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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느낌이 살아있는 현대건축물은 어디? – 박정연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유리 커튼월 외관을 가진 오피스 빌딩들 사이로, 전통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지금은 소실되어 초석만 남아있는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연상하게 하기도 하죠. 이 독특한 건물은 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센터입니다. 또한 강남구 대모산자락에는 유리외관을 가진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이 세워졌어요. 이 건물은 상당히 현대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는데 건물 내•외부에 불교경전인 금강경이 새겨지고, 현대건축물이지만 예스러운 세련미를 물씬 풍기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현대건축물이면서, 이처럼 전통건축의 좋은 느낌을 담고 있는 사례들을 살펴보도록 하죠.
전통적인 형태를 차용한 도심형 사찰
< 국제 선센터 외관 / 사진: 박정연(이하동일) >
국제 선센터는 도심을 떠나 자신을 돌아보는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려는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깝고 편한 위치에서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며,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요.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사찰이기도 한 이 곳은, 정기적인 종교행사 및 문화행사, 강연이 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시가 발전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까이 다가온 사찰을 산지형 사찰과 구분하여 도심형 사찰이라고 부릅니다. 넓은 대지에 분산되어 배치된 산지형 사찰에 비해서 도심형 사찰은 좁은 땅에 여러 층을 가지는 건물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이 있죠.
또 하나의 특징은 건축 재료가 목재에서 콘크리트나 철골로 바뀌면서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통사찰의 주불전(대웅전 등)에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석가탄신일에 마당에 자리를 펴고 법회를 갖는 것이라는 ‘야단법석’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전통목구조는 대들보의 길이가 한정되어 있지만, 현대건축의 구조방식은 그보다 몇 배의 기둥간격으로 공간을 계획할 수 있어서 아래처럼 넓은 실내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죠.
< 국제 선센터 주불전(상) / 전남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하) >
실내건축과 교수이기도 한 건축가 김개천(이도건축)씨가 국제 선센터를 설계했는데, 그는 현대건축물이면서 이처럼 전통적인 느낌을 갖는 공간을 이미 여러 차례 설계했습니다. 넓은 공간만큼이나 높은 층고를 가지고, 측면의 창을 통해서 자연광이 유입되며, 전통사찰을 연상시키는 색채와 단청, 조명을 설치했죠. 전남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정토사 무량수전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사찰을 콘크리트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건축계에서는 특별한 이슈가 될 수 있었고 그러한 실험적인 시도를 인정해서인지 2001년 건축가협회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 >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만해마을(김개천(이도건축) 설계)에서는 좀 더 현대적으로 표현된 전통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사찰을 비롯해서 만해 문학박물관, 청소년, 대학생 연수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결한 공간 속에 법당을 계획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무채색의 외관은 전통의 건축재료인 전벽돌을 연상하게 하며, 떠있는 듯한 현대건축의 입면이 전통건축의 처마와 마루처럼 주변의 풍경을 한정시키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적인 재료로 전통건축의 공간과 불교사상을 표현한 건축물
2010년 많은 건축가들이 주목하고 답사했던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가협회상, 서울특별시건축상 최우수상,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 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 탄허기념박물관인데요. 화엄경을 비롯한 수많은 불교 법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업적을 기려 대종사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는 탄허스님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전쟁기념관을 설계하기도 한 건축가 이성관(한울건축)씨가 설계했으며, 지극히 현대적인 재료와 형태로 계획되었지만, 전통적인 공간의 느낌과 탄허스님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불교사상까지 느껴지는 건축물입니다.
