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내외와 조카, 모친, 누나가 내가 사는 동네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수십 년만의 가족나들이라 며칠 연구하고 궁리를 했는데 과연 기대만큼 즐겁고 유익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우선은 벽두부터 일기가 급랭했기에 우리의 거동 반경이 매우 제한적이게 되었음을 상정한다. 며칠 계획을 세우며 주왕산, 영덕까지 반경을 넓혀 구상을 했지만 결국 접었다. 팔순에 가까운 노모 때문에라도 제약은 더하다. 대게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엄마라 회사 왕언니에게 이미 '왔따'싶게 잘한다는 곳을 알아둔 상태.
그곳으로 출발. 새해 첫날이라 역시 정자의 대게횟집이 즐비한 초입에 들어서자 온 도로의 차들이 기어가기와 서기를 반복하더니 얼마 못 가 일제히 멎었다. 한참 차 안에서 멍때리는데 마블에 나오는 수퍼히어로처럼 누군가 등장해 얌체주차를 한 놈의 차로 가 야물딱지게 혼구녕을 냈다. 순전히 그놈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스톱된 때문이다. 대다수의 순둥이들은 도로가 주차장이 되자 그냥 의례히 막히겠거니 했던 건데 사실 그 얌체 때문이었다. 얌체가 도로에다 역방향으로 주차를 하자 뒤따르던 차도 얌체 뒤로 '그러면 되나보다' 하고 차를 세워버렸던 거였다. 누군가 미약하게 동기를 제공하자 여기저기서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곳을 빼고 저곳을 넣어라는 등 어수선한 활기를 띤다. 얌체가 반대편 차에게 양해를 구해 틈을 만들어 자기 방향대로 차를 밀어넣었고 얌체2까지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전체가 잠시 몇 미터 꿈틀 하더니 다시 소강상태다. 도로 여건부터 고질적이라 정체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자, 패스~~
오기로 한 조카가 맘이 변해 안 온다기에 약 올리려 여러 컷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아마 형이나 모친이나 사진을 올리면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싶어 올리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대게를 정복하게 됐다. 13만원하는 박달게 4마리를 주문하니 7,8만원짜리 셋을 서비스해준다. 이건 우리가 예뻐서 줬다기보다 그냥 번들에 가깝다. 형은 현금으로 계산하니 그런 서비스를 해주는 거라 했으나 내가 바로잡아주었다. 누구나 50정도를 쓰면 이쯤은 끼워준다.
가게는 손님들로 즐비한데도 가게가 컷으므로 빈 자리가 눈에 띈다. 좌 테이블, 우테이블이 우릴 쳐다본다. 좌측 용 우 백호? 그들이 우리에 비해 저렴하게 먹고 있어서 그럴까 우리가 선망이 된 기분이다. 모친이 대게를 저렇게 대놓고 푸짐히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비싸다는 불만이 있지만 대게 살이 실하긴 하다. 우리가 결국 이 맛에 그렇게 선망했던 거니? 이건 흡사 게맛살과 다를바가 없지 않나. 기천원 하는 맛살을 사 먹으면 되겠네 싶다. 어쨌든 모두들 허겁지겁 먹는다.
이구동성으로 별로라는 반응이다. 다신 이걸 먹지말자는 거에 구성원 전체가 몰표를 행사하는 분위기다. 저 돈이면 다른 거 뒤집어 쓸 정도로 푸짐히 맛있게 먹을 거 같다고 한다.
거리가 멀어 이렇게 찍기는 힘들고 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퍼왔어요.
얼마나 바람이 불어제끼냐면 이층에 있던 대형 간판이 떨어져 우리가 있는 일층 창 가까이 널브러져 갸웃갸웃 비척거린다. 가족이 대게에 바친 시간은 두 시간 남짓되었다. 이동을 위해 밖으로 나왔는바 여전히 사위는 차들로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가족을 태워 경주 주상절리로 간다. 여기가 맞네 저기가 맞네로 형과 잠시 실랑이 한 판 해주시옵긔. 물론 네비를 갖고도 이런다.
