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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믿음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SALT
종교의 영 - 밥 존스 & 폴 키스 데이비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제자 요한은 밧모 섬의 유배기간 동안 ' 성령 안에' 있었다. 그는 초자연적인 계시 가운데 놀랍고도 위대한 일을 목도하였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가? 그들은 당대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알려주는 '상징'과 '형상'의 계시를 보았다. 이처럼 위대한 선지자의 경우를 보아 알 수 있듯이, 변함없으신 주님은 지금도 다양한 상징과 형상을 통해 영적 진리를 계시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이런 방법을 통해 계시를 주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우리가 받은 계시의 해석과 적용 방법에 대해 여쭈어야 한다. 또한 계시는 특별한 방식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영적인 눈을 열고 귀를 열어야만 이해된다. 육적인 생각으로는 계시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의 지도를 따를 때에만 영적인 진리가 영적으로 평가(인식) 될 수 있다.
밥 존스가 체험한 영적(예언적)경험에는 이처럼 상징과 형상이 담겨 있다. 특히 이제 이야기하게 될 종교의 영 관련 경험에서는 상징과 형상의 면모가 더욱 드러난다. 사실 이 짧은 글을 통해 종교의 영이 가지고 있는 모든 특성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참으로 소모적인 작업이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의 의도가 아니므로 여기서는 밥 존스가 받았던 계시 속에 등장한 종교의 영의 특성만을 다룰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종교의 영이 감지될 때마다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 그리고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임을 상기하는 것이 유익하다 (엡6:12 참조) . 우리의 대적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도록 조장하고, 그들을 통해 일하며 그들에게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의 세력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점잖게 훈계하라고 말했다. 혹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케 하셔서 그들로 진리를 깨닫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의 죄를 자각, 회개할 것이고 그동안 사단에게 사로잡혀 사단의 뜻대로 행해 왔음을 깨달아 사단의 덫에서 빠져 나올 것이다. (딤후 2:25-26 참조) 물론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여정을 거쳤거나 혹은 앞으로 거쳐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과제이다. 사실 우리의 대적 종교의 영은 성령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경고하셨다. " 종교의 영은 할 수 있는 대로, 심지어 택함을 받은 자마저도 미혹할 것이다."
가증스런 미혹자
밥 존스의 예언적(영적) 경험 속에서 종교의 영은 ' 가증스런 눈사람' (abominable snowman)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그러나 그 눈 사람의 이름은 ' 가증스런 미혹자 ' (abominable snow- job man)였다. 여기에 사용된 각각의 단어는 종교의 영이 가진 특성을 나타내준다. ' 가증스런 눈사람' 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던 것은 찰스 케네스 하워드 배리(Charles Kenneth Howard- Bury) 가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던 1921년이었다.
당시 산행 길에 오른 하워드 배리는 눈 위에 나 있는 커다란 발자국들을 발견했고 곧이어 그의 망원경에는 정체모를 형체가 포착되었다. 훗날 그를 만난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셰르파가 말하더군요. 그 정체모를 형체는 ' 메토캉미' 였다고요. 메토캉미는 네팔어로 ' 산 속에 사는 야수' 라는 뜻입니다. (셰르파, Sherpa : 에베레스트 등반을 돕는 짐꾼 도우미- 역자 주)." 그런데 신문기자는 하워드 배리의 설명을 와전시켰다. 신문마다 하워드 배리가 본 것을 야수가 아닌 ' 괴물인간' 이라고 보도했고, 원주민들든 그 괴물 인간을 가리켜 ' 가증스런 눈사람' 이라 부른다고 부연햇다.
밥 존스가 본 환상 속에서 종교의 영은 가증스런 눈사람이었다.
이는 종교의 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서 종교의 영을 가증스럽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종교의 영이 활동하는 방법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방법과 흡사하다.
죵교의 영이 그렇게 활동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영적 분별이 가해지지 않는 한, 종교의 영은 발각 되지 않고 숨어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종교의 영의 특징( 분별할 수 있는 특징)을 알려주셔서 이를 분별하게 하신다. 또한 종교의 영이 빚어낼 열매의 특성도 알려주신다.