< 탄허기념박물관 외관 및 진입부 >
건물에 다가서며 유리로 된 외관에 수많은 글자들이 찍힌 모습에 놀랐습니다. 어떠한 패턴으로 읽히도록 같은 문양을 찍어낸 모습은 본적이 있지만, 이처럼 각각의 유리에 서로 다른 글자들이 찍혀서 전체가 금강경의 법문을 완성하고 있는 모습에 대단한 정성을 들인 건축물이라는 것이 느껴졌죠. 또한 108번뇌를 의미하는 108개의 철재 기둥과 전통건축의 처마처럼 가볍게 들려진 캐노피가 방문자들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불교에는 3가지 보물이 있다고 해요. 불, 법, 승이 그것인데, 각각 석가모니, 법문, 승려를 뜻합니다. 탄허기념박물관의 보광명전에서는 부처님보다 법문인 금강경을 중요하게 모시고 있습니다. 금강경의 모든 글자가 청동으로 주조되어 만들어진 벽면에는 천창에서부터 빛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대모산자락의 기운이 건물의 중정에 만들어진 대나무 숲의 향기를 맡고, 수공간에 잔잔히 반사되며 건물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 금강경으로 벽면이 채워진 법당 >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디에 모시고 있는가. 바로 보광명전 상부의 허공에 띄워진 듯한 검은색 공간인 방산굴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북쪽이 아닌 방위를 바라보도록 배치한다고 하는데, 보광명전은 건물의 배치상 북쪽을 바라보게 되어서 이렇게 건축적인 계획을 했다고 합니다. 탄허스님의 법명은 허공이라는 뜻인데 기둥 없이 공간 속에 공간이 떠있는 듯한 형상을 만든 것은 스님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부처님이 등지고 있는 서북쪽을 제외한 삼면과 하늘로 열려진 천창을 포함해서 사면이 열려지고 통하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 허공에 떠 있는 듯 한 법당 >
이처럼 금강경과 석가모니, 그리고 탄허스님을 모셔서 3가지 불교의 보물을 모두 모신 탄허기념박물관은 불자가 아니라도 자유롭게 찾아서 관람하고 그 정신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문화강연이 개최되기도 합니다. 방산굴에서 동북쪽으로 난 창에는 전통건축의 처마를 형상화한 형태가 만들어져 있는데, 부처님이 오색으로 빛을 발하는 것을 뜻하는 오색단청이 칠해져 있어요. 그리고 전통한옥의 들어열개창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방문자들이 오가는 모습을 부처님이 내려다볼 수 있도록 의도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 탄허기념박물관 외관 >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 속에 한국성, 전통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만큼 직접적이거나, 혹은 번안된 표현이거나 한국에 세워지는 건축이라면 그것이 적절하게 녹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변의 건축물들을 살펴보며 건축가의 의도를 읽어내려고 시도하다 보면 그 속에서 대한민국을 표현한 것이 찾아질 수 있으니, 한번 마음을 열고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출처 : 붓다뉴스
'지금-여기' 사찰건축은 어디에?
김개천ㆍ 이일훈ㆍ 김홍일 현대 사찰건축을 말하다
전통건축에 담긴 사상을 읽어내는 책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전통사찰의 건축적 구조를 불교사상의 이해를 빌어 풀어내는 식의 책들이다. 사찰건축으로 대표되는 고건축을 모르고는 현대건축을 논할 수가 없기에, 실제로 건축가들은 사찰건축과 불교철학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일훈씨가 설계한 도피안사 향적당
그러나 사찰건축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읽어내고 구현하는 작업은 아직도 미진하다. 도심사찰이 속속 생겨나면서 도심형 절충식 사찰모델이 제시되고 있으나, 콘크리트 건물 위에 기와지붕이 어정쩡하게 얹혀있는 이들 모델은 건축가들 어법으로 ‘어리숙한 전통에 기대는’ 조악한 형태일 뿐이다.
김개천씨가 설계한 법천사
그러나 이같은 척박한 토양을 딛고서라도 ‘지금-여기’의 미학과 불교철학을 담아내려는 건축가들의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건축가 김개천(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김홍일(동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이일훈(후리건축 대표) 씨가 보여준 현대식 사찰모델을 살펴보고 이 시대 사찰건축상의 정립을 위해 요청되는 과제와 전망 등을 들어본다.
△전통사찰 양식에 창조적 변형을 시도한다
기와를 얹고 목재를 쓴 전통사찰의 건축 양식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찰 모델의 전형을 제시해왔다. 그래서 현대식 사찰건축을 시도하는 건축가들은 형식과 재료 면에서 전통의 양식을 차용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김홍일씨가 설계한 무문암
충북 괴산군 두타산 자락에 자리 잡은 법천사(설계 김개천)의 경우, 대웅전을 아름드리 나무기둥 대신 콘크리트와 까만 벽돌로 지어 올렸다. 3층 높이의 단층 대웅전은 외양을 석탑의 형태에서 따와, 단청이나 기와 없이도 절집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 실제 대웅전 뒤로 법당 건축이 예정돼 있어, 조만간 전통적인 가람 배치와 관련해 탑의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도 보인다. 대웅전 내부에도 사고의 변혁은 이어져, 후불탱화 역시 불상 뒤편 창문을 통해 보이는 두타산 능선이 대신하도록 했다. 자연과 부처는 둘이 아니라는 사상의 반영이다.
