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죠이라는 인터넷 신문에 개척교회 목사 둘이 자살을 하였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인데 수년이 지나도 교회는 성장하지 않고 가족의 생활은 고사하고 매월 집세와 전기세도 내지 못하고 밀리는 상황이 계속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 자살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너무 안 됐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가족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가족들을 수소문하여 생활비 얼마라도 보내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었고 둘째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목사가 자살을 해. 세상에 그와 같은 어렵고 막막한 상황에 부딪히며 사는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인가? 오늘도 저녁에 자리에 누우며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목사가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자살을 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의 자살은 그 어떤 이유로도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분명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지울 수 없는 생각은 내가 마치 그 젊은 목사를 자살로 내 몬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도 두 달 전 교회를 새로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개척은 시작부터 개척이 아니었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수 억 원의 재정을 개척자금으로 지원해 주었고 시작하는 첫 날부터 백 명 가까운 교인들이 출석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벌써 수 백 명이 출석하는 큰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사무실도 크게 장만하고 교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비품들도 어렵지 않게 그것도 제법 좋은 것들로 장만을 해가고 있는 터에 그와 같은 기사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개척교회를 하면서 좌절하고 있는 수많은 젊은 후배 목사들 생각을 하며, 저들이 흔히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시설과 재정이 곧 교회의 영성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묘한 죄의식까지 느끼고 있던 터였는데 자살을 한 개척교회 목사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충격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저는 이 비슷한 충격을 십 여 년 전에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제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아이들을 위하여 그때 50만원을 주고 컴퓨터 한 대를 사 주었었습니다. 어려서 늘 가난하게 자라 손목 시계 하나를 차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 줄 수 있게 된 것이 그렇게 기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뉴스에 천호동에 사는 일가족 4명이 집세 50만원을 올려 줄 수 없는 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사건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 50만원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누구 집에는 그냥 아이들 컴퓨터 한 대 값에 불과한 50만원 때문에 일가족 4명이 자살을 하였다는 것이 그냥 넘어가 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며칠을 그 생각을 하면서 고민하였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떠 오른 성경 구절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레위기 19장에 나오는 추수에 관한 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할 때 자기 밭이라고 네 귀퉁이까지 다 추수하여서는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네 귀퉁이 남겨 놓고 추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수하다가 단을 떨어트리거든 줍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이 주어 갈 수 있도록 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아무리 가난하여도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할만큼 절박한 상황은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하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살을 한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있는 자들이 그와 같은 배려를 하지 않았다면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무죄하다고 자신을 변명할 수는 없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하루 종일 앉아서 꿀 병을 담았던 자그마한 나무 상자를 다듬어 저금통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에 "이삭줍기"라고 썼습니다. 아이들이 궁금하여 그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컴퓨터 이야기와 천호동에 일가족 4명이 바로 그 50만원 때문에 자살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9장의 말씀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귀퉁이를 여기에 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쓸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큰 아이가 제일 먼저 통에 돈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줍기 통 앞에 붙여 놓은 메모지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김부열 120원 방바닥에서 주운 돈" 이렇게 해서 저희 집의 이삭줍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줍기 운동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영락교회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설교 중에 하였더니 고등부 아이들이 그 이삭줍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운동이 영락교회 고등부에서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매달 첫 주일 이삭줍기 헌금을 하였습니다. 겉 봉투에 나름대로의 사연들을 적곤 하였는데 저는 지금도 그 때 그 사연들을 잊지 못합니다.
