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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가는길 완주를 하며
올 11월이면 영세를 받은 지 만 7년이 됩니다.
작년에 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2년 남짓 어머니께서 투병생활을 하셨는데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류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가장 숭고한 말이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겐 저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신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한없이 가슴으로 흘린 눈물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한두 달 전에 신앙적으로 힘든 시간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힘든 슬픔이 가라앉지
않은 시간에 신앙적으로 힘든 어려움이 겹쳐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올해 현충일에 그동안 가고 싶었던
왜관 수도원을 다녀오면서 국내성지를 모두
완주하려고 마음 먹고 있던 차라서 내려 오는 길에
한티성지를 순례하려고 한티를 갔다왔습니다.
단순히 갈 때는 국내성지 111곳 중에
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갔었던 것입니다.
근데 그날 늦게 도착해서 한티마을에서
시간에 쫓겨 십자가의 길 기도만 하고
성지를 자세히 둘러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며 다음에 다시 꼭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지에 계신 신부님께서
이곳은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이라고
강조를 하신 게 마산으로 내려오면서
계속 그 말씀이 뇌리를 스쳐 마산에
내려와서 한티성지에 대해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해보고 공부를 좀 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박 3일 일정으로 한티마을
카페를 통해 한티가는길 순례후기를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에 갔다 오면 영적으로
좀 더 성숙해질 거라는 생각으로
도보순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항상 생각해왔던 게 있었습니다.
바로 야고보 성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어셨던 길 800킬로미터, 요즘에는
산티아고 길이라고 알려진 길인데
그 길을 언젠가는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정보도
많이 보고 했던 터라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을 걸어면서 신앙적으로는
자신을 비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걸어면서 그당시 성인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걸어온 신앙의 길을 한번
되돌아보고 또한 앞으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때까지 걸어가야 되는 신앙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될지 마음의 각오를
다지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되는 게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걷는 사람마다
계기는 다 다를 수 있겠죠. 근데 지금까지
대부분의 후기를 읽어 보면 이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의 후기를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이번 한티가는길을 걸을 때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길이라서 정보도
미흡해서 배낭을 꾸리는 데 어쩌다 보니
17킬로그람 정도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다 꾸리고 배낭을 메어 보니 이 정도
무게면 2박 3일 정도는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배낭을 꾸리고 아침에 왜관행
열차를 타고 마산에서 출발해 한티가는길
첫 출발지인 가실성당에서 10시에
출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걸을 수 있었는데 두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릎이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해서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광명에서 오신 이 세실리아 자매님은
네 번이나 완주를 하셨는데 이거는
시작하자마자 벌써부터 무릎이 아파서
정말 난감했습니다. 한티카페에서는 완주를
응원하는 멘트도 있었는데.......
그래서 원래는 중간지점인 창평지에
있는 하늘호수 민박집에서
1박을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날 상태로서는
자신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연하리 피정의
집에서 1박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1구간 끝나는 부분을 앞두고 길을 분간
할 수 없어서 꽁지거사님께 전화를 걸어
약간의 정보를 구한 후 마침 중간에서 만나
상의를 한 후 연하리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1구간 끝나는 지점인 신나무골 성지까지
걸은 후 스탬프를 찍고 꽁지거사님 차로
연하리피정집을 갔는데 마침 입구에
수녀님이 계셔서 하루 피정할 수 있는지
여쭤보니 할 수 있다고 해서 다행히 1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께서 여긴 미사를 드릴 수 없어서
새벽에 왜관 수도원으로 미사를 봉헌하러
가신다고 하시면서 갈지를 물으셔서 아마
컨디션이 어찌 될지 몰라 그냥 가기 힘들
거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생각보다
새벽 5시에 눈이 뜨여 몸 상태도
괜찮은 것 같아 6시 10분에 수녀원
앞에서 출발하신다고 하셔서 씻고 준비한
다음 수녀원에 계신 수녀님과
왜관수도원으로 미사를 봉헌하러 갔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나오는데 낯이 익은 수녀님
한 분이 보여서 제가 낯이 좀 익다고
말씀드리면서 혹시 수녀님 마산에서
계신 적이 없으신지 여쭤보니 성지여고에
계셨다고 하시더군요. 성지여고는
제 본당과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어찌됐던 어디선지는 모르지만 뵈었던
분은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같은 지역에 계셨던 수녀님을
뵈니 반가웠습니다.
