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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개방의 방주는 누구?
상관염은 은근히 고개를 돌리면서 옆을 보니 자신의 누이 역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참고서 내색하지 않았다.
왕부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돌아가신 숙부님의 무공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겠군요?"
왕자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다. 나의 선친께서는 일단 정식으로 무명노승에게 지도를 받기 시작한 뒤로부터 오히려 무공보다는 불법을 수행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지. 그리고 몸이 허약해지신 데도 불구하고 전력으로 힘을 쓰시다가 오래 사시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왕용이 다시 물었다.
"숙모님께서도 그럼 그 뒤에 돌아기시게 된 것인가요?"
왕자안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다."
왕부가 물었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어떻게 해서 그 무명노승의 진전을 받으시게 된 것이었죠?"
왕자안은 대답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분들의 슬하에서 자라나게 되었는데 모든 은총을 입었다고 할 수가 있지.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왕용이 잠시 생각해 보고는 왕자안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왕자안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너의 생각대로 알고 있어도 무방하다."
왕용은 이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럼 오라버니가 저의 생각을 알고 계신다는 것인가요?"
왕자안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다. 지금 너는 내가 특별한 자질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
왕용은 이에 머리를 갸웃 거렸다. 그녀는 대체 이 오라버니가 자신의 마음속을 어떻게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왕부가 물었다.
"그럼 이번에 오라버니가 우리 개방으로 가신다는 것은 그렇다면.....과거에 은혜를 모르고 배반한 증조부님을 처단하기 위한 것인가요?"
왕부에 그 질문에 일순 이 마차의 내부가 차갑게 결빙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실로 그와 같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 문제는 실로 심각한 일인 것이었다. 하지만, 왕자안은 오히려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나의 선사께서도 책벌하지 않았었는데 어찌 내가 그와 같은 일을 하겠느냐? 나는 다만 당금의 상황이 좋지 못해서 강호에 나온 것이다."
왕용은 그 말을 받아서 물었다.
그리고 물론 우리들 사촌형제들을 보고 싶기고 하고 말이죠?"
왕자안은 가볍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하하, 물론이다."
왕부가 이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아아, 그래서 오라버니께서 우리 팔황문에 대해서 그토록 소상하게 알고 계시는군요?"
왕자안은 고개를 끄떡였다.
"일반적으로 다른 방면과 마찬가지로 이 무도라는 것도 역시 하나로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궁극의 무도를 터득하게 되면 자연히 배우지 않아도 다른 무예는 대강 알게 되는 것이다."
왕부가 다소 부럽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오라버니께 그 무아문의 무학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어, 그녀는 이미 무아문의 제자가 되어 있다고 하는 상관엽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에 이미 상관엽은 내심의 격정이 최고조로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내가 바로 무아문의 문하생이오!
그렇게 한바탕 소리치지 않으면 커다란 격정으로 인해서 가슴이 일시에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문득 마차가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이미 개방의 총타로 들어가는 북망산의 기슭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 × ×
일전에 왕자안이 한번 와 보았던 토신묘에는 여전히 전과 다름이 없이 종기종기 중년거지들이 양쪽에 둘러앉아서 이를 잡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 되지 않은 계절이었기 때문에 날씨는 그럭저럭 따뜻한 편이었고 또한 거지들은 습관적으로 춥지 않아도 이렇듯 양지를 찾아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왕자안이 왕용 등과 함께 마차에서 내리자 예의 그 중년거지들은 이번에는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비단 이를 잡던 동작마저 중지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앞으로 다가와서 일제히 이렇게 공손하게 절을 했다.
"어서 오십시요. 소공자님!"
이미 개방의 방주인 천개 왕천기가 돌아와서 왕자안의 존재를 공공연하게 방내에 알린 모양이었다. 기실, 왕자안의 나이는 다소 적은 편으로서 그의 사촌형제들의 나이는 모두 그 보다 많았고 그저 지금, 여기에 있는 왕용과 왕부 자매만이 그의 밑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중년거지들이 부르고 있는 소공자라는 호칭은 적당한 것으로 보였다.
왕자안의 현재의 신분은 개방의 백의제자이지만 그러나 그의 신분상으로 결코 가장 하층인 백의제자라고 대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자안은 그들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에 입을 열었다.
