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것을 한다 / 이임순
요즈음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서둘러 가는 곳이 있다. 집 앞에 있는 배추밭이다. 얼마 전까지는 고추밭에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장소가 바뀌었다. 집게와 빈 음료수병을 챙겨간다. 언덕에 서서 밭 전체를 훑어보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데 자괴감이 든다. 두 미음이 티격태격한다. 싱싱한 채소를 가꾸려면 별수 없다는 생각과 그래도 생명을 해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선다.
살생! 말만 들어도 섬뜩하다. 그런데도 고추 농사를 짓고 무와 배추를 가꾸면서 벌레를 잡아 죽인다. 열 가지 악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면서 내 손으로 목숨을 끊어야 하니 눈을 질끔 감았다 뜨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엎드리기도 전에 입구에서 제법 큰놈이 눈에 띈다.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저승사자가 온 줄도 모르고 느긋하게 있다 생포가 된다. 빈 음료수병이 손님을 맞는다. 집게에서 떨어지는 순간 아차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봐 줄 수는 없다. 연민 따윈 없으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병이 배를 불린다. 훤히 보이던 바닥에 놈들이 얽히고설킨다.
배춧잎에 푸른똥이 있으면 어김없이 그가 도사리고 있다. 앞에 없으면 잎 뒤에 붙어 나와 숨바꼭질을 한다. 그들은 크기와 색깔이 각각이다. 검은색과 푸른색을 띠기도 하고 희끄무레한 것도 있다. 병은 거절이나 싫은 내색도 없이 어떤 크기나 색깔도 받아들인다. 구멍이 송송 뚫린 배추 앞에서는 지체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잎을 앞뒤로 살피다 보면 몇 마리가 있기도 한다. 술래잡기는 이어진다.
아침에 내가 한 번 훑으면 점심나절과 오후에는 남편이 살핀다. 사람이 지나가다 농약을 치면 쉬운데 일일이 잡는다고 혀를 끌끌 찬다. 수월한 것은 알면서 건강에 좋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가족과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아이들의 먹거리라 친환경으로 하는 것을 그가 일 리 없다.
해마다 고추와 무 배추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손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금방 벌레를 잡고 돌아서 다시 보면 또 있다. 배추벌레는 냄새가 없는데 노린재는 그것이 있다. 이놈은 건드리면 고약한 것을 풍긴다. 암수가 같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알을 많이 낳아서 개체 수 또한 많다. 크기 전에 한 가지에 오글거리고 다닥다닥 있을 때 잡아야지 흩어지면 피해가 늘어난다. 이들은 잎이나 줄기, 열매 등의 진액을 빨아먹고 살아 아무렇지 않게 보여도 마른 후에 그들이 지나간 흔적이 나타난다.
벌레는 징그럽다. 어쩌다 채비도 없이 둘러 보다 시꺼먼 놈이 눈에 띄면 손을 대지 못하고 나뭇가지로 털어내 발로 밟는다. 힘도 없는 놈이 애를 먹이고 귀찮게 한다. 하루에 두세 번 순례해도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술래가 되어 다른 일로 무 배추밭을 지나갈 경우에도 그냥 스치지 않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사람 심리가 묘하다. 친환경 먹거리를 운운하면서 시장에서 살 때는 벌레 구멍이 있는 것보다 때깔이 좋은 것을 선택한다. 입으로는 농약이 해롭다고 하면서 말과 행동이 다르다. 같은 배추라도 친환경으로 키운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지금 당장은 모르나 그것을 먹고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 건강으로 알 수 있다. 물론 체질에 따라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갈수록 각종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은 농약을 살포한 농작물을 먹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나는 농사를 수월하게 짓지 못한다. 고생은 될망정 건강에는 좋으니 내 농삿법을 바꿀 생각은 없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어린이집 아이들 건강지킴이다. 배추가 제법 속이 찼다. 무도 많이 굵어졌다. 그래도 벌레 잡는 일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개체 수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헛걸음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힘도 없는 그들에게 쥐여사는 꼴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무공해 농작물을 얻기 위한 방법인 것을.
식물은 사랑과 관심으로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데 그런 수고도 없이 건강지킴이가 되겠는가. 종교 단체와 생명보호 운동 등에서 살생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데 까닭 없이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생명은 마땅히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하고, 사람은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런데도 내가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은 건강에 좋은 농삿법을 따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가끔은 얻으려고 모순에 빠진 논리를 부리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일부러 생명을 구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길에서 놀던 닭이 졸졸 따라온다. 손에 든 병에 먹잇감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들 앞에 쏟으니 포식을 한다. 벌레 잡아 닭이 배부르게 먹고 무와 배추가 너풀너풀 자라니 1거3득이다. 건강지킴이로 이런 고생쯤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첫댓글 농작물을 무농약으로 기르시네요. 그거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친환경 농약도 많이 나와 있으니
고려해 보세요. 똑같은 글이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글실력이 그렇습니다. 수정했는데 그래도 많이 미흡합니다.
역시 농사 전문가.
저는 아직도 벌레를 잡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배추 심고 망사로 다 씌워두었는데도,
1주일 후에 가니 대만 남았더라구요.
배추 심고 약 한 번 쳐야 되는데 귀찮아서 생략했더니 그랬다네요.
저도아직 손으로는 못잡아요. 농약 한 번도 하지 않았더니 벌레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성한 잎이 없었는데 자꾸 잡으니 포기가 제법 찼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