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가미마을은 고요하다. 물을 길러 가는 몇몇 아낙 외에는 움직임이 없다. 양들은 우리에서 자신들을 초지로 데려갈 주인을 조용히 기다린다. 동네 개들은 밤새 양들을 지키느라 고단했는지 사람 기척에도 아랑곳 않고 쿨쿨 잠을 자고 있다.
이런 고요가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의 매력이다. 이곳에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계음이 거의 없다. 물, 바람, 동물 등 자연의 소리에 젖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호흡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고요하면 깊은 곳으로 침잠할 수 있고, 깊은 곳에 가면 분별이 사라진다.
가미마을을 떠나 차랑마을(3,560m)로 향한다. 가미마을 인근에 길게 늘어선 마니스톤(불경을 새긴 돌) 무더기를 지난다. 마니스톤 오른쪽에는 일본인이 지었다는 병원이 있다. 상시 운영은 안 하고, 일 년에 두어 번 일본인 의사들이 와서 근동의 현지인들을 진료해 준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차랑, 닥마르, 가미마을이 갈라지는 교차로를 지난다. 왼편에 밀집된 커다란 초르텐 8, 9개가 여행자의 발길을 잡아끈다. 가까이는 비바람에 기묘하게 패인 절벽들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서 있고, 멀리는 설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낸다.
- ▲ 초세르마을 입구에 있는 대형 초르덴. 마을을 둘러싼 절벽에 수많은 동굴이 보인다.
- 경사지를 한동안 올라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차랑으로 가는 내리막길이다. 체력이 떨어진 스태프들은 지나가는 트랙터를 싼 가격으로 흥정해 타고 내려간다. 여기도 오가는 트레커가 제법 많다. 지프차를 이용하는 그룹이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룹도 있다.
차랑마을에 도착해 가장 큰 집에 여장을 풀었다. 가미마을에서 묵었던 로지 여주인의 여동생이다. 13년 전에 우리를 맞이했던 점잖은 주인과 그의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큰딸이 로지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해가 지자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어퍼 무스탕 지역의 기후적 특성이다. 고소가 겹치면 몸살 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얼른 다운재킷을 꺼내 껴입어야 했다.
이곳은 전기 사정이 안 좋아 솔라 시설을 이용해 간신히 불만 밝히고 지낸다. 우리가 가져간 발전기를 가동해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안나푸르나 지역에 눈사태가 발생해 많은 인원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히말라야에 눈이 내리면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겸손한 마음으로,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신중히 판단해 산행에 임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어이없이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있고,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
형제가 한 여자와 살다가 아이 낳으면 함께 양육
10월 18일. 이른 아침 차랑마을의 곰파를 방문했다. 마침 법당에서 20여 명의 라마승이 아침 기도를 하고 있다. 주지스님이 선창을 하면 따라 하면서 간간이 악기를 분다. 촬영을 청했지만 한사코 거부하여 아쉽다.
야라마을(3,650m)로 향한다. 이 지역은 현재 침식이 매우 활발해서 기묘한 형태를 띤 지형이 많다. 소장 가치가 높은 수석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칼리간다키강에서 돌을 뒤지고 있는 현지인들을 만났다. 이제는 이들도 돌이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탐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계곡에서 흙을 핥고 있는 양떼를 만났다. 이곳은 바다가 융기한 지역이라 여기저기에서 소금기가 스며 나온다. 목동은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양떼를 몰고 이곳을 찾아와 소금을 섭취시킨다고 한다.
- ▲ 차량 이동 도중 길가에서 만난 양떼.
목동은 양을 400마리쯤 기르고 있단다. 상품가치가 높은 이년생 양을 주로 다사인 축제(네팔 축제)에 맞춰 포카라로 팔러간다. 마리당 1만7,000루피(20만 원) 내외를 받는데 가끔 설표가 양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디마을의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 집의 불당이 예사롭지 않다. 불경은 800년 되었고, 탱화는 200~300년 전에 그려졌다고 한다. 그밖에도 오래된 골동품이 많다고 자랑이 늘어진다. 이 지역의 가정집은 대부분 개인 불당을 갖고 있고, 그 역사가 아주 깊다.
