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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층산] 제2부 큰 값을 치르고(6)-3
11월에 접어들자 세례를 받고 마침내 교회의 초자연적 생명에 들어간다는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혔다. 그러나 연구와 독서와 대화에 힘을 기울였음에도, 나는 내 영혼 안에 일어날 일을 제대로 인식하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미숙했다. 나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가파르고 험난한 연옥의 칠층산을 올라가기 시작해야 할 참이었는데도 그런 등반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중요한 일은 등반을 시작하는 것이며 세례가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비록 내가 조건부로 세례를 받지만(전에 가톨릭교회 밖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옮긴이). 하느님의 자비가 나의 과거 23년간의 모든 죄와 잠벌(죄에는 벌이 따른다. 지옥의 벌은 무한하다. 그러나 연옥의 벌은 기한이 있다. 그래서 잠시 동안 받는 벌이기에 잠벌이라 한다-옮긴이)을 세례대의 물로 씻어주시고 내게 새 출발을 허락해 주시기를 희망하는 까닭에 하느님 편에서는 지극히 너그러운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본성과 나약함, 그리고 악습의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어 싸워서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11월 첫 주말께 무어 신부가 나에게 16일에 세례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저녁에 평생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사제관을 나왔다. 11월 16일이 어느 성인의 축일인지 알고 싶어서 달력을 보았더니 성녀 제르트루다 축일이었다.
나는 죽음의 노예 처지에서 해방되기 며칠 전에야 겨우 나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느끼는 은총을 받았다. 이 은총의 빛은 그렇게 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드디어 내가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한 존재인가를 진정으로 깨달았다.
11월 15일 밤, 그러니까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하게 되는 전날 밤에 나는 내일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뜬눈으로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자니 더욱 창피스럽게도 공심재(空心齋: 성체를 영하기 위한 단식재-옮긴이)를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공심재는 자정부터 다음 날 아침 10시(미사 올릴 때)까지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것을 뜻했다.(현행 공심재는 영성체 전 한 시간이다-옮긴이) 선의의 추상적 증표랄까 시늉에 불과한 이 작은 극기행위가 마치 10시간이 아니라 10일 동안 식음을 전폐해야 하는 것처럼 내 상상 속에서 부풀어 올라 나는 도저히 그것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인간 본성이 마귀의 부추김을 받아 자신을 혼란케 하여 이성과 의지가 요구하는 바를 기피하려는 묘한 심리 작용임을 깨달을 만한 지혜는 그래도 나한테 남아 있어서 나는 이것을 송두리째 묵살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양치질하는 것이 공심재를 깨뜨리는 것인지 아닌지를 무어 신부에게 물어보는 것을 잊었던 까닭에 나는 이를 닦지 않았다. 그리고 담배에 대해서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혀 담배 피우고 싶은 유혹도 억제했다.
나는 축복받은 사형집행과 새로운 생명을 받으러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쌀쌀했으며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강물이 반짝거렸다.위대한 삶의 시작에 어울리는 승리감이 충만한 늦가을 날씨였다. 그러나 의기양양 하지만은 않았다. 아직도 내 정신에는 성당에서 거행 될 예식의 외적 사항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예를 들면 입안이 바싹 말랏으나 성체를 행여 삼키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었다.
브로드웨이를 향해 모퉁이를 돌았을 때 저디를 만났다. 에드 라이스가 브로드웨이부터 우리를 뒤쫓아 왔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렉스와 세이머는 우리가 성당에 들어간 다음에 왔다.
에드 라이스가 대부를 서주었다.그는 나의 친한 친구 중 유일한 가톨릭 신자였다. 렉스와 세이머와 저디는 유다인이었다.그들도 나도 매우 숙연했다.태연한 것은 라이스뿐이었다.
모든 절차가 매우 간단했다. 우선 무어 신부가 보는 앞에서 나는 성모님께 봉헌된 제대 앞에 무릎을 끓고 열고裂敎와 이교를 끊어버리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다음 우리는 성당 정문 옆 어둠침침한 구석에 있는 세례대로 갔다.