사진으로 보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안내도를 보니 주상절리가 반경 수 킬로미터에 걸쳐 파상되어 있다. 그중 가장 각광받는 부챗살주상절리로 가보기로 한다. 누나와 나 그리고 조카만 겨우 엄동설한에도 발품을 팔아 거기로 간다. 여기도 사람들로 넘쳐난다. 정말 차가운 날씨다. 기온도 낮고 바람도 매몰차다.
요즘은 진정 인터넷이 인간의 생활과 문화를 재편해버린 것 같다. it기기에 모든 걸 의존하는 우리를 본다. 엄마가 찜질방에 가자고 하니 스마트폰을 뒤적여 그렇게 진로를 정한다.등억온천으로 가자고 하는데도 엄마는 온천은 싫단다. 검색을 하여 작천정숯가마찜질방으로 네비를 찍는다. 웃기게도 검색한 찜질방이 등억온천 내에 있다. 등억온천에 가서 온천을 하지 않고 찜질방을 간다라..... 할 수 없다. 너무 익숙한 길인데도 네비가 다운네거리를 지나 삼호교에서 우회전을 하지 않고 신복로터리로 가란다. 혹시나 해서 시키는 대로 한다. 역시나 도로비만 날린다.
도착하니 5시 반, 어둡다. 한 마디로 말해 찜질방은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시설이 너무나 열악하고 조야하다. (손 쓸 새도 없이 형이 또 계산한다.) 뿐 아니라 직원들은 불친절하다. 그런데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이곳을 찾아온 거지? 정초부터 '같지도' 않은 찜질방에 자진납세하는 살신성인들이 왜 이리 넘쳐나는 거지? 들이닥치는 손님들로 주차장이 미어터지는 건 그렇다 치고 신발장도 부족해,-불만 있으면 알아서들 하세요, 하는 분위기다-거기다 탈의실에서 찜질실이 두 동으로, 그것도 멀리 나뉘어 있는데 이거 참 난처한 일일세.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일세. 그리고 그 통로를 얍실한 가건물 자재들로 적당히 상설한 터라 찜질복 차림에 불과한 거의 벗다시피한 사람들이 오며가며 오돌오돌 떨어야 한다. 그런데 한번이 아니라 그길을 계속 반복해 왔다갔다 해야 한다. 돈 때문에, 혹은 옷 때문에, 용변을 보기 위해서, 수건을 얻으러라도 수시로 왕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계속 엄청난 추위를 감수하며 시베리아를 왔다리 갔다리 해야 한다. 찜질실도 열악 그 자체. 너무 부족하고 너무 좁아터졌다. 휴식을 취하러 온 건지 추위에 떨러 온 건지 아니면 사육당하러 온 건지 모를 지경이다. 아우슈비츠 같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거기에 혹한 건 3초 삼겹살 때문이기도 한데 이마저도 구라다. 내 돈 내고 대우받지 못하는 꼴이다. 곧 있으면 유독가스가 터져나올 것 같은 분위기.....
혹 찜질방에 갈 일 있으면 여기는 패스하세요.
맛있는 저녁을 위해 우리 가족은 찜질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영리의 한우림으로 달려간다. 10만원 하는 소고기모듬을 시켜 먹는다. 역시 선택은 옳았다. 고3 조카 녀석이 호로록 호로록 잘도 먹는다. 형은 고기와 함께 술을 즐겼기에 자연스레 횡설수설 형수와 다툰다. 시어머니 앞인데도 형수는 과거처럼 그리 자제를 하지 않는다. 다소 언성이 높아졌고 조카들도 난처해진다.
또 돈을 형이 낸다. 난 이번 나들이에 1600원을 썼다.
결국 내 집으로 왔다. 이만하면 하루 잘 놀았다. 찜질방만 제외하면 100점이다. 형이 가져온 싸구려와인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늦게 늦게 일어나 점심을 반구동에 있는 부영아구찜 집에서 해결했다. 음식을 꽤 잘 한다. 5만원 지출. 이번 나들이에 겨우 5만원 지출. 대신 모친께 용돈만 듬뿍 드렸다.
첫댓글 대게보담 아구찜이 더 맛있겠다요 ㅎ
네 아구찜 잘하는 곳 찾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