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대서치성 태을도인 도훈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우리 일은 팔 짚고 헤엄치기
2026. 7. 23. (음 6.10)
지난 주말 연휴에 부산 큰딸네 집으로 2박3일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서 이동하며 얘기하던 중에, 독일에 거주하는 오빠가 한국에서 즐겨들었던 숭실남성합창단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얘기까지 나왔고, 저도 즐겨들었던 터라 틀어달라 해서 십여 년 전의 버전으로 들으며 오랜만에 감상에 젖었습니다. 듣다 보니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다시 한번 제대로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서울에 와서 유튜브에 소개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들으며 제가 젊은 시절 책으로 보았던 약간은 낭만적인 청빈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에 좀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정말 하느님께 바쳐진 삶이었구나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 프란치스코는 왜소한 체구를 보상받듯 물질의 풍요 속에서 호화롭게 살다가, 어느 순간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물질을 뒤로 한 채 아버지로부터도 쫓겨나 철저히 무소유의 삶을 살아갑니다. 모든 물질을 멀리하고 오직 하느님만 소유하겠다는 염원으로, 자루를 뒤집어쓰고 새끼줄로 허리를 묶어 의복을 대신하고 음식을 빌어먹으며 거지 같은 행색과 생활을 영위합니다.
처음에는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던 아시시의 지식인 중 프란치스코의 일관된 ‘가난한 복음’의 신념과 생활에 감동한 사람들이 차례로 프란치스코를 찾아와 열두 명의 제자가 됩니다. 가난한 복음을 인정받기 위해 로마 교황을 만나러 간 프란치스코와 열두 명의 제자는 처음에는 거지 행색으로 문전박대를 당하지만, 꿈속에서 프란치스코의 사명을 하늘로부터 계시받은 교황이 그를 받아들여 존재와 활동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 중인 중동지역으로 선교를 나갔던 프란치스코의 부재 동안, 복음회는 규모가 커지고 조직의 운영을 위해 프란치스코의 철저한 가난한 복음 원칙과 멀어졌고, 프란치스코 복음회는 오히려 프란치스코를 불편해하며 조직의 수장 자리에서 배제하려 합니다. 총회장 자리를 미련없이 내려놓은 프란치스코는 산중 오두막에서 병들고 굶주린 몸으로 쓸쓸히 죽어가며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최후를 맞이합니다. 34세에 하느님을 영접하고 44세에 죽었으니 10년간의 공생애를 산 셈입니다.
철저히 무소유의 삶을 살며 오직 하느님을 소유한 삶을 온몸으로 보여준 성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보며 가슴이 저며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가진 물질도 프란치스코의 삶에 비하면 너무나 많다는 생각, 우리의 천하사는 프란치스코의 공생애에 비하면 고수부님 말씀 그대로 팔 짚고 헤엄치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살아서 후천을 건설해 모두와 함께 누리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기에, 늘 밝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지요.
모든 걸 내려놨기에 비참하게 병든 몸으로 죽어갔어도 누구보다 고귀한 삶을 살았던 성 프란치스코를 보며, 그가 그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다 갔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최선을 다해 이루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빕니다. (기도 원문과 노래 가사가 다른 곳은 괄호 처리하였으니 참고)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믿음)을,
그릇됨이(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기허즉수물(器虛則受物)이요 심허즉수도(心虛則受道)라고 했습니다. 그릇을 비워야 물건이 채워지고, 마음을 비워야 도가 들어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하느님을 향한 구도 열정이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예수를 영접한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을 듣는 느낌입니다. "저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오니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대서치성 도훈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비웠을 때 모든 것이 채워진다!
채워짐이라는 목적이 아닌 인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상생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