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빌 2:12~18
제목: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 기독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신앙입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구원에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칭의)∙현재 구원을 받고 있다(성화)∙미래에 구원을 받을 것이다(영화)는 시제와 양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것(빌2:12)은 종의 영을 받아서 종이 주인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고 양자의 영(아들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하나님의 자녀는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지만 야무진 상속자의 수준으로 성숙해지기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비천한 노예로 부려먹음을 당하고 비참한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한 자녀로서 상속할 만한 수준으로 강해지고 성숙해지며 장성한 아들다운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롬8: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성화를 포함한 구원의 서정을 시사하고 성화는 성도의 견인과 함께 갑니다. 죄를 억제하고 거룩해지는 의미가 강한 것은 성화이고 어린 자녀가 장성해지며 고난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견인(堅忍)이며 이 성화와 성도의 견인의 마지막은 영화입니다. 롬8:18은 영화를 잘 설명하고(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빌2:12은 성화∙영화를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너희 구원을 이루라).
● 기복종교를 믿는 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은 아래 말씀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을 인간이 목적하고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반드시 성취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 오해한 바를 무지몽매한 자들에게 강조하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빌2:13을 진리와 복음으로 담백하게 보면 성화와 선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자기(하나님)의 거룩하고 기쁘신 뜻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순종하고 성화하며 선행을 하도록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목적을 위하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인 것입니다. 이것이 주객전도(主客顚倒)같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主)이고 인간은 객(客)이며 하나님은 주역(主役)이시고 인간은 들러리일 뿐입니다. 기복종교와 신비주의는 신을 찾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인본주의이며 이해타산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확한 설명을 첨부합니다(웨민).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신자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비롯한다. 또한 그들이 그런 능력을 갖추려면 이미 받은 은혜 외에 동일하신 성령에 의해 그들 안에서 실질적인 역사가 일어나 그 선하신 뜻을 바라고 행하려는 마음이 생겨나야 한다(빌2:13).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없으면 아무런 의무도 행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 부지런히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빌2:12). ← WCF 16장 3항. |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이시며 성령은 성도가 성화하고 실제로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성도를 의지가 없는 꼭두각시나 로봇으로 만들어 조종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감화를 통해서 성도의 심령이 변화하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태만하지 않고 성의와 열의를 내어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위 말씀의 “모든 일”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나 성도가 하는 모든 일을 잘하라고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 내부의 불화에 대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인 불가시적 교회는 언제나 거룩하고 언제나 영광스럽습니다. 주님의 몸의 일부와 지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있는 지역의 유형교회는 불가시적 교회처럼 무흠(無欠)하고 무오류(無誤謬) 하지는 못합니다. 동네 교회 안에는 위선자와 악인들이 숨어들어와 있고 이단이 침투하고, 심지어는 참 성도일지라도 연약하여 일시적으로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성도의 성화도 칭의 후 즉각적이고 완전한 성화가 아니라 과정으로서 점진적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지역의 유형교회 안에는 원망과 시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능성을 알고 있지만 바울은 성화하고 성숙하여 원망과 시비가 없이 교회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씀에 연이어 성화에 대한 정의(定意)와 권면이 나옵니다.
빌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
성화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고, 더 엄격히 표현하면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들로 살아가는 것이 성화라면 그 성화의 마지막에는 영화가 됩니다. 영화(glorification)는 빛의 자녀로 살아간 마지막의 결과이고 빌2:12의 구원 시제로 보면 ‘구원을 이룬’ 상태입니다.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화를 쉽고 정확하게 설명한 것은 아래 말씀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엡5: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두움 속에 살았으나 이제는 주님을 믿고 빛 가운데 살고 있으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
어두움 가운데 살던 자(죄인)가 중생∙회심∙칭의된 이후 점진적 성화를 하면서 믿음으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명이 나타나고 참 믿음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삶’이 나타나게 됩니다.
● 빌2:12~18은 한 문단인데요. 16~18절은 바울이 목회자로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최선의 목회∙양육과 돌봄을 한 것에 대한 감격의 표현입니다.