"그래, 며칠간 잘 지내시었소?"
왕자안이 이렇게 격의 없이 대해주자 그들 중년거지들은 하나같이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허리를 굽신거렸다. 기실, 이 개방의 풍습은 어떤 계파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일단 왕검해가 개방의 증흥조가 된 이상은 왕씨 가문이 세력을 펼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비록 왕씨 가문의 사람들이 겸손해하고 또한 남들에게 군림하려고
하지 않아도 개방의 사람들은 항상 그들을 방내에서도 특별한 존재들로 대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와서 취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가 있었다. 이어, 그 중년거지들 가운데 한 명의 거지가 손짓으로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주께서는 지금 고대하고 계시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왕자안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고맙소."
이어, 왕자안이 그 입구쪽으로 향해서 토신묘의 안으로 들어서자 거기에는
이미 낮이 익은 한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바로 철면개 왕자형이었다.
"그동안 잘 있었는가?"
왕자형의 모습은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이 보였으나 그의 표정은 분명히 과거와는 야간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우선 그의 표정 가운데 아주 기이한 심사가 어려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시기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고 또한 기묘한 경쟁상대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기실, 전날에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사촌형제로서 그들을 선의의 경쟁을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왕자안은 그를 향해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대했다.
"물론 잘 있었소. 당싱도 그동안 편안했던 모양이구려."
왕자형은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이다. 나야 달리 걱정되는 바도 없고...... 천하에 누가 우리 개방의
일을 간섭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의 의미는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었다. 하나는 우선 그가 개방에 대해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직선적인 표현이며 자랑이라고 할 수가 있었지만 두 번째는 거기에 비추어서 왕자안이 감히 그러한 개방의 물을 흐려놓을 수는 없는 일임을 미리부터 강조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왕자안은 미소하며 그저 순순히 마주 입을 열었다.
"물론이오."
그러자, 왕자형은 잠시 더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거기에 잇는 신상의 뒤편 지하계단은 이미 훤하게 열려져 있었다. 그렇게 기관이 열려져 있고 개방되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왕자안을 무언중에 환영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지하의 통로에는 무수한 횃불들이 훤하게 밝혀져 있어서 과거처럼 어두침침한 구석은 전혀 없어 보였다.
"자, 그만 이제 들어가자!"
말과 함께 왕자형은 앞장서서 그 지하계단으로 내려갔다. 왕자안은 즉시 그의 뒤를 따랐으며 그 뒤를 이어서 독고상과 상관남매, 그리고 왕용과 왕부가 뒤를 따랐다. 왕용과 왕부는 이곳에 와서 입을 열고자 했었지만 조금 전에 왕자형의 태도가 그렇게 딱딱한 것을 보고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그녀들은 그저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면서 뒤를 따를 뿐이었다. 원래 그녀들이 즐거이 왕자형과 함께 강호를 횡행하기는 했었지만 그것은 그가 강호유람을 즐기기 때문에 함께 나섰던 것이었지 다른 것은 아니었다.
이 철면개 왕자형에게 비해서 남은 세 명의 형제들은 성격이 상당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편이어서 함부로 강호를 떠돌아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강호상에서 그렇게 조심성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이 항상 방심이 부풀어 있는 두 명의 자매들을 묶어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들은 항상 무뚝뚝한 둘째 오라버니를 탓했지만 역시 거의 그를 따라다니고 있는 형편이었다. 지금도 그녀들은 보다 친근하게 대해주지 못하는 왕자형의 태도에 대해서 내심으로 크게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지하의 통로를 지나서 역시 기관장치가 되어 있던 그 문도 역시 환하게 열려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자 예의 그 넓은 대청이 눈앞에 가득하게 들어왔으며 여전히 그곳에는 개방의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공공연하게 왕자안의 출현이 알려져 있는 상황이지만 호기심이서라도 개방의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개방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도 방주의 특별지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방주인 천개 왕천기는 이러한 일이 그저 왕씨가문의 일에 불과하며 개방의 일에 관련되지 않도록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왕자형은 계속해서 예의 그 왕자안이 백결개를 만났었던 작고 아름다운 문이 있는 대청으로 일행을 인도했고 이어 역시 마찬가지로 전날처럼 문 앞에 서서 공손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소손 자형이옵니다."