팥 빙수 먹고 싶었는데 .... 500원
칼국수 대신 사발면 800원 - 300원 = 500원
91년 동안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그 이삭줍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이삭줍기의 기준을 한 달 수입의 하루 분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제2의 십일조라고 불리우던 것이 있었습니다. 삼 년에 한 번 더 십일조를 하여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였습니다. 삼 년에 십분의 일은 1/30조에 해당하고 그것은 한 달 수입에 하루 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다 기준으로 헌금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많은 분들이 그와 같은 기준으로 이삭줍기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매해 1억 5천만원 정도의 이삭줍기 헌금이 모였고 그 돈으로 교회는 구제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안교회 이삭줍기 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헌금이 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이삭줍기 헌금으로 11,000원을 헌금하셨습니다. 그리고 헌금봉투에 "공장 하루 품삯" 이라고 쓰셨습니다. 한 달에 하루 수입은 가난한 자를 위하여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설교를 들으시고 할머니는 자기 하루 품삯 전부를 이삭줍기 헌금으로 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날의 감동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 할머니는 그 다음 달 이삭줍기 헌금으로 13,000원을 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할머니의 일당을 2,000원 올려 주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헌금봉투에는 잔업을 하여 일당 2,000원을 더 받았다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하루 일당 11,000원 받는 할머니는 아마 극빈자 중에 극빈자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할머니는 한 달에 하루를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하여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저는 자살한 개척교회 목사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몹시 불편하고 괴로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소위 지금까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였고 개척교회를 시작한 지금도 여전히 재정적으로 넉넉한 목사입니다. 소문 없이 시작한 예배였는데 첫날부터 100명 가까운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두 달이 지난 지금 500명 가까운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시작하는 처음부터 동안교회의 지원과 숭의학원의 지원 그리고 여러 교인들의 진심 어린 후원으로 모든 것이 호화롭다 하리만큼 풍족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체육관에서 임시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체육관에 카펫을 깔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내년 2월이 되면 냉난방이 완벽한 2,000석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음향시설을 갖춘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사무실과 강의실도 정말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보다 더 아름다운 사무실과 강의실을 갖춘 교회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예산으로만 된 것은 아닙니다. 교인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컴퓨터도 사 주시고 책상과 의자도 사주시고 응접세트도 기증해 주셔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무실과 강의실이 지나치리만큼 아름답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자살한 개척교회 목사의 기사를 읽었을 때 괴로웠습니다. 죄를 지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거의 언제나 10 여 년 전 아이들 컴퓨터를 사주었을 때 같은 액수의 돈 때문에 자살을 한 천호동 일가족 4명에 대하여 느꼈던 갈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민과 갈등은 조금이라도 양심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갈등과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이와 같은 고민과 갈등에서부터 자유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율법이 이에 대한 해답을 준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앉아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물질에 대한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물질은 크게 세 가지이었습니다. 십일조와 제2의 십일조 그리고 추수할 때 네 귀퉁이를 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작지도 쉽지도 않은 액수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십일조를 네 귀퉁이를 뗀 후의 소득으로 할 것이냐 네 귀퉁이를 떼기 전의 소득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퍼센테이지가 달라졌습니다. 제 계산이 정확하지 모르겠으나 제 계산에 의하면 그것은 최소한 31.7%에서 34.9%였습니다.
저는 목회를 할 때나 개인적인 살림을 할 때 이 숫자를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수준의 몫을 떼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같은 몫을 떼고는 도저히 자기 살림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몫에 대하여 율법적인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몫을 떼고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와 같은 몫에 대하여 부담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가난에 대한 절망으로 인하여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어느 정도 자신을 용서하며 자유 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안교회에서 목회 할 때 43% 정도를 밖으로 내었었습니다. 교회 건축을 하여 교회재정이 어려웠을 때에도 앞에서 이야기 한 31.7%에서 34.9%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지나치다하리만큼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건축 중에도 개척교회를 건축하고 북한 선교를 위하여 억 단위의 헌금을 하고 신학대학교 건축에도 인색하지 않고 우리 몫을 지나치리만큼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동안교회는 일년에 수 십 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교회요 교회 건축을 위하여 100 억 원의 예산을 쓴 교회였지만 저는 나름대로 큰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무조건 동안교회가 큰 예배당을 건축하고 수 십 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대형교회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목사입니다. 얼마 전 선교 단체들 간사들 수련회에서 저들과 대화를 하다가 제 연수입에 대하여 궁금해하기에 조금 망설이다가 정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제 수입에 대하여 언제나 큰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기를 쓰고 34.9%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최소한 제가 목회하는 교회만큼의 몫은 나도 밖으로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림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최고의 몫을 떼었을 때 보다 제가 개인적으로 떼는 몫이 많았습니다. 