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둥날,150년 전통 점리민속축제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은 영둥할매가 오는 날이고, 중화절[中和節]이라 하여 농사일을 시작하는 날이다. 삼척 도계 점리마을에서는 영둥날을 맞아 옛부터 내려오던 민속놀이 축제을 펼첬다. 전통주연구가 박병준 회장과 kbs1-tv의 촬영을 보면서, 민속놀이와 주로 강냉이[옥수수]술을 빚는 과정을 취재했다. 반세기 전 내 어릴 적 농사를 짖는 부모님은 영둥날에 팥시루떡을 만들어 텃밭가에 차려놓고 영둥할매에게 올해의 풍년을 비는 제를 올렸는데, 점리에서는 주민과 인근마을 사람들도 찾아와서 푸짐한 상차례와 민속놀이로 오랜 전통의 한해 농사 시작을 온몸으로 새 출발 새 회망을 알렸다.
영둥할매는 지상에 내려 올 때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오는데,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내리고,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분다고 했다. 그러므로 풍년이 들려면 영둥할매가 며느리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리주민들의 극진한 영둥할매 맞이로, 영둥할매가 며느리를 데리고 왔는지 축제 마무리 무렴에 올 한해 농사가 풍년을 기약하듯이 진눈깨비가 많이 많이 내렸다.
옛날부터 점리는 삼수령 아래 산간의 좁은 계곡 마을이여서 쌀이 귀했다. 쌀 대신 흔한 강냉이[옥수수]로 술을 빚어 어르신들이 장복하면서 농사일을 했다. 지금도 산동네 한 집은 강냉이술을 빚어서 마신다. 마을축제에서 전통주 강냉이 술빚기를 시연해 귀한 시간을 함께 했다.
과정은 마을회관 위쪽 50m 최승화[74] 어르신 집에서 출발하여 500m 떨어진 산 아래 위쪽의 디딜방아가 있는 독가촌으로 싹 띄운 강냉이를 고무다라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갔다. 그 독가촌 방앗간에서 지금은 자취를 감춘 옛 향기 물씬나는 디딜방아로 강냉이를 찧기 시작했다. 이런 풍경은 역사 속 사진에서나 보는 진풍경 앞에 소름이 돋는 듯한 경이로움에 떨림이 왔다. 강내이 2되를 디딜방아로 빻는데 1시간이 소요 됐다. 그걸 하나를 보면서 옛 조상들의 삶이 얼마나 힘 들었을 까를 엿 보았다. 그렇게 빻은 강냉이 가루를 머리에 이고 오던 길을 다시 내려왔다.
본격적인 강냉이 술 담그는 작업 시작이다. 솥에 물을 채우고 힘뜰게 빻은 가루를 넣고 아궁이에 자장작을 태우며 죽쑤기를 한다. 솥바닥에 눌지마라고 매운 연기를 뒤짚어 쓰면서 긴 주걱으로 계속 휘휘 저어 준다. 죽이 다 되어 고무다라이에 퍼 담아 뜨거운 죽을 빨리 식으라고 주걱으로 저으며 식힌다. 식힌 죽에 누룩을 넣어 고루고루 썪는다. 그걸 단지에 넣는 과정을 지켜 봤다. 전통주 빚는 과정이 아주 힘든 작업, 일종의 전투였다.
그 과정을 다시 정리하면, 미리 강냉이 2되[3.2k]를 하룻 동안 물에 담가 불리고, 나흘간 싹을 튀운다. 온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싹이 5mm정도 나오게 한 다음, 싹이 나온 강냉이를 디딜방앗간에서 방아로 찧어서 빻는다. 싹을 틔운 강냉이를 디들방아로 찧어 빻기는 이군자[75] 어르신과 최승화[74] 어르신은 두다리 디딜방아를 딛이고, 막내 김선녀[69] 어르신은 공이 쪽 확 곁에 쪼그리고 앉아 확에 곡식을 넣고, 사이사이 찧어 빻긴 곡식을 꺼내 키[치簸]로 까불러서 가루와 무거리를 걸러낸다. 무거리는 확에 넣어 빻아서 다시 키질을 반복, 1시간여 만에 강냉이 2되를 찧어 빻아서 마무리했다.
