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글에 대하여 반은 공감하고 반은 공감하지 않는다. 먼저 공감하지 않는 부분은 서훈 전 실장의 구속에 관한 내용이다. 이 글을 쓴 백기철 <한겨레> 편집인은 서훈 전 실장의 구속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월북 증거나 단서가 없는데도 국가 안보와 정치를 위해 월북자로 단정하고 관련 정보의 삭제 지시를 했다면 이는 명백한 잘못이고, 타당하고 필요하다면 법적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대표적인 이유는 국가 정치나 안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인권 보호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 대하여 공감과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30년 빈손 외교'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서 '외교'란 표현을 썼지만 '정치'도 포함된다고 본다.
나는 수년 전부터 독일은 통일이 되었는데 한반도는 왜 안되는지에 대해 많은 숙고를 해 왔다. 가장 큰 요인으로 먼저 독일은 동·서독간에 전쟁(내전)이 없었지만 한반도는 6·25 한반도 전쟁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요인은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 및 개방을 저해하는 가장 큰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독일은 미·소·영·프 등 네 나라에 의해 강제 분단시 동서독간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체제가 다른 정부 수립의 갈등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이에 관한 갈등과 대립이 심했고, 이러한 심한 갈등과 대립은 내전을 일으켰으며 정전(휴전)이 된 후에도 남북화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전까지 20여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독일은 통일이 되고 남북은 되지 못하는 구조적이며 근본적인 요인으로 앞의 두요인 보다도 독일인과 남북인들의 정치관과 세계관 등 가치관의 차이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남북의 시민 또는 인민들이 무엇이 바람직한 세계인지 또 가치인에 대한 인식과 판단 등 가치관의 수준과 정도가 낮다는 생각이다. 이런 요인에는 남북의 한반도 보다 독일이 유럽에 속해있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경험 및 역량이 더욱 축적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포함하여 한반도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서 독일은 통일이 되었고 한반도는 그렇지 못한 이유와 원인의 탐색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 또는 개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백기철의 칼럼 내용 중 아래 내용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본다. 중요한 것은 깨어있는 민주시민들의 북한과 평화 통일에 관한 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이라 하겠다.
"독일은 우리와 다른 길을 걸으며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1989년 동서독 통일을 전후한 때가 아니라 냉전 직후부터 꾸준히 89년이라는 운명적 시간을 준비했다는 데 있다. - 백기철"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 소장· 교육학 박사
한국통일교육학회 부회장. 코리아통합연구원 이사
성공회대 우이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남북교육연구소(Daum 카페)
xinchon@hanmail.net
원문보기 : 서훈 구속, ‘30년 빈손 외교’의 현주소 [백기철 칼럼]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전 정권의 청와대 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 국방부 장관 등을 마구 잡아넣으려 달려드는 나라 꼴이야말로 지난 30여년 우리 외교 실패의 현주소다. 남북 대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미·일 우방들도 신뢰한다는 북한통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짓밟는 나라가 또 있는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백기철 ㅣ편집인
지난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구속 기소는 충격적이었다. 두명의 전 정부 인사들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구속된 뒤 적부심에서 석방됐는데도 서 전 실장 영장이 발부되고 적부를 물을 틈도 주지 않고 검찰이 전격 기소했다. 고도의 외교안보 행위가 몇몇 검사와 영장 전담 판사들의 손에서 재단되는 창피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지만 영장 등을 통해 드러난 서 전 실장 혐의를 보면 이게 법의 잣대를 들이댈 일인지 의문이다. 희생된 이아무개씨가 월북인지 아닌지, 정부가 피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는지 여부는 당시 대북 첩보, 남북 간 채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외교안보적 정무 판단에 속한다. 무 자르듯 법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서 전 실장 구속이 단순히 서훈 개인에 대한 단죄일까?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은폐를 주도했다며 개인 비리 식으로 몰아가지만 대북 관련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판단을 주도할 순 있지만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결국 서훈 구속은 문재인 정권 대북정책에 대한 단죄인 셈이다.
서훈 구속은 우리 외교를 우리 스스로 짓밟는 짓이다. 남북 대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미·일 우방들도 신뢰한다는 북한통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짓밟는 나라가 또 있는가.
문재인 정부 역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한 만큼 서 전 실장 구속에 불만을 터뜨리는 건 일종의 내로남불이라는 주장이 일각에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김 전 장관은 대북 문제가 아닌 댓글 부대와 관련해 국내 정치 관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그가 박근혜 정부에서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군사 전문가라는 평을 들었던 만큼 그의 구속 역시 외교안보 자산의 손실로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청와대 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 국방부 장관 등을 마구 잡아넣으려 달려드는 나라 꼴이야말로 지난 30여년 우리 외교 실패의 현주소다. 서훈 구속은 ‘30년 빈손 외교’의 상징적 사건이다.
지난 30년 남들은 통일하고 평화를 찾는데 우리는 여전히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허송세월했다. 우리 스스로 발등을 찍고 서로의 뒷다리를 잡아온 탓이다. 북한의 광적인 핵 벼랑끝전술, 미국의 변덕과 고집 탓도 크지만 우리 내부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독일은 우리와 다른 길을 걸으며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1989년 동서독 통일을 전후한 때가 아니라 냉전 직후부터 꾸준히 89년이라는 운명적 시간을 준비했다는 데 있다.
독일 통일의 기반은 굳이 말하자면 ‘정-반-합 외교’다. 콘라트 아데나워의 이른바 ‘힘의 정책’, 즉 서방 중심, 동독 불인정, 경제 재건은 나라의 기본 역량을 튼튼히 쌓았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친서방 기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평화체제를 토대로 소련·동독·동유럽과 화해하고 교류했다. 브란트 이후 기민당도 명분뿐인 ‘즉각 통일 노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평화공존을 이어갔다. 사민당과 기민당이 빠른 통일을 포기하고 공존을 모색한 것이 역설적으로 통일의 기반이 됐다.
지금 세계의 풍향은 크게 변하고 있다. 미-중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의 완성 등으로 동북아와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정세의 대전환기인데 우리는 뭘 하고 있나.
이제는 30년 실패한 외교를 리셋해야 한다. 대체로 보수 정권이 외교정책 전환에서 좀 더 자유롭다고 하는데, 윤석열 정부에도 일말의 기대가 없지 않았다. 미국도 닉슨 때 큰 변화가 있었고 우리도 노태우 시절 외교의 큰 줄기가 바뀌었다. 또 지난 30년 보수, 진보 정부의 누적된 잘못을 극복할 때도 됐다.
그런데 서해 공무원 사건을 두고 통일부 장관이 앞장서서 진상을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데서부터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미, 대일 일변도 외교가 가시화됐고, 마치 대북 평화공존 정책이 친북인 양 마녀사냥식 몰이가 이어졌다. 참으로 한심하고 걱정스럽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도 북한, 중국, 일본과의 외교에서 흘러간 레퍼토리를 붙잡고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은 크게 변했고 북한은 대놓고 핵으로 남녘 동포를 겨누고 있다. 일본을 언제까지 경원시만 할 순 없다. 외교의 판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버릴 건 버리고 채택할 건 새로 채택해야 한다.
독일이 그랬듯 우리도 이승만과 박정희, 김대중과 노무현의 외교를 정-반-합으로 이어 계승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외교도 새 길을 열 수 있다. 최소한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 정권 외교안보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단죄하려 드는 아마추어 행태에선 벗어나야 한다.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