아마 제가 제 몫으로 떼는 액수를 그 간사들에게 이야기하였다면 저들은 제 수입에 대하여 놀란 만큼 놀라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몫을 떼고도 동안교회는 부자였습니다. 넉넉하였습니다. 큰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저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안교회는 그 큰 예배당에 대하여 자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산을 지키려고 노력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넉넉하고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양심과 자유를 위하여 그와 같은 구체적인 법을 세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그와 같은 구체적인 법이 없다면 모든 부자가 자기도 가난해지리만큼 되지 않는 한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좀 지나친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최소한 34.%의 몫을 밖으로 뗄 수 있는 부자는 나머지 65.1%의 개인적인 삶에 대하여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예배당이 필요하면 지어도 되고 좋은 자동차가 필요하면 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에까지 비난하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숭의 교회에서 그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척 초기이기 때문에 제법 많은 예산이 들어가지만 31.7%와 34.9%의 몫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추수감사 헌금을 숭의학원에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헌금함으로 거의 그 계산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번 달 성탄헌금 전액을 구제하는 일을 위하여 사용하면 아마 제법 잘 그 기준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올해 처음부터 그 기준을 맞출 수 있다면 이제 모든 것이 거의 준비 된 상황에서 앞으로는 상당히 많은 몫을 밖으로 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미리 밝혀 두지만 무조건 밖으로 떼는 몫만을 생각하여 우리 높은 뜻 숭의 교회를 깡통 교회로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준으로 세우신 몫을 감당한 후에는 어느 정도 우리 교회에도 투자할 것입니다. 교인들에게도 서비스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개척교회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였다는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또 다시 이삭줍기 운동을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 설교는 레위기 19장의 말씀을 가지고 이삭줍기에 대한 말씀을 전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네 귀퉁이를 남기고 추수하라 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삭줍기 운동으로 실천하시어 가난한 자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을 남겨주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고 넉넉한 삶에 대하여 자유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윗글에 대한 소감입니다
우문숙 love0107@bbb.hosanna.net 2002-05-25 오후 12:28:00
우리나라에 목사님같은 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주성 lordsnd@hosanna.net 2002-05-25 오전 10:41:00
참으로 좋은 일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아버지께서는 보리나 벼를 베시면서 꼭 한 평정도씩은 남기셨습니다. 저희 집안도 가난이 찌든 생활을 하시면서도!
지금도 아버님의 그 모습이 생각이 나서 저도 아직은 개척교회를 시작해서 힘들지만 참여를하고자 합니다.
부디 이 땅에 가난이 물러가기를 주님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소리 목사
백지해 knuivfer@hosanna.net 2002-05-24 오후 8:30:00
재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부자 크리스챤들에 대해서두요...
저의 조그마한 재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기준이 세워진 거 같네요..
이 원칙을 언제나 지킬 수 있도록(지금뿐만 아니라 나중에 혹 큰 돈을 벌 때에도) 기도하며 결단해야겠습니다...
p.s 그리고...밑의 지체님은 뭔가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목사님께서 얘기하신 것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김원중 comsect@hosanna.net 2002-05-24 오후 6:46:00
한심하군요......이러고도 존경받는 목사라는게 신기합니다....차라리 그저그런 목사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겠지만,,,,남이 알까 두렵군요.
십일조도 중요합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각종헌금도 일리는 있겠지요. 그러나, 십일조도 안되는 돈일지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므로 하나님께서 내마음의 감사를 인정할 만한 드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넘넘 유식한 목사님!
전 내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천원한장 내는 것도 챙피를 무릅쓰고라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동하면 월급여가 75만원인 사람인데 100만원의 감사헌금도 하지요.
혹시 교회에서 헌금송으로 "내게 있는 모든것을" (71장) 부르신적은 없으신지요!
권상규 lord-8291@church.hosanna.net 2002-05-24 오후 5:18:00
목사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큰 교회를 목양하시면서도 작은 교회를 배려하시는 목사님의 그 마음이 주님 오실때까지 변치않으시리라 믿습니다.한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은 10/2조 문제인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10/1조를 떼고, 남은 10/9조에서 또 10/1조를 떼어 1,2년과 4,5년은 축제비용으로 사용했고, 3년과 6년에는 잔치를 하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혼동이 있을까 싶어서 말씀드립니다.(신14:22-29절)
강신왕 libertychurch@church.hosanna.net 2002-05-24 오후 4:55:00
우상숭배로 만연된 시골 개척교회 목사입니다.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목사가 자살을 했겠는가 생각하면서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목사님의 글을 통하여 큰 위로를 받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을 통하여 목사님을 만나며 독백으로 대화합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 남겨 주시고요...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분들이 이 땅에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한 저도 목사님 처럼 그렇게 목회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김화정 broomrider@hosanna.net 2002-05-24 오후 2:08:00
이삭줍기가 저에겐 참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고 나니 그 의미와 목적등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그것들이 내게 주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소유만을 고집할 때 감사함을 잊게되고 다른이들의 아픔을 방관하는 껍데기 크리스찬이 되고 마는것 같습니다.