빌2: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이 세상의 동네 교회에 위 말씀에 나오는 바울과 같은 훌륭한 목회자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나 참 목회자의 상(像)을 성경적∙이상적으로 제시한다면 위에 나온 바울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목사는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만한 목회와 믿음의 작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목회하고 함께 지역의 유형교회를 이룬 성도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빌2:12~18 한 문단에서 이 묵상을 읽은 분들이 현실적으로 명심해야 할 부분은 빌2:12~15 말씀입니다. 성도가 성도답게 사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아들의 영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다른 표현∙호칭들(그리스도의 영∙양자의 영∙아들의 영)의 의미를 알면 성화가 더 확실히 보입니다. 이 묵상을 읽은 우리 모두에게 성령에 의해 성화의 힘을 얻고 자녀로서 순종하고 어둠 속의 빛처럼 선한 행위도 실천하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초신자나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저의 소박한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시간이 많거나 중급자 이상인 분들의 다양한 이해를 위해서 주석들의 해설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
실천적인 신앙에 대한 권고(1)(빌립보서 2:12,13)
Ⅰ.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길을 감에 있어서 근면과 진지성을 지닐 것을 그들에게 권고한다. 그러므로 "너희 구원은 이루라"(12절)고 한다. 곧 우리 영혼의 구원(벧전 1:9)과 우리의 영원한 구원(히 5:9)을 이루라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죄가 우리에게 가져 왔고 우리를 거기에 들어가게 한 모든 악으로부터의 구원이 포함되며 우리의 완전하고 궁극적인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과 모든 선의 소유가 포함한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영혼의 안녕을 확립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것들이야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우리의 최선의 이익에 관심을 갖자. 그것은 우리 자신의 구원 즉 우리 자신의 영혼의 구원이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다름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차다. 그리고 비록 할 수 있는 한에서 우리가 전체적인 구원을 이루도록 힘써야 하겠지만 그러난 우리가 자신의 구원을 어떤 이유에서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katergaxisqe-즉 우리의 구원을 이룰 것이 요구되고 있다.
"이루라"는 말은 어떤 일을 "철저히 해내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참된 수고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우리를 구원에로 이끌어 주는 모든 방법을 사용함에 있어 근면해야 하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구원에 필요한 것을 때때로 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룰 뿐만 아니라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함으로써 그리고 끝까지 견딤으로 우리의 구원을 성취해야 한다. 구원은 우리가 염두에 두고 마음을 쏟아야 할 중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최고의 배려와 근면이 없이는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 그는 "두려움과 떨림으로"라고 덧붙인다. 즉 매우 주의 깊게 그리고 신중하게 구원을 성취하라는 말이다. "너희가 구원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으로 지내야 한다. 최선을 다하여 신앙의 제반 의무를 주의 깊게 행하며 너희가 도달할 모든 유익함에 행여 미치지 못할까 두려움을 품도록 하라'(히 4:1)는 뜻이다. 두려움은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며 보호해 준다.
Ⅱ. 그는 그들에게 늘 복음에 복종할 자세를 갖춤으로 구원을 이룰 것을 촉구한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함으로"(12절)라고 말한다.
