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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간의 추석 연휴 이틀째 날이다. 백운산 산행을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서 포천시 이동면의 흥룡사로 차를 몰았다. 송파 인터체인지에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로 들어서서 하남시와 서울 강동구를 관통하고 강동대교를 건넜다.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경계를 넘고 퇴계원 IC로 들어선 애마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임송 IC에서 47번 국도로 갈아탔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첩첩 높고 낮은 산들이 능선을 뻗으며 맥을 이어가는 산천, 그 사이로 난 얽히고설킨 도로망을 달리는 차량의 행렬은 건강한 미세혈관처럼 막힘이 없다.
왕숙천 천변으로 들어선 47번 국도를 따라 한동안 북진하니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안개구름을 머리에 인 검푸른 빛 산봉우리들과 능선이 차창을 스친다. 그 모습이 운무 속에 멀겋게 떠오른 태양을 여의주 삼아 승천하려 용틀임하는 용을 지척에서 보는듯 자못 위엄스럽다.
왕숙천의 수원지인 포천 수원산을 좌측으로 스쳐 보내고, 일동면을 지나 도평리로 내려섰다. 도평리는 가리산, 백운산, 광덕산, 박달봉, 명성산, 감투봉, 약사봉 등 고산들 사이에 웅덩이처럼 자리하고 있다.
백운산과 광덕산 줄기 사이로 낙타 등처럼 굽이도는 포화로는 해발 620m 광덕고개(일명 '캐러멜 고개')를 지나 강원도 화천군으로 이어진다. 광덕고개는 고도가 높고 산정까지 거리가 짧아서 많은 산객이 백운산이나 광덕산 등반의 들머리로 삼는다. 백운계곡과 선유담계곡의 물이 하나로 되어 흐르는 천변 포화로를 따라 2km를 거슬러 올라가서 8시경 흥룡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펜션 등 휴양시설들이 자리한 흥룡사 주변은 피서철이 막 지난 탓인지 한산하고 공기는 가을의 서늘함이 느껴진다.
산행 채비를 하고, 신라 말 도선(道詵, 827∼898)이 창건했다는 흥룡사(興龍寺)는 하산 길에 둘러보기로 하고, 사찰 우측의 계곡을 끼고 들머리로 향한다. 백운교 부근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와 알밤이 풍요로운 계절 가을임을 알린다.
계곡 위에 걸린 백운1교와 백운2교를 차례로 건너자, 들머리에 이정표와 산행 안내도가 서 있다. 좌측 능선 등로를 택하여 백운산 정상 ~ 삼각봉 ~ 도마치봉 ~ 향적봉 ~ 흥룡봉 ~ 흥룡사 코스의 약 14km, 대여섯 시간으로 예상되는 산행을 시작했다. 해발 약 280m 들머리에서 해발 903m 백운산 정상까지는 3.28km로 600여 미터를 올라야 한다.
계곡에서 능선 마루를 향해 가파른 계단을 따라 치고 오른다. 가을 풀벌레 소리 온 숲을 채웠다. 최근에 내린 비 탓인지 등로는 군데군데 패이고 토사가 흘러내렸다. 패인 등로 흙을 부여잡고 굵은 힘줄처럼 뿌리를 드러낸 소나무들의 치열한 생명력이 가상하다. 간혹 거미줄이 얼굴에 걸리는 것으로 보아 오늘 이쪽 코스로 오른 산객은 없지 않을까 짐작된다.
능선 마루로 올라서기까지 별다른 조망이 없던 등로가 들머리에서 약 1km 지점부터 좌우로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조망을 내놓는다. 가로막아 선 암벽을 휘돌고, 밧줄을 잡고 바위에 박힌 철심 계단을 밟으며 오르는 구간이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우측 백운계곡은 점점 더 산등성이에서 깊숙이 멀어지지만, 내뱉을 곳 없는 물소리는 능선을 타고 오래도록 뒤따라온다. 옅은 바람결에 진한 송이버섯 향내가 솔솔 코끝에 와 닿기도 한다.
능선 등로는 좌측에 광덕고개로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내비치고, 우측으로 브이(V ) 자 안부를 양쪽에 낀 향적봉 등 하산 코스의 봉우리들을 솔가지 사이로 내놓는다. 흥룡봉 능선 뒤로 거친 암벽을 내비치며 우뚝 솟아 있는 가리산도 눈에 들어온다.
단독 산행은 시간 코스 등 세세한 부분을 오롯이 스스로 판단하고 가늠하며 날머리까지 체력을 안배하면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한다. 고독을 친구 삼아 걷는 힘든 여정이지만, 아무것에도 거리낄 것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보고 생각하고 느끼며 걷는 등 여러 가지 이점도 있다.
