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모 토요칼럼 2025.9.6)
☆제2부 대통령 박정희와 인간 박정희
(다섯째) 인간 박정희는 청렴결백이 몸이 베였다
70년대 초 한국의 M16소총 생산공장 건설에 면허( Licence)를 제공한 미국의 맥도널드 더글라스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하고 공장건설에 대한 감사표시로
1백만 불을 내놨다.
박대통령은 백만 불을 손에 쥐고 "이 돈은 이제 내 돈이 되었으니 내 마음대로 쓰겠소." "이 돈으로 M16을 대가로 보내주시오. 우리
국군 장병에 주겠소."
이일화는 박대통령 당시 홍보수석 김성환의 자서전에 실렸다고 거짓말한 것이다. 자서전도 사봤다.
이일화는 실화가 아니다. M16 소총 License를 제공한 회사는 "더글러스"사가 아니고 "Colt"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2천년대 떠돌아다녔던 글로 박정희 재단 김정렴 이사장이 필자에게 보여 주셨던 에피소드로 잊어버릴 수 없는 미담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청렴함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70년대 초에 M16 생산을 위한 국방부 조병창이 건설되었는데 이 M16 국방부 조병창도 박정희의 작품이다.
미국의 소총은 한국의 625 동란이래 M1, 칼빈이었다가 월남전을 계기로 M16으로 대체되었다.
한국군도 60만 대군을 순차적으로 M16 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었다.
68년 한미간에 M16 소총 60만정 생산을 위하여 FMS 사업으로 추진키로 하여 71년 13일에야 계약 체결하고 73년 1월에 준공하여 74.1월부터 한국군에 M16을 생산 공급하기 시작했다.
건설 생산 방식은 면허 생산으로 하여 기본설계만을 받고 자체적으로 상세설계 후 기자재 구입, 공장건설, 시운전 그리고 정상운전은 한국의 기계기술자의 몫이었다.
M16 60만정 생산후 Colt사와의 면허생산계약도 끝나서 국방부조병창도 민영화하기로 결정하여 풍산금속이 잠깐 인수하였다가
대우정밀이 인수 운영하여 발전시켰다. 대우 계열사가 많은 미래사업 개척에 공헌하였다
(여담이지만 지금의 한화 오션의 전신이 대우 옥포 조선이다. 박정희의 조선은 3대 재벌에 대규모 조선소 하나씩을 맡긴 것이다.)
이리하여 현역군이 보유하고 있던 M1과 칼빈은 예비군 무기고에 송달되었다.
M16 공장은 발전을 거듭하여 한국의 소총, 저격총, 기관총 기관단총등 소화기 분야 총기 개발은 모두 ADD와 협조하여 세계 일류의 첨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강영택 비서관의 부단장시의 경험대담)
박정희 대통령의 해외도피 비자금 보유설에 대한 스토리이다.
모 지상 방송사로 부터 중화학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들왔다.
중화학이 괄시 받을 때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두말할 것 없이 즉석 인터뷰에 응했다
(중략)
중화학을 위한 합작회사는 3:7제 원칙하에 30%는 자기 자금, 70%는 차관을 하여 외자를 도입하는 것을 윈칙으로 하였다고 설명했다
방송 대담자는 소리 질러 말했다.
차관분 70%의 송금 금액에 대하여 이후락 중정부장이 5%를 징수 하여 이를 외국에 송금하여 박대통령의 비자금용으로 도피시켜 뒀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미국 상원에서 James Report에 실려 보고 됐다는 엄청난 협박식 발언이었다.
5 % 징수를 증언하라는 것은 너무나 당돌한 것이어서 놀래서 인터뷰를 무효로 한다고 하고 쫓아 내보냈다.
몇 개월 후에 필자의 증언 없이 증인으로 삼아 특종으로 저녁 시간에 방영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믿을 거리가 못되었는지 특종 뉴스가 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이 사실을 가족한테만 실토 하였다. 고발할 생각도 했지만 뒤가 무서워하지를 못했다. 증거물로 사진 한 장은 가지고 있다.
제가 이때문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지금도 치가 떨린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유물실에 가면 너절한 옷가지와 고물 라디오가 전시되고 있다. 장기 집권자의 유물실로서는 너무나 초라한 것이었다.
<여섯째> 공부하는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정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소상히 얇고 있었다.
장기 집권해서가 아니라 항상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를 보면 역사관이 뚜렷했으며 국가의 선진화 구상에 정력을 쏟아붓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후 집무실 제일 먼저 들어간 오원철 수석이 서재 책상 위에 두 권의 책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경제 2가 작성한 "임시행정수도 건설"과 "2천 년대 국토구상" 공판서적이었다고 했다.
<박정희의 유비무환과
부국강병>
유비무환과 부국 강병은 박정희 대통령의 국정수행 철학으로서 많은 휘호를 써주신 것이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것이 방위산업 육성으로서 이것은 자유민주 국가로서 평화를 수호하겠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안보철학의 발로인 것이다.
박정희는 70년초 국방부 초도순시와 10월 국군의 날 유시에서 남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방위산업 육성을 제창하시고 EPB에 1년의 기간을 주고 육성계획서를 작성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국방부는 언제나 당장 급한 항공기와 야포를 수입하여 대처하는 임시방편책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안목에 의한 방위산업 육성을 발의한 것이다.
생산 없는 수입은 영원한 수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입할 국고에 돈도 없었고 한미 방위조약에 의거 마음대로 수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오원철 광공전 차관보가 건의한 돈이 안 들어가는 방법으로 방산에 착수한다고 하니까 기천만불이 들어가는 계획서를 만든 경제기획원(EPB)이 이번엔 돈 많이 들어간다고 반대하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박정희의 방위산업은 그가 항상 그리고 있던 구상대로 유비무환 부국 강병 철학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를 창조하여 선진국을 건설하는 길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의 선진국 건설 비전으로 73년에 중학선언을 선포하셨다.
70년대 10년간의 정부계획 53억불 목표에 대하여 중화학은 200억 불을 달성하여 이것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기적을 낳았다.
2025년 광복 80주년
그리고 중화학 52 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은 동방 예의지국의 빈곤국가 500백 년 조선조 왕국을 2024년 말 현재 박정희 대통령의 비전으로 6천8백억 달러 수출을 하는 부국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박정희 대퉁령 기념관 초기 전시실에는 유비무환, 부국강병실을 만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의 그림을 그리시고 있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사진만이 있는 명상의 방도 있었다.
<> 이재명 대통령에게 바람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MAGA 모자 대신 MASGA 깃발을 들고 가서 맞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 덕분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미국을 예방하기 전에 먼저 일본을 들어 한일회담을 한 것도 박정희 대통령이 61년에 미국의 케네디 대동령을 만나기 전에 일본의 이케다 수상을 먼저 만났다.
매스컴은 한미정상 회담 성과는 위험고비를 잘 넘겼다고 평가했다.
Trump의 관세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은 앞으로 4천억 불에 달하는 투지펀드도 조성해야 한다. 이 액수는 한국의 외환 보유 불 액수와 같은 수준의 금액이다
한미정상 회담의 결과 한국은 주도 품목인 반도체를 제외하고 자동차와 제조공업의 2대 지주인 철강(비철 금속포함) 공업과 석유화학 공업은 사상 최대의 난국을 맞이했다.
이러한 난국에 박정희 대통령이 국운을 걸고 육성한 방위산업이 유럽 선진국 시장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50여 년간을 발전시켜온 원전기술은 탈원전으로 고사상태에 빠져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