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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오피니언뉴스 기사 승인일 : 2021.05.27.
글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지리산 뱀사골 동쪽 산록 품에서 만나는 일곱 암자
영원사 삼불사 실상사 등 3개의 절과 4개 암자 있는 것
대자연의 숭고함 속 한없이 작은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곳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칠암자 순례길은 지리산 뱀사골의 동쪽 산록인 삼정산(1225m) 품에 있는 도솔암(兜率庵), 영원사(靈源寺), 상무주암(上無住庵), 문수암(文殊庵), 삼불사((三佛寺), 약수암(藥水庵), 실상사(實相寺) 등 세 군데의 절과 네 군데의 암자를 걷는 길이다.
이 길은 함양군 마천면 양정마을에서 시작하여 산내면의 실상사에서 마무리한다.
어제 내린 비는 미세먼지 가득한 대지를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오늘은 비 갠 뒤의 맑고 신선함으로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구름 없는 하늘, 햇볕은 내 머리 위로 내려 앉았다. 내내 나를 가두며 구름처럼 일던 번뇌는 실타래가 풀리듯 사라졌다.
#1. 지리산 뱀사골 동쪽 삼정산 자락에 있는 도솔암(兜率庵, 해발 1165m)
양정마을에서 출발하여 임도를 타고 2킬로 남짓 오르다 영원사를 앞에 두고 도솔암으로 향했다.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천천히 걷는다. 길을 가다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어린 전나무를 본다. 도대체 살아날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살아내는 모습에 외경을 느낀다.
산을 타고 내리는 계곡물 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편안하던 길이 가파르다. 도솔암이 높은 곳에 자리 잡았으니 만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
돌계단을 지나 도솔암 산문에 들어섰다. 병풍을 두르듯 산이 도솔암을 품에 안은 모양의 명당이다. 마당에 서서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니 천왕봉이 눈앞에 다가섰다.
#2. 영원사(靈源寺, 해발 895m)
도솔암을 내려와 임도로 300여 미터를 오르니 영원사다. 합천 해인사의 말사로 함양군 마천면 삼정산 동남쪽 중턱에 자리잡은 영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 어디에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영원대사가 조선시대 스님인 점으로 미루어 조선 시대에 창건 되었음으로 짐작된다.
한 때는 지리산 안쪽에선 제일 큰 100칸이 넘는 큰 사찰로 큰 스님들이 많이 머물렀던 곳이었으나 6.25때 소실되어 지금은 세월의 야속함만 남아있다.
바람이 불자 봄빛을 가득 품은 연록의 나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마다 무성한 잎은 무리를 지어 웅성웅성 바람에 더 유난했다. 영원사 표지석을 지나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구도의 길을 따라 산문에 들어섰다. 정오를 넘긴 햇볕은 눈이 부시게 내렸지만 덥지도 않고 시원하다. 길게 가로로 이어진 영원사 오르는 길이 마치 인생길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문에 들어섰다. 법당의 편액을 바라보니 두류선림(頭流禪林)이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 두류산으로, 영원사가 지리산 내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니 당연하게 보인다.
법당 앞에 서서 아래를 바라본다. 탐스럽게 피어난 불두화 너머로 내가 걸어온 아스라한 길이 겹쳐 보인다. 내가 살아온 날이 길에 이입되어 한동안 장승처럼 밑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3. 상무주암(上無住庵, 해발 1162m)
영원사를 떠나 가파르게 산길을 올라야 한다. 크고 작은 돌이 있는 너덜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죽이 지천이다.
대나무에 꽃이 피면 한 생을 다하고 대나무가 진다고 그러는데 온통 산죽에 꽃이 피었다. 대꽃은 귀해서 수십 년이나 수백 년을 만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가득한 산죽꽃을 만났다.
지리산이 순례에 나선 내게 주는 귀한 선물인 듯싶다. 빗기재를 넘어 삼정산(1225m) 정상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돌아 칠암자 중 도솔암 다음으로 높은 상무주암에 도착했다.
상무주는 사람이 쉽게 걸음 하기 어려운 곳에 있기에 편액의 뜻과 일치한다. 상무주(上無住)는 일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니 이곳이 참선하기에는 최고의 길지가 아닌가.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에서 이년 간 머물며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스님이 암자 내부의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수행하는 공간이라 잡인의 출입에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다. 아름다운 암자의 바깥 전경만 사진에 담았다. 암자 밖으로 돌담이 높고, 길도 잘 만들어 놓아 길 따라 지나가라는 뜻인가 보다. 그래서 상무주암을 지나면 사람 쉴 곳이 있고 ‘아니온 듯 다녀가시란’ 글귀를 두었나 보다.