즉 너희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때마다 기꺼이 그것에 순응하여 왔었다. 내가 있을 때는 물론이고 내가 없을 때에도 그리하였었다. 또한 "너희는 더욱 그리스도를 존경하고 너의 영혼을 돌보며 그리스도에 대한 표면적인 약간의 존경하는 태도보다 그로 하여금 너희를 지배하게 하라"는 뜻의 말씀이다. 그들은 사도가 있을 때에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그가 없을 때에 더욱 그렇게 하였다. 이에 대하여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러니 너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가 일하시니 너희도 일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최선을 다 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므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를 내려 주시며 우리의 신실한 노력을 도울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비록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우리의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나아가고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은혜는 우리의 본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의 노력과 일치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단순히 우리의 잘못을 묵인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에 활기를 띠게 하고 더욱 열심을 내도록 하여 준다. 그러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자. 이는 그가 너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행함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의 역사에 의존한다. "태만과 부주의에 의해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를 격노케 함으로 그가 도움을 거두어 버리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또한 너희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두려움으로 일하라. 이는 그가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일을 할 마음을 우리에게 일으키는 것과 행하게 하는 것이 모두는 하나님의 주시는 재능이다. 선한 것에 뜻을 두게 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게 하며 그리고 우리의 정한 도리에 따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로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라"라고 하였다(사 26:12). 또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이 또한 우리 안에는 아무 공로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 행동할 수 없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그리고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척해서도 안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 때문에 그는 우리 안에서 그의 선한 사업을 이루셨다. 그리고 그는 그의 피조물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으시고 다만 그가 은혜로 약속한 자들에게만 이 책임을 지신다.
@장코뱅 칭의는 성도가 할 것이 없는 은혜의 작품이지만 성화는 성도도 행해야 할 부분이 있으므로 방심과 태만하면 안 되겠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매튜 헨리 주석>
실천적인 신앙에 대한 권고(2)(빌립보서 2:14-18)
본문 가운데서 사도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백에 다가 거기에 알맞은 적절한 성품과 행위를 더할 것을 권고한다.
1. 하나님의 명령에 즐거이 복종함으로써(14절)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모든 일 즉 여러 가지의 의무를 원망이 없이 하라. 그리고 너희 의무를 행하되 흠이 없이 행하라. 너희 일을 상념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쟁론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들에게 복종하라고 주어진 것이지 그것을 대상으로 쟁론하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의 명령에 대한 우리의 복종은 우리의 신앙을 돋보이게 하며 또한 우리가 선한 주인을 섬긴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 결과 그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며 우리의 복종에 대한 보상으로 그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2. 서로 사랑과 평화를 베풀므로써 그렇게 하라고 한다. "시비가 없이 즉 서로 다투는일이나 논쟁함이 없이 모든 일을 행하라. 이는 종종 진리의 빛과 신앙의 생명이 열띤 논쟁의 분위기 가운데서 상실되게 때문이다.
3. 모든 사람들에 대한 흠없는 생활을 함으로써(15절)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모든 일 즉 여러 가지의 의무를 원망이 없이 하라. 그리고 너희 의무를 행하되 흠이 없이 행하라. 너희 일을 상념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쟁론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들에게 복종하라고 주어진 것이지 그것을 대상으로 쟁론하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의 명령에 대한 우리의 복종은 우리의 신앙을 돋보이게 하며 또한 우리가 선한 주인을 섬긴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 결과 그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며 우리의 복종에 대한 보상으로 그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2. 서로 사랑과 평화를 베풀므로써 그렇게 하라고 한다. "시비가 없이 즉 서로 다투는일이나 논쟁함이 없이 모든 일을 행하라. 이는 종종 진리의 빛과 신앙의 생명이 열띤 논쟁의 분위기 가운데서 상실되게 때문이다.