환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밥 존스에게 말씀하셨다. " 너는 이사야 66장 16- 18절에서 종교의 영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은 적법치 않은 방법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내어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육 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켤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의 소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가증스러운 것
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 동산' 은 , 예배의 처소이자 친밀한 교제의 상징이었던 ' 에덴동산' 으로부터 영적 중요성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변절했던 시기에 '동산' 은 우상 숭배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사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법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주님의 동산에 들어가려는 시도 자체가 가증스럽다. 종교의 영은 사람들에게 "너희 스스로를 정켤케 하라"
라고 말하지만 , 사실 이것은 " 너희의 생각으로만 정켤케 하라" 는 명령이다. 이어서 종교의 영은 사람들에게 돼지고기와 쥐 고기를 먹인다. 성경이 규정한 부정한 동물, 돼지와 쥐는 성령이 아닌, 사람의 혼을 통해 공급되는 부정한 영양분을 상징한다. 진리의 성령께서 주시는 계시로 성경말씀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 그 지식에 기반을 둔 여러 주장을 펼치며 성경을 대하는 행위가 돼지와 쥐이다. 즉, 주님의 눈에 가증스러운 행위이다.
정결치 못한 생각과 헛된 상상은 대적에게 힘을 실어준다. 우리의 대적 사단은 우리에게 돼지와 쥐를 먹이며 저주를 풀어놓는다. 그 저주는 우리에게 핍박과 위협으로 다가온다. 종교의 영이 통제할 때, 또 ' 주님의 성전' 이 아닌 ' 사람의 성전' 이 규모를 확장해 나갈 때, 교회는 황폐해진다. 다니엘 11장 31절 그리고 마태복음 24장 15절에 나타난 '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 (멸망의 가증한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종교의 영을 예견한 것이다.
기억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거룩해져야 한다. 만일 인간의 교훈뿐인 교리를 배움으로써 입술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주님은 그 예배를 '헛것' 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마 15: 8-9참조)
성경은 선포한다. "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고 말이다. (고전 4: 20참조)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에 있는 것과 반대로 ' 가증스런 미혹자' 는 세속적이고 , 감각적이다. 가증스런 미혹자는 ' 성령의 능력 없음' 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는, 더럽혀진 성전처럼 불결하다. 미혹자의 능력은 우리의 이성을 오염시킨다.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반박한다. 철학적 설명을 덧붙여 성령의 능력을 허구화시켜 버린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성향을 지닌 리더가 있다면 그는 우리 안에 심겨진 영적 씨앗, 즉 그리스도도를 아는 참된 지식을 앗아가 버릴 것이다.
종교의 영에 미혹된 사람들은 깊은 좌절과 두려움의 구덩이를 향해 나아간다. 사단은 자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참된 기름부음을 대적하는 보면서 포획을 즐긴다. 우리가 영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여기에 종교의 영이 가담하여 이를 더욱 악화시킬 때 ' 하나님의 보호' 라는 덮개에 구멍이 나는데, 이 때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종교의 영은 이 세상의 영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여 하나님의 은혜를 무효화시킨다. 그러나 오염된 교회를 정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 진리의 관점' 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만이 ' 진리를 보는 눈'을 주실 수 있다.
종교의 영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실체를 보지 못하도록 교회의 눈을 가린다. 존 G. 레이크 (John G. Lake)는 생의 말년에 천사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이 놀라운 만남 속에서, 천사는 사도행전을 펼쳐놓고 이렇게 말했다. " 여기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마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신 오순절의 역사이다. 너는 이 오순절을 얻기 위해 노력해라. 이를 얻기 위해 싸우라. 쟁취하라. 사람들이 오순절 체험을 얻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기도하게 하라. 왜냐하면 , 오직 오순절만이 인간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이 체험만이 어둠의 권세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천사가 존 G. 레이크를 떠나면서 남긴 말이 있다.
"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사람들을 가르쳐 기도하게 하라. 기도... 오직 기도만이, 많은 기도만이, 끈질긴 기도만이 하나님의 심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이다."