야라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24가구가 살고 있다. 티베트 국경까지는 걸어서 이틀 정도 걸리는데 주로 양을 사와서 기른다. 찾아오는 트레커가 많아 상당 부분 관광지화되어 있다.
우리가 묵는 로지의 젊은 새댁은 팅그리에서 시집왔다는데 놀랍게도 남편이 둘이다. 형제가 한 여자를 데리고 산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 지역의 풍습이라고 한다. 티베트 풍습과 같다. 결혼 생활을 하다가 아이를 낳으면 형제 중 누구의 자식인가는 따지지 않고 공동으로 양육한다고 한다.
형제가 한 여자를 데리고 살면 일단 집안의 재산을 나눌 필요가 없다. 또한 노동력이 많아져 그만큼 많은 수의 양을 기를 수 있다. 형제 중에 한 사람이 초지를 찾아 양떼를 몰고 멀리까지 가도 다른 형제가 집과 부인을 지킬 수 있어 안전까지 담보된다. 외부인 입장에서는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마을 여인들이 찾아와 우리 일행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준다. 공짜는 아니고 마을 발전기금을 요구한다. 주인 새댁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받아 주는데 지치지도 않고 싹싹하기 그지없다. 나중에는 두 명의 남편을 옆에 앉혀 놓고, ‘외간남자를 좋아해 집을 나간다’는 내용의 노래까지 부른다. 남편들의 표정이 변하는 데도 태연하다. 주부의 가정 내 지위가 상당히 견실해 보인다.
10월 19일. 야라마을을 뒤로하고 가라마을로 향했다. 가라마을은 2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마을 위쪽에서 가젤(노새)들이 서성이기에 올라가보니 독일팀이다. 다모다르 쿤다에 가려다가 눈이 많아 철수한다고 전한다.
야라마을에서 묵었던 로지 주인의 아버지 집을 방문했다. 이 집도 남편 둘에 아내는 하나다. 체격이 건장한 티베트계로 70대인데도 모두 정정하다. 딸 둘과 함께 사는데 그중 하나는 야라에서 본 여인이다. 야라 여주인의 시누이인 셈이다. 하지만 일처다부제는 점점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 ▲ (위)칼리 간다키강을 따라 디마을을 향하던 중 길에서 만난 양치기노인. 양들에서 소금기를 먹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야라에서 이곳에온다고 한다./ 차량으로 가는 길에 만난 말을 타고 가는 현지인.
수유차와 생우유를 대접 받으면서 할머니가 수동 면직기로 허리띠 짜는 광경을 구경했다. 양털을 뽑아 실을 만들고, 색을 물들이고, 허리띠를 짜는 과정이 모두 수동이다. 대부분의 로지에서 현재 판매하고 있다.
루리곰파를 찾았다. 기묘한 형상의 봉우리 꼭대기에 굴을 파고, 그 앞에 작은 곰파를 지어 놓았다. 곰파 아래쪽에도 동굴을 파고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이 일대에는 이런 동굴 주거 흔적이 많다.
디마을(3,400m)로 가기 위해 다시 야라마을을 지나가는데 어제 로지를 찾아와 노래를 불렀던 처녀가 말을 타고 노련한 솜씨로 말떼를 몰고 온다. 당당한 여장군처럼 보인다. 이 지역의 여인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축을 돌보며, 밭일까지 하는 억척스러운 일꾼이다.
디마을 건너편 수르캉마을에 들렀다. 다섯 채의 집이 있는 작은 규모로 농사가 주업이다. 현지인의 집에 들렀더니 주인 여자가 연신 수유차를 대접한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인데도 인심은 아주 후했다.
