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발가락 밑에서 꼼지락거린다
발을 굴러봐요 도로시처럼
더듬이 긴 겨울이 발가락 밑에서 꼼지락거릴 때
경계를 지우던 가을이 자꾸 넘어져요
나는 더듬이를 한 발이나 늘이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그네를 타죠
억새꽃 날리는 강촌에 이제 강변은 없데요
레일바이크를 굴리며 굴속에서 그가 말했어요
강변에 심었던 모닥불이 탁탁 소리를 내요
수건 돌리며 불렀던 노랫소리가 웅웅거려요
종일 호박씨를 깠던 손톱 끝이 욱신거려요 갑자기
가고 싶은 곳 하나가 지워졌어요
추억을 밀봉하는 일은 쉽지가 않아요
애인은 떠나도 기억은 남으니 나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입니다
바다로 가는 홍게입니다
조금만 물살 흔들려도 온 힘으로 몸을 터는 또 다른
나
도로시 구두를 신고 발을 굴러요 쿵쿵
어, 그가 도망가고 있네요
손끝이 시려요
낙엽지네
어젯밤 느티나무가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벌써 단풍이구나! 그때 바람이 불었는가 자전거가 지나갔는가 토로스 산맥을 넘어가는 낙타처럼 나는 갑자기 발을 멈춰 목을 길게 빼 본다 그 물소리, 마침표 없는 기억, 나는 가을을 그냥 두라고 하고 그는 청소부 흉내를 내고
어쩌다 가게에 날아든 곤줄박이 한 마리 까마중 눈으로 나의 오후 위에서 파닥인다 여우별 세 개 구름 위에서 뜀뛰기 하고, 바람에 밀려온 이파리 문틈에 끼어 소리 지르는데 너의 기억 몇 페이지에 나를 걸어 두었는지
새들은 어디서 낮을 보내다 오나 저물녘 가지마다 다닥다닥 열리는 뾰족한 수다를 채집하는 느티나무, 내 시린 날갯죽지를 두 번 툭툭 치고 날아간 곤줄박이, 나는 지금 어느 궤도를 헤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