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이루심
사 7 : 1-9
기원전 745년 디글랏 빌레셀이 앗시리아의 정권을 잡자 그는 앗시리아를 고대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불안한 나라들이 주변의 약소국들입니다. 언제 점령될지 모르고 결국은 나라의 독립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앗시리아의 서쪽 편 시리아(수리아=시리아=아람 같은 말입니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이 그 위협에 대항해서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되었으니 이른바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눈의 가시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남 왕국 유다입니다. 만약 유다가 앗시리아와 협력한다면 그들은 샌드위치 신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남 왕국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진군했던 것입니다.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들로 봐서는 그 길이 살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국제정세에 따라 8C 고대서아시아에서 발발했던 전쟁의 핵심인물들은 시리아 왕 르신, 이스라엘 왕 베가, 아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 3세 그리고 유다 왕 아하스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유다 왕 아하스입니다. 그 시대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그 중심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분명했습니다. 그 동맹에 참여도 하지 말고, 강대국 앗시리아에게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사야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전적으로 따라야 할 것은 적어도 2가지 이유가 있어서 입니다.
첫 번째, 그는 유다 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기름 부은 종 다윗 왕의 후손으로 혈연적 유산이 있는 정통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일찍이 여호와는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왕의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언약을 한 바 있습니다.
(삼하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그렇다면 아하스 왕은 이사야의 권고를 들어야 마땅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의 선배인 선조 왕들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상황에서 즉, 적들과의 접전 속에서 있었던 선배들의 신앙 담이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압과 암몬 두 나라가 쳐들어오자 여호사밧 왕이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당당하게 나아가서 전쟁에 승리한 사건입니다.
그 때 백성들은 가만히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한밤중에 서로 적인 줄 알고 찔러 죽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폈으며, 앗수르에 지원병을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스알야숩”이란 의미 심장한 이름을 가진 그의 아들과 더불어 아하스 왕을 만나라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습니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아하스 왕은 스알야숩뿐만 아니라 그 곁에 서 있는 이사야를 또한 만나야 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이 있는 이사야의 이름은 “스알야숩”이란 이름과 합하여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를 이루고 있다.
첫째 : 하나님의 계시의 방법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3,4절)
“스알야숩” 의 문자적인 뜻은 “오직 남은 자만 돌아가리라”는 뜻이다. 전쟁의 상황에서 “남은 자”는 항상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를 가리킨다.
“남은 자만 돌아간다.”는 불길한 예언은 고대 근동의 전쟁결과를 보고하는 문서에 관용어법으로 자주 등장하는 ‘남은 자’와 ‘돌아간다.’의 결합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두 연합군 군사 중 오직 소수의 군사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사17:1-3)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둘째 : 말씀으로 계시 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7절)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더 강한나라 강대국의 도움을 더 의지하던 자였습니다. 앗수르가 전쟁에서 이기면 앗수르의 신이 그들을 도와서 이겼다며 자신도 앗수르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곤고할 때에 더 이방을 의지하고 이방신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노를 불러일으키는 자였습니다.
아하스를 보면 하나님이 그를 도우실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은 다윗과의 약속,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루시고자 유다 왕과 유다백성들을 위해 친히 싸우시고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이사야와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사야 아들의 이름은 스알야숩 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아들을 데리고 가게 하심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 메세지를 주셨습니다.
유다가 고난 받고, 끊임없이 강대국들에게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멸망케 하지 않으실 것과 하나님의 때에 그 남은 자들을 일으키시고 돌아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계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아하스와 유대의 백성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특히 왕은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르신과 베가의 침공 소식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현재 상황은 최악입니다. 의지했던 강대국으로부터는 소식이 없고, 다른 나라들이 동맹을 맺어 쳐들어오고자 하니 간담이 서늘하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그 마음이 두려움으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가며 조용하라 하십니다. 7절 말씀처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
만왕의 왕이시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백성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때 어떤 능력 있는 사람들의 계획일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셋째 : 믿음만큼 역사합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9절)
이 일을 계획했던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나라가 서지 못하고, 패할 것을 하나님은 9절에서 예언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아람 왕 르신은 아람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12년 뒤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정복당함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아하스와 그 백성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 바로 나에게 찾아오는 성공이요 형통함입니다.
현실이 잘 보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과, 능력, 정세등을 볼 때 불리하게 보이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유리하게 보이면 자신만만해서 교만하다가 넘어집니다.
우리가 봐야할 것은 현실이 아니고, 내 능력, 형편 등등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 하나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셨음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현실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꿈꾸며 두려워아니하고 소망과 비젼에 넘칠 수가 있습니다.
아람의 르신과 이스라엘의 베가가 아무리 힘이 있다 해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한 유다의 다윗왕가는 멸망할 수가 없습니다.
(삼하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