3. 모든 사람들에 대한 흠없는 생활을 함으로써(15절) 그렇게 하라고 한다. "탓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너희가 흠없고 순전하도록 하라. 그래서 너희가 말이나 행실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말아야 하며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순전할 뿐 아니라 흠 없도록 노력해야 된다. 또한 남에게 해롭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혐의조차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흠없고 신실하라"는 말씀을 어떤 사람은 인간에게 흠이 없고,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라는 말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함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흠없고 순전한 자들이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어 특권을 부여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인간들의 아들들과는 달라야 한다. 그는 avmw,mhta-즉 흠이 없어야 한다. 모무스(Momys: 역자주-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조롱, 비난의 신)는 헤시오드(Hesiod)와 루시안(Lucian)에 의해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희랍인들이 불평의 신으로 섬기고 있는 신이었다. 자신은 내버려 두고 모든 사람과 모든 일마다 흠을 찾아내며 다녔다. 이 신의 명칭에서 다른 사람들을 혹평하며 다른 사람들의 한 일을 엄하게 비평하는 자들을 "모미(Momi)"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도가 본문에서 "흠잡힐 데가 없이 하라"고 한 말의 뜻은 "모무스(Momus)까지도 흠을 잡지 못하도록 그리고 가장 혹독한 비평가도 너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행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늘을 목적삼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흠없이 거기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데메드리오와 같이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로 증거를 받아야 한다"(요삼 12장). 또한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라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즉 이는 이방인들 그리고 외부에 있는 자들 가운데서라는 뜻이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참 신앙이 없는 곳에서는 어그러짐과 거스림밖에 기대할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같이 지내는 자들이 어그러지고 거스릴수록, 그들이 공연히 헐뜯으려고 할수록 우리는 더욱 조심하여 흠없고 순전하도록 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롯은 다투지 말아야만 옳았다. "왜냐하면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그 땅에 거(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창 13:7). 또한 세상에서 빛이시며 그리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가운데 있는 빛들이다. 하나님이 어디서든 착한 사람을 세우실 때 그는 그를 그곳에 빛으로 세우신 것이다. 또한 본문을 명령법적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 즉 "세상에서 너희가 그들 가운데 빛으로 나타나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말씀을 마태복음 5장 16절의 "너희 빛을 그와 같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라"는 내용과 비교해 보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 대해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신실한 것은 물론 빛을 발해야 한다. 즉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한다"(16절). 복음이 생명의 말씀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저를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딤후 1:10)고 하였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또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굳게 잡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촛대가 주위의 모든 것을 유익하게 만드는 촛불을 지탱하여 그것으로 빛을 발하게 천체들처럼 세상을 밝혀야 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것이 "그의 자랑거리라고"말한다. 고로 본문에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 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즉 너희의 견고함 뿐 아니라 너희의 유용함으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 그는 그들로 그의 고통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려고 하였다. 또한 "그가 헛되이 달리지 아니하였고 그리고 헛되이 수고하지도 않았음"(16절)을 알리려 하였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목양의 사명은 우리에게 전력을 투신할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기울여도 목양을 위해 달리며 수고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달리는 일은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하는 것이며 또한 계속적으로 돌진해야 하는 일이다. 또한 수고는 꾸준함과 대단한 열심을 요하는 것을 뜻한다.
(2)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헛되이 달리지 아니하고 그리고 헛되이 수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큰 기쁨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날에 그들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들로 인하여 회개한 자들이 그들의 면류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곳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니라"(살전 2:19, 20)고 말 하였다. 사도는 만족스럽게 그들을 위하여 달리는 일과 수고를 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가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고난받을 각오까지 되었음을 보여 준다(17절). 그러므로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계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고 하였다. 만일 그가 교회의 존귀와 교회의 육성과 그리고 인간들의 영혼의 안녕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영혼의 안녕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자신이 행복한 것으로 여겼다. 비록 이로 인해 그가 고난을 당할 뿐 아니라 그의 생명을 내어 놓게 되더라고 그는 기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의 믿음을 돕기 위하여 기꺼이 그들의 제단에 희생 제물이 될 수도 있었다. 바울은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그의 피를 흘리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교회를 위해 약간의 고통을 받는다고 그것을 많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그의 생명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수고를 우리가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그러므로 그는 "만일 내가 관계에 드리는 포도주처럼 드려지고 부음이 되어야 한다면"(딤후 4:6)(ape.ndomai) "나는 그렇게 드려질 준비가 되었노라"고 하였다. 그의 가르침을 자기의 피로써 인치는 것을 기뻐할 수 있었다(18절). 또한 그는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권한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넘치는 기쁨을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훌륭한 사역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역자들과 함께 그들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역자가 그 회중들을 사랑하고 자신이 기꺼이 그들의 안녕을 위하여 바치며 또 바치어지고 있다면 그 회중들은 그 사역자를 사랑하고 그리고 "그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이유가 되는 것이다.
