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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07일 성령강림 후 열 두 번째
성경 ; 렘1:4-10, 히12:18-29, 눅13:10-17
제목 ;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①(원인)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하나님의 일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뒷걸음치고 있습니다).
ㄴ.악하고 거짓된 사탄에게 묶여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믿
고 있습니다).
②(과정)핑계나 이유를 대면서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세상풍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ㄴ.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치 못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③(결과)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 은혜를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은혜와 용서가 아닌,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ㄴ.주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우리의 사명을 정해주시고,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십니다.
①(본성)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십니다.
ㄱ.우리가 죄 가운데 있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ㄴ.우리가 그 죄를 뉘우치면 다 용서하여 주십니다.
②(섭리)우리와 같이 동행하시며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십니다.
ㄱ.우리가 출생하기 전에 이미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정해주시고
있습니다.
ㄴ.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항상 동행하면서 보살펴주십니다.
③(결과)그 명령을 따르는 자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ㄱ.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보호해주십니다.
ㄴ.흔들림이 없는 하늘나라를 허락하십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써 떳떳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①(준비)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ㄱ.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야 합니다(말씀의 참뜻을 잘 깨달아
야 합니다)
ㄴ.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경건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②(실천)복수나 파괴가 아니라, 일으켜 세우고 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ㄱ.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어디든지 핑계를 대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ㄴ.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ㄷ.경건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③(결과)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ㄱ.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그 말씀을 행할 능력도 얻게 됩니다.
ㄴ.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ㄷ.사람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게 됩니다.
4.파견사
목사 :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하나
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정해놓으셨습니
다. 그리고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늘 온전케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이유와 핑계를 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주어진 본분에
따라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회중 : 아멘. 우리에게 부탁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의 사명이며, 그 존재 이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풍조에 휩쓸리다보니, 그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왔습니다. 오
늘 다시 한 번,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후로는,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
럽지 않은 인생을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
오 여호와여, 주님의 의로우심으로 우리를 건져주시고 구출해주소서. 우
리가 드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우리가 언제든지
가서 피할 수 있는, 우리의 안전한 반석이 되어 주소서. 주는 우리의 바위이
시며 굳건한 성벽이십니다.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를 언제나 당신
품 안에 따뜻이 품어주심으로써, 모든 환난과 무더위와 시련도 이기게 해주
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변함없이 주님을 의지하며 그 뜻대
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하늘의 양식을 풍성히
내려주십시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우리 주 예수님
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오, 우리 하나님!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우리가 이 시간에 마음과 정
성을 다하여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거짓되고 더러운 생각을 다 버리고, 아주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섰사오니, 오늘 우리에게 하늘의 양식
을 넉넉하게 베풀어주십시오. 우리가 출생하기 이전에 벌써, 우리가 감당해
야 할 사명을 정해놓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
하게 알 수 있도록,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깨우쳐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잘 감당함으로써 떳떳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과 평안을 주시고, 인
류의 참 소망과 기쁨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사 : 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피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시는 부끄러움을
겪지 않게 해 주소서.
회중 : 주님의 의로우심으로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출해주소서. 우리가 드리
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목사 : 우리가 언제든지 가서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우리 반석이 되어주소서.
회중 :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명령을 내리소서. 주는 우리의 바위이시며 굳건
한 성벽이십니다.
목사 : 오, 우리 하나님! 못된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구출해주소서.
회중 : 주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주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굳게 믿어 온 분이십니다.
다같이 :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께 기대어 왔습니다. 주는 우리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우리를 붙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늘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8.예화
1)수리비가 3,000불
어느 날, 포드 자동차 회사에 갑자기 전기가 중단되었습니다. 갑작스럽
게 자동차 생산 라인이 중단되니, 큰 손실과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사내의
모든 기술자를 동원해도 해결이 되지 않자, 포드사는 에디슨 전기 회사의 일
류 기술자를 급히 불렀습니다. 에디슨 전기 회사의 기술자는 기계를 훑어보
더니 십분 만에 수리를 해냈습니다.
그 기술자가 나중에 청구서를 보내 왔는데 3,000불이 청구되었습니다.