수녀원에 돌아온 후에 아침식사를 하고
배낭 무게를 줄여야 될 것 같아
갈아 입을 옷하고 필수품만 남기고
나머지 짐은 택배로 부칠 수 있도록
수녀님께 부탁해서 짐을 정리한 후 배낭을
메어보니 한결 수월한 것 같았습니다.
원장 수녀님께서 김밥과 사과와 계란
두 개를 점심으로 먹으라고 하시면서
싸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며
수녀원을 나와 신나무골 성지로
향했습니다. 2구간 시작 지점이고
또 여기는 전국 111곳 성지 중 하나라
순례 스탬프도 있어서 전국 성지를
다 완주하는 것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순례 스탬프 도장도 찍고 성지를
참배한 후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성지가 조성이 되어
있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린 후에
순례 이틀째 순례를 다시 시작하였던 거죠.
꽁지거사님이 배낭을 3구간 마지막
도착지인 동명성당에 배낭을 가져다
놓아주시겠다는 걸 제가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왜 사양했냐 하면요 물론 배낭이 없으면
한결 수월한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배낭의 짐을 많이 가져온 건 제
실수였지만 그래도 비록 배낭의 무게가
무거워서 중간에 짐을 조금 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번 순례에서 저는
이 배낭이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생각을 했었던 겁니다.
이번 순례에서 이 배낭은
제가 이 세상을 살면서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라고 생각하면서 이 배낭을
메고 순례를 해야 순례하는 동안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좀 더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이왕 어렵게 시간을 마련해서
온 순례인데 좀 고생은 된다고 해도
의미 있는 순례가 되려면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냥 한티까지 힘들지만
완주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양했던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완주하고 와서 배낭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궁금해서 목욕탕에 와서
무게를 달아보니 12킬로그람이
조금 넘어 갔습니다. 사실 배낭무게는
제 체중을 고려하면 등산학적으로 적당한
무게가 약 6킬로 그람입니다.
그러니 두 배에 가까운 배낭을 지었고
더군다나 첫날에는 16킬로나 되는 배낭을
지고 갔으니 무릎에 무리가
온 거는 사실이었습니다.
신나무골 성지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린 후에 본격적
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배낭의 무게를 좀 뺐기에 좀 수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시간 정도 걸으니까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준비해간
스틱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스틱을 사용해도 무릎에 무리가
가는 거는 사실이었습니다. 첫날에 무리했던
영향이 순례 이틀째 날에도 이렇게 영향이
갈 줄은 몰랐는데 중간에 포기를 하고
나중에 다시 도전할까도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자신이 이걸 계기로 해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해서 돌
아가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아 어떻게 해서
든지 끝까지 해서 완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제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
그 힘든 순간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인내력을 기를 수 있다고 판단해서 끝
까지 한번 인내해보려고 했던 겁니다.
정말 이틀째는 2구간, 3구간을
걸어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한발짝 한발짝
걸어서 10시에 출발해 저녁 7시쯤에
동명성당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연하리 피정집에서 9시에 출발해서 10시간
만에 도착했던 겁니다. 원래는 보통 후기를
보면 동명성당에 도착하면 보통 성당 옆
모텔에서 숙박을 많이 해서
모텔에서 숙박을 예상했습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한티에 예약을 하고 한티에서 하루 숙박을
한 후 다시 동명성당에 와서 순례를 하는
방법 두 방법이 있습니다.
동명성당에 도착하기 전에 중간에 한티에
숙박을 문의를 해보니 예약이 늦고
또 저녁에 늦게 도착하게 될 상황이라
그날은 어쩔 수 없이
모텔에서 숙박을 해야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동명성당에서 스탬프를 찍고
유진장 모텔로 다리를 절뚝절뚝거리며
갔는데 갔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왠지 이상하게 모텔에서 잔다는 게
깨름직했습니다. 몸 상태로 봐서는 빨리
휴식을 취해야 될 상황인데 영적인 성장을 위
해 순례를 하는 건데 도저히 모텔에서는
자고 싶지 않아 주위에 찜질방이 있는지
검색을 해서 제일 가까이 대구에 있는
그린파크라는 찜질방으로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나중에는 알고 보니 버스도 있었습니다.
