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노 오즈누는 신과 귀신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하늘을 나는 등 놀라운 신통력을 지녔기 때문에 이 방면에서도 유명하다. 유명세로 따지자면 아베노 세이메이와 함께 일본의 술자 가운데 쌍벽. 보통 일본 설화에서는 길고 흰 수염을 기르고 두건을 쓰고 석장과 경전 두루마리를 쥔 늙은 승려의 외모를 하고 젠키(前鬼)와 고키(後鬼)라는 귀신들에게 시중받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설에 따르면 634년에 카모노 에키미(賀茂役君)라고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 씨족은 율령제에서 부역의 의무를 지닌 역민(役民)을 관장하던 집안이었기에 성을 에키(役)라고 하였다.
엔노 오즈누는 태어날 때 어머니의 뱃속으로부터 꽃을 들고 태어났고 울음소리가 남달랐는데 이를 보고 어머니가 두려운 마음에 산 속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새들이 날아와 먹을 것을 주고 보호하는 모습을 보고 보통 아이가 아님을 알고 다시 데려왔다고 한다.
엔노 오즈누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산에 들어가 명상을 하거나 배운 적이 없는 범어를 쓰는 등의 기이한 일을 하다가 17세 때(650년) 나라현의 간고지라는 절에서 공작명왕의 주법을 배웠다, 이 주법을 배운 힘으로 본격적으로 산악 수행을 거듭한 끝에 미노오(箕面)의 폭포에서[1] 용수보살에게 보배구슬을 받는 환시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산악 수행의 인연으로 슈겐도에서는 엔노 오즈누를 슈겐도의 개조(開祖)로 모시고 있다.[2]
이 외에도 일본에서 악귀나 산신[3]을 잡아 부리는 등 강력한 주술로 이름을 떨치나, 조정에서도 그의 강력한 법력을 경계하여 몇 차례 실패 끝에 어머니를 볼모로 삼아 699년에 엔노 오즈누를 잡아 이즈섬[4]에 귀양을 보냈다.[5] 혐의가 풀린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행하다가 유배가 끝나 풀려난 뒤[6] 2년 후(701)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던 미노오산 정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입적하였다는 설과 조정에게 찍혀 당으로 건너갔다는 설이 전한다.
입적하였다는 설에서는 사후에 신선이 되어, 한반도로 날아왔다고 한다. 비슷한 시대를 산 일본의 법상종 승려 도쇼가 견당사로 가던 도중 신라에 잠시 머물렀는데, 신라의 산중에서 호랑이 5백 마리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던 도중 웬 사람이 호랑이 사이에서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엔노 오즈누였다는 일화가 있다. 근데 사료를 통해 보면 그때는 653년(도쇼가 당으로 떠날 때) ~ 660년(일본으로 돌아올 때) 동안인데, 그때 신라에서는 그 유명한 원효와 의상대사, 대안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고승들이 활동할 시기라 그냥 신라에 잠시 머물면서 신라 승려들을 만났거나 신라에서 유학하던 일본 승려들과 만났던 것이 와전된 듯.
사후 약 1천여 년이 지나 1799년 조정으로부터 진벤다이보사츠(神變大菩薩)이라는 칭호를 추증받았다.[7] 참고로 일본 조정으로부터 보살의 칭호를 받은 이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백제계 도래인이었던 교키 스님이고 또 한 사람은 요 엔노 오즈누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진벤다이보사츠 혹은 엔노 교쟈(役行者)라고 부른다.
첫댓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