십분 만에 3,000불, 우리나라 돈으로 약 320만 원이 청구된 것입니다. 포드
사 쪽에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상세 내역을 다시 보내달라고 했습니
다. 그랬더니, 원인 발견이 2,950불, 수리비 50불이 기재되어 왔습니다. 이
것을 보고 포드사에서는 두말 않고 3,000불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진짜 실
력은 원인을 발견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이 계신 곳
북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프레드릭 놀란이라는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독교 탄압을 받고 원수들을 피해 도망쳤다. 언덕을
지나 계곡으로 쫓기는 데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마침 길 옆에 작은 굴이
보여서 들어갔지만, 두려움이 몰려왔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다가,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께 매달렸다. “주님, 제가 이렇게 죽는 건가요? 제 사명이 이것으로 끝인
가요?”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어딘
가에서 거미가 나오더니 굴 입구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거미는 순식간
에 굴 입구를 가로질러 거미줄을 쳤다. 그를 쫓아오던 자가 굴 앞에 멈춰 서
서 굴을 살폈는데, 입구에 거미줄이 쳐 있고 줄을 건드린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냥 지나갔다.
그들이 떠난 후에 굴에서 빠져나온 ‘놀란’은 이렇게 감탄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미줄도 벽과 같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벽도 거미줄 같
다.”
당신은 두려운가? 빛이시오?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신 하나님을 신
뢰하라! 그리고 그분과 교제하고 예배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간절히 아뢰라.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미줄도 벽과 같다. 그분이 우리로 능히 두려움을 이기
게 하실 것이다.
3)십자가를 등에 질 때
십자가를 세워 놓고 보면 더하기표가 된다. 그러나 십자가를 등에 지면
곱하기표로 변한다. 기독교는 더하기의 종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하
는 곱하기의 종교다. 100만원에 100만원을 더하면 200만원이다. 그러나
100만원에 100만원을 곱하면 10억 원이 된다. 더하기의 신앙생활에서 벗어
나야 한다.
이해타산적인 사람은 희생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곱하기 십자가를 지
는 사람은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못 박는 십자가를 진다. 이 십자가는 이미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포함된 십자가다. 죄인 된 나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
를 질 때, 죄인 된 나는 죽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 되는 십자가다. 사명의 십자가다.
남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과 수치 받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자가 사명
의 십자가를 지는 자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 그리하
여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사명의 십자가를 짐으로 곱하기의 기적을 이룬다.
4)회장의 운전기사로 40년
대기업 회장의 운전기사 생활을 자서전으로 펴낸이가 있다. 김영대 대성
회장의 업무용 승용차 기사인 정 홍(65)씨다. 직함은 차량관리과장. 그는 김
회장의 기사 생활 40년을 『네 바퀴의 행복』이란 책으로 펴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대성에 입사해 40년간 오로지 한 사람만 보필한 직장생활, 그
리고 여기서 찾은 우정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14일 서울 관훈동 대성 본사에서 만난 정 씨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성실하게 일해서 남부럽지 않은 노후를 보내게 된 인생 경험을 나누고 싶었
다.”고 말했다. “대개들 퇴직할 나이에 일하고, 자식들(1남3녀) 모두 대학에
보내 결혼시켰으니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에 정년을 맞았지
만 김 회장의 권유로 지금까지 일한다. “회장은 70살까지 하라지만 누(累)
가 될 것 같아서…”라며 웃었다.
정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초등학교 4년까지 밖
에 다니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23세 때 경북 문경
대성 탄좌에 트럭 운전기사로 들어갔다. 25세이던 1967년, 당시 상무였던
김 회장의 전담기사로 발탁됐다. 간부들이 그의 성실성을 보고 천거한 것이
다.
처음엔 창업주의 젊은 아들을 가까이 접하는 일이 거북했다. 동갑내기
재벌 2세에게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더 조심이 됐다. 충남 대천사업소
에 들렀을 때의 일. 정씨가 허름한 방에 묵게 되자 “이런 방에서 어떻게 잡
니까. 다른 방 없나요. 방 없으면 내 방과 바꾸세요.”라고 말하는 김 상무에
게 감동했다.
2002년에는 둘 다 환갑을 맞았다. 김 회장이 자신의 해외여행 기간에
맞춰 정씨의 환갑 여행을 준비해 주었다. 여행지는 서로 달랐지만, 같은 기
간에 회장과 운전기사가 동시에 환갑여행을 떠난 셈이다.