동명에서 730번 타면 됩니다. 지나고 보니
찜질방에 간 게 잘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만약에 한티가는길 다시 가게되어
동명에서 숙박하게 된다면 그린파크 찜찔방
에 갈 생각입니다. 시설이나 모든 면에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추천 드립니다.
생각보다 찜질방이 조용합니다. 찜질방에서
하루 숙박하고 아침에 일찍 준비해서
찜질방 근처 김밥집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버스로 동명성당에 도착해서 3일째
도보를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정확하게
기억을 할 수 없는데요 한티 성지에 6시
무렵에 도착한 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한티성지 주위를 도는 코스를
다 돌려고 했는데
그냥 한티에서 하루 숙박을 하기 때문에
그건 다음날 순례를 하는 게
좀 더 괜찮을 것 같아서 무명순교자 묘지와
숯가마터 순례는 다음날 하기로 하고
한티에서 1박을 했습니다.
마침 사무실에서 한티 관장 신부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렇게 나를 볼 수 있는 게 힘든데
운이 좋다고 하시더군요.
신부님과 인사를 나눈 후 방을 배정받고
나온 후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서
나오니 유튜브에 올라온 대구 교구
마진우 신부님께서 마침 피정지도하시러
오신 모양이었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저녁식사후에
1박을 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나머지 성지
주위에 있는 무명순교자 묘지 37기를
순례를 하고 최종 목적지 한티마을사람까지
순례를 하고 최종 목적지 스탬프를 찍고
겨우 주일미사 20분 전에 도착해서
주일미사를 순례자 성당에서 봉헌한 후
점심을 성당에서 먹고
관장 신부님께 완주 스탬프 도장과
기념스카프를 받고 순례를 마무리했습니다.
마침 신부님께서 대구에서 오신 봉사자
자매님을 소개해 주셔서 동대구역까지
자매님 차로 픽업을 해주셔서
마지막에 올 때는 편안하게 잘 왔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나중에 감사한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어 자매님 폰번호를 받아서
제가 그날 감사한 마음을 이틀 후에
전해드리고 모든 순례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대충의 순례의 일정 속에서
일어난 과정을 소개해드린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순례를 하면서 느끼고
신앙적으로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순례를 하기 전에 순례를 하고 오면
무엇을 교훈으로 얻고 올지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이번에 가장 큰 교훈을 얻은 것은
무거운 배낭 덕분에 예수님께서
저희 죄를 짊어지고
골고타를 오르실 때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예수님이였다면
그냥 포기했을런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이셨던 겁니다.
인간이 아니셨기에 그 길을 가셨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을 오를 때 무릎 통증 때문에
정말 힘들었지만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해보니
이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
견딜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등산 스틱을 사용했습니다.
스틱을 사용하면서 하나
배운 것이 있습니다.
복음에도 나오지만 지체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꼈습니다. 만약 두 발로만
걷게 된다면 정말 걷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손에 스틱을 쥐고서 발에 가해지는
힘이 손으로 분산시켜주니 상대적으로
발에 부하가 덜 가해지니
한결 좀 나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할 때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서로 힘들 때 응원해가며
이 길을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처음엔 왼쪽
무릎이 아프다 보니 오른쪽 무릎에
힘이 많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니까
다음날에는 오른쪽 무릎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때 느낀 게 있습니다.