디마을은 열한 가구가 살고 있다. 어제 점심을 해먹었던 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양고기를 다듬고 있던 주인이 양 피를 끓여 가져온다. 소 피로 만든 선지와 맛은 비슷한데 다소 노린내가 난다. 주인에 의하면 이 마을에 사람이 정착한 지는 800년쯤 되었다. 여전히 무스탕 왕을 존경한다고 전한다. 몸은 네팔에 속해 있지만 마음만큼은 고대왕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하다.
이 지역은 비 올 때 낙석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란다. 하지만 기후가 좋아서 이모작이 가능한 점이 자랑이다. 특히 사과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티베트에서 양을 사다 길러서 포카라에 내다 파는 식의 목축을 겸하고 있어 생활은 풍족한 편이다.
트레커들이 15년 전부터 간간이 있더니 3년 전부터 많이 늘었다고 한다. 무스탕 지역은 난이도에 있어서 초보자가 도전할 만한 무난한 코스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우선적으로 권하고 싶다.
- ▲ 1 야라마을을 향하는 노새들. 이곳은 아직도 노새를 이용해 생필품을 나른다. 2 루리곰파 내부 동굴에 있는 초르덴. 3 가라마을의 현지인들. 가운데 여인은 양옆의 형제와 결혼한 사이다. 야라마을과 가라마을의 결혼풍습은 형제가 한 여자와 결혼해 한가족을 이룬다. 4 루리곰파 전경. 5 수르캉마을 전경. 야라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푸융콜라(puyung khola)강 건너편에서 촬영했다.
-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고대왕국 ‘로’의 수도 로만탕
10월 20일. 디마을은 고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고소증세가 느껴진다. 밤새 호흡이 가빠 애를 먹었다. 더 높은 곳에서도 별 무리가 없었는데 지형적인 특수성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체력이 떨어진 탓도 있다.
아침에 로지 주인의 아들이 찾아와 자신의 법당에 있는 불경과 탱화를 사라고 한다. 문외한의 눈에도 불교사적으로 또는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높아 보인다. 헐값에 파는 것보다는 차라리 박물관을 만들어 보존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해 주었다. 무스탕의 현지인들은 대부분 개인 법당을 갖고 있고, 티베트불교와 관련해서 오래된 물건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 조상의 영혼을 파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만탕(3,810m)으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히 1마리당 50달러의 가격에 말 네 마리를 빌려서 타고 간다. 길이 계속 급경사로 이어지는데다 일행 중 두 분이 70에 가까워 체력 안배를 고려했다.
말은 몽골 혈통으로 체구는 작지만 힘이 좋아 급경사를 거침없이 오른다. 하지만 결국 힘이 빠지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쉬었다 가기를 반복한다. 나는 말에게 미안한데, 마부는 아랑곳 않고 말을 몰아간다.
- ▲ 1 루리곰파 법당 내부. 관리하는 여인이 기도 준비를 하고 있다. 2 야라마을에서 밭을 일구는 현지인들. 3 로만탕에 있는 개인 법당에서 기도 중인 라마승. 4 로만탕에 있는 초르데곰파에서는 매일 오후 4시경에 라마승들이 나팔을 분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아서 촬영을 위해 진행을 멈추었다. 그런데 앞서 가던 사람이 말에서 내리면서 공교롭게도 내가 탄 말의 머리를 발로 찼다. 말은 크게 놀라 뒤로 홱 돌더니 절벽을 향해 돌진하고, 나는 엉겁결에 말고삐를 잡고 아래로 떨어졌다. 재빨리 마부가 말을 진정시켜 큰 사고는 없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평탄한 길에 와서도 마부는 걱정이 되는지 계속 내 말의 고삐를 쥐고 간다. 그런데 말은 힘이 넘치는지 심사가 뒤틀려서 그런지 급발진을 해서 나를 또 다시 낙마시켰다. 이번에는 엉덩이 윗부분과 허리에 묵직한 충격을 받았다.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로만탕에 도착해서 우선 의사를 찾아갔다. 병원이 무스탕 의술학교 내에 설치되어 있다. 그들의 진료방식은 우리네 한의사와 비슷하다. 양손의 맥을 짚어 보더니 약초로 만든 내복약을 지어 준다. 한사코 진료비를 받지 않으려 해서 약간의 사례금을 학교후원금 모금함에 넣고 나왔다.