정씨는 “운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번 책으로 엮어볼
까 하는 생각이 10년 전쯤 문득 들었다”며 “김 회장의 다음 일정을 운전석
에 앉아 기다리며 틈틈이 메모한 걸 다듬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 나가
서도 운전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다. “외국인이 한국에 올 때도 공항에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은 대개 운전기사”라며 “긍지를 갖고 깨끗하고 깍듯한 모
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정씨는 김 회장과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정씨가
요로결석에 걸렸을 때 돌이 빨리 빠지라고 맥주를 사들고 단칸방을 찾아오
곤 했다. 그에게도 ‘주인의식’이 있었기에 회장과의 우정이 가능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회사 제품을 홍보했다. 그동안 대성이 지은 아파트를 열 채나
팔았다. 그의 자가용 트렁크에는 대성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늘 넣어가지고
다닌다. 골프장의 석유 납품 거래를 트는가 하면 동네 집집마다 대성쎌틱보
일러를 놓게 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도 오전 6시에 일어나 6시30분이면 서울 동소문동 김 회장
집에 도착한다. 직원들보다 1시간 반 일찍 출근해 공부하는 게 평생 습관인
회장을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정씨에게 “다음 세상에선 꼭 친구
로 만납시다.”라고 말하곤 한다. 출판기념회는 17일 오후 6시 대성 본사에서
열린다.
9.설교예문
♣성령강림절 후 열두 번째 주일
성경 ; 렘1:4-10, 히12:18-29, 눅13:10-17
제목 ;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이 있겠는가?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 구포2리. 이곳에는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시설인
‘평화의 집’이 있습니다. 이 ‘평화의 집’은 한 때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는 여
류 작가로 활동하던 오혜령 씨와 그의 남편 권오정 목사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혜령 씨는 무려 14가지나 되는 질병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죽었다 살아나기를 거듭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몸도 제대로 추스르기 힘든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그녀는 ‘평화
의 집’을 14년간이나 운영해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1965년 신춘문예에 희곡 ‘성야’로 등단해서, 작가와 연극배우,
그리고 방송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78년에 ‘임파선 암’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코 절망하
지 않고 기도와 금식으로 투병생활을 계속함으로써 어느 정도 병이 호전되
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9년 전에 ‘관상 대동맥경련증’이란 희귀병에 걸려 지금까
지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질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찾아온 질병과 죽음의 고통 앞에서 욥과 같이 간절하게 울부짖었
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도움의 손길을 순간순간 경험하
면서, 남편 권오정 목사와 함께, 무의탁 노인들과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
을 정성껏 돌보아 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그 중에는 그의 생활상을 기록해놓은 ‘당
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책이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손이 마
비되어서 전혀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구술로 받아
적게 함으로써 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혜령 씨는 지금도 하루 9시간 동안 기도하면서 ‘평화의 집’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예레미야서 1장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레미야가 어
머니 뱃속에서 잉태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이미 계획
해놓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세상 만민을 위한 예언자로 정해놓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과거
와 미래를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
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우리 인간은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나 변명을 둘러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가 감당해야
하는 ‘예언자’라는 직책(職責)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사리 ‘예’라고 대답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 저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말할 줄도 모르고 아직 너무나 어린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너는 어리다고 말하지 말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서 내가 명령한 것을 다 말해야 한다.”고 아주 강경하게 말씀했습니
다.
그리고 이어서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해서 너
를 보호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
의 입술에 대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나는 지금 네가 해야 할 말
을 일러주고 있다. 내가 오늘 너에게 많은 민족과 나라를 다스리며, 그들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시키고 넘어뜨리고 건설하며 심는 권한을 주겠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예언자’라는 직책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입니다. 더군다나, 예레미야가 예언자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는, 그
의 조국인 유대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
조국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예언자 활동을 계속해야만 했습니
다.
아무튼,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살고자 할 때
에 세상에서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
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 방법
이 조금은 정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
게 ‘그것은 옳지 않다.’고 깨우쳐 주도록 하기 위해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 사람들이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을 곱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야 할 대상은, 일반
서민이 아니라, 백성들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들이 사는 방식이 옳지 않다.’고 외쳐야 했으니, 예레
미야가 어찌 선뜻 예언자로 나서겠다고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요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제빵 왕 김탁구’라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는 소식입니다. 시청률이 44.6%까지 올라갔다고 하니, 10명 중 4명 이상이
시청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온 국민 중 절반 가까이가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는 ‘제빵 왕 김탁구’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시청하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은 김탁구입
니다. 그리고 그의 이복동생인 구마준이와 대결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탁구는 일찍이 어머니와 헤어져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참으로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밝은 얼굴
입니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일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구마준이는 그야말로 모든 혜택을 다 누리면서 호강스럽게
살아왔습니다. 하건만, 그의 얼굴은 항상 어둔 얼굴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서, 늘 우거지 상(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김탁구를 이겨보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아주 비열한 방법까지 사용합니
다.
