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8-15 8 즉경即景 보이는 경치 그대로 15 효망曉望 새벽에 바라보고
조등서산정朝登西山亭 아침에 서산 정자에 올라가 보니
천촌연멱멱千村煙冪冪 온갖 마을에 연기 자욱이 덮혔네.
강수징차명江水澄且明 강물은 맑고 또 밝은데
범범주일엽泛泛舟一葉 둥실둥실 배 한 척이 떠서 있구나.
원산점가수遠山點可數 먼 산이 몇 점인지 셀 수 있고
경비제구학輕霏霽丘壑 가랑비는 언덕에 활짝 갰네.
인억방덕공因憶龐德公 인해서 방덕공이 생각이 남은
록문채령약鹿門采靈藥 녹문鹿門에서 영험 있는 약을 캠이라.
우인여가잉羽人如可仍 신선을 따를 수 있다면
오장방명악吾將訪名岳 내 장차 이름난 산 찾아가리라.
►‘덮을 멱冪’ 뒤집어쓰다. 바르다, 흙손질을 하다
►범범泛泛 표류하는 모양. 평범하다. 일반적이다. (교제가) 깊지 못하다.
►‘눈 펄펄 내릴 비霏’ 오다. 올라가다
►‘비 갤 제霽’ 비가 개다. 비가 그치다. 노여움 풀리다
►구학丘壑 언덕과 구렁.
►방덕공龐德公(?-?)
자는 자어子魚. 상장尙長이고 양양襄陽(湖北성 샹양시) 출신.
한말漢末에 세상이 극도로 어지러워지자 재주 있고 똑똑한 선비는 모두
조조曹燥와 손권孫權에게 붙어 공을 세우려 했지만
탁월한 재주와 큰 인격을 갖춘 방덕공은 형주荆州 땅에서 처자와 농사지으며 겨우 살아갔다.
형주의 실력자 유표劉表가 나오기를 권했으나 듣지 않고 농사로 여생을 보내니
高士라 하여 이름이 높았다.
녹문鹿門은 산 이름인데 그 아래서 방덕공이 살았다.
일찍이 양양 일대에 은거하던 사마휘, 제갈량, 방통, 서서 등의
인재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세상사를 토론했다.
사마휘는 방덕공보다 10살 아래였는데 방덕공을 늘 방공龐公이라고 불렀는데
‘방공’이란 호칭이 여기서 나왔다.
방덕공은 제갈량을 와룡臥龍, 방통을 봉추鳳雛, 사마휘를 수경水鏡이라고 불렀다.
제갈량은 그를 매우 존경하여 스승으로 예우했고 자주 인사하러 왔고
방문할 때면 침상 아래에서 절을 했다.
이후 방덕공은 점차 제갈량을 주목하고 그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방통은 원래 방덕공의 시종이었다.
그는 나이가 어렸지만 순박하고 정성스러웠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몰랐지만
방덕공은 방통을 중시했고 나중에는 사마휘에게 그를 추천했다.
사마휘는 방통과 대화를 나눈 후 크게 탄복한 적이 많았다.
형주荊州(후베이성 징저우) 자사로 있던 유표(142-208)가
여러 차례 방덕공을 초청했으나 응하지 않자 유표가 직접 그를 찾아와
“당신은 자기 몸 하나는 보전하면서 어째서 천하는 보전하지 않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이에 방덕공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큰 기러기는 높은 나무에 집을 짓고 살지만 저녁이면 그곳이 쉴 곳이 되고
큰 거북은 깊은 연못 아래에 구멍을 내지만 역시 저녁이면 그곳에서 쉽니다.
사람의 취사선택과 행동거지도 그 사람의 둥지에 한정될 뿐이며
만물도 각자 쉴 곳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천하는 내가 보전하고 말 것이 아닙니다.”
이후 그는 녹문산에 은거하며 약초를 캐면서 생을 마감했다./네이버 지식백과
●효망曉望 새벽에 바라보다/박은朴誾(1479-1504)
효망성수해曉望星垂海 새벽에 바라보니 별이 바다로 떨어지고
루고한습인樓高寒襲仁 다락은 높아 찬 기운 엄습하고
건곤신외대乾坤身外大 몸 밖으로 천지는 거대하고
고각좌래빈高角坐來頻 앉아 있어도 자주 들리는 북 피리 소리
원수간여무遠岫看如霧 먼 산을 바라보면 안개 낀 것 같고
훤금각이춘喧禽覺已春 시끄러운 새 소리에 이미 봄임을 알겠구나
숙성응자해宿醒應自解 어제 밤 숙취 이제 풀어야 하는데
시흥만상인詩興漫相因 시의 흥취는 부질없이 수시로 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