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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우리가 지금 마태복음 1장 21절과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님이라 부르십시오.
그분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으며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님이라 불렀다. 1장 25절 말씀 인데요 이런 족보 얘기들이 마태복음 1장 전체에 이 족보의 42대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이 되시고 결론이 되시고 처음과 시작점이 되시는 하나의 경계표로서 다윗처럼 두 개의 족보를 가지고 오셔서 그 가운데 포함한 모든 위대한 족장들 열조들이나 또 열왕들이나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다가 회복된 자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계보 안에 포함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된 자들임을 나타내서 보여주기 위하여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는
41대 때까지 예수님까지 포함한 42세대를 통하여서 바로 40이라는 고통의 숫자 그리고 고통의 숫자뿐만 시련과 유혹과 어둠과 이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것이 400년 이듯이 또 광야의 황폐한 땅에서 유리방황 하고 살았던 그 삶의 기간이 40년인 것처럼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40일 동안 시험을 당하신 것처럼 40이라는 숫자는 유혹과 시련과 시험과 고통과 눈물의 숫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이것으로 끝나셔서 예수님이 41세대로 만약에 오셨다면 그곳에 이 마지막은 될 수 있어도 새로운 생명의
시작점이 될 수 없고 새로운 생명의 일출의 삶을 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둘을 합함으로 말미암아 42세대 가운데 마지막이요
결론으로 그리고 일출의 삶을 가지고 오게 하실 둘째주 가운데 첫째 날인 여덟째 날을 통해서 8일이라는 이 숫자를 통해서
이 다윗의 후손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여덟 번째 막내 아들로 태어났죠.
그래서 부활 안에 사는 일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바로 42세대의 족보를 통해서 혈통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40이라는 고통과 시련의 숫자를 상징하고 있는 거기에 2라는 숫자를 더함으로 말미암아 마치 여호수아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안식의 땅, 생명이 있는 땅으로 들어가게 하여서 이 선민 이스라엘을 품에 안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안식의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42대에 마지막 결론이 되시고 일출의 삶을 가지고 오게 하시는 시작이 되시기
위하여 바로 이 그리스도의 계보 안에 모든 자들 첫 아담에 속한 자들을 둘째 아담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자신의 생명과 성령님의 법 안에 있게 하기 위한 일을 도모하시기 위하여 마태복음 1장에서 다루고 있는 전체의 예수님까지도 포함한 그
이름들인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아브라함의 후손은 누가 누구를 낳고 다윗의 후손은 누가 누구를 낳고 계속 이 말씀을 함으로 말미암아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 마지막 그 두 가지의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두 개의 특별한 족보를 가지고 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는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솔로몬의 후손이 되고 스룹바벨의 후손이 되어진 요셉이란 자를 통해서 남편의 노선을 따라온 요셉과 그리고 이 다윗의 또 하나의 아들로 이렇게 후손을 이룬 나단이라는 자를 통하여 여자의 노선인 마리아를 세상에 나오게 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예수님이라 이름 불려지는 그리스도라 불리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남편의 노선을 따른 것이 아니라 여자의 노선인 마리아의 노선을 따라 그리스도라 부르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솔로몬 후손을 통하여 나타나신 여고냐의 자식들 바로 그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가운데 나온
그 후손들 그런 혈통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요셉에 의하여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게 한 것이 아니라, 순결한 처녀인 마리아인 여자의 통로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라 불리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으로 말미암아 이 이름들에 대한 모든 자들을 포용하시고 끌어안으시고 42대에 결론을 내리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나쁜 부정적이고도 소극적인 모든 것은 다 제거해 주시고, 부활을 통하여 긍정적이고도 하늘에
속한 모든 것들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갖게 하기 위해서 두 번째 주의 첫날인 여덟 번째 날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일몰의 삶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인 일출의 삶의 시작을 갖게 하기 위해서 42대의 마지막이 되어 주시고 새로운 생명의 시작의 혈통을 가진 주님으로서 오셨는데 그 주님으로 오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라 하는 신성한 칭호의 이름을 가진 자를 통해서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그 예수님이라는 신성한 이름 안에서 산 자들 그 삶을 통해서 체험한 자들에게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 임마누엘이라 하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여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의 신성한 이름의 인격 그 자체이시고, 참이시고, 그 이름의 실제이신 삼일 하나님의 영,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부어짐을 통해서 임마누엘 하시게 하셔서 이 사람이 하나님 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일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하나가 되기 위한 일을 도모하시기 위해서 곧 임마누엘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두 가지의 계보와 족보를 따라서 세상에 오신 42세대의 결론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두 가지 이름을 가진 그것이 하나는 예수님이라 칭하는 하나님께서 친히 부여해 주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부여해 주신 이름이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그 이름 안에 사는 사람들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게 하시려는 상속받을 수 없는 타락한 죄인들을 상속받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거룩하신 그 신성한 예수님이라는 이름 안에서 이름을 부르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삼일 하나님의 영이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영을 통해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기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거룩히 구별되어 주 예수님 이름으로 의롭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살기에 적합하고도 모자람이 없는 완전하고도 온전한 주님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임마누엘 새로운 이름인 그 예수님의 또 하나의 이름이신 사람들에게 불려지는 사람에 의하여 불려진 그 이름 임마누엘 이라는 이름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임마누엘을 소유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갈망이요,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이요 전부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스라엘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오시고 이끌어내시고 그리고 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을 통하여 우리의 존재 안에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삼일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부어짐을 통하여 최종 완성되고 완결되어진 생명 주시는 영이시요 발아시키는 영이시며 촉진시키시고 뒤에서 후원해 주시고 분발케 하시는 영이신 바로 그 영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을 통해서 체험하는 자들을 바로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이름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요? 