그들 사이에, ‘신유경’이가 있습니다. 그는 탁구의 애인이었습니다. 하지
만, 그녀가 거성그룹 사모님에게 당해야만 했던 억울함과 원한을 풀기 위해
서, 그 사모님의 아들인 구마준이를 가까이 합니다. 말하자면, 그녀가 당한
부당한 대우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 또한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김탁구를 응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구마준이를 더 지지하고 있습니까? 굳
이 알아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구마준이를 더 좋게 여기거나
이해하는 분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의 마
음에는 하나님의 선한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처
음 창조하실 때에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선한 것을
좋게 여기는 성품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김탁구처럼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면
서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겪게 되어도, 그리고 아주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
이 있어도, 탁구처럼 선한 모습으로 대응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구마준이나
신유경처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지
요?
만일 아주 조금이라도 구마준이나 신유경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이중성(二重星)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나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서는, 그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면
서, 그리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지지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모순되고 어긋난 일이겠습니까?
드라마 ‘제빵 왕 김탁구’속에서, 어느 날 탁구는 스승인 팔봉 선생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스승님,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의 모든 일
이란 결국에는 착한 사람이 이긴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인가요?”하고 말입
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은 바로 ‘김탁구의 어머니가
한 말이 진리요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그
렇지 않으면,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거니와, 바르게 살 필요도 없을 것입니
다.
드라마 ‘제빵 왕 김탁구’가 어떻게 끝날지,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
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습니다. 요컨대, 성실하게 살아가는 김탁구
가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김
탁구가 불행하게 끝나게 된다면, 시청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방
송사와 작가를 향하여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이 승리하기를 바라
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각자 자기 인생의
결말은 어떻게 끝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까? 물론, 자신이 하나님께서 일
러주신 말씀에 따라 올바른 인생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승리를 예측
하겠지요.
아무쪼록,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의 수고로운 인생을
다 마치고 천국을 들어가게 되었을 때,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고 참 기쁜 마
음으로 하늘나라에 다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1.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든지 김탁구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정
직하고 바르게 살아서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간절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그와
같은 선한 성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투와 시기, 원망과 미움, 불만과 불
평을 갖게 하는, 악한 성품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선하게 살려는 우리의 의
지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간에도 반목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도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마준이를 보십시오. 그에
게도 선한 양심이 그 마음 한 구석에 있음을, 드라마에서는 보여주고 있습니
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속에서는 선한 양심과 악한 세력이 둘 다 공존하면
서 늘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양심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고, 악한 욕심이 선한 양심을 이길 경우에는 악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선한 양심이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
씀으로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밥을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듯이, 우리는 하늘 양식인 말씀을 든든하게 먹어야만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육신의 양식은 하루 세끼 꼭꼭 챙
겨먹으면서도, 영의 양식은 일주일에 겨우 한 번만 먹고서 견뎌내려고 하니,
어떻게 악의 세력과 싸워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써 그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든지, 아니
면 악마의 종이 되어 악한 일을 행하든지, 그것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
에 따라 선택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상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악하게 살았을 경우, 절대로 어떤 변명이나 핑계를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한 그대로 어김없이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
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우리 인간의 본분은 ‘사람답게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의
본분을 다하려면, 우리의 성품과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온전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18년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던 여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허리가 굽어지는 중병에 걸려서 18년 동안이나 허리를
펴지 못하고 꼬부린 채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손을 얹으시자, 그 여인
은 그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회당장이 소리치며 분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의 병
을 고쳐준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회당장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대한 그릇된 고
정관념이, 그로 하여금 좋은 일을 좋게 볼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하는데, 때로는 자기 주장이나 세상적인 욕심이 주님
의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내 생각에는 옳게 보여도, 하나
님께서 옳지 않다 하시면, 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생
각에는 아닌 듯싶더라도,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회당장에게 “안식일이라고 해서 가축을 풀어서 먹을 것을
주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18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묶여 있던 사람을 풀어
주는 것이, 단지 안식일이라고 해서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르게 사는 일에는 어떤 이유나 변명
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에 따라 무조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제가 연약하오니, 저로 하여금 바르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하고 말입
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서
형벌을 받았다(12:25)’고 하면서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이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물론, 주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도, 우리가 그 죄를 깨닫지 못
하고 계속 그 죄를 지을 경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법칙에 따라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
다.
