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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장소 : 2022년 3월 12일(토) / 1, 7호선 도봉산역 1번출구 (10시 30분)
◈ 참석자 : 6명 (정남, 종화, 진오, 재홍, 삼환, 양기)
◈ 산행코스 : 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능원사-도봉사-도봉옛길-방학동길-왕실묘역길-정의공주묘-우의동-뒤풀이장소-북한산 우의역-집
◈ 동반시 : "대폭발 이후 우주의 모든 것은 풍선이다" / 이대흠 (박형채 산우 추천)
◈ 뒤풀이 : 벌교꼬막과 풍천민물장어구이 등에 소주 / "물맑" <북한산 우이역 근처 (02) 3493-7788>
시산회 430회 날이다. 이 총장님으로부터 매니져로 임명을 받아 산행코스의 안내와 뒤풀이장소를 정하여 산행을 마무리 하는 책임이 있는데, 어디로 갈 것인지 부담이 된다.
대부분의 산우들이 산행을 좋아하나 코로나의 확진 때문에 서울둘래길(8구간)의 산행에는 몇 명이 신청을 않는 것 같았다. 서울둘레길(북한산둘레길)은 우리 시산회의 산우들과 몇 번을 갔었기에 산행 코스는 큰 부담은 없었다.
산행 신청을 한 회원은 나를 포함 총 6명인데, 집결 시간, 장소를 지킨 회원은 3명 뿐이다. 나머지 회원은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에서 만났다. 산우들과 산행코스를 협의, 최종합의를 본 후 재작년(2020년) 요맘 때에도 갔었던 서울둘레길 8구간 일부를 걷기로 하였다.
도봉계곡을 끼고 옆으로 탐방로 길을 따라서 가면 능원사가 눈에 보인다. 능원사는 도봉산 만장봉이 한 눈에 펼쳐지는 자리에 1977년에 건립된 사찰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찰이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것에 비해 능원사는 미륵불을 모시고 있고 경내의 모든 전각이 황금단청으로 되어있다.
능원사에서 조금 더 오르자 도봉사가 보인다. 도봉사 길가 담 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어 많은 산객들의 눈길을 끈다. 도봉사의 건물 뒤편에는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있다. 도봉산의 바위가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서 도봉산에서 내려온 산신령의 느낌이 들기도 하다.
불교는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모신다. 그러나 산신령의 존재는 도교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불교의 특징은 도교와 불교가 융합되어 나타난다. 특히 조선때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산에서 살아야 했던 승려들은 호랑이가 두려운 동물이었다. 그래서 절마다 산신령을 모시는 것은 호랑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염원도 있었다.
많은 산객들은 안전산행이 최우선이므로 산행길로 순조로운 서울둘레길 8구간의 일부(도봉옛길~방학동길~왕실묘역길)를 걷고 있는 것 같다. 도봉옛길은 무수골까지 2.9km의 북한산둘레길 18구간이며, 선인들의 묘가 많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음은 방학동길이며, 무수아취에서 3.1km의 북한산둘레길 19구간이다.
방학능선을 타고 오르는 중간에 높다란 구조물이 눈에 보인다. 쌍둥이전망대 이다. 쌍둥이전망대 앞에 북한산둘레길 19구간 방학동길 포토존이 있었다.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 수락산, 도봉산, 불암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산 정상에 있는 듯 맑은 날씨에는 아주 먼 곳의 전경까지 한 눈에 들어 왔었던 추억이 있었다.
휴식터를 비워주는 산객들에게 고마움으로 예를 표한 뒤, 종화 산우는 배낭에서 돗자리를 끄집어 내어 자리를 편다. 다른 산우들은 술 안주와 막걸리, 독도주를 끄집어 낸다. 모다들 준비해 온 먹거리를 먹기 전에 동반시("대폭발 이후 우주의 모든 것은 풍선이다" / 이대흠)를 오래간만에 불초 소생이 봄날에 조용히 낭송을 하였다.
"대폭발 이후 우주의 모든 것은 풍선이다" / 이대흠
...봄이다
쭈그러져 있던 씨앗들이 풍선들이 부풀어올라
상추가 되고 동백이 되고 진달래가 된다
부픈 그것들은 토끼며 다람쥐가 먹고 부푼다
땅의 날숨, 봄은 부푸는 계절...