신성한 세 가지 신성한 칭호에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나는 나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스스로 존재하는 분으로서 과거에도 계시고 현재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셔서 영원토록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 되시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 바로 영원하신 분 영원 과거로부터
영원 미래까지 항상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지 않았느냐
너희가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면 바로 너희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라고 위대한 이름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주가 되신 분 우리에게 구원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심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믿게 하기 위해서 또 침례를 받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 죽음과 부활이 우리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완전히 성전 미문에서 사도행전: 3:6 내가 금과 은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지어다 라고 치유케 하고자 그 이름을 주시고 또 바로 이 성령님 하나님의 이 영을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성한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우리에게 신성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또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이름을 주셨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 안으로 우리가 하나로 모임으로 말미암아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예수님이라는 이름 안에서 한 영 안에서
신성한 칭호인 예수님 이름 안에 모여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의 이름의 인격이신 그 영, 예수님의 참이시요
예수님 이름의 실제이신 그 삼일 하나님의 영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주도 한 분이요, 영도 한 분이시다 라는 얘기를 성경에서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4: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예수님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삶이 있을 때 귀신들을 쫓아낼수있고 그리고 이 예수님이라는 이름안에 이러한
놀라운 능력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이 사단과 그와 하나가 된 모든 악한 세력들과 귀신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그렇게 미워하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심령 안에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 빼앗겨버리도록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지 못하도록 소유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행하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려는 천국 백성들을 왕으로서 통치함
받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의 양식의 공급인 그 소산물들을 그분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지 못하도록
오늘도 끊임없이 여러분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에수님이 이름안에서 늘 항상 씻음 받고 그 예수님의 이름을 사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깨어 기도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모든 자들, 초대교회 예수님 까지도 포함한 먼저는 예수님을 그렇게 극도로 미워하고 배척하고 거절하고 반대하였던 그 유대 종교 지도자들, 공회원들이 초대교회때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는 자들을 그렇게 박해하고 핍박한 자의 대표자가 바로 사도 바울 선생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그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구원의 주가 되시는 신성한 하나님의 이름 바로 그 영이신 삼일하나님의 그 영을 오게 하시는 그 예수님 이름을 통하여 참이 되시고 실제가 되시는 그 영을 도래케 하시는 그 사실 때문에 그 이름을 위하여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그리고 그 사도바울 선생님이라든지 또는 대표적으로 성경에 나타나는 일곱 집사 그들을 통해서 또 초대교회인들의 여러 예수님 이름을 전파하는 자들을 몹시 고통당하게 하고 박해받게 하였는데 그것은 사실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단과 사단의 악한 세력들이 자신의 그 악한 능력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 자들을 공격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하여서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게 그 이름이 바로 이렇게 새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잃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지금도 밤이나 낮이나 쉼없이 일하고 있는 자가 사탄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3장 8절에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를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는 자들을
통하여 예수님께 속한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암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게 하겠다 절대 그 하나님의 집에서 바깥으로 내쳐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라고 바로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주실 것이라고 이렇게 보상에 대한 것을 친히 말씀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바로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주어진 신성한 이름인데 그러면 사람들에 의하여
불리어진 이름을 나타내고 있는 이 임마누엘 마태복음 1장 23절에 2개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시고, 그 예수님 이름 안에서 불려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라는 그 신성한 칭호를 불릴 때 예수님이라는 그 이름 안에 있는