2.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핑계나 이유를 댈 것 없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
씀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혜령 여사는 무려 14가지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무의탁 노인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드렸습니다. 그 자신도 타인의 도움을 받
아야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돌보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
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주
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사명이 무엇인지,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깨
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갈 경우, 그런 사
람은 ‘구마준’처럼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구
마준만 비난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나 자신’
이 지금 어떤 배역을 맡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봐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은 아무쪼록 선한 역을 맡아서 선하게 살아가시
기 바랍니다. 구마준처럼 악한 역을 맡은 사람은 우리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
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날, 하나님께로부터 ‘네가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느라 대단히 수고했으니, 이제 너에게 큰 상급을 주겠
노라.’고 하는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령강림 후 열 두 번째
성경 ; 렘1:4-10, 히12:18-29, 눅13:10-17
제목 ;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지난번에, 약 한 달 동안, 아내가 영국 딸네 집에 가 있는 동안, 저로서
는 그다지 불편한 게 없었습니다. 웬만한 것은 다 처제가 해주었기 때문에,
아내가 없어서 힘든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혼자 있는 게 힘들었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늘 홀로 집에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물론,
항상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언제나 외롭고 쓸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넓은 곳에 나 혼자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쓸쓸함과
외로움의 물결이 밀려오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
하시고는,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도와줄 짝을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혼자 있어서 좋은 점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어쨌든 사람은 짝을 이루어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남녀가 짝을 이루어 함께 함으로써,
험하고 힘든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
은 누구랑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까? 과연 누가 우리의 영혼과 함께 하면서,
그 영혼이 외롭고 힘들 때에 정성껏 보살펴주면서 위로해줄 수 있는 것입니
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언제나 너와 함
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니, 너는 그 누구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
지 마라.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니, 꼭 그대로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
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똑같이 말씀하시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 누구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면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함께 하시겠다고 한 것은, 그에게 예언
자의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기꺼이 감당할 때, 하나님도 그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예레
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갈 경우, 과연 하나
님께서 그의 영혼을 돌봐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순간, 그런 사람은 하나
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계약이 깨지게 되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은 그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을 지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이스라엘백성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서 형
벌을 받았다(12:25)’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얼마나 더 무서
운 형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형벌을 받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을 받겠느냐?’고 하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논리입
니다.
물론, 우리는 꼭 형벌이 무서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서 평
안을 누리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우리의 본분
과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요약해서 말씀드린다
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켜 살 때, 그 말씀의 보호를 받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그 새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
다.
‘이 작은 새는 이미 저녁먹이를 먹고 난 후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그
잠자리가 참으로 편안해 보이는구나! 저 새는 내일 아침에 먹을거리에 대해
서도 걱정하지 않겠지! 그리고 내일 밤 잠자리에 대해서도 아무 걱정과 염
려를 하지 않겠지! 저 새는, 다윗처럼 전능하신 자의 보호하심에 그 몸을 맡
기고, 정말 아무 염려와 걱정도 없이, 작은 나뭇가지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만족하는구나! 저 작은 새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
지 않는가!’
