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에 대하여
―이영숙의 『히스테리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황은주
남쪽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열차와 열차 사이에서 차량을 연결하는 관절을 목격하고 보니
이영숙 시인의 시한 편이 떠올랐다.
버스의 평균율/이영숙
관절이 없어서 나는 기차가 되지 못했다
기적 소리 대신 클랙슨
목을 쳐들어 울음을 멀리 보내는
늑대가 되지 못하고 개처럼
목전의 먹이 앞에서 컹컹 짖었다
레일이 없어서 기차가 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귀를 대고 들으면 자꾸 저편에서
후드득 자기를 뜯어 안고 달려오는 심장
그의 귀는 코너를 돌 때마다
아스팔트처럼 납작하게 지져졌다
(중략)
더럽혀지지 않으려고 주먹을 꼭 쥐고
버스가 달린다
버스는 버스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우르르 몰리는 슬픔들을 재배치한 뒤
불면의 차고지에서 조용히 시동을 끄는 것 외엔
ㅡ 시집 《히스테리 미스터리》에서
시인은 이 시에서 관절이 없어서 기차가 되지 못한 버스라는 사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버스는 단칸이므로 차량과 차량을 연결하는 고리가 없다. 기차는 기적소리를 내지만 버스는 짧은 클랙슨을 울릴 뿐이다. 기차의 기적소리를 목을 쳐들어 울음을 멀리 보내는 늑대에 비유하고, 짧게 끊어지는 버스의 클랙슨 소리를 목전의 먹이 앞에서 컹컹 짖어대는 개의 울음소리에 비유했다. 버스와 기차, 늑대와 개의 대조는 단박에 각각의 특성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레일이 없어서 기차가 되지 못한 사람'은 그 홀로 강하고도 외로울게 뻔하다. 인체의 뼈마디 사이사이의 무수한 관절들과 그 관절을 채운 연골의 작용으로 우리 몸은 크고 작은 동작들을 아무 불편 없이 할 수 있다. 얼마나 중요하고도 고마운 일인가?
정현종 시인은 그 유명한 <섬>이라는 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음을 간파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이 시에 대해 '정현종의 1978년 발표작인 이 시는 경구와 같은 짧은 시구절을 통해서 인간 관계의 소중함과 공감과 연대의 가치에 대해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한다.그로부터 40년이나 지난 후에 이영숙 시인은 <버스의 평균율>이라는 이 시에서 '관절이 없어서 기차가 되지 못'한 버스와 '목을 쳐들어 울음을 멀리 보내' 본들 '레일이 없어서 기차가 되지 못한 사람'을 노래한다.
'지구 저편에서/후드득 자기를 뜯어 안고 달려오는 심장'을 가진, 섬처럼 제각각 존재하는 인간들의 연대 방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더럽혀지지 않으려고 주먹을 꼭 쥐고'는 '버스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슬픔들을 재배치한 뒤/불면의 차고지에서 조용히 시동을 끄는' 버스는 바로 그 정현종 시인의 '섬'이자 아픈 뼈마디 사이의 연골 주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장소의 불문율
―폐가
눈 한 번 깜박거리지 않고 떠 있는
인공위성 어떤 정신이기에
명아주 열매처럼 저리 골똘한가
육신이 떠나간 자리에
다른 행성에서 떠돌던 식물성 포자들이 날아든다
그가 수집하는 기울기들의 목록
플라스틱 향기는 내내 시들지 않고
대나무가 초가지붕을 뚫고 치솟았던 오래된 풍경 하나
꼬깃꼬깃 접힌 사지를 풀고 현생과 포개진다
육신이 어디선가 잘 썩어가는 동안
기계음 가득한 허공에서
정신만 홀로 남아 빛나는
집 한 채
ㅡ 시집 《히스테리 미스터리》에서
이영숙 시인은 <장소의 불문율-폐가>라는 시에서 '눈 한 번 깜박거리지 않고 떠 있는/인공위성 어떤 정신이기에/명아주 열매처럼 저리 골똘한가' 라고 묻는다. 그리고 명아주 열매처럼 골똘한 채 떠 있는 인공위성 같은 그 존재는 '육신이 어디선가 잘 썩어가는 동안/기계음 가득한 허공에서/정신만 홀로 남아 빛나는/집 한 채'라고 답한다. 정현종 시인이 제각각 또렷이 존재하는 개별의식들의 고립을 '섬'이라고 표현했다면 이영숙 시인에게서 그것은 '명아주 열매'처럼 식물성 씨앗이거나 '폐가'처럼 덩치가 크고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 존재로 표현된다.
타인과의 소통을 넘어 연대를 거론할 수밖에 없는시대, 이영숙 시인은 일정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발아를 꿈꾸거나 증축이든 개축이든 방향을 정한 새로운 방식의 건축이 필요한 시대를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봄을 품은 태양은 좌우로 펼쳐진 논밭과 비닐하우스들과 하천과 도로와 크고 작은 건물들 위로 그 강렬한 빛을 맘껏 조사하고, 앞 차량과의 고리가 막강하게 잘 연결된 SRT차량은 튼튼한 레일 위를 부드럽고도 빠르게 달리고 있다.
―황은주 님의 페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