@장코뱅 실천적인 신앙에 대한 강조와 목회자의 바람직한 행태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크마 주석: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사랑하는 자들아'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목양하는 자로서 친근감있게 부르는 호칭이다. 친근한 호칭과더불어 바울은 본절에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한다. 이 '구원을 이루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한다(Muller, Kent). 본절의 권면은 칭의 이후에 오는 성화의 과정에서 신인협동(神人協同)의 차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구원의 확증은 얻었지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구원의 증거들을 실증하며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고 한다. (2) 혹자는 '그리스도인의 연합적인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한다(Hawthorne, Martin, Michael, Gnilka, Collan-ge). 바울은 4절에서 이미 개인적인 삶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권면하고 있으며 본절 이하에서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기에 교회 전체의 집합적, 공동체적 권면으로 볼 수 있다고 한(Hawtho-rne).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Lenski).
왜냐하면 '구원'에 있어서 '개인'과 '교회'는 분리할 수 없는 불가 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계속해서 성숙해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나아가야 한다(엡 4:1-6).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늘 순종하는 것이다(Martin, Kent).
@장코뱅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도 설명하는 좋은 설명입니다.
<호크마 주석: 빌립보서>
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원망'은 '투덜대는 불평'을 의미하며 '시비'는 '악의(惡意) 있는 논쟁'을 의미한다. 결국 사소한 일을 가지고 '악의있는 마음으로 불평하는태도'를 가리킨다. 후자는 바울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출 15-17;민 14-17)들을 염두에 두고 서로 유비(類比)시켜 기록한 것으로 추측한다(Kent).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그와 같은 추정을 내릴 만한 근거가 전혀 없으며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권위를 빙자하여 하나님께 도전한 반면에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순수히 교회 내부의 불화(2절)이기 때문이다(Hawthorne, Martin). 바울은 교회 내에서 불평과 싸움이 없이 모든 일을 행하기를 권면한다.
교회 안에서도 명예욕과 자기 주장이 많은 분들이 있어서 다툼과 분리를 조장합니다. 그분들은 회개하고 참된 성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호크마 주석: 빌립보서>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빛들로 나타내며 - '흠이 없고'는 타인에게 책망 받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순전하여'는 이질적인 것이나 온전치 못한 것이 전혀 섞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타인에게 책망 받을 만한 일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성품을 닮아서 세상에 빛을 나타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온 세상을 비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마5:14;엡 5:8).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드러내야 할 '세상'을 의미한다. 빌립보 교인들이 현재 살고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과 연합한 타락한 세대이다(엡 6:12).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빌립보 교인들의 사명은 흠이 없는 자로서 세상에 빛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화는 개인에게 구원의 서정이지만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의 빛을 비추고 전도의 길이 열리는 광고지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구원의 서정과 성화, 선행이라는 기독교의 핵심교리와 가치를 묵상으로 잘 풀어내 써주신 것 같습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네, 공감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후로는 장성한 자녀로 성장하여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기에 합당한 상속자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하는 영화로운 상태로 변화되도록 힘써야 한다, 구원을 이루어내도록 하라는 바울의 메시지를 묵상으로 녹여 주신 것 같습니다.
성화의 단계에서 각자가 충성하고 변화되는 만큼, 받을 상급과 영광도 달라질 것입니다.
롬 8:16-18과 빌 2:12-18의 말씀을 같이 기억하고 있으면 매우 좋겠습니다. 특히 오해하기 쉬운 빌 2:13이 단순한 사람의 소원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신다는 것으로 교정해주셔서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큰 그림을 볼 줄 안다면 바울과 같이 기꺼이 성화를 위해서 힘쓰고 아름다운 상속자가 되기 위하여 주를 위하여 고난도 감당해나갈 수 있겠지요. 목회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좋고 잘 새겨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성경 묵상 내용을 잘 요약하고 정리해 주셔서 저에게 도움이 됩니다.
은혜로운 좋은 묵상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