다른 지방에서는 엿질금 반말 조금 안되게 준비하여 미리 갈아둔 강냉이와 약 4리터 정도의 물에 섞어 하룻밤 삭히지만, 점리에서는 싹을 뛰운 강냉이 자체가 엿질금 역활을 하기에, 엿질금을 넣는 일은 생락된다. 엿질금을 넣고 안넣고에서 어떤 술맛이 나는지는? 강냉이를 찧어서 가루 낸 것을 미리 아궁이에 불을 피워 큰 솥에 물 양을 맞춰 놓은 물에 넣어 죽을 쑨다. 솥에서 누러 붙지 않게 계속 내용물을 저어가며 끓인다. 다 끓여진 묽은 죽을 퍼서 차게 식힌다. 죽의 맛을 보면 엿질금을 넣지 않았는데 은근한 단맛이 난다. 죽이 완전히 식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누룩을 넣으면 술맛이 시어지기에, 죽을 식힌 다음 누룩 1장[0.6k]을 넣어 혼합하는데 누룩이 많이 들어가면 술이 독하고 맛이 있다. 다른지방에서는 누룩을 혼합한 다음 미리 쪄서 식혀둔 고두밥을 넣지만 점리의 강냉이술은 고두밥 없이 막바로 죽에 누룩을 썪은 것을 항아리에 넣어 안방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발효시킨다. 빠르면 제돌 하룻만이고 늦으면 3일 갈 때도 있다.
강냉이 2되로 술을 담그면 막걸리 1말이 나온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이렇게 해서 장주하셨는데, 20살 때 써어머니[시어머니] 한테 배웠잖소" 최승화 어르신의 말이다. 점리 강냉이술을 담그는 최승화(74) 어르신의 집, 남편 강용희(76) 어르신은 점리노인회장이다. 최승화 어르신의 점리 강냉이술 빚는 과정을 취재 하다보니 불현듯 이승에 안계시는 나의 장모님이 그립고 보고 싶어졌다.
강냉이는 옥수수로 강원도 산촌의 방언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강냉이라 하면 알아 듣지 못한다. 그 옛날 강냉이는 감자와 함께 강원도 산촌의 화전민들이 주식으로 삼았다. 화전민 하니 삼척에는 신기 대평리 사무골에 이 시대 마지막 화전민 정상흥 어르신이 깊은 산 속 산 중턱 굴피집에서 80년이 넘게 지금도 살고 있다. 화전민 하니 옆으로 새는데 다시, 이제는 그 강냉이가 달작지근하고 쫀득쫀득한 특유의 맛으로 누구나 즐기는 웰빙식품이다. 간식으로 먹는 강냉이는 알알이 떼어먹는 재미가 쏠솔한데, 그래서 강냉이 효능을 알아 봤더니 새삼 놀랍다. 강냉이는 지방 함량이 적어 1개가 130kcal 열량으로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맘감을 느껴 다이어트에 좋단다. 거기에다 비타민E 토코폐롤이 있어 노화를 방지한단다. 거기에다 또 강냉이를 섭취하면 심혈관 기능을 높여줘서 고지혈, 심장병 원인인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저해하니, 이거 참 꿩 먹고 알 먹기가 아닌가. 그런 강냉이로 빚은 강냉이술, 술맛은 어떨까?
신혼초 장모님이 맏사위를 위해 손수 빚은 강냉이술을 마실 때가 문득 떠 오른다. 한 잔 맛 보니 입맛이 당겼다. 노란 빛갈에 작은 기름 방울이 -강냉이 씨눈에서 나온 기름 방울이, 수없이 동동 떠있는게, 술맛이 예사 술이 아니었다. 강냉이술은 일반 막걸리보다는 3배정도 독하다.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입속에 감기는 술 향과 속내에 퍼지는 기분 좋은 취기, 처음 마셔 본 강냉이술은 잊을 수 없는 맛이 였다. 수 십년 세월이 흐르고 장모님도 이승에 안 계시는데 강냉이막걸리를 생각하면 장모님이 보고 싶고 그립다. 장모님이 계실 때 손수 빚은 그 막걸리의 그 맛 있는 귀중한 비법을 왜 전수받지 못 했을까? 때 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앉아 있는 항아리에서 술 익는 향기와 소리, 바글바글... 그 향기 그 소리 따라 항아리에 귀 기울리면 마치 가늘게 내리는 빗소리 같은 아주 듣기 좋은 소리가 지금도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