시원스러운 바람이 좋은 능선 안부에 올라서니 나뭇가지에 산악회 리본이 수북히 매달려 있다. 안성 평택 시흥 인천 파주 포천 문산 강서 수원 등 지역도 다양하고, 한걸음 모드니 명산 능선 좋은꿈함께 뚜벅이 숲사랑 태화 어울 파호 화인 두리 산이랑 등 그 이름도 갖가지이다. 한국인만큼 산을 좋아하고 산을 즐겨 찾는 민족도 많지 않을 듯싶다.
며칠 전 한국인 남녀 등반객이 프랑스 몽블랑 등반 중 갑작스런 악천후로 인해 정상 100m 인근에서 조난하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한국인은 사방팔방 산에 둘러싸인 땅에서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십중팔구 산으로 돌아간다. 고상돈 허영호 엄홍길 등 세계 등반사에 이름을 남긴 걸출한 산악인들을 배출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아래쪽 능선 위로 하늘이 드러났지만, 산정 쪽은 여전히 운무에 잠겨있다. 산정 부근으로 다가서자, 능선의 바람 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지지만, 그 거친 바람의 격랑 속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등로 주변 노송들은 용의 비늘처럼 푸른 이끼가 낀 두꺼운 껍질을 두르고 있다. 활엽수 나무들은 일제히 가지를 좌측으로 누이며 호들갑스레 잎새를 흔들어댄다.
등로는 승천하는 용이 등을 구부리며 용트림하듯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가 산정으로 치닫는다. 200여 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이정표는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하며 달리는 마라토너를 응원하는 서포터스처럼 산객에게 힘을 북돋운다.
잠시 먹먹해지는 고막이 고도가 한층 높아졌음을 느낄 즈음 산행 시작 2시간 30분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나무에 가려 특별한 조망이 없는 평평하고 널찍한 산정은 광덕고개, 삼각봉, 흥룡사 세 갈래 등로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어깨높이 정상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표지석 뒷면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요 문장가이자 서예가로 그 유명한 <태산가(泰山歌)>를 남긴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시 <증금옹(贈琴翁)>이 새겨져 있다.
거문고 타는 백아의 마음은
종자기만 알아듣는다오
한 번 타매 또 한 번 읊조리니
맑디맑은 바람 소리 먼 봉우리에 일고
강달은 아름답고 강물은 깊기도 해라
緣綺琴伯牙心
鍾子是知音
一鼓復一吟
冷冷虛籟起遙岑
江月涓涓江水深
조선 전기 4대 명필의 한 분으로 알려진 양사언은 지금은 포천에 속하는 조선시대 영평현(永平縣) 출신이다. 그는 '영평팔경(永平八景)’의 하나로 수려한 풍광을 품은 금수정(金水亭) 아래 영평천의 바위에 그의 장인인 금옹(琴翁) 김윤복(金胤福)에게 바치는 <증금옹>을 새겼다고 한다.
한탄강으로 흘러들며 숲, 계곡, 기암괴석, 절벽 등을 품어 아름답기로 이름난 금수정을 비롯한 영평팔경은 예로부터 박순, 허목, 한석봉, 채제공, 이덕형, 김수항, 김창협 등 많은 유학자와 시인묵객(詩人墨客)이 찾던 곳이라고 하니, 하루쯤 날을 잡아 둘러보는 것도 좋을듯싶다.
산정에 먼저 올라와 있는 노 산객 두 분은 대구에 사는 부부로 전국 100대 명산을 탐방 중인데, 어제 운악산을 올랐고 오늘은 광덕고개에서 이곳에 올라왔다고 한다. 서로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고 안전 산행을 당부하며 삼각봉 쪽으로 길을 잡았다.
능선 왼쪽 사면을 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능선을 따라 삼각봉까지 평탄한 0.93km 등로가 이어진다. 이 구간에는 풀숲 사이에 숨어 있는 갖가지 들꽃이 눈에 많이 띈다. 들꽃들과 눈 맞춤 하며 다리와 바지를 적시는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산행 후 네이버 '지식iN'에 꽃 이름을 물어보니 용담, 노랑물봉선, 산박하, 며느리밥풀, 동자꽃, 모시대, 흰진범, 이질풀, 단풍취 등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낡고 퇴색되어 글자가 희미한 이정표를 지나자, 바위를 앞세운 삼각봉이 비탈 위에서 기다린다. 삼각봉 위에는 노 산객 세 분이 고량주 빈 병 하나와 소주 한 병을 놓고 휴식을 하고 있다. 두세 번 권하는 바람에 종이컵에 소주 한 잔을 받아들고, 배낭에서 샤인 머스캣 포도를 꺼내어 함께 나누어 들며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고향 친구 사이라는 이들은 전국 유명산은 물론이요, 이곳 한북정맥을 비롯한 여러 정맥까지 두루 섭렵했다는데, 나보다 10년 정도 연배라는 나이에 비해 모두 젊고 건강해 보인다.
