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트레킹 3,4,5일차
언 제 : 2013년 10월02일부터 10월06일(4박5일)
누구와 : 산악회 회원과
어디로 : 서안, 황룡, 구채구 등
구채주(酒)…
무지개가 필요하랴 오채지야(五彩地)
백만 송이가 부러우랴 오화해야(五花海)
내가 품어 앉은 저 산 안에서
오색(五色)은 피어 떠오르며
공작새는 꼬리치며 반기는데
장해(長海)야
왜 이제야 날 불렀느냐
내 술 잔 옆에 내려놓고
네 품에서 솟아오르는
폭포주 한 잔 받고 싶구나……
구채구 어느 호숫가에 앉아 혼자 흥얼거리다 늦어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뛰어갔더니 맥주 한잔이 간절하여 구채酒라 했다고 함(구채구에서 알파인 투어 장병호 사장의 즉흥 시(12월 중순경 만남에서 여행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중 받은 내용 임)
3일차(10월4일)
전날 구채구 인근 숙소로 이동하면서 차량 정체로 인하여 늦은 귀가를 하였지만 피곤함도 무시하고 새벽 4시30분에 또 다시 모닝 콜이다. 중국의 국경일이 겹쳐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여 마침 새벽 5시30분에 출발하는 한국 여행객들이 있어 그 차량을 이용하기로 가이드가 협상 해 놓은 상태라 조금이라도 편한 하루를 보내기 위하여 오늘도 새벽 기상이다. 부랴부랴 도시락 챙기고 밖으로 나오니 춥다. 기온이 0.9도를 가리키니 역시 고지대로서 모두들 두꺼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버스에 승차 10분도 못 가서 하차하란다. 차량들이며 수많은 인파가 새벽부터 완전 전쟁터는 저리 가라다. 약 2Km이상의 거리를 잰 거름으로 이리저리 가이드의 꽁무니를 따라 도착한 곳은 구채구 매표소 입구 앞, 우리는 서안에서 격은 것처럼 한곳에 무리 지어 기다리며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오늘도 입장권 구입을 위해 가이드만 바쁘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려면 한 시간 이상은 지나야 될 듯 하지만 몰려드는 인파에 걱정이 앞선다. 이곳도 황룡 풍경구와 같이 1992년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곳으로 계곡을 끼고 9개의 장족마을이 있는 곳이라 하여 구채구(九寨溝)라고 한다. 입구의 큼지막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 안내석에는 AAAAA급이라고 되어 있다. 중국의 최고급 관광지라고 표시해 놓은 것이다. 해발 1900 ~ 4700m에 이르는 Y자형 계곡으로 이루어 진 곳으로 입구에서 락일랑 폭포까지가 수정구라고 하며 오른쪽 일칙구와 왼쪽 칙(則)사구로 나뉘어져 있다. 규모로 보면 114개의 호수와 17개의 폭포가 길이 50Km에 요소요소 포진해 있으니 적어도 이틀은 머물러야 제대로 이곳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가이드가 들려준 이곳이 생기게 된 전설은 아주 오래 전 하늘나라에 달과라는 남신과 옥락색모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둘은 죽도록 사랑을 했단다. 어느 날 달과가 바람과 달로 보경을 만들어 사랑하는 여신에게 선물하였는데 악귀가 시샘을 하여 보경을 떨어트려 깨뜨리고 만다. 그 보경의 조각들이 인간세계로 떨어져 114개의 반짝이는 호수로 변하여 계곡을 이루어 구채구라 하였다고 한다. 동화에서나 나올 듯한 그런 이야깃거리가 있는 멋진 곳이기에 입장료도 엄청 비싸다. 1인 220원이며 환경보호차량이라고 해서 내부에서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차량 비도 별도로 90원이 추가된다. 그러면 310원, 우리나라 돈으로 6만원 정도가 되니 과연 얼마나 값어치를 할 지가 궁금하다. 하기 사『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구채구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 는 중국 격언이 있으니……
어제 고소적응이 되었는지 오늘은 모든 분들의 얼굴에 피곤한 모습보다 생기 있는 모습들이라 다행이다. 거의 한 시간이 지나 조금씩 시야가 트이며 표를 가지고 도착 입장을 하기 위하여 입구로 가지만 꽉 막힌 어마어마한 인파에 속수무책, 이런 때는 용감한 여자들이 한국 아줌마들이다. 잘도 비집고 앞으로 전진 7개의 출입문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검표와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하루에 입장객이 6만인가 7만인가 넘으면 표를 팔지 않는다고 하니 그래서 이렇게 아수라장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입장시간을 좀 더 당기든지 늘리던지 해야 될 듯(개장:07:00 ~ 16:00까지) 하여 든 개장하고 거의 40분만에 우리는 들어 왔으니 다행으로 서울에서 출발 전 인터넷 검색으로 이곳의 지도와 유명하다는 곳을 체크해 놓은 상태라 나름 와이프에게 설명해 줄 자부심을 가지고 우선은 수정구를 거쳐 우측의 일측구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승차 20여분을 달려 하차한다. 우잉~ 고개를 갸웃하지만 왜 더 안 가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ㅋ 장만옥, 이연걸, 양조위 등 중국의 화려한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 영웅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전죽해라는 곳이 한참 위에 있는 것으로 내 머릿속은 기억하고 있는데… 아쉬움을 뒤로 다섯 가지 꽃의 바다라고 하는 오화해(五花海)의 투영 속으로 들어간다. 