200원, 300원 모아서, 혹은 자기의 하루 월급 전부를 내놓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분명히 감동과 반성의 기회 이상입니다. 그러나 항상 적게 가진 자들은 그 적은 속에서 큰 부분을 나누기위해 내어 놓는 반면 많이 가진이들은 오히려 더 퍼센트에 분명하고 더 내어놓기에 인색하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군요.
조미라 kts1374@hosanna.net 2002-05-24 오전 2:59:00
정말 고마워요^^ 이렇 겠 좋은 말슴을
우리에게 전 해주시니 당 신은 사랑 받길 위해 태어난
사람 입니다 저말 고마워요
김영범 pilgrimen@hosanna.net 2002-05-23 오후 9:24:00
말씀 잘 보았습니다..
부를 누릴때 각자의 신앙안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나 돌아보고 기도가 필요하겠지요.
핵심에서 벗어난 생각일수있으나, 대형교회 목사님은 대형차를 필요하다면 타두 문제
없을수도 있으나 전적으로 양심의 문제입니다.
목사님의 좋은 말씀보고 이삭줍기에 동참해야 겠네요.. 샬롬,,*^.^*
김재윤 kimjey@evan.hosanna.net 2002-05-23 오후 5:07:00
그러나, 저는 목회자는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목사라도 지나친 수입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절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성직에 있는 사람은 상황과 이유를 막론하고 청빈하고 검소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분배의 문제는 소수의 부자들이 지나친 부를 소유하면서도, 나누지 않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부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재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구약에 근거하여 헌금을 내는 것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쁜정아 jsllk488@church.hosanna.net 2002-05-23 오전 10:41:00
우 와
좋은 글이내요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시죠
참 은혜스런 말씀입니다
김길복 gilbokkim@hosanna.net 2002-05-22 오후 1:35:00
글 감사히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만 부르짖다보니 행함이 결여된 이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꼭 들려져야할 말씀이 선포됨에 감사합니다.
분명히 성경은 처음부터 믿음과 행함이 함께 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는데 언제부터 가르침만 있고 행함이 없어 "화 있을진져 너희 바리새인들이여..."하며 예수님으로 부터 내어침을 받은 그들이 이 시대 교회에 팽대하게 되어 그것이 당연시 되어가는 풍조로
감각조차 잃어가는 시대에 시원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힘있게 시대를 깨우는 선구자적 사역의 길을 변함없이 걸으시며 가르침과 행함으로 감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감사합니다
최경희 esd1234@hosanna.net 2002-05-22 오후 12:54:00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주고 주어도 얻어 지는 삶속에서 진정 참 목자의 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평안하시구요 목사님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Shin_hae_young hama71@evan.hosanna.net 2002-05-22 오전 4:07:00
목사님, 전에 해 주셨던 그 말씀에서 좀 더 보강되고 구체적인 말씀 감사합니다! 96년 캐나다 코스타에서 목사님 처음뵙고 목사님을 알고 또 저의 멘톨이 되어 주신지 벌써 7년이 되었네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말씀과 좋은 목회자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더해 주시기를... 그리고 앞으로 이삭줍기가 더 많이 퍼져나가서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항상 하나님 사랑 안에서 평안하세요! God bless you!
이두환 hwany326@hosanna.net 2002-05-24 오후 4:55:00
말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 중 "최소한 34.%의 몫을 밖으로 뗄 수 있는 부자는 나머지 65.1%의 개인적인 삶에 대하여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선뜻 수긍을 하지 못하게 되네요. 물론, "좀 지나친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으나"라는 단서를 달으셨지만 성경적으로 이것이 옳은 말씀인지? 의문이 듭니다. 또 목사님이 자신의 수입에 대한 부담감이 심하다고 하셨고 그것을 34% 이상 밖으로 낸다고 하여 평균(?) 이상의 사례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듯한 말씀에도 수긍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긍정적인 많은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을 부러 찾는 듯 해서 죄송합니다. 또 목사님이 말씀하시려는 원래 의도를 제가 헤아리지 못한 것이라면 용서를 구합니다.
김종수 jstruth@hosanna.net 2002-05-21 오전 8:43:00
목사님, 감사합니다.