예수님의 그 참 실제이고 참 인격인 그 영이 우리에게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영 안에서 하나가 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의 임마누엘 예수님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는 임마누엘 되시는 그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지 그냥 단순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람들에 의하여 불려진 이 이름이 임마누엘 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 의하여 체험된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장 23절을 통해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친히 체험하고, 영적인 어떤 그 영에 의하여 경험을 함으로 말미암아 체험되어진 자들이 통과하여서 마치 선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에 의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종인 모세에 의하여서 인도함을 받았지만, 그 모세의 인도함을 받은 자들이 다시 대치가 되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생명의 양식의 풍성한 공급이 있는 소산물들이 있는, 먹고 마심이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러한 누림이 있고 안식이 있는 그곳에 여호수아와 함께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이 발생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종이신 모세의 인도함이 먼저 있어야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신성한 칭호인 예수님이라는 그 이름 안에 있어서 바로 그 여호수아와 함께 가는 것처럼 그 통로를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듯이 그러한 영적인 체험을 가져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똑같은 이름의 뜻을 가진 여호수아에 의하여 가나안 땅인 생명과 안식이 있는, 누림이 있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 자들은 임마누엘 우리에 의하여 체험되고 경험되어진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누려야 그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갈망하시는 꿈이 이루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래서 바로 이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그 영에 의하여 영적인 체험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그분의 이름이 예수님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을 통해서 나타나신 그 참이 되시고 실제가 되시고 그 예수님의 이름의 인격 그 자체가 되시는 그 영이 참이고 예수님의 이름이 실제인 것입니다.
그 영이 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와 함께 하신 바로
그 영이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영을 소유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삶이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이시다라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는 것이 마태복음 1장 23절에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다 라고 그 이름에 대한 두 개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이라는 이름과 임마누엘 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41세대의 이름을 통해서 모든 예수님이라는 이름과 또 하나의 족보를 통해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이러한 일들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이러한 일들을 최종 완성된 산출되어진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과 마치 하나님이 조금은 별개의 분으로 그래서 기도를 할 때 예수님 이렇게 하나님
에게 이렇게 기도하면서도 그분이 하나님이신가 하면서 의혹과 의문을 가진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잘 안 하게 되고 또 하나님에 대한 것을 간구하면서도 예수님과 이렇게 또 하나의 중간의 어떤 연결고리 중재자로서
예수님을 이렇게 나타내는 장면을 우리가 은연 중에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리고 과거에 제가 많은 교회는 다녀보지
않았습니다만 한 10여 군데의 교회를 다니면서 그때 느꼈던 것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직접적으로 이렇게 얘기하시는
목회자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마치 별개의 분으로 분리된 분이라고 이렇게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수님과
하나님이 각각의 다른 분이라고 은연 중에 가르침 받은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이십니다 라고 얘기를 하면 얘기하는 그 당사자가 뭔가 좀 멈칫하게 되고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런 것 그래서 그때 당시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천주교회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 기도를 드려야 잘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그렇게 해야 됩니다라고 이상한 어떤 인간적인이고 천연적인 관념에 따르는 가르침들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이 많이
혼잡해진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기도를 하고 또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또 이렇게 깊이 진리 안에 들어가게 되면 이 예수님이 바로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천연적인 어떤 생각들과 인간의 관념에 따라 자꾸 그것을 따르기를 원해서 기도할 때도 이 영의 체험을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굉장히 껄끄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은연중에 그 사람의 신앙의 상태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그렇게 믿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 하나로 연합되지 않고 따로따로 이렇게
좀 분리되어진 예수님과 하나님을 은연중에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은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통해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하나님이 곧 이 말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마치 사도 요한 선생님에게만 국한되어진
예수님의 수제자요 사랑받았던 그분에게 한해서만 해당되어진 같은 생각을 우리가 떨쳐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통해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느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육신으로 오신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것을 이상하게 요한복음에 그렇게 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예수님과 하나님을 말씀이 육신 되신
그분은 그냥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라고 이렇게 분리되어져 있는데 삼일 하나님은 한 분이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인격 안에서 생각하는 거, 한마음 한뜻이 된 거, 계획하시는 거, 목표하시는 거, 갈망하시는 거, 행하시는 거 이렇게 모든 걸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이라든지 이상이든지 이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서 세 분이 한 분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삼일 하나님의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보혜사 성령님이시고 아브라함에게 그 씨를 통하여
주시겠다는 그 복이 바로 이 영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신 만유를 포함한 구주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만족시켜 채워주시고
