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과 서귀포 앞바다 그 사이에 위치한 중문관광단지에서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했다. 시국이 시국인지 한창 맑다 급작스레 비가 쏟아져서 그런지 사람으로 가득 찼던 이곳은 오랜만에 적막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흐린 날씨에도 아름다운 자태를 내게 안겨 주었고, 예로부터 아름다운 땅이라 불리는 곳 '여미지' 로의 가는 발걸음에 기대감을 한층 더 활기차게 만들어 줬다.
입장권을 구매한 뒤 여미지 식물원 내부로 들어가니 한창 비가 온 뒤라 분위기는 스산했고, 내 눈을 사로잡은 거네 실내 식물원과 전망대와 식물원 전반에서 스산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안으로 바로 들어가기 전 식물원의 전반적인 구조를 담은 거대한 지도를 보며 어떻게 돌아볼지를 생각한 후 1989년 이곳을 나보다 일찍 찾았었던 부모님의 신혼여행 당시를 상상하며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1. 방대한 규모의 내부 식물원
성인 기준 10,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내부로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방대한 내부 식물원의 크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통제된 공간들도 존재해 구석구석 돌아보기 위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겠구나 싶었지만 한창 청소 중이던 구간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오니 작가 분들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작품들과 곳곳에 수국들이 식재되어 있었다. 화사한 분위기와 더불어 잘 가꿔진 공간이어서 일까? 개장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간처럼 다가왔고, 연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세히 돌아보지 않아도 사람들의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작가님들의 수려한 작품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면 보통 시계 방향으로 식물원을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이 돼 있었다. 하지만 사람도 많이 없었고 여미지 식물원 구석구석을 나름의 방법으로 돌아보고자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본 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는 가장 마지막에 돌아보기로 결정한 채 가장 오른쪽에 자리한 '열대 과수원' 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열대과수원의 경우 한반도에서 보기 힘든 나무들과 그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들을 아크릴박스에 따로 전시해 뒀고, 벤치 위에 설치한 오랑우탕(?)이 마련돼 있었다. 제주도 공항에 처음 도착 했을 때 만났던 그 야자나무와는 또 다른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처음 보며 생전 처음 보는 식물들이 있는 이 공간을 전세라도 낸 듯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아크릴 박스 안에 전시된 열매들을 검색창을 활용해 지식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문득 이 공간의 현장감을 부가시키도록 곳곳에 스피커를 비치해 잔잔하게 현장의 녹음된 소리를 깔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문득 해보게 됐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 공간의 구성이 너무 좋아 아름다운 순간만을 담을 생각으로 왔던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생소한 지식들도 탐닉하며 알차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열대과수원 공간을 나와 그다음, 바로 옆에 위치한 열대 정원으로 지체 없이 들어갔다. 습했던 날씨에 왠지 모를 더운 공기가 몸을 감싸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간 곳곳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가로막을 정도로 우거진 풀 숲들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끝 부분에 조성된 연못에는 얼핏 봤을 때 아름답게 보이는 식물 위의 영롱한 빛깔을 맘껏 뽐내는 꽃 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그 옆에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와 실제 물고기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어 현장감을 더 했다.
잠시 공간에 머물러 사진을 담기도 좋았고, 5월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장미처럼 아름다움에 사로 잡혀 주변의 위협을 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듯 한 그 구성이 돗 보이는 공간이었다. 덩달아 주변을 바삐 뛰어다니며 부모님에게 어디선가 책에서 마주했던 식물들을 봤다고 기쁜 마음 한 가득 담아 소리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주변 분위기를 한껏 밝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연이어 바로 옆으론 다양한 종류의 선인장들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선인장 정원'이 자리해 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공간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높낮이와 같은 듯 다른 색감을 간직한 선인장들과 더불어 그 주변 환경을 말해주는 듯 한 사막의 황색까지 덕분에 실감 나는 사진들을 담을 수 있어 앞에 두 공간들 보다 좀 더 오래 머무른 채 다양한 각도에서 공간을 색다르게 담을 수 있었다.
마지막 사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다양한 선인장 주변의 '여미지'라는 단어와 이곳을 나서는 길목에 위치한 포토 스폿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증숏을 담고 있었다. 더불어 지난 인도 여행 때 실제 사막에서 봤던 선인장의 모습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비교 분석을 해 봤지만 역시 지금껏 살면서 아직도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하루빨리 하늘길이 열렸으면 하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후덥지근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좀 시원한 느낌을 한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선인장 정원 바로 옆에 위치한 '물의 정원'에서는 인공 연못들 사이사이로 다양하게 연결돼 있는 다리를 거닐며 곳곳에 활짝 핀 꽃들과 녹음 짙은 나무들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황량한 공간 바로 다음으로 들리는 물소리가,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무척 반가웠다.