그러자 조용하던 안쪽에서 즉시 사람의 음성이 들려 나왔다. 그것은 약간 창로한 듯하 음성이었는데 자애로운 마음이 가득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어서 데리고 들어오너라!"
순간, 작은 문이 소리 없이 저절로 열렸고 내부의 상황이 훤하게 드러났다.
그 대청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다. 오직 두 명이 태사의에 앉자 있었는데 그 가운데의 한 사람은 일전에 왕자안도 보았던 백결개 왕룡생이었다.
왕룡생은 왕자안을 보게 되자 다소 의미 있는 눈빛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중앙의 태사의에 조용히 안자 있는 사람은 바로 당금의 개방의 방주인 천개 왕천기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곱상한 편이었고 턱밑에 탐스러운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마치 삼국시대의 관운장과 같이 안색도 불그레한 편이었다. 왕자안을 대하고 있는 그의 시선은 약간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고 왕자안은 시선은 시종 조용한 것 같았다.
왕자안은 즉시 그 왕천기를 보자 그 자리에서 무릅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소손 자안이 이제서야 조부님을 뵙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하옵니다."
왕천기는 그것을 보자 일순 혈육의 정이 치밀어 오른 듯이 즉시 몸을 일으키며 약간 격정에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 그래 어서 이리로 들어오너라. 너를 본지도 참으로 오래 되었구나. 네가 아주 어렸을 적에 본 것 같은데........"
이때 이제까지 길을 안내했던 왕자형은 슬그머니 물러가 버리고 없었고 왕용과 왕부 역시 사라지고 없었다.
상관엽과 상관지등의 일행도 옆으로 피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본 왕천기가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 너희들도 일행이라면 함께 들러오도록 해라."
왕자안은 이윽고 천천히 걸어서 일행을 데리고서 왕천기의 면전에 다가가 섰다.
"조부님!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왕천기는 격정에 못 이겨서 그만 달려들어 왕자안의 몸을 껴안으려다가 억지로 참고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 다시 앉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 하지만 내가 그동안 마음이 편안했을 리가 있겠느냐? 소문에 듣자니 너의 아비는 이미 유명을 달리 했다고?"
왕자안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미처 그러한 불효를 용서받지 못하고 먼저 떠나게 되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선친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왕천기는 즉시 만감에 가득찬 표정이 되었다. 우울한 한숨이 그의 얼굴에 깊게 흘렸다.
"뭘라고? 망할 것 같으니....... 그래, 하지만 이제라도 네가 나에게 와주었으니 이는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구나. 내 그 일로 앞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 같았었느니라."
왕자안은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왕천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사실 네가 죄송 할 것은 전혀 없다. 모두가 다 나의 불찰로 인해서 빛어진 일이었지. 운생이 그 아니는 사실 매우 착한 아이었는데..... 당시에 내가 좀 더 융통성 있게 대해주었다면 그런 불상사는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도 그렇게 심하게 고생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아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실로 유감이 많이 있구나."
왕천기는 친손자를 대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과거의 둘째아들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더욱 감정이 깊어 보였다. 왕자안은 말했다.
"선친께서는 돌아가실 무렵에 전혀 그런 일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고 다만 조부님께 죄송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왕천기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픈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두도록 하자. 그런 얘기는 이미 끝난 것인데 이제와서 계속해서 무슨 득이 있겠느냐? 그건 그렇고.... 내가 근래에 듣자하니 너는 이미 무공을 배워서 한 문파를 개파 했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느냐?"
왕자안은 대답했다.
"저는 다만 내려오던 문파를 계승한 것입니다."
왕천기는 고개를 끄떡였다.
"음, 그래...... 그렇다면 저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너의 문하생들이냐"
왕천기는 기실 일파의 방주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허술한 듯 해도 실상은 매사에 허술하게 행동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거의 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미 왕자안의 일행인 그 세 명의 사람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는 상관 남매의 무공은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했지만 한쪽에 서 있는 독고상에 대해서는 일순 놀라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음! 전신에서 무형지기가 발산되고 있다니..... 그렇다면 저 사람의 무공이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말인데, 대체 안아의 사문이 어떤 곳이길래 저와 같은 고수가 있다는 말인가?)
