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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세우죠. 건물을 세우고 집을 세우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 기초입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고 하더라도 기초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면 때가 되면 그 세운 집이 세운 건물이 무너지게 돼 있어요.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 인생에 비추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석 바위 위에 세워진 집, 모래 위에 세워진 집 말씀을 하셨고,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비가 오고 장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든든히 서 있는 집이고,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고 비가 오면 넘어진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그때 말씀하시는 바위는 무엇이고 모래는 무엇이냐 그때 말씀하신 바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 행하는 것, 그리고 모래는 듣고 행하지 않는 것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차이가 뭐예요? 듣는 거는 공통입니다. 하나는 듣고 행하는 것, 다른 하나는 듣고 행하지 않는 것. 여러분은 모두 다 말씀을 듣고 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복된 사람 인생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서는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말이 있어요.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라는 말이 있죠. 그리스도의 초보적인 가르침,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예로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죽은 행실들에 대한 회개, 그러니까 죄악된 죄에 대한 회개를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 죽은 자들의 부활, 영원한 심판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세요.
이들은 여기에서 언급되는 거는 세례 때 우리가 세례 받을 때 확인하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입니다. 기본이지만 그 위에 인생을 세울, 인생의 제집을 세울 아주 중요한 것이에요. 회개와 믿음, 부활과 심판 이 부분에서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어려울 때 힘들 때 뜻대로 안 될 때 믿음이 약해지고 교회도 떠나기 쉽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기초가 출발이 시작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전하고 본문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에요. 기초가 중요한데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기초가 전부가 아니다. 파운데이션이 전부가 아니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버리라 하는 말씀 있죠. 버리라 그리스도의 도에 초보를 버리고 할 때 버리라.
이 버리라는 것은 모든 것을 배운 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라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제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떠난다는 뜻이에요. 기초는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의 시작일 뿐이지 그래서 기초 그래서 초보 그래서 파운데이션이라고 하는 겁니다.
학교 공부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무슨 과목이든지 기초가 중요하죠. 그런데 그 기초는 앞으로 있을 긴 여정의 시작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수학을 좋아해요. 수학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죠. 언어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과학도 그렇고 외국어도 다 그렇습니다. 모두 기초가 있어요. 초등 한국말로 하면 초등 과정, 중등 과정, 고등 과정 그리고 대학 이렇게 여정이 있는 것이오.
제가 지금까지 한 내용을 말하려고 한 내용을 우리가 한국말로 해 성인과 어른이라는 말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성인이라는 말 알죠? 세인트 말고 어덜트라는 성인 그리고 어른 이거는 영어로 번역하면 또 배덜트예요. 그러니까 성인과 어른은 영어의 한 단어로만 번역이 돼요. 그래서 어른은 성인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되냐면 제가 한번 해봤어요. 번역기에 돌려보니까 돌 돌 이렇게 나오더라고 그러니까 영어에도 우리 말에는 하나뿐이지만 두 단어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가 믿음이라고 할 때 믿음은 하나죠. 근데 영어는 빌레이프가 있고 페이스가 있어요. 근데 반대의 경우처럼 여기서 어른 성인 이거를 한국말에서는 말도 두 개이고 뜻하는 의미도 두 개다.
성인은 뭘까요? 성인이라고 하면 이 엄마 뱃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몸이 다 자라서 어른이 성숙함에 이르렀다는 거예요. 우리의 바깥 뼈도 피부도 근육도 속의 장기도 이제는 다 자라서 어른의 것과 똑같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축하하는 것이 나라마다 있는데 민족마다 있는데 성인식이라고 하죠. 민족마다 이 성인식을 치료는 나이가 다르고 방식이 달라요.
그런데 공통적인 의미가 두 개가 있습니다. 성인식이라고 하는 것 성인식 알죠? 성년이 되었음을 이제 축하하는 이 성인식에 담겨 있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이제 몸이 성인이 되었다 하는 것을 축하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동안 이제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할 수 있어요. 투표도 할 수 있고 취업도 할 수 있고 대학도 갈 수 있고 연애도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된 측면을 축하하는 거예요.
