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사회복지사>를 읽고 '아이들 덕분에, 사회복지사'
이정희, 제주 나무와숲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
어쩌다, 사회복지사
<덕분에, 사회복지사> 첫 쪽을 펴자 최우림 선생님의 이력이 보였습니다.
1991년생이라는 선생님, 스물네 살에 사회복지사가 되어
서른 살의 사회복지사로 삶을 살아가는 선생님의 글을 담은 책이구나 짐작되었습니다.
1991년은 때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은 저의 대학 4학년 시절이었습니다.
취업은 생각 못 할 만큼 학교 보다 아르바이트 하기 바쁘던 형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난 후 여러 감정들이 몰려와 정리가 힘들어졌습니다.
저는 최우림선생님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사회 초년부터 시작된 사회복지사의 길을 서른 살이 된 사회복지사인 선생님의 사회사업 여정이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음의 역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덕분에, 사회복지사’가 되셨다면, 저는 ‘어쩌다, 사회복지사 ’가 된 경우라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아직까지도 낯설답니다.
서른 살 선생님의 사회사업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 들이 일어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회복지 일을 얼마나 하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좋은 배움이었다고 기억하고 싶고
이 배움들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생각을 달리하면 사회사업 기록 쉽게 쓸 수 없는 글이 맞다.
가볍게 쓰고 가볍게 읽히는 글이 되면 안 된다. 사회사업 기록에는 당사자 삶이 있다.
사회사업 하는 내가 있다. 그렇기에 내가 사회사업 기록하며 고통을 느끼는 것 역시 당연하다." (88쪽)
최우림 선생님도 글을 쓰기 위해 지우고 쓰기를 몇 번을 반복하였다니
저는 몇 번을 더 반복해야 할까요?
다른 선생님들의 글을 다시 읽어 보고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고,
그렇게 처신 못 했던 무능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합니다.
나보다 훨씬 나이 어린 선생님인데도 훨씬 어른스러운 생각을 지닌 선생님들의 글을 읽으니
그간 선생님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돌보며 내 아이를 키우던 과거를 반성하고
내 아이를 바라보듯 센터 아이를 바라보면 결코 그 아이를 쉽게 대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 역시 우리 아이 이야기를 혹시나 쉽게 이야기하고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습니다.
남의 이야기라서 쉽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덕분에, 오랜 시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 더욱 관계 살피기
사람을 만나는 게 이제는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출입명부작성하고 'QR코드' 찍고, 열 체크는 필수코스입니다.
어린 시절 SF영화에서 보았던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언뜻 스쳐갑니다.
그때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온도 체크를 위해 서 있는 저 자신이 그 영화에 들어간 듯 데자뷔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19시대, 삶이 팍팍하다, 삭막하다 생각했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사람살이, 이웃 살이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확신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지역사회 곳곳 아직 사람살이, 이웃 살이 하며 각자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내가, 우리가 있었다." (73쪽)
얼마 전 센터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마실 수 있는 정수기가 주방에 설치되어 있어서 아이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수시로 주방으로 드나듭니다.
그날도 한 아이가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조리사선생님께서는 간을 보기 위해 마스크를 잠시 턱밑으로 내리셨습니다.
물을 마시고 나온 아이는 다른 몇몇 아이들에게 외쳤습니다.
“얘들아! 조리사 선생님, 마스크 벗었어! 야! 오늘 우리 밥 못 먹어!”
뒤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선생님께서 조리사 선생님께 전달이 되었고
조리사 선생님은 차분히 해명을 하셨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저의 마음은 너무도 복잡하였습니다.
말을 전달한 아이는 평소에 선생님들께서 신뢰하는 아이인지라
저는 말할 것도 없고 조리사 선생님의 얼굴은 사색이 되셨습니다.
센터장님께서 우리 센터에서는
초등부터 시니어 선생님까지 세대차가 많이 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여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한테 기가 막히고 속이 많이 상하셨을 텐데
의연하게 설명을 잘해주신 조리사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럽고,
코로나가 우리를 이렇게 까지 삭막하게 만드나 싶어 씁쓸하였습니다.
다음 날 조리사 선생님께서 그 아이가 선생님께 와서 죄송하다고 하였습니다.
본인도 나중에야 ‘장난으로 한 말이 이렇게 큰일이 되는구나’하고 느꼈다고 합니다.
조리사 선생님! 그날은 미처 말씀 드리지 못했지만,
만약 저라면 저는 흥분해서 말을 잇지 못 했을 거 같아요. 존경하고, 고맙습니다.
센터장님의 설명을 이해하고 조리사 선생님께 사과한 아이도 고맙습니다.
그냥 꺼낸 말인데, 아이도 당황했을 겁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했을 겁니다.
이해하고 용기 있게 나서주어 고맙습니다.
코로나 시대,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공부였습니다.
사람 사이 멀어지지 않게 더 세밀하게 거들어야겠습니다.
지역아동센터도 작은 사회이니, 그 속에서 아이들과 둘레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게 살피겠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가까운 이를 챙기고, 더 정겹게 다가갈 일들을 궁리하겠습니다.
첫댓글 이정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장애인복지 하는 최우림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최근 현장에서 겪은 몇 가지 일로 소진 아닌 소진, 의심 아닌 의심을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저의 선택과 역량에 대한 의심이었지요.)
때마침 전해 들은 선생님의 글은 그런 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딛고 일어설 힘이 되었어요.
올 한 해, 저는 이 책 한 권을 통해 과분한 응원과 관심, 지지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단어와 문장으로 대충 얽어 만든 저의 글은 읽어주는 이를 만나 씨실, 날실 촘촘한 옷감으로 돌아왔습니다.
독자를 만나 비로소 완성이 되었습니다.
미진한 글 찬찬히 읽어주어 감사합니다. 저의 글에 마음을 더해주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