여러 가지 광물질이 수조 류, 이끼 등과 조합되어 햇살의 영향으로 여러 가지 색으로 보여진다고 하여 공작호라고도 한단다. 먼 발치에 보여지는 산이 바로 앞에 누워 있으니 필자는 그 속으로 뛰어 들어 산속을 걷고 싶은 마음이다. 이태백이 달을 보고 뛰어 내였던 곳은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변화되는 색상이 여심의 마음일까마는 여기저기 다른 모습으로 변할까 봐 스마트폰이며 카메라로 연신 추억을 담는다. 우리부부는 둘만이 전망대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 이동 먼산과 물속에 비춰지는 산줄기를 의미하는 중 뒤에서 “두 분이 잘 어울리네요.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한다. 우리 팀 외 우리말을 사용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니 반갑다. 그분들도 부부로서 서로가 답례로 주고 받고 이제야 순구 친구 부부가 도착한다. 속이 별로라고 하니 손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화장실이 아주 잘되어있단다. 비닐로 깔끔하게 처리 될 수 있도록 냄새가 전혀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든다. 편의시설과 청소상태가 A가 5개인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는 듯 가이드와 약속시간이 다가 오며 아쉬움을 뒤로 이동 준비, 바로 아래 진주해와 폭포 방향으로…… 우리는 그렇게 하여 빙초, 전죽, 판다해 등은 건너뛰고 아래로 이동한다.
나중 일이지만 여자분들이 힘들어 하니 결국은 잘했다는 결론, 하여 든 버스로 잠깐 이동 진주해를 지나 물위를 걷는 듯 폭포 상단을 가로 지른다. 조금씩 시야가 트이며 아침햇살에 암반에서 흐르는 물들이 미세하게 요동을 친다. 하얀 물살이 햇살에 영롱하게 빛을 발하며 마치 진주 구슬처럼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아래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햐~ 이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뛰어들어 한 아름 들고나와 목걸이를 만들어 이곳에 같이 온 내외분들에게 하나씩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다른 분들 벌써 폭포에 도착했으니 우리도 빨리 내려가자는 와이프 목소리로 현실로 돌아 온다. 차마 저것을 그냥 놓고 가기 아쉬워 내 기억 속 보다는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사진으로라도 남기자 마구잡이로 찍어 댄다. 바로 아래 낙수가 이루어지는 곳에 당도하니 이건 또 하나의 예술품이다. 진주가 되어 구르던 물방울이 귀하디 귀한 흰 백색의 야크가 되어 노는 모습이다. 웅장하면서도 명주실타래 풀어 놓은 듯 아님 새색시 시집갈 때 면사포 바람에 살며시 휘날리는 듯 우리가 서있는 발 아래로 하염없이 숨어버리는 멋진 비경에 우리도 멋진 모습으로 오랜만에 단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워킹 10분 정도 숲 속으로 이어지는 피톤치드에 의한 힐링 그리고 또 하나 내 눈 속으로 들어 오는 유리 같은 샘, 겨울처럼 사물을 비친다고 이름 지어진 경해(鏡海)다. 오화해와 또 다른 이곳은 정말로 물에 비친 산이 허상인지 진상인지 가름하기 어렵다. 오히려 오전의 햇살로 물속에 있는 산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아무리 숨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아름다움에 너나없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또 다른 무언가를 보기 위하여 아쉬움을 뒤로 발걸음을 돌려 좌측 측사구 방향 장해가 위치해 있는 갈림길 앞 낙일랑 폭포에 도착한다. 진주해 폭포보다 규모가 더 큰 이곳 구채구에서 제일 큰 칼슘 광채의 폭포이며 이곳은 휴식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어 행동식도 먹으며 벤치에 앉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하기 사 새벽부터 정신 없이 이곳까지 와서 이곳의 아름다움에 빠져 힘든 줄 모르고 여기까지 왔으니 알게 모르게 지쳐 있겠다. 새로운 힘을 충전하고 아래로 내려가며 화장실과 지하도를 지나 버스로 이동 코뿔소 바다라는 서우해에 하차 수정구 방향 관광이 시작된다. 황룡 한 마리가 물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지어진 와룡해, 호랑이 바다라 불리는 노호해, 불꽃바다 화화해 등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관광객들과 만나면서 힘든 진행이 시작되며 수정채 앞에 도착 한숨을 돌린다. 잠시 휴식과 건너편의 펄럭이는 룽가와 타루쵸들이 군무를 이루는 민속문화촌에도 많은 인파가 보인다. 장족이라 하면 숨어서 살아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데 지금은 숨어서 살 수 없는 세상이니 그래도 정부에서 일년에 생활 보조금으로 엄청난 재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느끼는 그들의 모습들은 뭔가를 그리워하는 얼굴인듯하다. 점심식사를 외부에 나가서 먹자는 가이드의 제안으로 우리일행은 버스를 이용 출구로 빠져 나온다.