도마치봉으로
백운봉 정상에서 이곳 삼각봉과 앞쪽의 도마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추가령에서 서남으로 갈라져 나와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고양시 고봉산을 거쳐, 한강과 임진강 하구의 장명산에 이르는 294km 길이 '한북정맥'의 일부 구간이다.
삼각봉을 뒤로하고 1.1km 거리 도마치봉으로 향한다. 능선을 타고 넘는 거침없는 바람에 땀은 다 식었고 바짓가랭이는 등로에 드리운 나뭇잎과 풀잎에 맺힌 물기에 흠뻑 젖었다. 달리다가 걷기를 번갈아 하며 나아가는 폭신하고 평탄한 능선은 이상하게 조금도 힘들지 않는다. 좌측 능선엔 포격을 맞은 듯 고목들이 비바람에 허리가 꺾인 채 서 있고, 멀리 화악산은 구름을 인 채 긴 능선을 거느리고 장성처럼 뻗어 있다.
어느새 뒤쫓아온 삼각봉의 노 산객 세 분과 함께 해발 925.1m 도마치봉(道馬峙峰)에 올라섰다. 도마치(道馬峙)하는 지명은 명성산 전투에서 왕건에게 패한 궁예가 도마봉 부근 산길이 험하여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고개를 넘어갔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향적봉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노 산객 중 한 분이 자신의 고향 영암의 월출산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 그리고 반드시 들러야 할 부근 명소 등에 대해 귀띔해 주며 국망봉 쪽으로 앞서간 동행을 향해 발길을 다잡는다.
도마치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길 좌우 군데군데 견고해 보이는 콘크리트 벙커와 방공호가 눈에 띈다. 도마치봉 바로 아래에서 흥룡사를 들머리 삼아 9시경 산행을 시작해서 올라오는 중이라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 산객 여섯 분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흥룡봉을 향해 공룡의 등 비늘처럼 굴곡진 능선의 좌우 우회로를 따라 고도를 낮추어 가며, 우측 계곡 쪽으로 아찔한 낭떠러지 사면을 내놓기도 한다.
도마치봉에서 향적봉까지 등로에는 이정표가 달랑 한 개로, 흥룡사로 계곡 길과 흑룡봉을 거쳐 가는 능선길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정상 턱밑에서 봉우리를 치켜세운 향적봉으로 치고 올라섰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세운 국가 지점번호 기둥이 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
시각은 정오를 갓 넘겨 여유롭다. 향적봉에서 흥룡봉까지 1.6km 등로는 한층 거칠고 가파른데, 바람마저 세차게 분다. 조망이 없던 향적봉에서 내려서면 등로는 급전직하 절벽을 낀 바위무덤 조망처를 두어 곳을 내놓는다. 그 조망처는 여러 갈래 산줄기가 한 곳으로 수렴하는 곳에 자리한 흥룡사, 익선관(翼蟬冠)의 뿔처럼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솟아 있는 가리산과 그 뒤로 금주산을 병풍 삼아 너른 평지에 자리한 포천 이동면 등 탁 트인 전망을 선사한다.
바위 무덤 위에 소나무가 뿌리를 틀고 자리한 조망처 아래로 오늘 산행 중 가장 가파르고 험난한 100여 미터의 가파른 암벽 사면이 기다리고 있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올라오는 남녀 산객 두 명에게 길을 비켜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해발 700m까지 고도를 낮춘 능선은 774m 흥룡봉 밑동에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내놓는다.
흥룡봉을 지나자, 이정표가 100여 미터 간격으로 나타난다. 등산 코스 전체에 고르게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어야 할 이정표가 들머리인 흥룡사 가까이만 촘촘히 서 있는 것이 의아하고 무언지 미심쩍다. 또 다른 봉우리 649봉을 넘어서자, 1.77km 앞으로 흥룡사가 가까워 졌다. 한 번 더 치켜올릴 듯 말 듯 이어지던 등로는 흥룡사 기점 1.08km 지점에서 능선길을 버리고 오른편 계곡 쪽으로 급강하한다.
