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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먹지 말라 (레위기 17장 1-16절)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식용으로 육식을 허용하신 시점이 언제 부터였을까요? 창 9장 3-4절에서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표준새번역)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을거리로 준 것 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그러나 고기를 먹을 때에, 피가 있는 채로 먹지는 말아라. 피에는 생명이 있다” 이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피가 있는 채로 먹지 말라”는 단서 조항을 붙여서 육식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셨습니다. 그럼 노아 이전에는 사람들이 육식을 하지 않았을까요? 에덴동산을 쫓겨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에, 아마도 육식도 마음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먹은 고기는 하나님이 허용 허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판단에 의해서 제 멋대로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홍수로 인해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던 노아 가족과 앞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갈 노아 시대 이후의 사람들이 겪어야 할 여러 가지 환경들을 고려하여 육식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육식을 허용하신 직후에 창세기 9장 5절에서,(표준새번역) “생명이 있는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보복하겠다. 그것이 짐승이면, 어떤 짐승이든지, 그것에게도 보복하겠다.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 그에게도 보복하겠다”말씀하십니다. 육식을 허용하셨지만, 무분별하게 동물을 학살하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동물을 죽이거나, 비위생적으로 동물을 죽이고 먹는 행위는 금하셨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행위는 하나님이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성경이 정하고 있는 육식의 기준입니다.
“피가 있는 채로 먹지 말라”는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면 핏기 있는 음식은 먹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성경에 “피가 있는 채로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면 크리스천은 순댓국을 먹어도 되나요? 선지국은요? 회는요? 보신탕은요? 다른 핏기 있는 음식은요? 누가 이런 질문하면 어떻게 하라고 대답하시니까? 본인 스스로는 먹어야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먹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모세 율법의 제사나 음식이 우리에게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먹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논리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모세의 율법이 완전히 폐기 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지킬 것은 지켜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론자들의 결정적인 주장은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결한 네 가지 중에도 “피를 멀리하라”는 규정이 있었음을 지적합니다. 교회의 권위로 정해진 기준에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이 있으니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먹어도 되나? 먹지 말아야 되나? 참 난해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요약해서 정리해 봅니다.
(이 의견은 이 문제에 대해 NAVER 지식Q&A에서 khi4040님이 2006년 8월 24일 답변한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이전에는 피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이 엄격하게 피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고, 이 율법을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하자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음식 가운데 피를 제거하지 않은 음식이 있었고, 복음을 들은 후에도 여전히 그들의 음식 습관은 바뀌지 않았고 그대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의 이런 음식 습관을 눈 여겨 본 초대 교회의 다른 신자들(특히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그때의 격론이 사도행전 15장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은 4가지의 율법 조항을 철저하게 지키자는 것입니다. 즉,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네 가지 조항입니다 . 오늘날 우리가 피가 있는 선지국이나 보신탕, 회 등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는냐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최초의 기독교 총회인 예루살렘 총회에서 분명하게 피를 멀리하라(먹지 말라)고 결정했지만, 또 다른 성경 구절-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10장 이후의 베드로와 고넬료 사건- 에서 음식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말씀(마가복음 7장 18절,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절,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이나 모든 음식이 하나님 주신 것이라(고전 10장, 로마서 14장)는 좀 상충되는 구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사도 바울의 지혜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은 가장 유대적인 사람이면서 가장 이방인을 잘 이해한 사도였습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했지만, 율법에 속박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 곳곳에 이방의 풍습과 유대의 풍습이 달라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음식 문제도 바울은 잘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기본적인 전제는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아무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대 원칙입니다. 