아침의 아수라장 같던 입구는 온데간데 없고 조용한 출구를 지나 그늘에서 휴식 중 예약된 차량이 문제가 되어 새벽에 걸어 온 곳까지 또 다시 힘든 보도여행을 하지만 차량 섭외가 잘 안되어 결국은 택시(?)를 이용 점심 식사 해결 새벽부터 시작된 관람으로 오후시간이 비어있는 상태라 가이드와 협의 이틀 동안 고생한 발의 피로를 해결하기로 한다. 발 마사지의 효과가 금방 나오며 우리는 한국의 가을처럼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길을 걸어 격상호텔이라고 한글로 이름 지어진 숙소 건물로 이동하여 저녁은 한식에 중식을 가미시킨 맛있는 음식과 오랜만에 도수 높은 술 한잔으로 이른 저녁식사 해결 후 숙소 앞 상가를 돌아보며 이곳의 문화를 느껴본다. 숙소를 가기 위하여 지나가야 하는 하천의 물줄기처럼 순간순간을 느낄 수 없는 속도감으로 변해가는 이곳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물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지만 모든 사물이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듯이 그렇게 맑고 아름다운 물이라도 인간에게는 한낱 볼 수 만 있는 마시지 못하는 물이라는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숙소에 들어와 마침 내일이 기선이 형님 생신이란다. 그냥 지날 수 없는 겸사겸사 이어지는 술자리가 시작되며 김선기회장님이 내주신 고량주를 더불어 늦게까지 웃으며 즐기며 하루의 피로(?)를 해결한다.^^
4일차(10월5일)
오늘도 역시 4시30분 모닝 콜이다. 날씨는 어제처럼 기온이 0.9도를 가리키고 하늘은 청명하다. 구채구의 가을이 입구의 은행나무처럼 물들었으면 이 여행이 더 좋았을 건데 조금의 아쉬움이 있어도 나 태어나 이틀 동안 보아온 물의 아름다움이 중국의 격언처럼 어디 가서 도 이런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까 유럽 아님 아메리카 그곳을 갈 수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아침을 연다. 오늘은 서안으로 다시 건너가 세계8대 불가사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과 화청지를 돌아볼 계획이다. 혹 비행기가 연착이 되면 어쩌나 걱정으로 창문을 열어보니 어둠 속에서도 괜찮아 보인다. 숙소 뷔페 식당에서 아침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구황공항으로 이동 우리는 역시 운이 따른다. 게이트가 바뀌면서 약간의 시간지체가 있었어도 장시간의 기다림은 없었다. 구황공항의 특성상 기다림은 항상 있어야 된다는데 약간의 맛만 느끼라는 것으로 그래도 30여분을 공항에 대기 결국은 서안 공항에 현지시간 11시 10분 도착, 수속과 회장님이 지난번 구황으로 출발 전 배낭에 칼이 들어 있어 상점에 맡긴 것 찾고 하여 12시 공항을 빠져 나간다. 이곳 기온은 반팔을 입을 만큼 기온(섭씨27도)이 올라 있다. 시내로 들어가 점심식사 해결 후 바로 화청지로 이동한다. 온통 승용차로 도로가 꽉 막혀 있는 모습에 이곳 주차장은 승용차가 무료란다. 하는 수 없이 대로 변에 주차 후 우리는 한동안 걸어서 입구까지 다리품을 판다. 화청지하면 양귀비다. 춘추시대의 서시, 전한시대의 왕소군, 삼국시대의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알아주는 양귀비는 사실 현종의 며느리였지만 미모에 반하여 황제의 권력으로 자신의 아내로 뺏는다. 이곳이 그 유명한 두 사람의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온천수가 일년 내내 43도가 유지 된다는 중국 왕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서태후며 장계석등도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입구까지 걸어가며 좌우로 보이는 공원의 모습은 온통 양귀비와 관련된 조형물로 장식되어 있다. 입구에 도착 지친다. 입장료가 110원이니 일년의 입장객을 생각하면 어마 어마 하겠다. 하기 사 황룡과 구채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다 느끼며 양귀비가 즐겼다는 해상탕과 현종이 즐겼다는 연화탕 그리고 온천의 발원지 등을 돌러 보고 백옥 같은 양귀비의 동상에 와이프를 세우고 비교하며 사진을 찍어 준다. 아무리 봐도 내 마눌님이 더 예쁜 것은 무엇 때문일까.ㅋㅋ 관광객 중 일부는 동상 아래로 흐르는 온천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지만 너무 지저분하여 약속장소인 당 태종이 이곳에 와서 직접 이름 지었다는 안내 비 앞으로 이동한다.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접목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 옆으로 실크로드의 산물로서 이곳의 특산물이 된 석류나무가 400년의 풍파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좌측의 호수에는 『비익조가 되어…… 연리지가 되어……』 로 시작되는 장안가의 특설 무대로 사용한다는 시설물들이 물 속에 설치되어 있으며 야간에 이 무대가 물 위로 올라오며 공연을 한다고 한다. 양귀비가 안록산의 난으로 목멘 후 현종의 그리는 마음을 노래한 장한가의 공연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우리는 화청궁을 떠나 다시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길고 긴 고행(?)길에 접어든다.