그래서 루터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잠자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새를 보호하시듯이 그 사랑하
는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작은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산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 보호해주시리라
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예레미야를 들어 쓰시려고, 그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구별하여
‘만민을 위한 예언자’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곧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저는 말할 줄도 모르고,
아직 너무 어린 사람입니다(1:6)”라고 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예언자가 되
기에는 합당치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한 것
은 단지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줄 몰라서 예언자의 사
명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가 죽임을 당하게 될까봐 두
려웠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예언자들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예
언자들이 해야 하는 말은,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도 아니고, 축복하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심판을 예고
하는, 한 마디로 말해서 백성들이 듣기 싫은 말만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그런 예언자를 환영하거나 반가워할 리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예언자들이 기분 나쁜 소리와 재수 없는 소리만 한다고, 그 예언
자들을 잡아다가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특히, 권력자들에게는
예언자가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예언자들이 그들의 비리와 부정을
밝히면서, 그들의 파멸과 심판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언자들이 가야 할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이었습
니다. 그래서 진실한 예언자들은 점점 사라지고, 언제나 거짓예언자들만 득
실거렸습니다. 거짓예언자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골라서 했기 때
문에,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예언자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그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구별하여 선택하셨던 것입
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일을 감당할 수 없노라고 하면
서 거부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결코 한 순간도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가시면, 우
리는 한 마디 변명이나 항의도 하지 못하고, 그냥 이 세상을 하직해야만 하
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요즘 한참 무덥다고 야단들입니다. 중국에서는
지금 폭염으로 인하여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태양을 지구 가까이로 조금만 더 옮기신다면, 이 지구에 어떤 변
화가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면, 모든 인류는 한순간에 불에 타서 완전히 멸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실이 이런데도, 우리 인간이 도대체 무슨 큰소리를
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말고 겸손히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의 말씀을 거역하면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이 있겠는가?’하고 경고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변명이나 이유를 대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1.우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잘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10절 이하에는, 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
달리던 여자의 병을 고쳐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 여
자의 병을 고쳐주신 다음에, 그 여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열여덟 해 동안 사
단에게 묶여 있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일 먼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이처럼 여러 가지 종류의
사단에게 묶여서 부자유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 모든 억압과 얽매임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자유
와 기쁨, 평안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들에게 열심히 진리의 복음을 전해서, 그 복음의 진리로 말미암아,
어둠에서 해방되어서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
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고인이 된 ‘여운계’라는 분을 잘 아실 겁니다. 이분은 명
문대학을 나와서 오랫동안 연기생활을 하다가 2009년도에 폐암으로 사망했
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기 전에, 그의 몸이 점점 연약해지자, 그 마음도
심히 약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무언가에 의지하려고 아주 많이
애썼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전원주 씨에게 ‘대구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하니, 함께 가자!’
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원천리 대구로 내려가서 점을 치니, 그 점
쟁이가 하는 말이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주 작은 미물이라
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귀하게 여기면, 돈도 생기고 몸도 낫는다.’고 했습
니다. 그 다음부터, 여운계 씨는 아주 작은 벌레만 봐도 그 벌레에게 합장을
하면서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일찌감치 그분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게 했더라면, 그가
그처럼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소
위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이가 점쟁이의 말을 믿고 그런 행동을 취했으니, 얼
마나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무튼,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하
고 두려웠으면, 한낱 미물에 불과한 벌레에게 합장을 하면서 절을 했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악한
사상과 점술, 그리고 미신과 우상에 얽매여서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인생
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
나님을 바로 믿고 의지함으로써,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내가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야하며,
내가 시키는 말이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전해야 한다(1:7)”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런 다음,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니, 너
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8)”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 또는 그 무엇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
려워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무조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크신 사
랑과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주님 안에서 참평안을 누려야 합니
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대충 아무렇게나 믿음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헛된 생각을
하거나 헛된 일에 빠지지 않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받
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거나
복음 전하는 일을 등한히 할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니, 너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8)”고 하신 말씀은, 어디까
지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실하게 살려고 애쓰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
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
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2.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은,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의 모습을 그
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늘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말해주고 있
는 것입니다.
22절의 말씀을 보면, ‘이곳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이며, 수많은 천사들이 즐겁게 모이는 곳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
고 그곳에는, ‘하늘나라 생명책에 등록된 사람들만이 갈 수 있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든 민족을 심판하시는 하나
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구원받고 완전해진 의인들이 살아가게 된
다(23)’고,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그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
건함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로 잘 섬겨서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28)’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다고
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
세를 통해서 경고를 받고도 순종하지 않다가 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경고하시는데, 만일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 않는
다면,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이 우리에게 내리겠는가?’
성도 여러분! 장차 우리 앞에 일어나게 될 일들은, 그때 가서 직접 경험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가
사실이라면, 그 경고를 무시하고 산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땅을 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경고한 것을 귀담아 잘 듣고, 하나님
께서 일러주신 대로 사명을 열심히 감당한다면, 절대로 후회할 일은 결코 일
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혹여, 히브리서 기자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전
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참으로 값있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인생을 살아가도
록 더욱 열심히 노력합시다. 그래서 멀지 않은 훗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 천국에 들어가셔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