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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어디에서 사느냐'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사는 곳은 나의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하고, 나의 정체성이 되기도 하며, 내가 일상의 많은 것을 고민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현재 나는 마포구에 살고 있다. 마포구 망원동에 둥지를 튼지도 벌써 6년째. 독립한 친구들의 주거지 변동과 비교해 볼때면 한곳에서 상당히 오래 산 편인것도 같다. 망원동에서 계속 살겠다고 처음부터 결심했던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명 뿐이었던 동네 친구들이 점점 늘어났고, 두번을 이사하는 동안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이사를 하고 싶지 않아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렇겠지만, 1인가구의 삶에 주거지역은 정말 큰 의미를 갖는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곳, 주변에 나와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는 곳, 내가 아플때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곳, 그리고 내가 급히 집을 비워야 할 때 나의 반려동물을 대신 돌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 나에게 동네란 이런 의미이다.
혼자 적막하게 걸었던 동네는, 밤 늦은 시간에도 쉽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넘치는 공간이 되었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또 함께 무엇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공간이 되었다. 무심히 지나쳤던 집 주변의 가게 아저씨와 인사를 주고 받기 시작했고, 집앞 또 다른 가게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집에서 반찬이 오면 친구들에게 먼저 전화를 한다. 내가 배가 고플때도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프고, 외로워도 전화를 한다. 이들은 이미 망원동이라는 커다란 공동체 안에서 나에게 또다른 가족이 되고 있다. 그냥 일상처럼 함께 있는 사람들과, 일상같은 공간. 더이상 특별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정말 특별한 공간. 이것이 내가 6년동안 살아왔고 살고 있는 망원동이다.
그런데, 이렇게 절절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내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은평으로 이사할까?
관심도 없던 은평 지역에, 살림의료생협 상근자라는 이름으로 드나들기 시작한지 석달째이다. 어제는 드디어 북한산 근처에도 다녀왔다. 살짝 눈만 들었을 뿐인데 가득 품으로 들어오던 커다란 산을 보며, 새삼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일을 하러 다니다 보니, 응암역에서 역촌, 구산, 연신내, 어디든지 걸어갈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 저쪽에 있는 식당의 아줌마가 얼마나 친절한지, 어떤 고기집이 맛있는지도 점점점 알아가고 있다.
아침에 응암역에서 사무실로 걸어오는 큰 길에는 아이들 학원도 있고, 역촌 주민센터도 있는데, 오며가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홍대의 번잡한 거리와 시끌거리는 20대를 바라보던 재미와는 또 다른, 동네에 오가고 있는 더 많은 연령대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망원동은 아무래도 홍대와 인접한 곳이라서 주택가이지만 2-30대의 비율이 꽤 높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곳은 망원동보다 더 주거지역이라는 느낌이랄까? 열심히 꾸미고 있는 마당이 있는 집들을 보노라면, 이동네에 오래 살면서 애정을 가지고 마을을 꾸미는 사람들이 꽤 있겠다는 어림짐작도 쉬이 가능해진다.
물론 몸담고 있는 생협에 대한 욕심도 커져간다. 내가 이 동네에 산다면, 동네 아줌마들과 어떻게 웃을 것이고, 어떻게 만날 것이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라는 상상을 해본다. 밤 늦은 시간, 망원동이 아닌 신사동의 어느 치킨집에 앉아 동네 언니들과 조근조근 삶의 한숨과 웃음을 나누는 나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은평"이 필요한 의료생협을 고민하는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또 그러자고 생각하면, 꼭 은평에 살아야 하나? 살아야만 생협이 더 즐거워질까? 은평에 살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부분이 늘 지역을 고민하는 나와, 지역이 없이도 의료생협으로 묶인 우리를 생각하는 내가 늘 부딪히는 부분이다. 다양함으로 구성된 살림의료생협의 다양한 구성원인 마포사는 캔디가 은평사는 캔디가 되는 순간, 뭔가 내가 지지하는 지향이 1% 사라지는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망원동에 살면서 지역 정체성이 생기고 지역정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버린 나에게 은평으로의 이사는 달콤한 유혹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유혹들에도 내가 은평으로의 이사를 선뜻 결심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내가 사는 집과 신혼의 기분으로 망원동에 살았다면, 은평으로의 이사는 더 많이 안정된 삶을 눌러 담는 곳으로 산다는 느낌이다. 똑같은 살림을 살아도 약간은 들떠있는 신혼과, 이제는 붙박이로 안정하고 안정되는 신혼 이후.... 그래서 은평으로의 이주가 섣불리 결심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은평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결심하고 결정하고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겠다는 마음의 굳은 다짐이어야만 할 것 같다.
굳은 다짐.....
그래서, 오늘도 뭔가 점점 애정을 가지게 되는 은평을 휘휘 돌아보며 생각만 해본다.
"은평으로 이사나 할까?“
덧+++ 뭐,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만큼 이런 생각을 하진 않을게다. 사는 곳이 사는 곳이지 뭐! 라는 느낌을 가진 사람들도 많으니까. 하지만...음.... 주소지라는 느낌보다 “동네”에 산다는 느낌이 더 큰 사람이라면 내 생각이 약간은 공감해 주지 않을까?? :)
첫댓글 ㅎㅎㅎ드디어 캔디가 은평주민들이 뿌려놓은 '마약 은평사랑약'을 한알씩 먹기 시작했군 우하하하^^이미 중독의 길로 들어섰음........
^^
마약.... ㅎㅎㅎㅎㅎㅎㅎ 정말 마약~~
ㅎㅎ 잘 읽었습니다. 관악구를 떠나지 못하는 저로서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캔디님이 부러워요! 저는 일단 뚜벅뚜벅 부지런히 다녀보려고요. 언젠가는 가야할 곳으로 품어두고요.
당신의 고민이 아름답습니다.
은평사랑마약...ㅋㅋ
그냥 이사하세요. ㅎㅎ
ㅎㅎㅎ
저도 은평에 살고 싶어요..ㅜㅜ 언니랑 얘기중인데 언니 직장이 강북구 쪽이라 이사결심하기 쉽지 않네요.ㅜㅜ
마약 때문에 집값오르면 안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