공원을 지나며 분수 한 가운데 요염(?)하게 목욕탕으로 들어가기 전의 양귀비가 세워져 있다. 비너스의 아름다운 여체가 아닌데도 풍만한 모습의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남정네들의 눈길을 끄르며 오후 3시가 넘어서며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한다. 석류나무가 가로수로 이어지며 도로변에는 그 열매를 팔기 위해 곳곳에 가판대가 눈길을 끈다. 좌측으로 진시황의 묘가 먼발치로 야산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묘의 높이가 120m였는데 지금은 50m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만리장성을 쌓았던 권력을 불로장생의 뜻까지 가지려 했던 그가 죽어서도 무덤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묘 주변에 수은의 강을 만들었으며 주변에 사실과 똑 같은 사후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친위대인 병마용을 제작 설치 했다. 약 3천명의 장인을 동원했다고 하며 갑옷 등 실밥 하나라도 실수하면 그 자리에서 사형을 시키면서 제작했다는 무지막한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하나 같이 섬세하며 사실과 똑 같은 모습으로 세기의 예술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아직도 그의 무덤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리 못하고 있으며 주변의 병마용을 조금씩 발굴 중에 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하며 1987년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병마용 갱은 1974년도 비가 한동안 내리지 않아 농사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우물을 파면서 한 농부에 의하여 발견된 것으로 곧 바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현재는 4개의 갱이 발굴 중이다. 온통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한 쪽에 주차 후 상가를 따라 얼마간 들어가 입장권을 구입한다. 이곳도 국가 1급 박물관으로서 AAAAA급 여행지로 성수기라서 150원이란다. 박물관 관람코스는 1관을 시작으로 2관 3관 순이다. 길게 이어지는 줄서기부터 시작 1관에 들어가며 눈이 커진다. 이것이 수천 년 동안 땅속에서 진시황의 사후를 지켰단 말인가? 멀리서 보면 실물 그대로 매장한 듯 정교함에 규모로 보아 대국의 위용이며 자신의 영위를 위하여 이 많은 권력을 사용했을 그 당시 도예장인만 3천이 투입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진 나라의 인구가 얼마나 되었을까? 왜 자꾸 질리는지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3관으로 이동 더욱 정교해진 모습, 그러면서 조금씩 훼손된 모습에 현 발굴 기술로는 발굴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수긍이 간다. 많은 느낌을 머릿속에 그리며 마지막 2관으로 이동, 같이 온 7쌍의 부부는 어디에서 볼 수가 없다 모두가 자기 나름 관찰과 관람이 이루어지고 가이드의 약속시간에 한 장소로 모이기 시작한다. 휴식시간을 이용 순구친구 부부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 갈증을 해소한 후 무엇에 홀린 듯 가이드를 따라 저녁식사를 끝으로 중국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 한다.
※ 여행을 다녀오고 이 핑계 저 핑계 12월 중순부터 기록에 도전해본다. 사진과 가이드의 안내 등을 기록해 놓은 여행수첩의 도움으로 조금씩 이해하며 느끼며 적어 온 것이 지난 주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서 욕심이 생기며 올해 다녀왔기에 올해는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필자의 두서 없는 여행기록이 읽는 이로 하여금 더 이해를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여행은 다녀온 그대로를 적어야 답사기가 되고 그래야 다음에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야 되는데……
2013년이라는 해도 내일이면 또 다른 해로 넘어간다. 모든 이들에게 올 한해 겪었던 희로애락이 내년도의 또 다른 희로애락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소원해본다. 산악회 회원 여러분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새로 시작되는 2014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