나는 세례대 입구에 섰다.
"당신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무어 신부가 질문했다.
"신앙을 청합니다!"
"신앙이 당신에게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그다음 젊은 사제는 안경 너머로 '예식서'를 보면서 천천히 라틴어로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영원한 생명을 청하고 있던 나는 라틴어 단어를 군데군데 알아들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제는 나에게 물었다.
"마귀를 끊어버립니까?"
나는 마귀와 마귀의 허례허식과 마귀의 행실을 끊어버리겠다는 맹세를 세 번 거듭했다.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께잉태되어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
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성령과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대답하는 내 양 어깨는 태산이 허물어져 내린 듯 가벼웠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진리를 내적으로 직관하도록 내 지성을 가렸던 암흗의 밤이 걷혔다. 나는 전례에 몰두하며 다음 예절을 기다렸다. 다음 예절은 나를, 아니 차라리 23년 동안이나 내 안에 살았던 마귀의 대부대를 겁에 질리게 했다.(마르5,9 참조)
사제가 내 얼굴에 입김을 불면서 말했다.
"더러운 악령아, 그에게서 물러가라. 그리고 파라클리토 성령께 자리를 내드려라."
마귀를 쫓는 예절이었다. 나는 그놈들이 쫓겨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놈들은 셀 수도 없었으나 필시 일곱 놈 이상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행여 그놈들이 되돌아오지 않을까, 집 안 청소와 정돈이 깨끗이 잘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먼젓번 마귀가 더 흉악한 마귀들까지 데려와 제차 점령한다는 그리스도의 무서운 위협(마태 12,43-45; 루카 11,24-26 참조)이 내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사제와 사제 안에 게신 그리스도(볼 수 있는 집전자를 통해 이 정화의 성사를 집전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시니까)께서 내 얼굴에 다시 입김을 불어넣었다.
"토머스, 이 입김으로 성령을 받으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시오.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그러고 나서 사제는 다시 기도를 바치면서 내 이마와 가슴에 십자포를 그었다. 그다음에 사제가 내 혀에 소금을 놓아주는 차례가 되었다. 하느님의 것에 맛을 들이기 위한 지혜의 소금이다. 마지막으로 사제는 "만일 당신이 이미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 하는 조건부로 내 이마에 물을 붓고 나에게 토머스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다음에 나는 다른 보좌신부가 기다리고 있는 고해소로 들어가 캄캄한 칸막이 안에서 무릎을 꿇었다. 사제와 나 사이를 막고 있는 어두운 철창살을 통해 맥구우 신부가 머리를 숙여 한 팔을 괴고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그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제는 아주 젊고 순진하게 보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려는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할는지 의심스러웠다.나는 죄의 종류대로 하나씩 정성을 기울여 모든 죄를 마치 이빨을 뽑듯이 뿌리채 뽑아냈다. 그중 어떤 것은 뽑기가 힘들었으나 재빨리 뽑아내었고 그러한 죄를 몇 차례나 지었는지 최선을 다해 고백했다. 정확하게 센 것이 아니고 어림잡았을 뿐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비틀거리며 고해소를 나왔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느낄 틈도 없었다. 무어 신부가 사제 자신과 나를 위한 미사를 시작하려고 기다리는 제대 정면으로 가야 햇기 때문이다. 그날 이래 나는 고해소를 사랑하고 있다.
사제는 흰색 제의를 입고 제대에 미사경본을 펼쳐 놓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앞 제대 난간에 무릎을 꿇었다. 환한 지성소가 몽땅 내것이었다. 사제의 목소리와 복사의 응답이 들렸다. 곁에 아무도 없는 데다가 아직 미사예절에 익숙하지 못했기에 언제 일어서고 언제 무릎을 꿇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아무 상관이 없었다. 작은 종이 울리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음으로 높이 들어올린 성체를 보았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당신께 끌어당기고 또 나를 당신께 끌어당기면서 다시금 승리를 거두고 거양되시는 침묵과 단순함의 순간이었다.
