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신춘문예-시 부산일보]
애도 / 이희수
거대한 알이 깨지고 흰자처럼
달이 흘러나왔다 어둠이 왔다
여자는 폐건전지를 투명하고 긴 통에 모은다 위험한 유리 기둥이 나타난다 고요로 쌓은 돌무덤과 따로 함께였다가 함께 혼자인 구석이 생겨난다 주석이 본문보다 더 긴 하루이다 분리 수거를 마친
여자는 댓글을 읽는다 잘근잘근 씹으며 누군가를 죽이는 잔뜩 벌린 입이 있다 냉장고 문 손잡이를 잡고 여자는 가만히 얼어붙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 죽어가는 꾸욱 다문 입이 있다 거대한 얼음이 냉장고에서 걸어나와 빙수 기계에 올라앉는다 뼛가루가 수북해질 때까지 돌리고 돌려도 끝끝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여자는 새발뜨기를 한다 새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발자국을 찍고 시접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닫힌다 옷감은 희고 발자국은 푸르다 끝단이 닫히고 쌀무더기에 새발자국이 찍힌다 바느질을 끝낸
여자는 부러진 손톱을 금 간 식탁 유리에 올려놓는다 추억을 새기듯 꽃물을 들여도 길어난 시간은 잘려 나간다 손톱을 깎는 동안 곰팡이가 빵을 먹어버린다 좋은 빵인 줄 알게 된 순간 버려야 할 빵이 된다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예감은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난 뒤에야 찾아온다 여자는 식탁 유리를 갈기로 한다 차가운
유리 기둥 안에 장기를 기증한 시신이
들어 있다 제대로 버리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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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년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이희수의 '애도'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부산일보 당선자 이희수 씨는 1967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경상 공립대학교 국어 교육과를 졸업한 분이시네요.나이가 50대 후반이니, 원래 주요 신춘문예 당선자 중에서 나이가 많은 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교직에서 물러난 저에게 대학 동기인 소설가 강미가 모과 두 덩이를 건네며 ‘시 쓰시오’라고 했습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한몫했습니다. ‘나의 광산에서 광석을 채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이므로.’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 입문하여 일주일의 반은 서울에서 반은 진주에서 지냈습니다. "
대학에서 국어 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마무리한 뒤 뒤늦게 시를 쓰게 된 과정을 당선 소감에서 읽을 수 있는데요.
"저는 심약하고 소심하여 사는게 대체로 심심한 편이지만, 시만큼은 다체롭고 담대하게 쓰고 싶다"는 당선자의 다짐이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심사위원들(조말선, 신정민 시인)은 당선자에 대해 이렇게 했습니다.
"‘애도’ 외 7편의 시를 읽는 시간은 즐겁고도 흥분되었다. ‘따로 함께였다가 함께 혼자인’ 시들을 동봉해 버린 시인의 심정이 흥미로웠고 각 시편들은 혼자서도 좋은 시였다.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에게는 살아 있을 때의 존중과 존엄도 중요하지만 죽음 이후의 애도란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존엄 그 이상이다. 거기서부터 산 자의 삶이 다시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랑을 폐기할 때는 애도가 필요한 세상이기에 그 시의성을 은근히 드러낼 줄 아는 시인의 애둘러가는 마음도 읽혔다. 그렇게 애도할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의 구업에 대해서도 멈춰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였으므로 우리는 당선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기로 한다."
[2025신춘문예분석]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도입부와 마무리 부분이 형식적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알이 깨지고 흰자처럼/달이 흘러나왔다 어둠이 왔다"
시 도입은 파괴와 어둠의 이미지를 통해 불안정을 나타냅니다.
"유리 기둥 안에 장기를 기증한 시신이
들어 있다 제대로 버리는 일이 남았다"는 시의 마무리 구절에서 장기 기증은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삶의 흔적이며, 유리 기둥은 이러한 흔적이 쉽게 깨질 수 있음을 상징하죠. 제대로 버리는 일이 남았다는 마지막 구절은 도입부의 파괴와 혼란에 대한 감정적, 정신적인 정리를 의미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결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형식적인 대칭 구조는 시의 흐름에 안정감을 주며, 독자가 시의 주제와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연의 첫구절 "여자는 폐건전지를 투명하고 긴 통에 모은다 위험한 유리 기둥이 나타난다"는 구절에서는 어 폐 건전지는 죽음을 상징하죠.
반면에 유리 기둥은 깨지기 쉬운 슬픔이나 고통을 나타냅니다.
셋째, 연의 첫구절 "여자는 댓글을 읽는다 잘근잘근 씹으며 누군가를 죽이는 잔뜩 벌린 입이 있다"
여기서 댓글을 읽는 행위는 사회적 반응을 의미하며, 잔뜩 벌린 입은 비판이나 그 어떤 공격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죠.
넷째 연의 첫구절 "여자는 새발뜨기를 한다"
새발뜨기는 작은 발자국을 남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섯째 연의 첫구절 "여자는 부러진 손톱을 금 간 식탁 유리에 올려놓는다"
부러진 손톱은 상처나 아픔을 상징하며, 금간 유리는 깨지기 쉬운 감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이 시는 만남과 이별의 반복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무척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애도의 과정을 묘사합니다.
시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이미지들, 예를 들어서 깨진 알, 흘러나오는 달, 폐건전지, 유리기둥 등은 모두 상실과 애도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고요함과 고독을 강조하며, 사랑과 기억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로 나타나죠. "고요로 쌓은 돌무덤과 따로 함께였다가 함께 혼자인 구석이 생겨난다"라는 구절에서 이러한 감정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좋은 빵인 줄 알게 된 순간 버려야 할 빵이 된다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예감은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난 뒤에야 찾아온다"는 구절들은 과거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이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이 시에서 애도는 단순히 슬픔을 넘어 존엄과 존중을 통해 제대로 버리는 일이 암시하듯 삶의 여러 측면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수의 당선작 '애도' 작품이 지닌 시창작법상의 기법, 우리가 시창작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이미지와 상징의 활용입니다. 이 시느 강한 이미지와 상징으로 독자를 자극하고 있죠. 특히 '거대한 알이 깨지고 흰자처럼/달이 흘러나왔다'라는 구절은 시각적 이미지가 빛납니다.
둘째는 감정의 표현이 섬세합니다. 시에서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은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고요로 쌓은 돌무덤'과 같은 표현은 슬픔과 고독의 감정을 잘 전달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셋째는 일상적인 소재의 재발견입니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소재들을 시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시작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예를들면 '냉장고 문 손잡이를 잡고 여자는 가만히 얼어붙는다''는 구절은 일상적인 행동을 매우 새롭게 표현한 아주 감각적인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구절은 시는 재발견이라는 명제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죠.
마지막으로, 이 시는 주제를 아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버리는 일이 남았다'는 마지막 구절은 단순한 애도를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의 주제를 강화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2025년도 부산일보 신춘문예의 당선작 이희수의 '애도'를 만나 보았습니다. 이 시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새운 시작을 준비하는 여정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요. 섬세한 이미지와 상징으로 시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깨진 알 흘러나오는 달'과 같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사물에서 애도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요함과 고독, 그리고 애도의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놀랍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참신한 시적 발견이야말로 시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신선한 발견은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과 시의 깊이를 더해 준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