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 그 역사적 배경 이야기(4)
이명철
시경(詩經) 위풍(衛風)과 그 배경이 되는 열국지를 읽으며, 위(衛)나라왕실의 문란했던 성행위가 시경에서 어떤 시로 회자(膾炙)되었고 어떤 결말을 가져왔는가를 알아보았다.
위(衛)나라 공자(公子) 훼(燬)는 형인 태자 급자를 죽이고 군위에 오른 위혜공의 서형이다. 즉, 공자 석(碩)이 자기 형수뻘인 동시에 서모(庶母)인 선강(宣姜)과 관계해서 낳은 아들이다. 공자 훼는 부패한 위나라가 반드시 망할 줄 알고 제나라로 가버렸었다. 제환공은 귀화해온 공자 훼를 어여삐 보고 자기 큰딸과 결혼시켜 제나라에 머물러 있게 했던 것이다.
원통히 죽은 태자 급자와 공자 수(壽)는 다 아들이 없었다. 공자 석(碩)은 세상을 떠났고 금모(黔牟)도 자손을 못뒀다. 다만 지금 군위에 있는 위의공의 서형뻘이요, 위선공(衛宣公)의 손자뻘인 공자 훼(燬)만이 현명하고 덕이 있었다.
한편 오랑케 북적(北狄)은 강성한 족속이었다. 북적은 2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가 일거에 형(邢) 나라를 짓밟아버렸다. 그들은 제군이 형나라를 구원하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군사를 옮겨 위나라로 쳐들어갔다.
이때 위나라 위의공은 학을 좋아했는데, 학을 수레에 싣고 또 궁 밖으로 놀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참에 세작(細作)의 급보를 받았다. 즉시 군사를 모았으나 백성들은 궁벽한 산촌으로 다 달아나고 싸움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임금에게 “상감께선 학을 시켜 오랑캐를 막으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학을 다 날려 보냈다. 그러나 학은 하늘 높이 빙빙 돌다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할 수 없이 위의공은 전쟁터로 나아갔다. 군사들은 행군을 하면서도 원성이 분분했다. 야영하는 軍中에서 병사들의 노래 소리가 점점 똑똑히 들려온다.
//학은 국록을 먹고/백성은 힘써 농사짓네/학은 대부가 타는 초헌을 타고/백성은 무기를 들었네/오랑캐의 창끝이 흉악함이여/그들과 겨루지 못할지라/싸워야 할 것인지/과연 몇 사람이나 살아남을까/학은 지금 어디 있는고/그런데 우리는 행군하네//
별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위군 전후대는 다 적에게 패했다. 위의공과 거공도 살해당했다. 위나라 군사는 오랑캐에게 전멸 당했다. 염옹이 시로써 이 일을 읊은 것이 있다.
//옛 말씀에 날짐승을 경계하라 하였으니/누가 학 때문에 나라가 망할 줄이야 알았으리요/그 당시 형택엔 귀신불이 가득했으니/능히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올라갔단 말인가.
위의공은 남부여대(男負女戴)한 백성들과 도망친다. 피난가는 백성들의 곡성(哭聲)이 천지에 진동했다. 싸우며 내빼는 동안에 따라오던 백성들은 그 반수 이상이 오랑캐 칼에 맞아죽었다. 위의공도 무수히 칼을 맞고 죽었다.
임금을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1천명도 못 되는 백성만으론 우선 국가로서의 체모가 서질 않았다. 그래서 공읍(共邑)과 등읍(縢邑) 두 곳에서 열 명에 새 명씩을 뽑아 백성 4천여 명을 모았다. 끝까지 살아서 따라온 7백여 명과 합쳐 근 5천명의 인구를 마련했다. 그들은 초읍에다 우선 여사(廬舍)를 세웠다. 그리고 공자 신을 군후로 부축해 모셨다. 그가 바로 위대공(衛戴公)인 것이다. 그러나 위대공은 전부터 병이 있었다. 군위에 오늘지 불과 며칠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영속은 제나라로 갔다. 공자 훼(燬)를 군위에 모시려고 데리려 간 것이다. 그러나 한번 기울어진 위나라는 몇 대나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장강, 이강, [선강, 문강](제희공의 딸,(노나라), 환강(송나라), 문강(제환공의 딸,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