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삼락(吾有三樂)
신천 함석헌
씨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번에 영계기(榮啓期), 임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 영계기의 소위 삼락(三樂)이란 것이 있습니다.
공자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녹구대색 고금이가(鹿裘帶索 鼓琴而歌), 사슴 가죽 옷에다가 노끈으로 허리를 묶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이상해서 공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엇이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그랬더니 대답이
오락심다(吾樂甚多),내 즐거움 참 많지, 천생만물, 유인위귀, 오득위인, 시일락야(天生萬物, 唯人爲貴, 吾得爲人, 是一樂也),하늘이 만물을 냈는데, 오직 사람이 귀한 것인데 내가 사람이 됐으니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남녀지별, 남존녀비, 고이남위귀, 오기득위남의 시이락야(男女之別, 男尊女卑, 故以男爲貴, 吾旣得爲男矣 是二樂也),사내 계집 사이에 사내가 높고 계집이 낮은데 그래서 사내를 귀하다는 것인데, 내가 이미 사내로 났으니 이것이 둘째 즐거움이요, 인생유불견일월, 불면강보자 오기이행년구십의, 시삼락야(人生有不見日月, 不免襁褓者 吾旣已行年九十矣, 是三樂也), 사람이 났어도 해 달을 볼 새도 없이 기저귀에서 죽어 버리는 것도 있는데, 나는 벌써 아흔을 살아왔으니 이것이 셋째 즐거움이지, 했습니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살자는 사람입니다.
또 증자의 삼락이란 것이 있습니다.
유친가외 유군가사 유자가유 차일락야. (有親可畏 有君可事 有子可遺 此一樂也.)
유친가간 유군가거 유자가노 차이락야. (有親可諫 有君可去 有子可怒 此二樂也.)
유군가유 유우가조차삼락야. (有君可喩 有友可助此三樂也.)
어버이 있어 두려워할 수 있고, 임금 있어 섬길 수 있고 아들 있어 남겨놀 수 있으면 첫째 즐거움이요.
어버이 있어 잘못이 있을 때 말해 드릴 수 있고, 임금 있어 뜻 맞지 않을 때 버리고 갈 수 있고, 아들 있어 잘못할 때 노해줄 수 있으면 둘째 즐거움이요. 임금 있어 잘못 있을 때 바른 길을 일러줄 수 있고, 벗 있어 도와줄 수 있으면 셋째 즐거움이다.
증자는 인간관계를 존중하여 의리에 살자는 생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쪽에 잘못이 있어 말이라도 해주고, 노하고, 항의라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의무요 따라서 오히려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맹자의 삼락은 아마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앙불괴어천 부불작어인, 이락야.
(仰不愧於天 府不作於人, 二樂也)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아버지 어머니 다 살아계시고 형제가 아무 사고 없음이 첫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 무안할 것 없음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빼난 젊은이들을 얻어 가르침이 셋째 즐거움이다.
맹자는 바탈에 살자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삼락을 말하려 할 때 먼저 왕천하불여존언(王天下不與存焉),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이 거기 들어 있지 않다고 했고, 다 말하고 나서 다시 그것을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 한다면 천하에 왕 되는 것, 요새 말로 한다면, 세계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일이요, 그에서 더 즐거운 일이 없을 듯한데 맹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양심의 문제, 영혼의 문제가 더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을 이어서 더 설명합니다.
광토중민 군자욕지 소락불존언.
(廣土衆民 君子欲之 所樂不存焉.)
중천하이립 정사해지민 군자악지 소성불존언.
(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樂之 所性不存焉.)
군자소성 수대행불가언. 수궁거불손언 분정고야.
(君子所性 雖大行不加焉. 雖窮居不損焉 分定故也.)
땅을 넓히고 사람을 많게 하는 것을 군자가 원하지만 즐거워함은 거기 있지 않다.
천하에 가운데하고 서서 사해의 민중을 안정시켜 놓는 것을 군자가 즐거워는 하지만 그 바탈로는 알지 않는다.
군자가 제 바탈로 삼는 것은. (마음에 뿌리박은 仁, 義, 禮, 智기때문에) 크게 행해진다. 해서 더해지는 것도 아니요, 뜻대로 되지 않아 가만히 있다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왜냐? 하늘에서 받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보다 더 깊은 것은 노자의 말이요 장자의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인개유이, 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 이책식모
(衆人皆有以, 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責食母.)
남들은 다 뭐 있다는데, 나 홀로 바보로 못생긴 것 같다. 나 홀로 남과 달라. 엄마 젖먹는 것이 좋다.
지락무락(至樂無樂)
정말 즐거움은 즐운 것 없다.
거기다 비긴다면 나 같은 것은 감히 三樂이고 二樂이고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생전에 한번 꾸중을 들어본 일도 없고, 집엘 있거나 만리타국엘 나가 있거나 나 하는 대로 믿어두고 계시던, 아버지 어머니를 임종도 못했지, 형제는 남복으로 갈리어 서로 생사소식도 못 통하니 一樂이 있을 여지없습니다. 칠십이 넘은지 오랜 오늘,불괴불작(不愧不作)은 그만두고 언제 한번 자신에 살아본 일이 없고, 애타는 기도를 나 홀로 해야 하니 二樂이 어찌 있겠습니까?
게도 제 새끼 보고는 바로 걸으라 한다고,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일찍부터 생각하여 교사 됐던 일이 있으나 벌써 사십년 전 일이요,이제 배운 것도 닦은 것도 없지만, 나이 더러 말을 하라 해도 될만한 것이 있는 것 같아, 이따금은 학교 문 앞에도 교회 문 앞에도 가보려 하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지 악마가 하는 일인지, 문마다 막혀 젊은이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二樂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다가 세상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中 唯人最貴)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습니까? 어느 짐승이 오늘의 인간같이 악독하게 제 동료를 잡아먹고만 살려 합니까? 무엇이 귀합니까? 남존녀비는 더욱 있을 수 없고.
오래 사는 것을 오복에 첫째로 꼽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못살겠다는데 장수가 복이 되기는 그만두고 죄 아닙니까? 기저귀에서 죽는 것은 오히려 장수입니다. 탯집에서, 탯집도 못 들어가 보고, 죽는 정자가 살아 있는 사람 때문에 실식(室息) 교살을 다하는데 사는 것이 죄 아닙니까? 三樂이 아니라 三不樂입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거꾸로 보면 가까운 세상이 멀어집니다. 예수가 주시는 대로 욕심의 망원경을 뒤집어 대고 보면 나도 三樂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명이 파산을 하고 세상 끝 날이 내다뵈니 하늘나라 가깝다던 말씀이 아주 분명해집니다. 是ᅳ樂也요,
남편노릇 잘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덤 문에까지 짐인데, 늙은 아내 전신불수칠년(全身不遂七年)에 그 시중을 내가 해보며, 만일이라도 처지가 바뀌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니 이야말로 是二樂也요,
재판정에서서 네가 나를 재판하느냐, 내가 혹 너를 재판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순간 은은히 뵈는 십자가가 그 뒤에 나타나, 나도 암루를 삼키며 “저들을 불쌍히 여깁소서”같이 할 수 있으니 是三樂也입니다.
여러분 우리 같이 즐깁시다!
씨알의 소리 1976. 6 54호
저작집; 9- 79
전집; 8- 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