그게 하나라면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몸이 이제 어른처럼 성년이 된 것처럼 이 내면에 있어서도 성숙해야 한다는 기대감입니다. 그 기대에 맞춰가는 것을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간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어쩌면 어른은 어린이부터 시작되지만 성인이 됨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이 성인이라는 뜻이 있지만 그에 더해서 나이에 맞게 행한다는 기대가 담겨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른은 성인이지만 모든 성인이 다 어른인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한국말로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 시대 어른을 대표하는 분이라는 분이 있대요. 시인인데 나태주 시인이 있습니다. 이분이 한 말이 한 이 중에 이런 말이 있는데 여러분들 화면을 보시고 저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청소년들도 잘 따라올 수 있기를 바라는데 아이들을 만나서 어려운 점, 괴로운 점, 그늘진 점을 봐요.
겉으로는 멀쩡하고 좋아 보이는 청춘들도 소통을 해보면 문제가 있어요. 결혼이 싫은 여성, 학교가 힘든 선생님, 취업이 힘든 청년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주려 노력하고 있죠.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을 나무라지 않고 기다려주고 도움 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낳아주고 길러주는 것만으로 부모 노릇이 끝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져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해요. 어른이 됐다는 건 졌다는 것이니까요.
어른이 됐다는 것은 졌다는 것 이 말에 동의할 수도 있겠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서 말하는 어른은 단순히 성인이 아니다. 성인과 어른은 분명히 다르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어른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 어린 사람들 어린이들이 청년들의 그 어려움 괴로움을 이해하고 자기가 지더라도 자기가 지더라도 손해 보더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을 한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한다는 것이에요.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여기서만 보면 어른이니까 그렇게 해야 돼요. 근데 그렇게 대답을 해보면 좀 이상하게 돼요. 그렇게 하는 이유가 어른이에요. 어른이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 좀 어려울 수가 있는데, 그 질문에 왜 어른이면 그렇게 해야 되는가 하는 질문에 이 세상에서는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분명한 답이 있어요.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이런 어른의 길을 우리는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죠. 성인이 되어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 중요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바, 내가 뜻하는 바,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어른이 아니라 그냥 성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런 성인들 중에는 성인 아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성인 아이라는 사람으로고 부를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안에서 발견되는 부족한 부분을 위해서 노력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른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길은 쉽지가 않아요.
청소년 여러분 우리 저기 어린이들 어른이 빨리 되고 싶은 경우도 있죠. 성인은 빨리 될 수 있지만 어른은 빨리 될 수도 없고 어른이 되는 길은 쉽지도 않다.
한 부분만이 아니고 몸만 잘하는 것이 아니고 또 머리만 자라는 게 아니고 어른이 되려면 속 사람이 있는 모든 부부들이 골고루 조화롭게 잘 자라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생각은 잘해도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인생이 어렵게 될 수가 있는 거고, 생각도 잘하고 감정 조절도 잘하는데, 자기 말과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나쁘면 그러면 함께 살기가 참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복음 쪽으로 생각하면 어떤 부분이 좀 미숙한 것, 어떤 부분이 좀 부족한 것, 모자란 것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 중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부족한 부분이 다 있습니다. 모자란 부분이 있어요. 발전하지 못한 성숙하지 못한 부분들이 다 있어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에요. 복음은 복음의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아셔요.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받은 것, 그 큰 은혜를 받은 것 그것은 우리가 흠 없이 완벽하기 때문에 잘났기 때문에 뭐를 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족한 거 모자란 것 심지어는 죄를 범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그 큰 은혜를 베푸셨다 하는 것이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완벽함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을 알아요. 인정해요. 그리고 그에게 그에 맞춥니다. 자신을 제대로 보려고 하고 먼저 자기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고치려고 하는 것은 그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는 증거이고 복음의 귀한 열매가 됩니다.
