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한낱 물에 쓴 글씨일지도 몰라.
그래서 삶은 더 배고픈 거야. 행복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거든.
우리 아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어떤 나라로 기억하고 있을까? 아파르트헤이트, 넬슨 만델라 대통령, 가난과 질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까? 최근에는 월드컵 개최지라고 떠올리는 아이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다림 세계 문학에서 새롭게 출간된 『물에 쓴 글씨』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조금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품이다.
『물에 쓴 글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MML 출판사가 주최하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시와 소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작가 베티 압테커가 초등학교 상담 교사를 지내면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이들의 현실과 고민을 진솔하면서도 깊이 있게 담아냈다.
노엘은 엄마의 고향에 흐르는 욕케이스 강가에 엎드려 물 위에 글씨는 쓴다. 밀리……. 엄마의 이름이다.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장례식 날, 노엘은 강물 위에 엄마의 이름을 하염없이 썼다. 쓰고 또 써도 사라져 버리는 글씨처럼 엄마도 그렇게 노엘과 형의 곁을 떠난 것이다.
부모님을 잃은 노엘은 삶이 더 힘들어 진다. 급기야 형은 먹고 살기 위해 병든 몸으로 폭력배가 된다. 그런 형을 보며 노엘은 도둑질만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한 엄마와의 약속을 떠올린다. 하지만 배고픔이 심해질수록 노엘은 올바른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학교 공부보다 끼니와 병든 형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가혹한 현실. 하지만 밝고 유쾌한 친구 시파만들라가 있어 노엘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시파만들라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너 오늘은 학교에 가야 해. 공짜로 음식을 나눠 준다고 했거든. 음넌제 선생님이 양고기 꼬치랑 신선한 롤빵을 준다고…… 우와! 이것 좀 봐. 내 배 속의 춤이 발로 옮겨 갔나 봐. 이야호! 친구야, 나 좀 잡아 줘.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발에 날개가 생겼나 봐.”
보이지 않는 줄에 매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시파만들라의 발이 경쾌하게 들썩였다.
-본문 중에서
어느 날, 음넌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내 삶이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작문을 써서 뽑힌 사람은 사립 고등학교의 장학금을 지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시파만들라는 노엘을 끌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신비한 분위기의 남자와 마주친 노엘. 남자의 따뜻한 말은 노엘의 가슴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내가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건 그게 내 행복의 일부이기 때문이야. 슬픔은 마음을 깎아 내서 행복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넉넉하게 담을 수 있게 큰 그릇으로 만들어 주거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거야.” -본문 중에서
하지만 오해가 얽힌 사건으로 형이 폭력배들에게 살해당하고, 집까지 잃게 된 노엘. 노엘은 남자가 건네준 책에 담긴 시에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이겨 낼 힘을 얻는다. 과연 노엘은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노엘을 도와주는 도서관의 남자는 누구일까?
시를 생각하면 이제 음식이 떠오른다. 영혼의 음식. 내게 시란 바로 그런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음식. 이제 나처럼 굶주린 사람들의 가슴을 채우는 데 시를 사용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이 양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훌륭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노엘의 생활은 암담하고 힘겹지만 작품은 그 속에 숨겨진 일상의 행복과 희망을 보여 주어 먹먹했던 가슴을 풀어 준다. 그 희망의 길잡이로 작가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주인공의 용기를 이야기한다. 노엘을 아껴 주고 도와주는 친구와 선생님들의 마음처럼 힘든 사람들의 고민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마음은 세상을 더욱 넉넉하게 해 준다.
또한 정직함에 대해 고민하는 노엘의 모습 속에서 모순 가득한 현실과 올바른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든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을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삶의 방향과 꿈에 대한 질문은 삶에 대한 책임감과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거친 세상을 이기고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 그 강한 마음에서 행복과 행운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 목차
물에 쓴 글씨 7
작품 해설 257
■ 작가 소개
글쓴이 베키 압테커
어려서부터 라디오 시낭송 프로그램을 즐겨 들을 만큼 시를 좋아해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졸업한 후에는 힐브로우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상담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의 삶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과 시를 좋아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아낸 작품이 바로 『물에 쓴 글씨』다. 지금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네 아들을 키우며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린이 김은경
건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한겨례 SI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공부했다. 잡지와 광고 작업으로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주로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드로잉 작업을 좋아해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독특하고 새로운 드로잉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일러스트레이션 모임 ‘도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린 책으로는 『안녕, 메이』 『자석으로 가는 자전거』 『푸른 정원』 『꿈을 저축해 드립니다 꿈 은행』 등이 있다.
옮긴이 강수정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제시카와 함께한 날들』 『반짝이는 박수 소리』 『세상 끝의 집』 『붉은 카약』 『리버 타운』 『신도 버린 사람들』 『인생은 아름다워』 『거꾸로 가는 나라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