로만탕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집과 로지, 기념품점이 많이 늘어났고, 호텔까지 공사 중이다. 트레커들은 자전거와 오토바이, 트랙터를 타고 오가고, 길가에서는 노인들이 양털로 실을 만들고 마니차를 돌린다. 어둠이 깊어 추위가 강해지자 로지 주인은 연신 난로에 야크똥과 양똥을 집어넣는다. 이 매캐한 연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왠지 울적해진다.
10월 21일, 로만탕은 고대왕국 ‘로’의 수도다. 주변에 넓은 농토가 있고, 여러 갈래의 강물이 지나가서 작은 왕국이 자리 잡을 만한 지형이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왕의 권위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세금을 걷거나 행정을 관장하지는 않아도 왕에 대한 현지인들의 충성심은 여전하다.
로만탕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주변 지역을 차례로 둘러보기로 했다. 오늘도 마부가 이끄는 말을 빌려 타고 초세르마을로 향했다. 어제 낙마한 경험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된다. 먼저 말의 목덜미를 두드려주며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기에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충분한 교감을 통해 호흡과 리듬을 서로 맞춰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계곡을 건너자 오른쪽으로 넓은 농토가 이어진다. 말들은 여기저기 수확이 끝난 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현지인들은 소를 부려 쟁기질을 하고 있다. 쟁기와 멍에는 우리네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쟁기질에는 두 마리의 소가 동원된다. 땅이 단단하고 자갈이 많은 모양이다. 한 사람은 뒤에서 쟁기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은 소들 앞에서 고삐를 잡아끈다.
- ▲ 수직 절벽 기슭에 자리한 노루벌링곰파 전경.
- 겨울이면 주민들과 학생, 라마 모두 포카라로 피한
두 시간 남짓 말을 타고 초세르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케이브(동굴)로 유명하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높은 절벽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출입구와 창문들이다. 케이브 중 관광객 입장이 허용된 종케이브에 입장료 200루피와 촬영료 300루피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종케이브는 다층 구조이며,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만큼 낮은 통로로 이어져 있다. 통로는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고, 천장에는 그을음이 두껍게 눌어붙어 있다.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역력하다.
종케이브에서 10분 거리의 노루벌링곰파를 찾았다. 라마승이 반갑게 맞아 준다. 이제 곧 겨울이라 주민들과 학생 라마들은 포카라로 피한을 갔다고 전한다. 거기서 10분 거리에 있는 그루곰파를 방문했다. 역시 라마승이 맞아 주며 수유차와 짬빠가루를 대접한다.
티하우스에서 점심을 먹고, 로만탕으로 향했다. 계곡 위쪽으로 드문드문 동굴이 보이더니 동굴 군락지가 나타난다. 그 아래에 마을이 있어 한 집에 들어가 보니 양털로 신발을 만들고 있다. 시작부터 완성까지 완전히 수공이다. 일반 신발 스타일도 있고 부츠 스타일도 있다. 한 켤레를 완성하는 데 한 달가량 걸린다니 대단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네뉼마을까지 방문하고 오후 5시경 로만탕의 숙소에 도착했다. 온몸이 뻐근하다. 트레킹은 걸으면서 그 땅의 기운을 느끼는 과정이다.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면 그 땅에 기대어 사는 인간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된다.
첫댓글 정대장님 좋은자료 퍼갑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