왕천기의 안목이 비록 놀라운 것이기는 해도 그 역시 왕자안이 어떤 무공을 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기실, 천하의 사람들 가운데서 무공을 익혀도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다.
그것은 선천적인 경우가 있고 또한 후천적인 경우가 있다. 선천적인 경우에는 특별한 신체를 타고 났기 때문에 무공의 흔적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 것이고, 후천적인 경우는 그런 무학을 배웠을 때에 한하는 것이다.
왕자안은 담담하게 미소하며 대답했다.
"여기에 있는 엽아는 저의 문하이옵고 이 사람은 저의 사형제이며, 그리고
이 상관낭자는 엽아의 친누이옵니다."
왕천기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음, 그랬었구나."
실로 그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속을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는 비록 내심으로는 독고상의 무공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상관엽은 이때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이윽고 앞으로 나서서 공손하게 왕천기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방. 방주님을 뵈옵니다."
왕천기는 이에 담담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뜩였다.
"그래. 과연 총명하게 생겼구나."
상관엽은 그 얘기를 듣고 나자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기실, 그런 얘기는 그가 자라오면서 늘상 들어오던 것이었는데 요사이 들어서는 자신이 한심스러운 때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러던 것을 사부의 친조부께서 그렇게 인정하는 말씀을 해주자 그는 일순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상관엽이 얼굴을 가득하게 붉히고서 옆으로 물러서자 왕천기는 다시 한 번 그 일행을 찬찬하게 둘러보더니, 이윽고 왕자안을 향해 말했다.
"너는 어렸을 적붜 눈빛이 아주 맑은 편이었지. 당시에는 그다지 유의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네가 좋은 사람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나니 나로선 더 이상 고마울 것이 없구나."
왕자안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송구스러운 말씀이옵니다."
왕천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이미 너의 백부에게서 네가 개방의 어떤 직책도 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긴 네가 개방의 백의제자의 신분이지만 원래는 개방의 사람이 아니기도 한 것이니 앞으로 너의 생각대로 이곳에서 행동해도 좋다."
왕자안은 왕천기가 자신에게 최대의 융통성을 발휘해서 이곳에 머물게 하려는 것을 알고는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고맙습니다. 조부님!"
왕천기는 잠시 왕자안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어 다시 물었다.
"듣자니 네가 강호의 일에 관심이 있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냐? 사실 나는 이미 삼성맹에서 논의를 마치고서 내일 바로 그곳으로 떠날 생각인데, 너도 우리의 일행과 합류할 생각이 있으냐? 음, 거기에서 너의 증조부님을 뵙게 될 수도 있겠고 말이다."
왕자안은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상관엽은 내심으로 곰곰이 생각을 굴리고 있었는데 문득 상황을 보고는 내심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어째서 사부님이 예상하셨던 그대로 일이 되어 가는 것이지? 사부님께서도 앞으로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우리 사부님은 앞일을 꿰뚫어 보시는 신안이라도 거지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왕자안 일행이 개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내 개방의 사람들이 삼성맹으로 출동하게 되었다고 하는것은 확실히 뜻밖의 일이었다. 왕천기는 왕자안이 즉시 대답하자 상당히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좋다! 그렇다면 너는 오늘밤은 이곳에서 묵고 내일 아침에 우리와 합류하도록 해라."
왕자안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왕천기는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인 백결개 왕룡생을 돌아보면서 입으 열어 물었다.
"얘야. 너는 저 아이에게 달리 뭐라고 할 말이 없으냐?"
백결개 왕룡생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한 다음에 이윽고 왕자안을 향해 의미 깊은 시선으로 이렇게 말했다.
"얘야. 나는 네가 돌아와서 매우 기뻐하고 있던 중이다."
왕자안은 이에 웃으며 마주 입을 열었다.
"저도 백부님을 뵙게 되어서 기쁩니다."
왕천기는 그들이 서로 사이좋게 대하는 것을 보고는 기분이 아주 흡족해져서 말했다.
"좋다. 그럼 안아는 그만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가 쉬도록 해라. 내일 출발해야 하니 편하게 쉬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이미 쉴 장소는 마련해 놓았느니라."
왕자안은 이에 작별을 고했다.
"그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