6년전에 목사님의 이삭줍기에 대해서 책을 읽고나서
바로 시작해서 지금은 1/10정도를 이삭줍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목사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따뜻한 목사님으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김혜영 hykim7@hosanna.net 2002-05-21 오전 12:46:00
34% 또는 37%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십일조를 바칩니다. 감사 헌금도 절기에 따라 적당히 드립니다. 주일 헌금도 하구요. 그리고 적당히 선교 헌금을 합니다.
제 2십일조는 성경의 어느 구절에 표시 되어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황민혜 ruth0210@hosanna.net 2002-05-20 오후 9:31:00
제가 섬기는 교회에 얼마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허필현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저희 교회에 처음 오셔서 하신 일이 "이삭줍기"엿습니다.
그리구.. 그 헌금을 하면서 참 많은 아름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일이 그때처럼. 진행되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김동호목사님에게서 우리 허목사님께 들었던 그 설교를 다시 듣게 됩니다.
다시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구 역시 김동호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김경숙 kskim73@hosanna.net 2002-05-20 오후 7:29:00
목사님의 테잎을 듣고 얼마전 부터 저도 개인적으로 이삭줍기를 하며 이 물질을 어느곳에 쓸가를 고민하며 지냈는데, 요즘은 비록 작지만 구제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듯 하여 좀더 열심히 아껴써서 저보다 힘들고 주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구제에 힘쓰려 합니다.
이슬 liante13@hosanna.net 2002-05-20 오전 11:59:00
저는 '이삭줍기'의 팥빙수 사먹을돈... 칼국수 사먹을 돈.. 을 아껴서 200원 300원
모아 이삭줍기에 낸 것에 감동 받았습니다..
200원 300원.. 내가 아주 조금만 줄이면 얻을 수 있는 돈인데.. 그걸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것.. 아주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일 이지만.. 그것 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는 거지에게도 돈 넣는것을 망설이는 저를 반성합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 주신 것 감사합니다...+^^+
우인숙 wwjd100@evan.hosanna.net 2002-05-20 오전 11:01:00
참감사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언제나 돌보는 것이 참 하나님아버지의 뜻임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사회를 빛의 사자인 우리들이 감당해야 함을 잘알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교회로 발전하시기에 모든 것이 풍족한 것을 감사드리며 이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일에 앞장서실줄 믿습니다.
오랜 세월 물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때가 되면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음을 봅니다.
각자에게 맡기신 일이 다르고 쳐한 상황이 다르더라도 아버지의 말씀은 동일하심을 생각하며 언제나 보다 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이상 감사한일이 없습니다.
기뻐하시는 사역에 더욱 많은 일을 맡기실 줄 믿습니다.
변경자 bykyjj@pastor.hosanna.net 2002-05-20 오전 9:12:00
목사님 말씀 감사 합니다. 저희교회도 개쳑교회지만 나름대로 저와 성도들이 구제헌금을 매달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 말씀을 대하고는 더 잘 감당해야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감히 하나님 말씀을 상고 해 봅니다. (약1:26,27)"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하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께 영광! 감사 합니다.
김진기 sinseong@hosanna.net 2002-05-19 오후 3:28:00
목사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늘 빚진 마음이 있으며 최근에는 쓰던 컴퓨터가 낡았다고 132만원 주고 쉽게 새것으로 구입했습니다. 정말 우리 주변에는 겁없이 재물을 낭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처한 위치가 가난한 동네임에도 교회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EQUUS 를 타고 다니시는 목사님들도 많더군요 정말 이제 목사라는 것이 자랑스러움이 아닌 부끄러움으로 마음에 남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율법이 아닌 양심있는 목사가 되고 싶고 그전에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제의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이빌립 philip94@hosanna.net 2002-05-18 오후 8:37:00
하나님앞에 정직한 자의 모습을 전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권리만을 부르짖는 많은 사람들속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거룩한 행함의 의무가 감사함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레위기19장을 읽으며 밀레의 이삭줍기그림을 떠올려봅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일을 행하며 베푸는 삶,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있는 사람의 모습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평강의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여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석종 schonglee@hosanna.net 2002-05-18 오후 8:25:00
감사합니다.이삭 줍는 모습 오늘도 도움을 피요로 하는 수 많은 손길을 생각하며 주님의 교훈을 따르려합니다 죽을 힘을 다 할려치면 무슨 어려움이 되리오 마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주님을 향한 단순한 생각 만으로 처신할수는 없는 일 이라고 보며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를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레위기 19;을다시상고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