더불어 인공연못 사이로 활짝 핀 꽃 들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공간에 수려함을 선사해 줬고, 잔잔한 연못에 비춘 반영은 이곳에 뛰노는 개구리 한 마리만 있었다면 생동감이 넘쳤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마치 부여 궁남지에서 느꼈던 생각과 감정이 절로 느껴질 정도로 자연과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들의 세심한 손길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내부 식물원의 하이라이트 '꽃의 정원'에 들어섰을 때 감탄사와 절로 나올 정도로 이곳에 식재 된 나무들과 꽃들의 색감이 너무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시간에 맞춰 물줄기를 내 뿜는 인공분수 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실시간으로 내게 선물해 줬다.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어지러우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불어 꽃의 정원 마지막 부분에 마련된 공간에 화사한 베고니아와 높은 온실 천장 아래로 덩굴식물들이 훌륭하게 내부 커튼 역할을 해주고 있었고 주변의 화사한 색감들과 잘 어우러지며 무슨 일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듯 한 분위기도 함께 가져다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땅이라 불리는 이곳 '여미지'에서 아름다운 분위기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2. 동, 서양을 간접 체험 하다 '옥외 식물원'
그렇게 한참을 내부 식물원을 구경한 뒤 옥외 식물원을 구경하기 위해 여미지 식물원 가장자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각 시기 별로 벚꽃, 허브원 등 다양한 꽃과 식물들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그 수려하면서도 화려한 모습들을 눈에 담을 수 없었기에 주로 각 국가들 별 콘셉트를 담은 정원들 주변을 거닐며 옥외 식물원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옥내 식물원 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정원은 '일본 정원' 이었다. 빨간 다리와 정갈하게 갖춰진 자갈과 그리고 일본식 건축물은 일본의 명물 '금각사'를 본 따 만든 듯 해 보였고, 특징을 정말 잘 살려 반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불어 진달래와 조팝나무, 연못 아래론 수 많은 비단잉어 떼를 어렴풋이 만나 볼 수 있어 일본을 한 번도 다녀오진 않았지만 익숙해 지는 듯 한 느낌을 만끽한 채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정원은 '한국 정원'이다. 이 공간을 조성한 사람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로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특징은 물론이거니와 경복궁 교태전 뒤뜰에 위치한 '아미산 굴뚝' 그리고 창덕궁 정원의 형태를 잘 조합해 공간에 한 폭의 작품을 창조해 냈다. 실제로 연못의 모양은 한반도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창덕궁 뒤뜰에 있을 법 한 정원의 형태 또한 주변의 녹음과 잘 어우러져 자동적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어 줬다.
한국정원과 일본 정원 구획을 지나 아래로 내려오니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을 확인하고 절로 소리를 지를 만큼 리틀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분수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아래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문양이 초입부터 새겨져 있었고 유럽 여행을 했을 당시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안 그래도 들떠 있던 기분이 대기권을 뚫고 우주 밖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탈리아 정원의 경우 로마 근교의 정원 '빌라 데스테'의 오비토 분수를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유럽 여행을 할 당시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도 손꼽힐 정도로 이탈리아는 인기 여행지 지만 '빌라 데스테'는 로마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찾지 않아 블로그나 유튜브에서도 정보를 드문드문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트레비 분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세심하게 잘 다듬어진 조각들이 분수 주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줬고 단순하게 조각 한 개뿐이었지만 넋을 놓고 바라만 봐도 너무 좋았다.
바로 아래 자리한 '프랑스 정원'은 오래전 파리를 여행했을 당시 겨울에 찾았던 베르사유 궁전이 절로 생각이 날 정도로 부르봉 왕가의 문양과 더불어 치명적인 절제력이 곳곳에 묻어 있어 금방이라도 거울의 방에 들어가 아름다운 순간의 사진들을 마음껏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잠시 유럽을 재밌게 돌았었던 2015년으로 돌아가 본다. 여미지 식물원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잠시나마 추억의 순간에 잠겨 미소를 한껏 머금었던 그 순간들을 탐닉해 본다.
3. 향수, 그리고 풍성했던 순간
이탈리아와 프랑스 정원에서 젖어 있었던 향수의 순간들을 뒤로한 채 여미지 식물원에서 가장 높은 곳인 전망대에 올라 이곳에서의 순간을 마무리해 본다. 날씨가 좋았다면 저 멀리 마라도 그리고 한라산 주변을 통창을 통해 눈에 담을 수 있었겠지만 전망대 위에 달린 형형색색의 우산들을 활용해 사진을 담은 후 아무도 없었던 그 공간에서 평상에 누워 피로에 지친 육신을 달랬다.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을 찾으며 천천히 곱씹던 순간들부터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공간들 까지 이 아름다운 땅에서의 순간들을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기가 전혀 통하질 않아 전망대의 온도는 찜통 수준으로 치솟고 있었기 때문에 이마와 턱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그것들이 사색의 순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수국을 생각하며 내려왔던 이곳에서의 여정은 뜻 하지 않은 감동들과 부모님의 신혼여행의 기억들까지 더해지며 더욱 가치 있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고 혼자서 곳곳을 다니고 있었지만 주변에 누군가가 함께 하는 듯 한 꽉 찬 기분과 벅찬 감동은 적당한 표현을 찾기 힘들 만큼 너무 좋았다. 앞으로의 기대감과 희망도 가득 담은 채 여행기를 작성하던 이 순간 여미지에서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절로 나를 미소 짓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