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70프로가 산지인 나라, 단단하기로 치면 돌덩이 중에 제일인 화강암이 산과 봉우리에 지천인 나라. 화강암의 골기가 센 곳은 풍수적으로 집터로는 적당치 않아 주로 절이 자리를 잡았다. 희양산 하얀 바위 아래 자리 잡은 봉암사가 대표적인 절이고 거창의 가섭사지 또한 금원산의 화강암 골기가 모아지는 곳에 자리잡은 폐사지이다. 보물 제530호로 지정된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磨崖如來三尊立像)이 있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금원산 지재미골 입구에 위치하여 문바위라고 부른다. 옛 가섭암 일주문에 해당하는 바위로 우리나라에서 단일 바위로는 가장 큰 바위로 알려져 있다.
바위면 전체를 배모양으로 파서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를 만들고 그 안에 삼존불(三尊佛) 입상을 새긴 것으로 삼국 시대 양식을 계승한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 있던 삼층 석탑은 현재 거창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다.
가운데 부처님의 패션이 재미있다.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질의 다리를 모를 심다 달려온듯 걷어 올리고 서 계시다. 불꽃처럼 보이는 연꽃 위에 서 계신다. - 2009.06.13
거창에 가시거든 황산마을
2006년 문화재로 지정된 거창 황산마을 돌담길. 울고 들어가서 웃고 나오는 곳이라는 말이 전해질만큼 산세가 험한 덕유산 줄기의 남쪽에 자리잡았으나 , 마을 앞의 너른 들판에서 나오는 풍부한 농산물과 인심은 웃고 나올만큼 좋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한다.
거창 신씨의 집성촌으로 황산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길손을 맞는 것은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높이 15미터, 가지둘레 50미터가 넘는 고목에게 마을 입성을 신고하고 논두렁을 따라 황산 마을로 들어갔다.
고적한 돌담길이 끊어질듯 끊어질듯 마을 전체가 미로처럼 이어지는데, 돌담을 넘어 골목까지 나온 보라색 구기자 덩굴, 과거에 급제한 후 기념으로 심었을 학자수 회화나무, 너부데데한 푸근한 외모 때문에 더 정다운 접시꽃 들이 길손을 반기는 고향집 같은 동네이다.
마을 뒷산과 개울에서 가져왔을 돌을 흙 사이에 넣어 담을 쌓다가 심심하다 싶으면 담장 안에 꽃 한송이 새겨 넣고, 그렇게 세대를 이어 쌓았을 돌담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문화재로 지정된 원학고가 돌담길. 위에 담장을 넘은 마당 안의 나무들이 골목의 표정을 풍성하게 불어 넣는다.
고개를 숙여야만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쪽문이 정다운데 쪽문 사이의 고택은 허물어진 채 마당에 잡초가 가득하다. 사람이 떠난 집은 온기도 함께 빠져나가는 법, 초여름 마을에서 만난 사람은 몇 명의 노인 뿐, 아이는 고사하고 젊은이 한명도 없이 마을이 텅 비어있다. 사람들이 사라진 아름다운 돌담길이 안타까웠다.
언젠가 이 고즈넉한 고택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본래 이곳에 살던 사람처럼 골목길을 걸으려고 마을 입구의 민박집 연락처를 메모했다. 한집을 빼놓고는 전부 신씨 집성촌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아들을 낳고 그렇게 세대가 이어진 500년의 시간이 세대의 반복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동계고택 종부, 경주 최부자집 맏딸
‘문간공동계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 붉은 현판이 손님을 맞이하는 솟을대문의 고택. 눈썹지붕이라 불리는 지붕의 형태가 매우 독특하다. 언제든 방문하여 청하면 고택 구경을 할 수 있다.
고택의 종부인 최희 할머니. 한국의 오블리스 노블리제로 존경받는 경주 최부자집 맏딸이 동계고택 종부라하여 엄청 기대하고 갔다. 심심하신 차에 객이 오면 말을 멈추지 않으시어 적절하게 끊는 지혜가 필요.
이 분을 만난 뒤 메스컴에서 나오는 종가집 종부에 대한 환상이 다 깨졌다. 태극기 할배처럼 편협된 분노를 마구 표출하시어 조금은 쓸쓸했던 종가집 방문. 고택만 보고 나왔으면 좋을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