#4. 문수암(文殊庵, 해발 1060m)
상무주암을 떠나 싱그런 나무의 향을 느끼며 호젓한 숲길을 따라 살짝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걷는다. 커다란 바위 아래 흐르는 약수가 길손의 목을 축인다.
길을 재촉하여 살짝 고개를 넘어 풍광이 아름다운 암자에 도달한다. 규모는 작지만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암자 뒤편 커다란 바위에는 자연의 ‘천인굴(일명 천용굴)’이 파여 있고, 이곳에선 마르지 않는 석간수가 흘러나와 문수암의 식수로 쓰인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 사람 천여 명이 이곳에서 몸을 피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삼십 명이 있어도 가득한 이곳에 그만한 숫자가 있었다는 것은 과장된 전설이고, 사실이라면 아마도 이곳 근처 어느 장소에 많은 인원이 난을 피했으리라 새겨본다.
문수암 좁은 마당에 작은 의자가 놓여있다. 스님이 자리를 잡고 앉아 객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혹여 스님이 일어나실까 기대해보지만 한참을 그대로다. 의자에 앉아 넓게 펼쳐진 눈앞의 산을 바라보면 삼라만상을 품은 자연을 가슴에 한가득 품어보련만 자리에서 붙박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꼭 다시 오리라는 다짐과 함께 삼불사로 향한다.
#5. 삼불사(三佛寺, 해발 990m)
문수암에서 삼불사까지는 먼 거리는 아니지만, 오르내림도 있고 돌이 많은 너덜길이라 만만하지는 않다. 돌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새 삼불사가 눈앞이다. 행복한 칠암자 걷기에 몸은 힘이 드나 마음은 상쾌하다.
삼불사 앞의 요사채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비구니스님의 참선도량으로 알고 왔는데, 비구니스님은 보이지 않고 비구스님이 암자를 지키고 있다. 삼불사 본사보다 더 특이한 전각이 산신각이다.
스님의 말로는 여러 사찰의 산신각 중 이곳이 아주 영험하여 전국의 많은 분이 이곳에 온다고 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앞이 환히 트여있어서 금대산과 백운산까지 눈앞에 잡힐 듯하다. 한동안 눈을 팔다가 약수암으로 길을 잡는다.
#6. 약수암(藥水庵, 해발 560m)
약수암까지의 길은 아주 편안하고 최고의 길이다. 삼불사를 나서서 초입은 너덜길로 힘들고 오르내림이 심해서 고생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초반에만 잠깐 힘들고 내내 소나무 잎이 쌓인 부드러운 흙길이다.
약수암에 도착했다. 약수암은 경내에서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서 약수사란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보광전(普光殿)의 목조 탱화는 보물인데 문이 닫혀있어서 보지 못해 안타깝다.
산중은 해가 평지보다 짧아 곧 어두워 진다. 마지막 실상사까지는 1.5킬로 남짓 해가 떨어지기 전 실상사를 보려면 마음이 급하다. 약수암을 나서 실상사로 향했다. 시간이 벌써 오후 여섯 시를 넘기고 있다.
#7. 실상사(實相寺, 해발 330m)
지리산 칠암자의 마지막 종착지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실상사다.
천왕봉과 마주하고 있는 대찰로 통일신라의 승려 흥천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국보10호인 백장암삼층석탑과 실상사삼층석탑(보물37호)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을 간직한 사찰이다.
특히 실상사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불국사 석가탑 상층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떠 복원하기도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길을 시작할 때는 까마득하지만 돌아보면 아쉽기만 하고 다시 그리워지는 게 길이다. 걷는 내내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과 천왕봉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작은 나와 대자연의 숭고함도 느끼며 나를 괴롭히던 근심을 하나씩 덜어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해서 걸은 칠암자 순례길은 나를 채우는 길이며, 동시에 나를 내려놓는 길이었다. 순례자는 선문 밖 석장승의 배웅을 받으며 산문을 나서 해탈교를 건너갔다.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지안의 문화이야기] 지리산 암자 순례
불광미디어 기사 승인일 : 2021.09.30.
글 : 노승대
지리산 암자 순례를 하기로 했다.