고도가 낮아지며 계곡 물소리가 가까워지며, 오후 2시경 백운계곡으로 내려서니, 여인이 한복 치마폭을 펼친 듯 넓은 물줄기를 흘러내리는 너럭바위가 반긴다. 배낭을 내린 후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그니 차디찬 냉기가 발과 다리를 차고 전신으로 번지며 뜨겁던 몸이 금세 서늘하게 식어버릴 듯하다.
흥룡사로 가는 반듯한 돌길 좌측 아래 계곡에는 가족 피서객 몇몇이 늦더위를 씻어내고 있다. 들머리 갈림길이었던 백운2교에 닿으며 원점회귀 산행을 마친다. 흥룡사 측면으로 들어서서 가파른 계단 위 삼성각으로 올라서니 처마의 풍경이 바람에 청량한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대웅전 법당 쪽에서 들려오는 독경 소리는 산에 둘러싸인 경내를 은은히 가득 채우며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대웅전에는 삼존불과 함께 그 옆에 신라 말 도선국사가 흥룡사(興龍寺)를 창건할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철불 2기 중 약사여래좌상의 사진이 모셔져 있다. 사진 속 철조 약사여래상은 훤칠한 체형, 타원형 얼굴에 단정한 이목구비, 나발(螺髮)이 없는 민머리, 삼도(三道)를 넣지 않은 목 등이 더 현실적이고 친근감을 주는데, 그 중에서도 지그시 감은 듯한 일자 형 긴 눈이 가장 인상적이다.
흥룡사 절터에서 발굴된 두 철불은 현존하는 철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주조된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1924년 출토되어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이관될 때와는 달리 손이 사라졌다고 한다. 최근 흥룡사 주지 도암스님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상대로 불상의 손이 사라진 연유를 해명하라고 요청했으나, 박물관은 묵묵부답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1,000여 년 역사의 소중한 불상의 일부가 사라진 연유를 반드시 밝혀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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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꽃과 흡사한 꽃법의꼬리가 만개한 화단 옆 계단으로 흥룡사를 나서며 일산일사(一山一寺)의 산행 모토를 완수했다.
화악산으로
비교적 이른 시각에 산행을 마친 까닭에 들를만한 부근 명소를 물색하던 중에 화악산이 눈에 들어왔다.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의 하나인 화악산 중봉 턱밑까지 차량으로 오를 수 있고, 흥룡사에서 그곳까지 30km여 거리이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굽이굽이 광덕고개를 넘어 강원도 화천군으로 들어서서 화악산과 매봉 사이로 능선 아래를 관통하는 화악터널을 지나 가평군의 경계로 진입했다. 겨우 찾은 중봉으로 난 군사 도로로 진입하여 해발 1,370미터 화악산 중봉 턱밑 주차장격인 너른 공터에 도착했다. 머리 위 가까이 중봉과 그 우측에 어깨를 나란히 한 화악산 정상이 있을 뿐 하늘과 맞닿은 모든 산과 능선이 발 아래 굽어 보인다.
화악산은 군부대 시설이 자리하여 출입이 금지된 해발 1468.3m 정상을 대신하여 그 옆 해발 1446.1m 중봉이 산객을 맞이한다. 차를 세운 곳에서 중봉까지는 고도 차이 약 80미터에 300여 미터 거리로 산행이라고 말하기조차 어설프다. 나처럼 그 턱밑에서 중봉에 올라 표지석과 함께 인증 사진을 남기는 산객이 적지 않다. 100대 명산 중 하나에 속하는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고 산정은 안개로 조망이 없지만, 화악산 중봉에 정상에 올라선 감흥은 사뭇 남달랐다. 어쨋든 나로선 생애 처음으로 하루에 100대 명산 두 곳에 오른 의미 있는 날이다.
가평군 북면을 지나는 화악산로 도로변에 자리한 호주군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뉴질랜드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캐나다 군 가평 전투 기념비 등이 이 지역이 대한민국의 안녕을 위해 세계 여러 자유민주 국가 젊은 병사들이 피 흘리며 분전한 격전지임을 상기시켜 준다.
국도를 달리는 차 차창 밖으로 노을이 붉게 물든 서쪽 하늘에 라이트 블루 톤 옅은 구름이 샤갈의 작품 속 동물 마냥 몽환적 그림을 펼쳐 보인다. 그 속에는 상상 속 동물 현무(玄武), 비천상, 새앙쥐 등이 들어 있다. 아니다. 물건을 훔쳐 달아나며 고개를 돌려 뒤를 힐끔 쳐다보는 꼬리 긴 여우를 쏙 빼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