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23일 07시 20분
사랑하는 아들 현석 군이 세상에 나온 날!
생일축하해.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잘 자라줘서 더 고맙고.
건강하고 행복하자. 사랑하고 또 사랑해.'
둘째 아들 생일날 카톡으로 마음을 전한다.
부부에게 자식은 어떤 의미일까?
부모 자식 간은 천륜(하늘의 도리로서 맺어진 관계)이라고 한다.
촌수(寸數)로 따지면 부부는 무촌(촌수가 없음) 부모 자식 간은 일촌이다.
부부는 이혼하면 남남이지만 부모 자식은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이유다.
자식이 이쁠 때도 많았고 미울 때도 있었다.
이쁠 때만 자식이고 미울 때는 내 자식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냥 내 자식일 뿐이다.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 중 한 가지는 아들 둘 낳고 기른 것이다.
아이들이 잘 자라준 덕분이고, 부모가 된 것만도 뿌듯하고 감사하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인생의 큰 부분에서 의미가 없었을 것 같다.
"엄마는 우리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해.
요즘 세상에 속 섞이는 자식들도 많은데..
우리처럼 듬직하고 말썽 안 부리고 잘 자라준 아들 뒀으니 고맙지?"
"그래, 많이 고맙지.. 감사함미데이~~"
맞벌이(부부군인)하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친정에 맡겼던 시절이 있었다.
근무지인 강원도 오지에서 몇 시간 버스를 타고 한 달에 한 번 대구에 있는 아이들을 보러 갔다.
큰 아이가 두 살, 작은 아이는 낳자마자부터.
갓난아이는 시시각각 얼굴이 변하는데 그때의 웃픈(웃기고도 슬픈) 얘기 하나.
갓난아이를 업고 있는 친정엄마 사진을 보고 누군데 업고 있냐고 물었더니..
"누구긴 누구야? 니 아들(둘째)이지?"
놀랍고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한 두 달 못 본 사이에 아이 얼굴이 달라진 것을 못 알아본 것이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렸을 때 품에서 못 키운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당당(?)하게 얘기하지만.
아들 키우는 엄마는 목소리도 크고 깡패(?) 같다는 소리도 들으면서.
학교에도 몇 번 불려 가고(?) 팔. 다리 부러져서 정형외과도 수시로 데려가고.
그 무섭다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잘 넘겼다.
아이들 키우면서 이런저런 사연이야 없었겠냐마는~~ 나쁜 짓 하지 않고 나쁜 길로 빠지지도 않고
자라주었고 공부도 그럭저럭 해서 원하던 대학교도 갔고 졸업을 했다.
그 만하면 족하지 않은가?
부모 자식은 (전생에) 채권자 채무자관계라는 말이 있다.
자식에게 전생에 진 빚을 갚는 것이 부모라는 것이데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자식걱정은 눈을 감아야 잊어진다. 자식은 평생의 애물단지라고도 한다.
자식 걱정으로 지새운 밤도 많았지만, 자식이 준 행복과 기쁨이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주변에서 자식 잘 키웠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그런 것도 아닌데 부끄럽게도.
자식을 잘 키웠다는 기준은 뭘까?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그보다는 심성이 바르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도와주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넉넉하게 준 것은 칭찬과 격려, 믿음이다.
'시험 좀 못 보면 어때? 다음에 잘 보면 되지 뭐. 잊어버려. 지난 일은.. '
'괜찮아.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는 늘 울 아들 응원하고 믿어'
'아들, 사랑해. 엄마는 울 아들이 최고야. 멋지다 울 아들'
'자신 있게 용기 있게. 당당하게'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성장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소중한 보물, 두 아들
자식 자랑을 떠벌릴 일도 아니고 내 자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지나치게 걱정하고 주눅 들 것도 없다.
그냥 내 자식으로 바라봐 주면 된다.
남의 잘난 자식과 비교하지 말고. 속으로는 부럽겠지만..
잘 났든 못났든 내 자식이다.
잘 났든 못났든 내 부모인 것처럼.
좋아서였든 실수(?)였든 자식은 부부의 유전자로 만든 소중한 보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자식 뒷바라지와 걱정은 내려놓고 떠나보낼 시기다.
남은 것은 부부뿐.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떠나보낸(보내야 할) 자식에게 미련 갖지 말고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자식 키우느라 수고한 노고를 위로하며 서로에 대한 애잔함으로 부부만의 행복을 찾자.
행복한 부부의 모습은 자식들에게도 행복이고 감사다.
이제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으로 자식의 걱정을 덜어줘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