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 한 알에서 구불구불 다랭이논까지
2026년 10월 17일, 청주 소로리볍씨마을의 ‘소로리 쌀파티’를 찾았다. 팸투어의 관심사는 분명했다. 세계적으로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마을이 그 역사적 자산을 어떻게 축제로 풀어내고, 여행자가 무엇을 보고 경험하게 하는가. 한 시간 일찍 도착해 마을부터 천천히 둘러보았다.
축제장 첫인상은 ‘소로리 입출국 안내소’가 만들었다. 입국과 출국이라는 표현으로 작은 마을을 하나의 여행지처럼 꾸몄다. 방문 등록을 마치면 수첩과 연필, 연필통, 도토리가 든 복주머니를 받는다. 출입의 절차를 체험의 시작으로 바꾼 장치다. 중심 공간인 ‘소로리쌀상회’와 체험 부스는 걸어서 살펴볼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배치되어 있었다.
축제의 구심점은 소로리 볍씨다. 1997~1998년 오창과학산업단지 예정지 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고, 2001년 후속 발굴에서는 토탄층을 정밀하게 조사해 추가 볍씨를 찾았다. 청주시 소로리볍씨관은 연대측정 결과를 약 1만 3천~1만 5천 년 전으로 소개한다. 볍씨가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관해서는 학술적 논의가 있으므로, ‘오래된 볍씨의 출토’와 ‘당시 벼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행사 주제는 ‘세상 모든 벼들의 고향, 세상 모든 엄마를 위하여’. 체험 안내에는 ‘땅의 엄마’의 씨앗 심기와 반려돌 만들기, ‘생명의 엄마’의 쌀 관련 놀이와 고대밥·현대밥 비교, ‘사랑의 엄마’의 밥상과 편지쓰기, ‘시간의 엄마’의 그림과 글 남기기가 소개되었다. 직접 참여한 체험과 관계없이, 역사·음식·돌봄·기록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은 기획이 눈에 띄었다.
가을의 청량한 날씨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아직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강해서 구불구불 다랭이 논을 걷는 것이 다소 힘들거라는 주체 측의 근심어린 조언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 축제의 최고의 멋진 코스라 생각이 되어 걷기로 하였다.
안내판에 따르면 창리저수지 아래 골짜기의 비탈진 땅을 따라 논이 층층이 조성되어 있다. 곧은 구획 대신 제각기 굽은 논두렁이 이어져 걸을수록 보는 각도가 달라진다. 10월의 논은 황금빛 벼이삭으로 가득했다. 안내판에는 7~8월이면 분홍색 벼가 꽃밭처럼 빛난다고도 적혀 있다. 산과 논 사이를 지나는 길에서는 벼가 익어가는 계절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좁고 불규칙한 구획은 농사일에 적지 않은 수고를 요구할 듯했다.
소노리 쌀상회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만났던 광경이 들깨를 터는 어머님을 만났는데 구불거리는 다랑이 논길을 걷다가 들판 한가운데에서 가을 햇살아래서 모멸차게 들깨를 터는 어머니를 만난 것이었다.
가을을 수확하는 일을 어머니들이 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랗지만 규칙적으로 내려치는 ㄱᆢ을의 회초리 소리가 좋아서 한참을 앉아서 바라보았다.
들깨를 털 때마다 향긋한 냄새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 장면은 프로그램표에 적혀 있지 않은 소로리만의 현장 체험이었다. 유적의 연대를 읽는 일 못지않게, 지금도 씨앗을 거두며 살아가는 주민의 일상을 존중하며 바라보는 일이 중요함을 느꼈다.
관광 콘텐츠로서 소로리의 강점은 ‘볍씨 발굴 이야기—쌀파티—구불구불 다랭이논’으로 이어지는 짧고 선명한 동선이다. 한편 볍씨 출토 과정과 학술적 쟁점을 알기 쉽게 보여주는 해설판, 다랭이논 입구의 길 안내, 주민 생활공간을 배려하는 탐방 지침은 더 갖추면 좋겠다. 유적의 역사와 실제 농사의 수고를 함께 설명할 때 여행의 깊이가 커질 것이다.
이번 팸투어에서 소로리는 오래된 볍씨 하나만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방문객을 맞는 입국장, 구불구불한 논두렁, 그리고 들깨 향이 가득하던 밭이 연결되었다. 작은 마을의 축제가 시간의 깊이와 사람의 얼굴을 모두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