만약 두 발이 같은 통증을 받았다면
정말 난감했겠지만 다행히 한 쪽이
조금 덜 아팠기 때문에 한쪽 한쪽 번갈아
가면서 한쪽 발에 힘을 나누어 걸었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결국 이걸 통해서 하나 배운 거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공동체
안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작은 희생이 있기에 그 희생에 의지해서
신앙생활을 계속 영위해나갈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능선을 올라서서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처럼 한발 한발
꾸준히 내딘 발걸음이
무섭다는 걸 느꼈습니다. 만약 역으로
밑에서 오를 때 정상까지의 거리를
생각하고 걷는다면 심리적으로
지쳤을지도 모릅니다. 개신교 찬송가에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개종하기 전에
좋아하는 찬송가였는데요 이제 가사도
잘 생각나지 않네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냥 그날 그날에 충실한다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하면서 고난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 또한 나에게 오늘
이 순간에 주어지는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지금 당면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만 생각하고
나아간다면 충분히 이기고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냥 지레 미리 겁부터 먹으니
힘들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걸으면서 가장 많이 묵상을 한 것은
순교자분들께서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하느님에 대한 항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당시 반상이라는 신분이 뚜렸한
신분사회에서 신분이 미천한 신분을
가진 신자라면
지금 이 현세에서는 낮은 신분으로
살지만 천주께서 계시는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나가 평등한 세계라고 하니
그런 세상을 염원하고 갈구했기 때문에
지금 현세에서 비록
고통의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상황에서 천주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다진다면
자신의 영혼이 내세에서는 충분히
그에 합당한 하느님 자비의 은총이
내릴 거라는 확실한 희망을 가졌기에
끝까지 목숨을 빼앗아가는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견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양반인 상위 신분
계층에서는 굳이 그당시의 신분사회
체계로 봤을 때 충분히 세상적으로는
기득권을 가진 위치에서
천주의 가르침대로 살게 된다면 오히려
그들 자신에게는 그당시 양반의 신분체계에
하나의 도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평등의 사회를 꿈꾸었다는 건
대단한 믿음이 수반이 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래서
그런 분들에 대한 믿음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그런 위치에서도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썩어 없어지는 유한한 이 세상을
본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무명순교자의 묘지를
돌아볼 때는 정말 그당시 순교의 현장으로
시간이 마치 되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지만
그당시로서는 깊은 첩첩산중이었는데
정말 사람이 살아가기에 힘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로지 믿음 하나 버리지 않으려고
그런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한 선조들의
삶을 생각하며 오늘날 저의 신앙생활을
되돌아 보니 정말 이건 어찌 보면
선조들의 신앙과 비교해봤을 때 이게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번에 걸으면서 순교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당시 순교하신
분들이 어느 순간 내가 순교하고
싶다고 순교할 수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순교도 은총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신부님의 말씀을 토대로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순교는 한순간 마음 먹는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가진
욕망 중에서 생명에 대한
애착은 가진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그런 목숨을 버린다는 거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결국 순교의 피를 흘린 분들은
그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무언가의
가치를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가치는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
배운다고 알 수 있는 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정도는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정도에 이르는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여기까지는 단순히 흔히 우리가 말하는
믿음이 좋다는 정도에 불과할 겁니다.
만약 이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절대 순교를 할 수 있는 믿음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결국은 이러한
수준을 초월하는 믿음은
매일 매일의 자신의 믿음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자신의 인간적인 아집과
고집을 버리고 예수님의 삶처럼
매일 매일 십자가를 달게 지는 훈련을 끊
임없이 했기에 마지막 생명을 담보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의연히 순교의 피를
흘리는 데 두려움이 없었기에 순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현세의 삶을 본 게
아니라 영원불멸의 영원의 세계를
염원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그 외에도 많이 느낀 게 있습니다만
이 정도로 해서 순례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두서없이 적은
부족한 후기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간에서 하느님께 간절히
올린 기도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제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특별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를
싫어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번에 저는 인간적으로는 힘들지만
그런 분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그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걸었습니다. 그분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한 게
아닙니다. 그분 속에도 제 마음 속에 있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그분을 제가 미워한다면
역시나 제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미워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거라서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로인해 가슴아파하실
하느님을 생각해서 그런 기도를 드렸는데
이 기도가 부디 하느님 대전에 상달되어
하느님께 전해져 이 기도가 응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이루워졌으면 하고
소망해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웁니다.
......
후기 감사합니다~~^^
완주을 축하드립니다.
세실리아 자매님.
정말 대단하셔요.
정말 대단하셔요.
감사합니다.^^
세실리아님. 참고하세요.
11월 말쯤에 전주교구에서 윤지충
바오로 순교자 압송로 도보순례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도보순례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혹시 몰라 알려드립니다.
@어부베드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 다녀가셨다는 고마운 안부 전화를 베드로님께 금방 받았습니다
고마운 안부 전화에 대뜸 저의 첫 마디는
뜬금없이 '무릎은 괜찮으시냐'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님은 스스로 17kg 무게의 배낭이라고 하셨고
짧지 않은 거리를 대신 맨 제가 느끼기에도 충분히 그 정도의 무거운 무게였습니다
한티길을 다녀가신 심적 영적 소감을 적어두신 이 곳에
천박하게도 배낭 무게나 시시콜콜 댓글로 올리는게 참으로 송구합니다만...