충족시켜 주시는 여호와 샤다이 바로 이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빛이 필요하고, 의가 필요하고, 거룩이 필요하고, 생명이 필요하고, 모든 치유가 필요할 때 또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싶을때 그분의 의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그 영을 통하여 구하면 반드시 허락해
주신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고 그리고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심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저 바다 멀리 계신 하나님도 아니고, 삼층천의 셋째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도 아니고
지금 그 삼일 하나님의 영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계셨을 때 육체 안에 계셨던 바로 이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이신
삼일 하나님께서 죽음을 통해서 해방하셨고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재하게 되셔서 분배 산출케되신 그 삼일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실 수 있도록 최종 완성된 생명 주시는 영 혼적인 몸에서 영적인 몸을 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오신 구주의 영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영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아니고 멀리 동떨어지신
하나님도 아닌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그 임마누엘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진리 안에 들어가면 다 들어갈수록 예수님 이름 안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체험하면 할수록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욱더 누리고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바로 아이 엠 아이 나는 뭐 뭐이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우리의 모든 충족과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구원자가
되시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능력이 되시고, 구주가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사람이 되시고, 빛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인내가 되시고, 겸손이 되고,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이 되시고 안식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고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늘 얘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신성한 칭호를 가진 예수님의 이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 영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얘기했다면 예수님께서 이 길이 바로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의 길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장 4절 말씀을 통해서 나는 세상의 빛이요 빛이 곧 생명이니라 빛과 생명에 대해서
얘기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빛은 바로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빛이 임마누엘 하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생명이요? 생명이 바로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빛으로서 오시고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생명으로 오시고 나와 함께 계신 그분이 길이 되시고 나와 함께 그분이
진리가 되셔서 나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오셔서 그 이름 안에 가지고 계신 인격과 참과
실제를 삼일 하나님의 영께서 실제가 되시고 참이 되셔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을 통하여 우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겨주시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하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어둠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탐심과 술취함과 방탕함과 창기와 같았던
남의 것을 훔치고 늑탈 했던 이기적인 그 야곱과 같은 자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신 당사자가 바로 나와 함께 계신 야곱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신 임마누엘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이신 것이 두 가지 족보를 통해서 한 분은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한 분은 임마누엘이라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이라는 이름 안에서 삶으로 말미암아 체험과 그 영적인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삶을 살게 하시는 우리와 주님과 하나가 된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왜 사람들에 의하여 불리어진 이 거룩한 이름의 특별한 호칭을 가지신 임마누엘은우리에 의하여 체험된 그 영을 통하여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바로 하나님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였고 그리고 우리의 모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신 예수님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모일 때 두세 사람이 내 이름 안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반드시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는 무엇을 구하든지 내 이름 안에서 마음을 같이 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다 이루어주실 것이다 라고
마태복음 18장 19절, 20절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분이 바로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바로 이분이 임마누엘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임재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의 실제이시며 인격이시며 참이신 그분을 통하여
삼일 하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계신 삼일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임재이신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 임마누엘 이름을 주신 이유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 까지 일까요?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이 세상이 종결될 때까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 세상이 완성될 때까지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얘기를 항상 영원히 어떤 뜻에는 영원히 이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항상 이라는 것은
바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도 아니라 물론 아이엠아이 나는 뭐 뭐이다 라는 말 속에는 과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고 이삭에게는 또 현재의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또 미래의 야곱에게는 또 현재 그 당시에 바로 현재의 하나님이었듯이 바로 이 항상 이라는 뜻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이 시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항상인 것입니다.