하나님이 남겨두신 자들
환상 가운데 밥 존스는 한 사자( 使者)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여성의 모습으로 보인 그 형상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 때, 밥 존스는 그의 몸에 새겨진 글자를 보았다. EKKLESIA (에클레시아)- " 부름 받은 사람들" ( Called Out Ones). 가까이서 바라보니 그녀에겐 손도, 발도 없었다. 그것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 아직 성경적 제사장의 직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신부로서의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 " 그러나 주님께서는 곧 ' 사독' 의 제사장 직무를 부여하셔서 그녀에게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가르쳐주기로 하셨다.( 겔 44: 15-16 참조) 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깨끗한 빛을 비춰 주시고, 그녀를 정켤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신부로 자라나게 하실 것이다.
이후 성령께서 선포하셨다. " 이제 나는 나의 남긴 자들을 불러 그들로 거룩한 임무를 담당케 하리라." 성령께서 말씀하신 " 남긴 자들" 은 예레미야 50장 20절에서 발견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 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 철 회초리' 의 권세를 가지고 ' 용서 받은 사람들' (남긴 자들)을 훈련시켜 어려움을 타개하는 강력한 도구로 삼으실 것이다. 성령님은 갈보리의 십자가로 안내하는 구원의 다리 역할을 하실 것이다. 남긴 자들은 사령관의 특별한 지휘 (특히 적과의 전투에 투입시키고자 할 때)를 따르도록 예비 된 군사들이다. 주님은 이들에게 '전투를 위한 도끼' 로 기름부으실 것이다. 종교의 영이라는 나무의 뿌리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다.
주님의 갈망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제사장직을 부여하고, 그리스도의 순전한 계시로 양을 먹이는 목자로 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이고 그 위에 성령께서 물을 주신다. 그래서 말씀의 씨앗이 거룩한 나무, 열매 맺는 나무로 자라난다. 거룩한 지혜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반면의 인간의 지혜는 땅에서 나온다. 교회는 마지막 때의 대추수를 위해 하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미혹
고린도후서 11장 12-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종교의 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리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 영의 주된 목적은 믿음 없는 자들의 마음을 눈가림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곧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 사람들의 마음 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고후 4: 4참조)
이러한 영을 가진 리더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해선 설교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선 설교하지 않는다.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설교하지만, 그가 부활하신 것과 부활의 능력은 설교하지 않는다. 심지어 ' 하나님의 은혜' 라는 복음은 설교하지만 ' 그리스도의 영광' 이라는 복음은 설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단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그가 교회의 눈을 가리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던 행위들에 가장 큰 어려움을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다.
가증스런 미혹자의 핵심은 ' 미혹' 이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노력과 행동으로 온전해져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은 속임이자 미혹이다. 안타깝게도, 미혹하는 사역자들의 메시지는 겉으로는 올바른 진리처럼, 속임의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한 말씀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단지 하나님을 향한 열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로마서 10장 2-3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열정은 반드시 진리를 수반해야 한다. 또한 충성 하나만 으로는 부족하다. 충성된 마음으로 웃사는 손을 펼쳐 덜컹거리를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나님이 정해두신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 믿고' 의롭게 되는 것은 ' 마음' 에서부터이다. 우리가 의로운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붙잡을 때이다. 그 은혜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하지만, "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 (약 2: 26 참조) 여기서 ' 행함' 은 내면의 믿음이 겉으로 표출될 때를 의미한다.
종교의 영은 육체의 행함과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획득하라고 부추긴다. 가인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추수한 결실을 드려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거절되었다. 반면, 계시를 통해 아벨은 자신의 죄에 대해 스스로 대속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무고한 생명을 바쳤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각각의 제사, 그 속에 담긴 내적 의도는 확연히 다르다. 아벨은 계시를 통해 그리고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다. 반면에 가인이 준비한 제사는 아벨의 제사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깃들여진 제사였지만, 믿음이 결여되었으므로 거절되었다. 창세기의 앞부분에 기록된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종교의 영의 진수가 무엇인지 깨닫고, 순종을 통한 자유와 종교의 영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 (약 2: 23 참조)
어둠의 왕국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다. 이 세대의 신부를 온전함의 경지에까지 인도하기 위해 반드시 선포되어야 할 것 역시 바로 이 복음이다. "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신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 (고후 4: 6)
' 하늘을 이 땅으로 이끌어내다' 라는 최근판 모닝스타 코리아 저널 19호에 실린내용중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