회든, 피가 섞여있는 선지국이든, 보신탕이든 음식이 우리들의 신앙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원칙은 어떤 음식은 먹어도 우리들의 신앙에 유익이 되지 않는 음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유익한 음식 가운데 굳이 성경에서 부정하다고 하거나 먹지 말라고 정해놓은, 유익하지 못한 음식을 찾아 먹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의 문제는 내가 그 음식을 먹을 때 내 주변의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신앙적 충격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만약 자신이 고기를 먹는 것이 신앙이 연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익하지 못한 음식을 찾아가며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내가 먹는 음식 때문에 또 다른 그리스도인이 실족한다면 차라리 먹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선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대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피를 먹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먹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먹는 문제가 제 신앙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피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 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회나 선진국이나 보신탕을 대접할 때는 거리낌 없이 감사함으로 먹습니다. 준비한 분을 위해서 입니다. 음식에 대해서는 자유 하되 무엇이든지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으로 접근하면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추가로 육식 문제가 나와서 말씀인데요. 고기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 단백질 섭취가 적은 한국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 많이 먹어도 되는데 야채하고 같이 먹으면 좋다...육식을 하는데 있어서도 참 각양각색의 의견이 많습니다. 뭐가 정답입니까? 각자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주장하기 때문에, 통계고 의학적인 연구도 다 필요 없습니다. 제 생각은 생각나는 만큼(땡기는 만큼) 드시면 됩니다. 야채나 다른 식품과 함께 드시는 것도 기호대로 하시면 됩니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채식체질이기 때문에 고기를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은 양을 드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질병의 원인은 육식 때문이 아닙니다. 식습관의 문제인데, 빨리 먹고, 과식하고, 운동 안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짜고 매운 음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금이 잔뜩 들어간 국물 문화가 한 몫 합니다.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것도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원인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잘 믿고 예배생활, 기도생활 열심히 하면 모든 게 다 평안합니다. 밥도, 고기도 잘 드시게 되고, 잠도 잘 오고, 운동할 의욕도 생깁니다. 무병장수의 비결은 예수님 잘 믿는 것입니다. 여기 예배드리시는 분들이 마음과 육신의 최고 건강자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동물을 잡아서 고기를 먹는 규례에 대해 말씀 하시면서, 2절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고 합니다. 이 규례를 제대로 듣고 지켜야 하는 그룹은 제사장들이고, 다음은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 모두가 해당이 됩니다. 덧 붙여서 이 말씀은 “여호와의 명령”임을 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3절과 4절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육식을 허용 했다고 해서 아무 곳에서나 마음대로 동물을 잡아먹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을 죽이는 장소는 오직 한 곳에서만 허용되었습니다. 정해진 장소는 회막 뜰 안의 번제단 옆을 말합니다. 희생제물을 드리려고 동물을 잡는 그 장소에서만 동물을 죽여야 합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든, 식용을 위해서든 오직 회만 안 뜰 안, 지정된 장소에서만 동물을 잡아야 하며, 다른 곳에서는 일체 허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위한 제물이 아닌 식용만 위해서 동물을 잡는데도 일일이 정해진 장소에서 잡게 하면 굉장히 번거로울 수 있습니다. 장소는 한 곳 뿐이고, 잡아먹어야 하는 동물들은 많고, 항상 동물을 잡는 장소가 북적북적 했을 것이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오직 한 곳에서만 잡으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7절에,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라고 말씀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있던 이집트에서는 ‘숫 염소’를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만약에 정해진 장소에서 동물을 잡지 않고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잡으라고 허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보고 배웠던 대로, 동물의 피를 숫염소 우상에게 뿌리며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지금도 러시아 툰드라 지역에 거주하는 ‘네네츠인’ 들은 순록의 피를 마시고 생식을 합니다. 그리고 동물의 피를 동서남북 사방으로 뿌리며 대지의 신들에게 피 뿌리는 제사의식을 한다고 합니다. 과거 북 왕국 여로보암 왕도 숫염소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제사를 지내는 우를 범했습니다. (대하 11:15) 이스라엘 백성들 중 다수가 숫염소를 포함한 여러 가지 우상을 만들어 피를 뿌리고 제사를 드리는 행동 하는 것을 묵인 한다면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가증한 일로 생각하는 우상숭배의 빌미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정해진 장소에서만 동물을 잡게 한 것입니다.
둘째는 피를 먹지 말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제물은 다 불에 다 태워야 하지만, 화목제물은 제사를 드린 제사장이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화목제물의 고기를 거제(제물을 들어 올려 드리는 제사법),와 요제(제물을 앞뒤로 흔들어 드리는 제사법)로 드렸습니다. 제사 후에는 제물의 뒷다리와 가슴부위는 제사장이 취하고, 나머지 고기는 성막 뜰에서 제물을 드린 사람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물을 드리고 고기를 먹을지라도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할 것이 기름과 피 입니다. 특히 피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됩니다. 동물을 정해진 곳에서 잡지 않으면 생식하고 피를 먹는 야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만 잡게 한 것입니다.
