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읍내 거리에서 자주 보았다. 어쩐 일인지 내 눈에 자주 띄었다. 내가 차를 운전하고 갈 때는 바람 한 자락을 보듯 스쳤다. 혹시 길을 걷다가 그녀 모습이 보이면 나는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와 연관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와 난 단 한 번의 인사를 나누거나, 말을 걸어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모임이나, 지역 관련 단체에서도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나들이 다니기 좋은 날 작은 골목길이나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서 보다는 후미진 곳에서 내 눈에 띄었다. 그럴 때 그녀의 눈빛은 사람에 대한 경계의 빛이 없었다. 눈, 코도 웃는 듯 벌렁거렸고, 입은 항상 반쯤 벌려져 있었다. 머리카락도 단정한 느낌보다는 겨울나무처럼 앙상하게 뻗어 있었다. 걸음걸이도 힘이 없이 팔과 몸은 따로 흔들렸다. 신발은 바쁠 때 다급하게 끌고 나온 듯 조금 헐렁해 질질 끌렸다. 옷차림도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각자 따로 놀았고, 한철은 뒤처진 차림새였다. 어찌 보면 동화적인 느낌의 여인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 모습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눈여겨보는 버릇까지 들어버린 셈이었다. 그녀는 목적지를 향에 힘차게 걷기보다는 누군가의 보호 아래 다른 사람 목적지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다행이야 동행이라도 있으니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가 다니던 길 막바지에는 어떤 종교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 종교에 소속된 사람이려니 하는 단정도 해보곤 했다.
어느 날은 딸인 듯한 그녀와 이미지가 닮은 처녀도 함께 걷고 있었다. ”어머, 딸도 있었네, 그렇다면 어머니였네.“라는 오지랖 넘치는 생각도 했다. 그녀들을 한참 쳐다보았다. 모두 바삐 걷는 길에서 나만 멈춰 있음을 감지하고 “이런 얼빠진” 하는 소리까지 하며 속히 가던 길을 걸었다. 그전에는 가정은 있는 것일까 하는 괜한 상상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왜 나는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걸까 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제는 뜻밖에 장소에서 그녀를 보았다. 헬스장에서였다. 헬스장은 군민이 이용하긴 하지만 들어서면 입구에서 사인을 해야 했다. 물론 나도 갈 때마다 나의 신분과 등록 시간을 기록했다. 운동기기를 이용해 운동하던 중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군 관계자는“본인의 나이를 기록하시면 됩니다.”라고 했고 뒤이어 들리는 소리는 “내 나이가 몇 살인가요”하고 물었다. 나는 그 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 본인의 나이를 다른 이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누굴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였다. 수년간 바라만 보았을 뿐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순간 그녀의 행색과 인지 능력은 내가 짐작했던 그대로야, 그러면 그렇지 근거를 찾았다는 듯 내 마음속 측은지심 강도가 높아졌다.
그러자 관계자는 “어머니 나이를 나는 잘 모르지요.”라고 답했다. 본인의 나이까지 물어볼 정도라니 “쯧쯧.” 그녀는 “내가 몇 살이지, 헤헤”하며 웃기만 했다. 그녀는 내가 하는 운동기기로 다가왔다. 관계자는 운동기기 하나하나의 사용법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하는 런닝 머신을 쓰겠다며 내 곁으로 왔다. 관계자는 마음이 안 놓이는지 몇 번에 걸쳐 설명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그만큼 설명을 듣고도 내가 하는 모양을 눈여겨보더니 한참을 망설이는 눈치였다. 나는 내가 하던 운동기기를 멈추고 그녀에게 다가가 제일 낮은 숫자를 입력해 주며 천천히 몸을 푼 후에 시작하기를 권했다. 그녀는 ‘헤헤’ 거리며 알았다고 러닝 머신의 속도에 맞게 걸었다. 걷는다기보다 이렇게 하는 거라는 정도를 익히는 단계였다. “할 수 있겠어요. 재미있지요.”
“네, 아주 재밌어요.”
라는 소리에 흐뭇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며 입으로 읊조리며 동작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르자 자꾸 내 운동 속도를 눈여겨보더니 자신의 속도는 너무 느려 재미가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다시 속도를 조금 더 올려 주었다. 엉성한 철사처럼 뻗쳐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는 가느다란 머리띠가 얹혀 있었다. 마치 자신의 기질을 뻗어나가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속도를 처음의 한 배 정도를 올려 주었다. 그녀는 역시 ‘헤헤’거리며 나와 눈 마주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향해 웃으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있잖아요. 우리 여행을 떠나요.” 어눌한 말로 뚜렷하게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이지 그냥 헤픈 소리를 하는 건가 하고 장난 섞인 웃음을 띠며 “어디로 떠날까요.”라고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동해안으로 떠나요.” “좋아요. 겨울인데 동해로 떠나요.” “와우, 겨울 파도 소리, 저기 밀려오는 파도 좀 보라고요. 피하세요.” 그녀는 몸을 한쪽으로 피하는 듯했다. 난 불안한 눈으로 살폈다. 러닝 머신으로 운동만 했을 뿐 여행은 상상도 못 했다. 이전에는 지루하도록 계획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팥죽 같은 땀방울만 흘렸다. 그녀는 내가 가보지 못한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나는 운동 기구에서는 죽어라 운동만 할 줄 알았다. 그녀와 함께했던 단 한 번의 운동 시간은 몸, 정신도 새롭게 다져지는 기분이었다.
그날처럼 부푼 마음으로 운동을 했던 기억은 없었다. 지금도 난 그녀가 와 있으면 좋겠다는 설렘으로 체력 단련실로 향하곤 했다.
오히려 내가 내만의 생각의 틀로 사람은 이런 형태로 모습은 이러해야하고 삶의 틀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살아왔던 것 같다. 기껏 건강하고 싶어 운동하면서도 땀만 흘리면서 운동에만 몰두했지. 정작 자유로운 상상은 시도조차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답답한 사람은 나였다. 그녀는 어떻게 한 자리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여행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환호를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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