3개 도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그 너른 산세만큼 수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골골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과 토벌대의 전투로 산속의 암자들은 남김없이 파괴되었다.
피아골 연곡사 큰 절도 탔다.
빨치산의 아지트가 된다 하여 토벌대가 태워버린 것이다.
화엄사나 연곡사 등이 살아남은 것은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공로다. 그의 기념비가 화엄사에 있다.
지리산 줄기인 삼정산(1261m) 능선 자락에 있는 7암자는 15km에 이르는 긴 코스여서 일행이 전부 완주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칠선계곡 입구 금계마을에 사는 지리산 아우의 집에서 편히 잔 뒤 아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 도솔암으로 향했다.
그러나 차가 당도한 곳은 두 번째 목적지였다.
도솔암 남쪽 입구에 내려야 하는데 북쪽 입구로 데리고 온 것이다.
아우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나?
도솔암은 다음 인연을 기다리기로 하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여기서부터 6암자는 약 10km, 여유로운 마음으로 순례할 수 있었다.
7암자 중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단연 상무주암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1158~1210)가 창건하고 2년간 수행하며 크게 깨달은 곳이고 근래에도 조계종 종정을 지내고 열반하신 혜암 스님이 정진하신 수행처다.
지금은 30여 년간 홀로 밭을 일구며 정진하시는 현기 스님이 머물고 계신다.
두 번째 암자인 영원사다.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 창건이라 한다. 너와를 얹은 선방이 9채, 100칸이 넘는 방이 있었다고 한다. 두류선림이란 당호가 있다.
지리산은 조선시대까지 두류산(頭流山)이라 불렀다. 백두의 정기가 흘러내린 산이란 뜻이다. 영원사 산신각의 자연산 돌계단이 옛 절 입구를 생각나게 한다.
영원사에서 오르막길을 올라와 빗기재에 서니 이제는 편한 능선길이다. 고려의 보조국사가 2년간 머물며 크게 깨달았다는 상무주암이다. 출입금지다.
통도사의 고승 경봉 스님의 상무주(上無住) 현판.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가 ‘上’이며 머무름이 없는 자리가 ‘無住’다. 나는 어디에 있나?
상무주암에서 홀로 비탈밭을 일구며 수행하고 계신 현기 노스님을 언뜻 뵌 것만으로도 발길이 가볍다. 문수암을 향해 돌담장을 낀 오솔길로 들어선다.
상무주암 좌선대에서 지리산 능선을 망연히 바라본다. 천왕봉부터 형제봉, 벽소령, 토끼봉, 반야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명당자리다. 떠나기 어렵다.
문수암이다. 해발 1100m로 널찍하게 파여있는 천인굴 앞에 지은 작은 암자다. 1965년 혜암 스님이 복원했다. 앞쪽으로 덕유산, 가야산도 조망된다.
문수암 현판도 경봉 스님(1892~1982) 글씨다. 불교계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큰스승이었다. 임종게가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였다.
암자 뒤편 천인굴은 절벽 아래 넓게 파인 석굴형태다. 임진왜란때는 마을 사람들이 이 석굴로 피신했었다고 한다. 천장 바위가 불에 그을려 새카맣다.
축대 끝에 겨우 서 있는 듯한 문수암의 해우소다. 살아 있으면 먹어야 하고 먹으면 누어야 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없다. 인생 별거 아니네!
문수암 축대 아래 작은 텃밭에는 방울토마토가 저절로 익어 즐비하게 떨어졌다. 햇빛 듬뿍 받은 토마토, 그 맛이 기가 막히다. 그래, 바로 이맛이야.
삼불사는 조선시대에 창건한 사찰이지만 산속 마을 고향 집 같은 느낌이다. 큰 개울가 아랫마을이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이제부터는 계속 하산길이다.
약수암은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타지 않은 귀중한 암자다. 연륜이 묻어나는 보광전이 넉넉한 터에 듬직하게 서 있다. 1724년 천은 스님이 창건했다.
보광전 안에 모셔진 목각 아미타여래설법상은 보물 제421호다. 이러한 목각 후불탱은 6점이 남아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1782년 조성이다.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채 편액은 제주도의 대표적 서예가 소암 현중화(1907~1997)의 작품이다. 그는 취중에 쓴 글씨가 명작이라고도 알려졌다.