이윽고 사제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님의 기도'를 송영하는 것이다. 이내 복사가 고백의 기도를 한달음에 중얼거렸다. 그 고백의 기도는 나 때문에 외우는 것이었다.무어 신부가 돌아서서 죄를 사하는 십자가를 긋고 작은 성체를 들어올렸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는 이는 복되도다."
그리고 내가 모실 첫 성체가 나를 향하여 계단을 내려섰다. 제대 난간에는 나뿐이었다. 천국이 온통 내것이었다.아무리 여러 사람이 참여해도 감소되거나 구분되지 않는 천국이 몽땅 내 것이었다. 그런데 나 혼자만이라는 이 고독은 방금 세례대에서 내 안에 자리 잡으신 성삼위를 한층 더 힘차게 모시도록 이 작은 성체 안에 숨어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아울러 성삼위 하느님 전체를 나를 위하여 주신다는 단독성을 명심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제대 난간을 내려서서 친그들이 네 개의 그림자처럼, 네 개의 비실재非實在처럼 무릎을 꿇고 있는 장궤틀로 돌아와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방금 하느님의 궁전이 된 내 안에서, 거기에 계시는 하느님께 '영원하고 순결한 제헌'. 하느님께 봉헌하는 하느님의 제헌, 그리스도의 강생에 합일된 나를 함께 봉헌하는 제헌이 이루어진 것이다. 새 베들레헴인 내 안에서 탄생하시고 새 갈바리오인 내 안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안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시면서 내 아버지시며 동시에 당신 아버지이신 성부께 나를 하느님의 무한하고 특별한 사랑(존재하는 만물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힘으로 당신에게 끌어들이신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이시기를 청한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생명이요 영인 영원한 중력, 곧 당신의 영원한 자비와 무한한 본성으로 끌어당기시는 하느님의 중력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디에나 계시고 한계가 없으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와 합일됨으로써 이 어마어마하고 무한한 중력의 흐름(사랑, 곧 성령)안에 들어온 나를 발견하여 사랑하신다.
하느님은 무한한 심연에서 나를 불러내신다.
8세기 성체성혈 기적이 일어난 란치아노 기적 성당에 모셔진 성체와 성혈
기적의 성체성혈을 제단에 모시고 양쪽에서 다 볼 수있고 미사를 드릴 수 있게 해 놓았다~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 이 성전을 관장하기 때문에, 기적의 성체 성혈이 모셔진 양쪽에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성화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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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i Creator(오소서 성령이여)-그레고리안 성가
Veni, creátor Spíritus,
오소서, 창조의 영이시여.
mentes tuórum vísita,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소서.
imple supérna grátia,
높은 은혜로 채워주소서
quæ tu creásti péctora
당신이 창조하신 우리 마음속에
Qui Paráclitus diceris
오 부드러운 위로자시여.
donum Dei, Altíssimi,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선물
fons vivus, ignis, cáritas,
삶, 열정, 사랑의 근원
et spiritális únctio.
그리고 영적인 감격의 근원
Tu septifórmis múnere,
당신은 일곱 선물이며
dextræ Dei tu dígitus,
하느님의 오른손의 손가락.
tu rite promíssum Patris
당신은 성부의 거룩한 약속
sermóne ditans gúttura.
또한 목을 채워주는 말씀
Accénde lumen sénsibus:
분별력있는 빛을 비추소서
infúnde amórem córdibus:
마음마다 사랑을 부어주소서
infírma nostri córporis
우리 육체의 약함을 돌보아주시고
virtúte firmans pérpeti.
그 힘으로 끊임없이 도우소서
Gloria patri dominum,
성부 하느님께 영광
Natoque qui a mortuis
죽음에서 살아난 아들에게
Surrexit, ac paraclito,
또한 성령에게도
In sæculorum sæcula.
세세 영원토록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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