 어머니
의 신통 노하우가 감정 안테나다. ‘초고감도’ 라서 싫은 느낌에는 몸서리 를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한 영화사이트 대표가 ‘아몰랑’ 을 썼다가 항의 받고 사과 하는 과정이
논란을 빚었다. “여성혐오 표현이니 쓰지 말라” 는 쪽과 “어디에나 쓸수 있는
농담 혹은 풍자” 라는 주장이 맞섰다. ‘무조건 쓰면 안돼’ 식이라면 되레 여성혐오
사이트에 동조해 주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아몰랑! 쓰지 마’ 로 오해받을 수 있다.“
분쿄구 혼코마고메에 자리한 리쿠기엔 입구에는 사진 들이 엄청 많이 붙어 있어서 구경을 하는데... 중간의
어느 지도에 보니 中國(중국) 이란 글귀가 보여 아니 일본의 정원에 왠 중국?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니 일본내의 지명인 주고쿠(中國 중국) 를 말하는 것인데
헤이안(교토) 시절에 일본은 전국을 66개 주(국) 으로 나누었으며.... 그보다
조금 더 큰 단위로 지역을 불렀으니 구주, 사국, 동북, 관동, 중부, 근기에 중국 입니다.
먼저 가장 서쪽에 구주(九州 큐슈) 는 말 그대로 9개 주(국) 가 있다는 것이니 치쿠젠, 치쿠고, 부젠, 붕고, 히유가
오스미, 사쓰마, 히고, 히젠이며 다음 시코쿠(四國)섬은 글자 그대로 도사등 4개국 이고 기장 북쪽인 도호쿠
(동북) 는 무쓰와 데와 등이며 관동은 무사시등 8국이고, 중부는 스루가등 16국이며 근기는 오미등 15국 입니다.
혼슈의 가장 서쪽을 주고쿠(中國 중국) 라고 불렀는데 오카야마현은 비젠, 미마사키, 빗츄이고
히로시마현은 빙고와 아키이며..... 시마네현은 오키, 이즈모, 이와미이고
돗토리현은 호키와 이나바이며 시모노세키시가 속한 야마구치현은 스오와 나가토 가 있습니다.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인 오우치(大內) 씨는 아시카가 막부 시대에 스오, 나가토, 빙고,
아키에 규슈의 치쿠고와 부젠 등 6국을 거느렸으며.... 군대를 이끌고 교토로
진출해서 야마시로(교토시) 를 점거 하고 막부를 좌지우지 하는등 위세를 떨쳤습니다.
일본의 한 지방의 영주가 자기 영지를 다스리는 것을 소홀히 하고 군대를 끌고 교토로 올라가
중앙정치에 개입하니..... 어마어마한 전쟁 비용으로 인해 재정이 파탄나자 신하가
반란 을 일으키니 오우치의 다른 신하 모리(森) 씨가 어부지리를 얻어 저 6국 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오카야마 지방을 놓고 오다 노부나가와 오랜 전쟁을 치르다가 오다의 부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군 물량공세에 굴복한 후에 그래도 6국을 지배 하는 대 영주로 임진왜란때 가토 기요마사가 1만,
고니시 유키나가가 7천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 때 저 모리씨는 6국을 지배하니 3만 대군을 파병 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6살 어린 아들 히데요리가 이어받자 저 음흉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야심을
드러내니 1600년 교토 동쪽 세키가하라에서 동서 양군 18만 대군이 격돌하는데 전국 각지에서
동서로 갈려 전투를 했으니 도합 30만대군이 전투를 치룬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 합니다.
도쿠가와는 소극적으로 반대한 모리에게서 4개국을 빼앗고 야마구치현 스오와 나가토 2국 만을 지배
하도록 허락하니 "조슈번" 으로 260여년간 숨을 죽이고 엎드려 절치부심하던 조슈번은 1860년대
에 존왕양이를 내세우며 교토로 진출해 천황(일왕) 을 받드니 에도 막부 15만 대군의 진격에 항복합니다.
하지만 조슈번 하기시의 요시다 쇼인의 마쓰시타숙 제자들인 신사쿠 가 300명으로 거병해 4천 조슈번병과
전투에서 승리해 막부파를 몰아내고 조슈를 차지하자, 막부는 10만 대군을 5개 방면으로 진격시켰으나
4천에 불과한 병력으로 사쓰마번의 후원 아래 사카모토 료마의 해군 등과 함께 물리치는 기적 을 만듭니다.
에도 도쿠가와 막부가 전국 260개 번에서 소집한 10만 대군이 4천 조슈번 군대에 패해 물러나자 막부의 위신
은 땅에 떨어지고.... 조수번은 나가사키 영국인에게서 구입한 신무기로 무장한후 사쓰마번과 도사번에
히젠번과 무진전쟁 을 일으켜서 천황(일왕)을 받들고 에도 도쿠가와 막부를 멸망시키니 "메이지유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