소녀들은 붕붕 떠서
하늘로 하늘로 날아가려 하고...
이대흠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과 조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목포대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년 “창작과비평”에 ‘제암산을 본다’ 외 6편의 시를, 1999년 “작가세계”에 단편소설 ‘있었다, 있다’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상처가 나를 살린다’, ‘물속의 불’, ‘귀가 서럽다’가 있다.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대흠의 시는 세상에서 한 발 비껴서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가장 열심히 막막한 세상을 질주하고 있다. 솔직하다 못해 괴팍하게까지 느껴지는 시적 욕망과 다양한 실험정신 때문에 난해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3부의 시편들을 보면 꼭 어렵다고만 할 수는 없을 터이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서에다 "물끄러미 제가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듯 땅 쪽을 바라보는 가지꽃을 보면서 자성이 깊은 식물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시에서와는 달리 수굿하고 얌전한 이 진술은 가지꽃에 자신을 되비쳐보는 시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정남 친구가 준비해 온 홍어, 생굴, 골뱅이, 한과, 양기의 생고구마와 커피, 재홍의 냉이무침, 종화의 김치와 달콤한 정통만쥬 빵 및 Maxim커피, 진오의 독도주 그리고 내가 준비해 간 도토리묵이 모든 산우들의 배를 채워서 뒤풀이 장소를 신경쓰게 만든다.
뒤풀이는 벌써 예약을 해 놨는데, 산우들 중에 몇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며, 브레이크를 잡는다. 모두가 다 산행을 하면서 술은 항상 그날의 컨디션에 맞춰 적당히 마시야 하는데, 총장님 회장님은 참석을 하지않고, 난, 매니져를 맡아서 뒤풀이 장소 때문에 걱정을 하게끔 하였다.
방학동길에서 왕실묘역길로 넘어섰다. 북한산둘레길의 제20구간이 왕실묘역길이다. 왕실묘역길은 성종의 맏아들로 중종반정 때 폐왕이 된 연산군의 묘와 세종대왕의 둘째 딸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기여한 정의공주의 묘가 있어 왕실묘역길이라고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정의공주의 묘 인근에 사천목씨((泗川睦氏)의 선영(先塋)이 있었는데, 목씨(睦氏)는 선대(先代)가 경상도 사천에 살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리 화목·돈독하여 화목할 목(睦)자로 성(姓)을 얻게 되었고, 본관을 泗川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씨가 본관이 서로 다르나 목씨睦氏)의 본관이 사천 하나뿐인 것은 그 뿌리가 한분에게서 이어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목씨의 시조는 고려조에 무관을 지내신 낭장동정공(郎將同正公 諱 孝基)이다.
목문(睦門)은 고려조부터 가문이 융성하여 중앙관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조에서도 많은 정치가와 인재를 배출하여 당당히 명문대가의 위치에 올랐다. 시조로부터 6세까지의 묘소(墓所)는 북한에 모셔져 있어, 현재 7세조가 모셔져 있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先塋내에 단비(壇碑)로 모시고 있다.
산우들이 모다 정의공주의 묘를 살펴 보았는데, 정의공주는 조선 4대 세종(世宗)의 차녀로,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참여를 하였고,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간행하였다.
정의공주(貞懿公主, ?~1477)는 세종이 즉위 전에 출생하였으나,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오라버니 문종(文宗)이 1414년(태종14)에 출생하였고, 동생 세조(世祖)가 1417년(태종17)에 태어난 사실에 비춰 1415년(태종15년)~1416년(태종16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1428년(세종10년)에 정의공주(貞懿公主)에 봉해졌고, 안맹담(安孟聃)과 가례(嘉禮)를 치렀다. 안맹담은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로서, 1428년(세종10년)에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가 1432년(세종14년)에 연창위(延昌尉)로 개봉되었다.
연산군의 묘는 모두가 탐방을 원치않았고, 바로 북한산우이역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뒤풀이장소로 예약을 해 놓은 식당('물맑')은 151번 버스종점 근처로 깨끗한 장소였다. 수유동(우이동)의 맛집이며, 메뉴가 다양하다. 벌교꼬막, 코다리찜과 풍천민물장어구이를 주안주로 소주를 맛있게 마시고, 산우들과 헤어졌다. 다음 산행때에 또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산행기를 맺는다.
2022년 3월 14일 임삼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