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둘레길 4코스 망우ㆍ용마산 코스는 도시를 벗어나 만나는 길이라는 테마로 망우산 사색의 길이 정비가 잘 되어 있어 편안한 트레킹이 가능하며 전망이 뛰어난 코스 중 하나다.
화랑대역 5번출구 공릉동근린공원에서 묵동천으로 내려서면서 시작한다. 오늘이 행복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노원구, 묵동천에는 노랑꽃창포가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묵동천은 묵동을 지나 중랑천과 합해진다고 해서 묵동천이라고 부른다. 봉화산 아래에 있는 묵동은 조선시대에 먹을 만들던 고장이어서 먹골이라고 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묵동이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먹골배가 나오던 곳이다.
두물다리를 지나고 또 하나의 다리를 지나자마자 이정표가 오른쪽으로 묵동천을 가로지르게 된다. 데크 산책로는 이내 화랑대로에 올라서고 스탬프 거치대가 있는 신내어울공원이 마중 나온다.
중랑구가 ‘푸른도시 만들기’일환으로 만든 도시 속에 작은 숲 신내동 동네숲으로 들어선다. 꽃향기가 그윽하다. 푸르른 숲을 따라 체육공원을 통과한다. 사거리에서 두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 경춘선 신내역을 통과한다.
조금은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삼거리를 만나면서 우측으로 서울둘레길은 양원로를 따르게 된다. 예전에는 메타세콰이어가 줄지어 있던 을씨년스럽던 길이었는데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 되면서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다.
양원성당을 지나 송곡관광고등학교 직전 건너편 골목길에서 지난번에 이용했던 무풍리 토종 순대국집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양원역을 지나면 곧바로 중랑캠핑숲(중랑가족캠핑장)이다. 예전 100인 원정대에서 많은 추억거리를 남긴 곳이다.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서면 좌측으로 쉼터 있다. 별숲관찰집이 있는 과수원 사잇길로 올라선다.
갈림길을 만나면서 고즈넉한 나들이공원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참나무숲 쉼터를 지나 조금 더 올라서면 바위 하나가 보인다. 신내암이다. 그리고 내려선 곳이 망우리고개 육교다.
망우리고개는 원래 봉화산과 망우산 사이에 있는 중앙선이 다니는 터널 위로 나 있었는데 일본 강점기 때 신작로를 내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넓게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들어선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조선시대부터 망우리라는 지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현재의 건원릉 자리를 친히 답사하고 무학대사의 권유로 이곳을 자신의 능지(陵地)로 결정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리 고개에 올라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라고 경탄한데서 ‘망우리’(忘憂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화장장과 공동묘지로 1933년부터는 망우리공동묘지, 1950년 한국전쟁의 상처를 품었고, 1970년대 격동의 근현대사 속 안식처로 자리매김 하였다.
망우묘지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시민과 역사가 호흡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고, 2016년 망우리 인문학길 사잇길 2개 코스가 조성되었으면 2014년 11월에 개통한 서울둘레길로 친근한 둘레길이 되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만나는 중랑망우공간은 방문자센터로 기획전시실과 카페,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망우산 자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의 경사면을 이용해 낮고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층은 120m 길이의 긴 테라스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가까이는 망우산 자락 묘지들과 능선을 보고, 멀리는 남산부터 불암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망우리 이야기가 있는 망우리공원 인물학길 ‘사잇길‘ 그리고 사색의 길의 시작점이다. 유명과 무명을 달리했던 사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잠들어 있는 망우묘지공원. 고즈넉한 길을 걸으며 이들의 묘소를 둘러보는 것도 ‘망우산 사색의 길’만의 특별함 일 것이다.
망우산 사색의 길 삼거리는 예전 모습은 사라지고 공사로 어수선하다. 우측 길로 서울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5월의 푸르른 숲길을 따라 여유로운 발걸음이 시작된다. 곳곳에 휴식공간이 많이 보인다.
박인환 선생의 시비다. 박인환 시인은 강원 인제 출생. 1946년 시 '거리'를 국제신보에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남풍, 지하실 등을 발표하는 한편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비롯한 많은 영화평을 썼다. 1949년에 김경린·김수영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면서 모더니즘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이 있다.
이어 독립운동가 서동일 선생은 남형우 배천택 등과 북경성 마사묘에서 무언실행을 행동지침으로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다물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23년 귀국 경북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인 오재영 선생의 연보비다.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생활에 불합리한 일제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살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 지니라' '의열단 선언' 중에서
작가 최학송 문학비다. 함북 성진 태생인 서해는 일제하 만주와 한반도를 전전하며 곤궁하게 살다 서울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하층민의 현실적인 삶을 반영학 소설 ‘고국’, ‘탈출기’, ‘해돋이’, ‘홍염’, 등의 문제작을 남겼다고 한다.
중랑 전망대다. 휘둘러보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시계방향으로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수락산과 불암산이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발아래 펼쳐지는 아파트 숲도 볼만하다.
사색의 길 삼거리다. 그리고 망우(산) 삼거리 북카페 쉼터다. 잠시 쉬면서 커피 한 잔과 간식거리로 새 힘을 얻는다. 북카페 쉼터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치유의 숲은 내려다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이제 깔딱고개 쉼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산신제단이다. 면목동 남촌마을(응달말)의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 서광조 선생 묘비도 보인다.
용마산구간으로 접어든다. 용마산(348m)은 옛날 산 아래 어떤 집에 장사의 기상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자 역적으로 몰릴 것을 걱정한 부모가 아이를 죽여 묻었다. 그러자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 후로 이 산을 용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산이다.
4코스 종점인 스탬프 거치대가 있는 깔딱고개 쉼터에 도착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