괴테가 말했다고 하죠. 모두가 자신의 집 문 앞을 청소하게 합시다. 그러면 온 세상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각 사람이 남의 문제가 아니고 자기의 문제를 보고 지우면 온 세상이 훨씬 더 정리가 잘될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볼 수 있어야 돼요. 그리고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그 부분의 성숙함을 위해서 그 부분이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 문제만 보는 것 다른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것, 이거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모두 내던져버린 옛 사람의 악습이라는 것이에요.
제가 지난주 어느 날에 집에서 이제 역으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이거는 AI로 그려보라고 최대한 노력했는데 최대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래도 얻은 최고의 작품입니다. 제가 이렇게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뒤에는 이제 여자 청년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평소보다 좀 걸음을 빠르게 걸어갔는데도 이 거리가 계속 유지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굉장히 늦게 걷는다는 거겠죠. 그래서 뒤에서 하는 대화 내용이 거의 다 들렸습니다.
그가 친구하고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자기 엄마 아빠에 대해서 말을 하는 거예요. 부모님은 그를 걱정해서 이런저런 말을 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엄마 아빠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정도 내용을 가지고 내가 이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평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에 대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 계기로 삼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거나 낮게 얘기하는 것이 있어요. 친구 관계를 위해서 자기 부모님들을 희생시키는 거죠. 자기 부모님들이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거 또 사람 관계를 위해서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고 저 사람한테 가서는 이 사람한테에 대해서 나쁘게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나쁘게 말하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나쁘게 말하면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 밖에 많이 있지만 교회 안에도 있어요.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면 복음의 기초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 않았기 때문일 수 있고, 복음의 기초가 아니라 다른 파운데이션 위에 그 인생이 세워지고 있는 경우 있을 수 있고 아니면 그 파운데이션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기초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외에 다른 것 아무리 많이 화려하게 세운다고 하더라도 때가 되면 그 집은 무너져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기초 위에 하나님이 놓아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놓아주신 기초가 아니고 다른 기초 위에서였다. 그러면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이 세상의 성공 사람들의 인정조차도 다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기초에만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아예 집을 세울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경우들이 나에게 해당되는지 잘 살펴보고, 그리고 그거에 대하여 지금 주어진 이유가 나에게 적용이 되는지도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그리고 우리 청소년 어린이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죠. 외롭고 슬플 때가 있죠. 정말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마음이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참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많은 경우가 우리들 중에는 분명히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울고 싶은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겁니다. 육체가 원하는 것, 사탄이 밀어가는 것 있을 것인데, 그러한 때에 그냥 잠시 멈춰서서 서두르지 말고 기도하면서 잘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정말로 누군가를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라도 탓하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잘못된 옳은 길이 아니고 아무 유익도 없고 결국은 인생을 망치는 나쁜 습관이 될 수가 있다. 어른이 되어서 죽을 때까지 남의 탓만 하다가 사는 그런 인생 습관이 될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쫓아 행하는 우리는 어렵고 힘든 때를 지날 때에 어떻게 한다고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자신의 신앙을 찾아보고 확인해 보고, 그리스도와 더욱더 정말 어른이신 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더욱더 가까워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세워진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고 하나님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아갈지니라 고 투 트 아니면 퍼펙션 나아갈지니라 이거는 평생에 이어질 인생의 여정입니다. 한순간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나아갑니다. 이 인생의 목표는 우리가 정하고 우리가 맞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이에요.
그 목표가 뭡니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세요.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도 우습게 여기고 지금 이런 말도 우습게 여기지만 여러분 똑똑하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이 땅에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러면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참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 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여러 단계가 있고 그리고 각 단계마다 통과해야 될 장애물 어려움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혼자가 아니에요. 먼저 가신 주님이 계시고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절대로 믿음의 눈으로 보면 여러분 앞에 가신 주님이 계시고 여러분은 이끄시고 힘 주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이 함께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완전한 때 그곳에 이를 때까지 여러분 저 우리 모두가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