꼭히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었을 안타까움에 몇 자 남깁니다
언급하신...산티아고 순례자 배낭의 무게는 자기 몸무게의 10% 이내로 유지하는걸 철칙으로 삼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숱한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그 계산법에
그 계산법에 따르면 베드로님의 체중은 170kg이 넘는 기골장대한 분이어야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키에 65kg 정도 체형으로는 너무나 무거운 순례 배낭이었습니다
베드로님이 맨 배낭은 이미 배낭 자체로 3kg대의 중량 배낭이었습니다
계산법에 따라 빈 배낭 하나로 이미 감당하실 무게의 절반이 할애 되었습니다
코펠과 스토브 만으로도 또 1kg 정도는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그냥 이걸로 이제 더 담을 무게는 남지 않습니다
물이 있으니까요...
베드로님의 배낭 자체도 너무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순례자 분들이 매고 오시는 20L 혹은 30L 이내의 데이팩은 별반 해당사항이 없지만
70L급의 대형 배낭이라면 등판/토로소 사이즈를 반드시
반드시 고려했었어야 했습니다
베드로님과 저 정도의 체형이면 그 사이즈는 S 사이즈여야만 합니다
그런데..대신 매기 전 얼핏 본 베드로님 배낭의 사이즈는 무려 XL였습니다
대략 신장 180cm 되는 사람에게나 맞을..전혀 맞지 않는 사이즈의 배낭이었습니다
17kg 그 정도의 무게를 짊어지고 운행을 할 수는 충분히 있습니다
제 체형에 꼭 맞는 등판 사이즈의 배낭을 제대로 피칭해서 골반 위에 딱 얹으면 운행 못할 무게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배낭은 베드로님에게 이미 결코 그럴 수 없는...너무도 맞지 않는 배낭이었습니다
혹사 된 근육은 얼마든지 회복할 수도 있고 도리어 단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근육이 붙은 뼈마디 사이의
사이의 연골은..상하게 되면 회복이 매우 곤란하지요
전화에서 이미 나누었던 말씀들입니다
부디..그냥 휘발 시키시지 마시라는 충언으로 뜬금없는 댓글로 안부를 남깁니다
안부 전화에서..제가 책임 진 안내 진행이었다면..애초에 걸으시게 하지 않았을거라고도 했습니다
적어도 그 배낭은 매고 걷지 않으시도록 '반드시' 했을거라고...
거듭 제가 배낭을 대신 수습하려고 했으며 베드로님은 거듭 한사코 거절하셨다는 말씀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티길 위에서의 걱정으로 그러했으며 이 댓글도 마찬가지 걱정을 담은 것입니다
베드로님 순례길의 마음과 영적 경험의 이야기 나누어야 할 이 곳에 외람 되게도 후진 배낭 이야기
그런거나 올려 송구합니다...
지나치게 무리하신 순례 운행이었습니다...회복 잘 하시기를 진심으로..진심으로 당부 드립니다
지리산 등산학교 출신이시니 회복도 무리없이 잘 하실거라 믿습니다
제 오지랖을 용서하시고..가을이든 겨울이든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집을 떠나 오실 때 가볍게 해 오시면..제가 준비할 텐트 등을 저와 나눠 매면 우리 한티길 순례도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을겁니다
이제 다 쓰셨죠.
이 무더운 날씨에 장문의 댓글로
걱정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인근 성당 교우가 운영하는
정형외과에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무릎은 큰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무리를 했기에 당분간
휴식을 푹 하라고 하시네요.