화목제를 드리는 규정 중에 레위기 3장 17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예전에 T.V 프로그램 중에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에서 개그맨 김병만 씨와 촬영 일행이 앞서 말씀드린 ‘네네츠인’ 마을에 가서 순록의 피를 마시고, 생고기를 시식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곳에서는 피를 마시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바로 잡은 동물피를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허황된 속설을 믿고,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고 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라는 말 자체가 가슴을 뛰게 만들고(죽음, 살인, 어두음...) 두려움을 주는 용어인데 동물의 피를 마신다고 하니 몸서리가 처집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두 가지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피는 곧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피를 먹는다는 것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됩니다. 레위기 7장 26-27절에서 하나님은 피를 먹는 자들에게 경고 하십니다.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피를 먹는 사람은 자기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후손들도 하나님께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9장 5절에,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말씀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경시하여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를 마시는 추악한 행위를 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 생명을 찾는다는 것은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또 하나는, 정말 중요한 이유로서 피는 속죄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희생제물의 피가 없이는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제단에서 속죄를 하는 용도로 허락된 것이 피 인데 이를 먹는다면 죄는 결코 사함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고하였고, 요한복음 6장 5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피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로 연결 되고,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였고, 22절에는,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피에는 생명과 그리고 죽음을 생명으로 전환하는 하나님의 구속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한 생명이 죽어야 한 생명이 살 수 있습니다. 사람 대신 짐승이 죽는 불완전한 대속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한 구원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온 인류가 구속된 것입니다. 피는 이런 신성한 것이기에 식용이 엄격하게 금지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식을 위한 동물을 한 곳에서만 잡고,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정리해 봅니다. (이 의견은 이 문제에 대해 NAVER 지식Q&A에서 khi4040님이 2006년 8월 24일 답변한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1. 피를 마시는 행위는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즐겨 행한 그들의 극악한 제사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2. 피는 곧 육체의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되었으므로 피를 마시는 행위는 사실상 생명을 삼키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3. 피로서 상징된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영역에 속하였으므로 피를 마시는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신성모독과 같기 때문입니다. 4. 무엇보다도 피는 속죄의 유일한 수단으로서(히브리서 9장 22절 -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을 오늘 말씀 11절이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를 먹는 행위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야만적인 행동일 뿐 아니라, 의미상으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중한 죄악입니다. 구약에서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 합니다. 피, 생명, 속죄의 관계를 잘 이해하시고,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의 삶에서 순종으로 지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이 “피를 먹지 말라”고 정하신 이유가 일종의 기준을 제시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피‘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모든 부정한 행위와 범죄를 가리킵니다. ”~하지 말라“ 이러한 이런 기준을 정해놓지 않으면 마음대로 행하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 세상은 통제가 불가능 할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최소한의 기준마저 없었다면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많은 율법들을 보면 인간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죄에 빠져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마라” “먹으라, 먹지 말라” “들으라, 듣지 말라” “가라, 가지 말라”...여러 가지 명령에서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구분해서 놓으셨습니다. 기준을 정해 놓으셨으면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기준을 정해 주셨는데도 제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자기 입맛대로 변형시켜 버립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단 한 가지의 지켜야할 기준을 말씀 합니다.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분명한 기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 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따르지도 않았을 뿐더러 마음대로 바꾸어서 말합니다. (창세기 3장 3절)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죄를 지은 인간들은 이렇게 변명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 버립니다. 이런 모습이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은 기준 선을 마음 대로 넘어가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소위 세상과 짝하고, 죄와 짝하여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내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권리를 박탈해도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준을 만들어 놓으신 이유는 기준선을 넘어가는 즉시 벌을 주시겠다는 마음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기준선을 잘 지키고 살아가기를 바라시지만, 만약에 이리저리 빠져나가서 기준선을 넘어가는 상황이 오면 다시 붙잡아 두려고 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돌아오도록 만드십니다. 오늘 말씀 15-16절에,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가 죄를 담당하리라” 옷을 빨고 몸을 씻는 것은 부정한 행위를 하였으면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기준을 지키지 않았으니 벌 주셔도 마땅한데 자비를 베푸셔서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이 기회마저도 무시하고 계속 기준선을 넘나드는 것을 우습게 여긴다면 자기가 지은 죄를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결국은 멸망이고 사망입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슴에 직접 새겨주시는 경고표지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 합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생명 존중의 말씀인 동시에,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또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기준선을 넘지 말고 죄와 악을 멀리하라는 말씀인 동시에, 죄를 범하여 부정한 일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은 동물의 피가 아닙니다. 세상의 피도 더더욱 아닙니다. 사탄이 주는 죄의 피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리고 기억할 때마다, “정결하라, 거룩하라, 회개하라, 돌아오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고 지킴으로 거룩함과 정결함으로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생명과 속죄와 사랑의 기준선 안에서 영원히 머무르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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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사오니, 그대로 순종함으로 지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세상이 주는 더럽고 부정한 피를 멀리하고, 영원한 생명이요 속죄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바라보며 거룩함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만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도록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죄를 위하여 보혈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