오늘을 항상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자들은 어제의 삶에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고 내일의 삶에도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에
항상이란 말은 지금 현재 오늘이라는 시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결코 잊지 마세요.
지금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는 분이 임마누엘 이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 18, 19, 20절에 바로 영원히 함께 하겠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오늘 지금이라는 시간을 빼앗게 위해서 바로 내일 니가 하나님과 함께하면 되잖아 내일로 잠시잠깐 일을 미루고 잠시후에 그 일을 도모하도록 해 하면서 하나님의 이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그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참이며 실제이신 삼일 하나님의 영을 공급받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씻음 받게 되고 거룩히 구별되지 못하게 하고 의롭게 되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일인 것입니다.
지금 하지 말고 잠시 후에 한 30분 후에 그 일을 하면 되잖아! 잠시 잠깐 피곤하니까 잠시 쉬지 뭐, 잠시 잠깐 조금 후에 그 일을
하도록 하지뭐 조금 후에 묵상하도록 하지뭐 조금 쉬다 기도하도록 하지뭐 하면서 이렇게 지금이라는 시간을 빼앗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단의 역사를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지금이라는 시간만을 제외하고 예수님이 항상 계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오늘 바로 이 시간에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왜 마태복음 1장 23절을 통해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다 라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을까요?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하나 되기 위해서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 가운데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 곁에서 동행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라고
디모데 후서 4장 22절은 기록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십니다.
4: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영과 우리의 영 안에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
나의 영 안에 함께하시는 이분이 임마누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분의 임재가 그 땅이기 때문에 땅에 대한 것 때문에
다말이 됐던, 룻이 됐던, 기생 라합이 됐던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자신을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그 가나안 땅을 이렇게 나타내주고 예표하고 상징하고 있는 그 땅을 얻기 위하여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족속들의 손가락질과 부끄러움과 수치와 조롱을 다 감수하면서 까지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분의 다스림과 통치함을 받는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하여 그들은 모든 것을 다 포기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형제도, 자신의 가족들도, 자신의 친구들도, 자신의 정든 고향도, 집도 다 버리고 그 룻이라는 자를 보십시요.