아무튼 그때 거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은 송구합니다. 다음에는 정말 옷과 세면도구만 가져가야 될
것 같습니다. 올 11월쯤에 전주교구에서 윤지충 바오로 순교자 진천에서 전동성당까지 옛날 압송되어 걸어가셨던 길을
도보로 신자들이 걷는 행사를 진행할 듯합니다.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그때 시간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건 1박 2일 이나 아마 무박으로, 아마 무박으로 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어부베드로 그때 참석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부지런히
걷기를 많이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거사님. 걱정 염려 격려 정말 감사합니다. 지리산 등산학교는
나와도 짝퉁으로 나온 거나 진배 없습니다. 아무쪼록 여름 건강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한번 대구 올라가 호프나 한잔
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 각자의 걸음은 모두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여겨집니다. 글로 표현하신 것보다 '한티가는 길'에서 여러가지 생각과 상념과 때로는 마음 다짐... 무심함, 그리고 순교, 믿음, 신앙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마음을 그냥 한 구석에 펼쳐 놓으신 것 쉽지 않으셨으리라고 가늠합니다. 한티가는 길은 순교자들이 신앙을 위해 걸으셨던 길이기도 했지만 삶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처럼 어부베드로님께서 걸으셨던 흔적흔적에 한티순교자 분들이 기뻐하시지 않았을까요? 또 다른 기회가 되시면 한티가는 길을 다른 계절에 방문해 보시면 생각하지 않으셨던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베드로님께서 걸으셨던 육체적인 소회에 읽고 간단히 조언을 조심스럽게 드립니다. 45.6km를 5구간에 나누어 걷는 것은 2박3일의 경우는 도보순례에 경험을 가진 분의 기준(약 15km/일)이지만, 경우에 따라 자주 걷지 않으신 분의 경우는 실제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에 약 9~10km/일 기준으로 다섯 번에 나누어 걷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길은 45.6km를 반드시 걸어야 한다는 의무나 빠른 시간 내에 당일 또는 1박 2일, 2박 3일에 끝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티가는 길을 걷는 가운데 개인별로 느껴져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믿음, 자연, 바람, 산, 연못, 꽃, 나무.... 등등에 대해...
이에 대한 예는 묵주기도를 100단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묵주기도는 묵상기도이어서 얼마만큼의 묵상에 성의껏 기도했느냐가 훨씬 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걷는 것에 대해 빠른 시간내에, 몇 일 내에, 또한 반드시 완주해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은 저로서는 반대입니다. 산행을 하거나 도보를 제대로 하는 이는 실상 정상 높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산길의 의미와 지나가는 가운데 계절마다 펼쳐져 있는 자연의 소재는 바로 하느님의 작품, 또는 창세기를 얘기하고 있기에 이를 둘러보는 것이 더 걸음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이렇다면 걸음을 한티가는 길 여정에서 과연 빨리 걸어서 진행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님의 걸음에 힘드셨전 점은 1)걷거나 도보여행, 산행을 많이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평소에 1주일에 4~5km(1시간 이상 걷기)를 한 번 정도 꾸준히 하셨다면 한티가는 길 2구간은 연속적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2)걸음에 있어서 힘드시면 절대로 시간에 맞추어 빨리 걸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힘들면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 숨이 가빠지거나 오르막이 있으면 걸음을 반걸음으로 총총걸음으로 걸으시면 됩니다. 2) 오랫만의 산행에서 관절, 다리가 쑤시거나 허리가 불편해지는 것은 뼈가 다시 맞추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3)걸음에서 특히 내리막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내리막은 배낭무게+자신의 체중이 그대로 관절에 전달됩니다. 특히 빨리 걸으면 중력가속도(9.8m/sec), 즉 가중치 약 10배(9.8)이 더해지는 것까지 감안하시면 배낭무게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낭은 도보순례를 하신다면 추후 20kg정도는 짊어지실 수 있어야 합니다. 수통 2개+점심 도시락+(약간의 간식)+우의+예비바람막이옷(겨울철이면 휠씬 더 추가 되겠죠)+해드랜턴+지도는 필수 사항이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시더라도 30L 기준 배낭은 매셔야만 자연조건이나 산악지형에서 자유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내리막에서는 가급적 스틱사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스틱이 무게전달+균형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전국적으로 성지도 여러 순례길을 많이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동성당 전주교구 순례길도 완만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치명자산에 이르면 급한 경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순교자성지는 깊은 산속에 있었던 터라 완만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부득히하게 급한 경사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아울러 도심지 마을을 지나게 해 놓으면, 역설적으로 도보여정으로 보면 도시화된 길을 대부분 걷지 않아서 대부분의 둘레길이나 순례길은 도시화된 마을과 다소 격리시켜 놓는 편입니다. 참고하시고 익숙한 한티가는 길, 다시 한 번 찾아오시길 권해 드립니다. 소중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애정어린 충고와 조언 그리고
아울러 걱정까지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많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네. 또 다시 한티 순례길을 시간이
되면 가볼 겁니다.
정말 이번 순례가 무모한 도전인 것 같았다고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것도 시행착오인데요 다른 분들도 저의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준비를 잘 하셔서 은혜로운 순례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모로 장문의 댓글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름 건강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모처럼 꼼꼼히 읽고 감동하고....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