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25-32,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들은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은혜를 끼치는 삶(4:29-32)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버려야 할 죄(4:25-28)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바른 삶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적용부분을 제시하고 있는데 1)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여기서 버리라는 것은 완전히 벗어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새사람을 입었으면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어 옛사람을 걸쳐 입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을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거짓’을 보면 ‘프슈도스’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얼토당토한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과 비스므리한 말로 그러나 실제는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뱀이 하와에게 한 것 같은 이치입니다.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그러나 그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8:44절에서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또한 바울도 고전11:3절에서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짓은 마귀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참으로 의와 진리로 거듭난 새사람이라 할수 없습니다. 행5:3절에 아나니야 삽비라가 나오는데 그들이 땅 판 것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을 때 이것이 다냐? 그러자 아나니야가 그렇다고 했습니다. 3절“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속일 마음이 있다는 것이 사단이 가득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사단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거짓의 유혹을 받고 있는지, 아니면 참으로 진실한지, 시119:104절“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라는 고백을 할수 있는지,
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분을 내어라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 해가 너의 분위에지지 않도록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전혀 분을 내지 않을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언제 내는 걸까요? 죄악을 볼 때, 그릇된 길로 가고 있을 때, 그때는 분노하라는 것입니다. 꾸짖을 일이 생기면 꾸짖고 질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이끌어 주라는 것입니다. 민 25:11절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운 질책은 큰 재앙과 타락을 막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입술의 권세가 있어야 하고 그 권세는 청결한 마음과 기도와 말씀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이 아니면 죄로 인해 통로를 열게 되고 그것은 또 사탄을 초청하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의 뒤에는 사단이 진치고 있고 잘못하면 오히려 실패로 끝이 나게 됩니다.
왜 실패로 끝날까요?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억누르고 짓밟을 때 거기에 다른 죄의 요소 미움이나 시기, 다툼이 결부되어 역으로 공격을 당하고 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7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뭐가 마귀에 틈을 내 주는 걸까요? 바로 분노입니다. 그 분노가 해가 지도록 그대로 있으면 마귀, 즉 참소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저녁은 하루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하면 분노를 해가 지기 전에 해결하지 않으면 새날에도 계속 그 분노로 인해 인간관계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책망하여 교정하는 일이면 해지기 전에 일단락 지으라는 것입니다. 이웃과 화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유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귀는 분을 품고 있으면 그 틈을 타서 그 일을 하나님께 참소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틈’‘토폰’은 ‘발판, 기반, 기회’의미를 가지고 있어 마귀에게 성도들을 참소할 기회를 제공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전7:9절“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28절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권면보다 적극적인 권면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혼자 잘 먹고 잘 입고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일하라, 즉 내 중심이 아니라 이타중심으로 살기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수고하여’‘코피아토’는 원형이 ‘코피아오’인데 육체가 피곤해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동사입니다. 바울이 장막 짓는 일을 할 때에도 이 단어를 썼습니다.(고후4:12) 이 땅에 사람을 청지기로 보내시고 하신 명령이 ‘아바드’‘노동, 섬김, 예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후3:10절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일이 섬김이고 예배이고 사역임을 말씀합니다.
29절“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은 ‘로고스 사프로스’‘아무런 쓸모없는 말을 의미합니다. 또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말은 교회공동체에서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덕을 세우는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즉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아로새긴 금사과라 했습니다.(잠25:11)
3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혹은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입니다. 근심하게 하는 일들이 지금까지 살펴본 일들이 성령을 슬프게 하고 근심시키는 일들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삶을 산다면 근심하시고 슬퍼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은 성령을 거스르는 일, 성령을 훼방하는 일, 성령을 소멸시키는 일, 또는 말씀에 역행하는 모든 일입니다.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성령을 슬프게 근심시키는 일은 하면 안된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왜그럴까요? 성도는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 쳤다는 말은 날인하여 표시를 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의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날인을 쳤다고 하십니다. 이 인치심은 구원이 완성되는 날까지 계속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인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을 완성하는 날까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1절에 말씀합니다.
31절“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여섯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독은 항상 분내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독설을 퍼붓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말로 짓는 악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노함인데 ‘뒤모스’는 ‘격하게 끓어오르는 분노’ 인데 성경에서 예수님을 낭떨어지로 몰고가 죽이려는 행위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분노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행19:28)
다음으로 ‘분냄’‘오르게’는 노함과 비슷합니다. 다른 것은 이 분냄은 복수심을 나타내는 내면적인 적대감의 용어입니다. 다음으로 떠드는 것, ‘크라우게’는 적대감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퍼붓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음으로 ‘훼방하는 것’‘블라스페미아’는 욕설, 조롱하는 말, 모독, 특히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방하는 행위, 이웃을 해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모든 악의 ‘파세 카키아’는 앞에 5가지를 아우르는 인간이 지닌 온갖 종류의 나쁜 감정을 통털어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6가지의 감정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버리도록 하실 때 나는 거기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부정과거 명령형이기에 이러한 악한 일들은 단번에 지체없이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들임을 말씀합니다.
32절“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의 본성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되갚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친절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라 하십니다. 내 본마음으로는 안되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라 하십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하듯이 용서를 받아본 사람이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냥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십자가위에 놓으시면서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고 용서했어(롬5:8)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날마다 생각하고 하라 하십니다. 우리의 심장에 새기고 이제 용서하고 순종하라 하십니다.
눅6:35절“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3)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마치겠습니다.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입고 있던 누더기를 벗어 버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은 것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옷을 입었으니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친절과 용서와 긍휼이 아직 내안에 없다면 아직 새사람을 입은 자는 아닙니다. 내 안의 사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종교생활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새사람을 입으셨나요?
거짓과 분노가 제 깊은 곳을 틈탈 때,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에 누를 끼칠 때가 많은 연약한 저임을 고백하오니, 성령께서 저를 친히 견인하셔서 예수 믿는 자의 덕을 세우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퍼가실 때는 흔적을..
첫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