김홍일 교수가 설계한 충남 당진군 무문암과 충북 논산시 관동사는 전통양식의 배치를 따라 사찰 분위기를 살리는 가운데 현대적인 형태를 모색한 건축물이다. 바깥으로 노출된 기둥이 두 개의 수평면을 떠받치는 형태로 설계된 무문암 전각들은 처마와 툇마루 형태를 설정함으로써 전통건축의 양식을 끌어들였다. 대웅전은 유리에 필름을 붙여 한지 느낌이 나도록 했다.
김홍일 교수는 “처마와 마루 사이에 형성된 공간 사이로 이웃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와 건축물 간의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개체간의 관계성에 주목한 연기(緣起)의 건축이다.
최근 설계를 끝내고 올 봄 착공을 앞두고 있는 양평 금회법당(설계 김개천) 역시 전통적인 ㄷ자 가람 배치를 살리면서 재료에 변형을 준 현대적인 사찰 모델 사례로 꼽힌다.
김개천 설계 만해사
△파격적 시도, 그안에 무형의 법문이
전통 사찰을 넘어서 새로운 사찰 양식을 선보이는 작업도 다수 진행됐다. 외부 형식에는 파격을 시도했고, 그 내부에는 불교사상을 더욱 풍성하게 반영했다.
이일훈씨는 ‘지금-여기’의 건축자재로 보편화된 콘크리트를 이용해 현대사찰을 설계했다. 안성 도피안사 향적당은 기둥으로 지지하고 있는 공간 아래 활공루라는 빈 공간을 통하도록 설계돼, 다분히 폐쇄적이었던 절의 내부 공간을 외부로 끌어냈다. 옥상 끝 계단꼭대기에는 풍경의 울림으로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하늘의 문을 마련, 도솔천을 형상화했다.
김개천 교수가 설계한 만해마을 만해사ㆍ담양 정토사 역시 파격의 미학을 담고 있다. 두 건물 모두 네모반듯한 시멘트 건물이 전부지만, 그 공간에 막상 들어서면 무형의 법문이 쏟아진다.
정토사의 경우 색(色)을 통해 공(空)까지 드러낸 일획의 건축이라 평가받는다. 정토사 법당은 문이 곧 벽이다. 문을 모두 열면 건축공간은 사라지고 자연만이 남게 된다. 반대로 문을 닫으면 완전한 건축공간만 존재한다. 문 위에 비치는 산그림자는 곧 ‘벽’의 부분이 되기 때문에, 건축이 곧 자연이 되고 자연이 건축이 되는 합일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법천사 내부
허공에 두 획을 그은 듯한 단순한 형태의 만해사도 마찬가지. 층계를 올라 안으로 들어서면 정작 텅빈 공간만 남을 뿐이지만 산이 저만치 눈에 들어온다. 만해광장의 무대에도 두 개의 기둥이 전부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산이 세트처럼 앉아있다. 김개천 교수는 “가장 단순한 형태야말로 가장 풍성한 것을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연기건축 무문암
△불교ㆍ건축미학 공존하는 새모델 고민해야
이처럼 몇 명의 건축가들이 이 시대의 사찰 양식을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그와 관련한 작업은 철저히 개인의 원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과감한 설계를 시도한 몇몇 건축물을 제외하면, 이 시대 사찰양식의 전형이라 부를 만한 모델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대 건축공학과 도창환 교수는 “조선, 고려, 조선 시대에는 나름의 건축 양식을 구현하고 있지만, 최근 100년 간 들어선 사찰 건축물에서는 시대를 대표하는 이렇다할 전형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물론 특정한 전형을 찾는 것이 대안은 아니다. 포스트 모던시대에 절대적인 원형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관심이다. 콘크리트 건물에 나무 지붕으로 이어지는 조악한 표현 양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이고, 늘고 있는 도심형 사찰 양식을 포함해 21세기 사찰 모델에 대한 그 어떤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건축가 이일훈씨는 “이도저도 아닌 전통복제형 건축은 역사의 빈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 자명하다”며 “불교철학과 건축미학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새 시대 사찰 모델을 고민하는 것은 불교계와 건축계가 짊어져야 할 문화적 숙제”라고 말했다.
첫댓글 멋 있는 건축물들입니다 건축은 시대를 표현하죠 전통도 지키고 가꾸어야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나타내는 그것으로 미래의 문화유산이 될수도 있겠죠 그런 새 절이 탄생되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