그 땅을 찾기 위해서, 땅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그 땅, 그 땅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로 예수님의 임재이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여호수아를 따라 선민 이스라엘이 왜 피 흘리기까지 하면서 죽기까지 하면서 그 피 흘리는 전쟁을 통하여서라도 그 일곱
가나안 족속이 있는 그 땅을 그렇게 정복하기를 원했습니까?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생명의 양식의 풍성함, 그 소산물들로 통하여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누림을 통하여 생명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것 때문에 세상을 상징하고 있는 이집트에서 나와서 바로 이 40년 동안의 유리 방랑하는 시험과 시련과 고통의 삶을 지나가게 한 뒤에 여호와의 종인 모세를 통해서는 거기까지 그리고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여호수아를 통해서는 안식의 땅인 예수 그리스도의 땅 안에 누리게 하는 삶을 갖게 하기 위해서 그 땅에 들어가는 일들을 하게 된 것이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호수아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과 그 땅과 예수님의 임재는 결코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 땅이 바로 예수님의 실제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 구약 성경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구속하는 놀라운 효력과 생명의 양식의 공급과 생명의 음료를 풍요롭게 선물해 줄 수 있는 그 가나안 땅은 예수 그리스도 실제요, 참이요, 진리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절부터 20절까지는 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이 그리스도의 임재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 바로 그 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죠? 바로 우리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 안에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육체 안에 계셨던
그 영이 최종 완성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 주시는 영으로 부어짐을 통하여 그 삼일 하나님의 영께서 부어짐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그 영이 우리라는 그 영이라는 존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영에 대해서
생수의 강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임재는 그 땅을 상징하고 있는 그 영인 것입니다.
예 여러분 우리의 영이 임마누엘의 땅이에요. 예전에는 구약 성경에서는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지금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그 영이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그 영에 삼일 하나님의 영의 부어짐을 통하여 하나가 되면 임마누엘 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영을 사단은 그것을 그렇게 취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과 예수님의 임재를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16절부터 20절에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실제이신 삼일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 예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임재가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왜 가나안 땅에 들어와야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에서 누림의 삶이 있냐면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듯이 바로 임마누엘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영 안에 예수님의 임재가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우리라는 존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때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가 있을 때 그때 그 영이 바로 주님과 하나가 된 임마누엘이라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때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얘기가 바로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 영은 바로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이고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에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이신 그 삼일 하나님의
영이 오시면 우리와 하나님이 함께 하나가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되시는 임마누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임재가 바로 예수님의 임재인 실제가 우리의 하나님을 담는 것이 영 안에 올 때 이 임재가 임마누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그분을 영접할 때, 우리는 그 삼일 하나님이신 그 영 예수님
육체 안에 계셨던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의 최종 완성된 그 완결되어진 생명 주시는 영이 부어짐을 통하여 바로 예수님의
참 인격과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이름 안에서 예수님의 인격이 되시고, 예수님의 실제가 되시고, 예수님의참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이신 그 영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는 아무도 성령님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주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라고 얘기하는 것은 예수님을 주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예수님이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그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그 예수님의 이름이 참 인격이시고, 예수님의 그 이름이 실제인데, 그분을 통하여 삼일 하나님이 오셔야 바로 예수님을 그때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예수님 하고 부를 때, 우리가 그때는 영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영 안에서 하나가 되는 삶을 통하여 영 안에 그분이 계시고, 그분 안에 우리가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 안에서 그 영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출생인 거듭나는 일이 생겨서 그때부터 신성한 생명과 본성과 그분의 품성을 소유받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로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을 받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얘기하는데 물론 그 방법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 영 바로
그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이시고 예수님의 이름에 바로 참 인격이 되시고 예수님의 이름에 실제화이신 그 삼일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있었던 그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을 우리가 영접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이름 안에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이름을 인식을 하고 부르면 그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인격이시며 참이시며 실제가
되시는 그 영의 부어짐을 통하여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인 그 영께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바로 임마누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가 바로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화가 있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방법이 있죠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많이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영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통하여 그것이 먼저 선제적으로 있지 아니하면 이 영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영을 통해 참 인격이시고 참 실제이신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인격으로 다가오기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자로 그 영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이 땅을 차지하려고 애굽에서 부터 건너온 광야 40년 동안의 유랑 생활을 했던 이 선민 이스라엘이 그렇게
피 흘리기까지 끊임없이 그 땅을 서로 쟁취하고 서로 소유하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인 임마누엘 땅,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젖과꿀이 흐르는 그 가나안 땅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살고 죽는 문제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이 사단과 그 악한 세력들과 악한 영들까지도 포함한 모든 악의 세력들은 임마누엘의 땅인 구약 성경을 통해서는 가나안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통해서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다툼과 분쟁과 전쟁을
가지게 한 것처럼 오늘날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우리의 영이 임마누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가나안 땅이 임마누엘 땅이었지만, 신약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그 성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이 바로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이시며, 예수님의 임재의 참이시며, 예수님의 임재의 참 인격이 되시는 그분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이 가나안 일곱 족속을 통해서 방해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다투고, 분쟁하고, 전쟁을 치루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영을 이 원수가 차지하기 위해서 임마누엘의 땅이 되는 바로 우리에게 이 누림과 안식과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임마누엘의
땅인 우리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영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여서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들의 삶을 바깥에서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 족속들이 가까이 있으면서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지, 멀리 있는 이방 민족들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땅 안에 있는 자들, 우리 자신 자체가 임마누엘 땅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과 우리의 존재를 차지하기 위하여 이 원수는
이 세상의 돈을 통하여, 가족들, 부모들을 통해서,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 자식을 통해서, 직장을 통하여 또 질병을 갖게 함으로, 사고를 통해서 사단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임마누엘 땅이 되는 우리의 존재를 자신이 소유하기 위해서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할렐루야 감사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높이 두 손을 들고 환호하십시오,
기뻐 노래하십시오. 정말 두 손을 올려서 기뻐 함성을 지르십시오.
왜냐하면 이사야서 8장 10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8:10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바로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이신 바로 우리 영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 바로 그 삼일
하나님의 영, 곧 그 영께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내고 있는 임마누엘이신 삼일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도모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원수가 우리의 영을 차지하려고 해도
그 일이 도모되지 않고 성사되지 않고 성공은 절대로 할 수 없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인 것입니다.
이 이사야서 8장 10절 말씀은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다시 한 번 말씀을 읽습니다.
8:10 너희가 함께 의논할지라도 그 일이 실패할 것이요, 너희가 말을 할지라도 그 말이 서지 못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니라.
바로 임마누엘! 바로 마태복음 1장 23절이 여러분들에게 얘기한 것이 뭐예요?
이 1장은 전체가 42명의 예수님까지도 포함한 이름들의 관한 것입니다.
두 개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내시고 결론을 내시고 새로운 생명의 시작점을 가 가지고 오시기 위한 둘째 날
가운데서 첫째 날인 여덟 번째 날, 여덟 번째 아들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42세대가 됨으로 말미암아 40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시련과 고통과 죽음을 통과한 후에 안식을 주기 위하여 여호수아와 함께 선민 이스라엘이 바로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처럼
바로 이 둘과 40이라는 숫자 둘이 합해짐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누림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원수가 그 어떤 역사를 통해서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우리를 실족시키고 넘어뜨리려고 하여도, 우리가 여전히 예수님 이름 안에 있고, 예수님의 그 42세대라는 계보 안에 포함되어져서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받게 된
이 놀라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사탄이 우리를 향한 수많은 공격과 방해와 이러한 고통과 이 40년이라는 40이란 숫자를 통해서
시련과 아픔과 고통과 눈물과 바로 이 깜깜함을 줄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너희가 함께 의논할지라도 그 일이 실패한다.
왜? 임마누엘, 주님의 임재,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이신 그 영께서 우리 영 안에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신 임마누엘이 그 일을 저지하고 막고, 우리를 방어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 우리가 여전히 주님 안에 속한 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계보 안에 포함된 자가 되고, 예수님의 그 두 개의 족보를 통해서
바로 이렇게 포로로 되어 잡혀갔으나 회복되어져서, 예수님이라는 이름과 임마누엘이라는 이 두 개의 이름을 통해서
바로 우리가 이 세상과 죄와 마귀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라는
이사야 8장 10절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 그렇습니다. 이 임마누엘이 예수님인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이 예수님 임재의 실제인 것입니다.
이 임재가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이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바로 우리의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그 영을 통하여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음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져서 의로운 자로 대체가 되고 전환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자로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의 임재의 실제이신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시고 이러한 예수님을 누리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시는
여러분 되길 바라면서 오늘의 모든 교재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