약수암의 해우소는 대숲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바람이 지나가면 대숲이 일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계절마다 다른 소리, 누가 듣는가?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를 창건한 홍척국사의 제자 편운화상의 승탑이다. 910년에 건립되었다. 후백제 견훤의 연호인 정개(正開) 10년이 쓰여 있다.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도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진되고 석물만 남았다. 200여 년 뒤 침허대사가 300명 스님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중창하였다.
실상사에는 삼성각이 없고 보광전 옆에 칠성각이 있다. 1932년에 지은 건물이다. 조선후기에 사찰에 들어온 칠성신앙이 이때까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쌍탑 뒤 중앙에 있는 석등은 신라말기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화창이 8개, 기둥돌이 장구 모양, 지붕끝과 좌대 귀꽃이 잘 말해 준다. 디딤돌이 이채롭다.
노승대 :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
[신용석레인저가떴다] 북두칠성 이은 듯 3사 4암…소박하게 내려앉은 '佛心'
<17>지리산④ 칠암자 길…다소곳이 포근한 도솔암~실상사 13㎞
영원사 복주머니란, 문수암 얼굴바위, 실상사 돌장승…산속 '선물'
뉴스1 기사 송고일 : 2022-05-05
글 : 신용석 기자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의미있는 산행으로 지리산 칠암자길을 소개한다. 이 길은 지리산 마루금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삼정산 자락의 산허리에 점점이 박혀있는 일곱 개 절을 잇는 산길이다. 사찰과 암자로 엄격하게 따지면 3사(寺)4암(庵)이지만, 깊은 산에 숨은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를 따라 칠암자라 부른다.
도솔암은 부처님 오신 날에만 길을 개방하므로 평소에는 육암자 길이다. 함양군 양정마을에서 시작하는 육암자 길은 약 11㎞, 음정마을에서 시작하는 칠암자 길은 약 13㎞다. 산행 초입의 오르막을 제외하곤 대체로 해발 1200m에서 300m까지 내리막 길이다. 일부 산꾼들이 멋대로 다니는 샛길을 잘못 따라가다 길을 잃기 쉬우므로 반드시 정해진 탐방로로 다녀야 한다. 길을 이은 모습이 마치 북두칠성과도 같은 일곱 개 절은 각각 풍경과 느낌이 다르다.
도솔암을 가기 위해서는 벽소령으로 가는 비포장길을 가다가 오른쪽 샛길의 된비알을 한참 올라야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만 개방하는 길이므로 암자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없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나홀로 산행을 해서는 절대 안되는 곳이다.
도솔(兜率)은 불교에서 이상세계를 일컫는다. 그 이름뜻대로 도솔암은 해발 1200m의 멀고 먼 산꼭대기에서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마루금이 훤히 바라보이는 이상적인 장소에 자리하고 있다. 분명히 높이 솟은 전망터인데 아늑하게 둘러싸인 지세가 오묘하다. 절집은 소박하고, 연두빛 잔디밭에 서 있는 하얀 석탑이 단정하다. 마당 끝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면 누구나 가슴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절간 뒤편의 기다란 ‘나무 물그릇’에 철철 넘치는 약수를 한사발 들이키니 차가운 기운이 실핏줄까지 전해져, 그런 청량한 기분으로 절을 내려 선다.
도솔암에서 한시간 쯤 오솔길을 내려와 영원사(靈源寺)에 다다른다. ‘영혼의 근본을 찾아서’라는 절 이름이 엄숙하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이름 높은 고승들이 수행했던 절 앞뜰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골격이 우람하다. 지리산에 묻혀 있는 절이 아니라, 절이 지리산을 펼쳐 앞산으로 삼은 듯하다. 주지스님 방에 걸린, 1948년 여순사건 때 불태워지기 전의 흑백사진에 들어있는 영원사는 지금보다 10배나 더 큰 사찰이었다.
영원사 뒤뜰에는 지리산에서 멸종위기에 있는 복주머니란이 자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풍성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지만 이제는 불과 수십 촉이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공원사무소에서 보호시설과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지만, 사람 손을 타지 않을지 불안불안하다. 영원사도, 복주머니란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영원사에서 800m 가파른 등산로를 낑낑 오르면 빗기재 정상이고, 여기서 오솔길 수준의 1㎞를 가면 상무주암이다. 등산로 곳곳에 소나무 고목과 어우러진 지리산 전망터가 있어 쉬엄쉬엄 간다. 상무주암은 산 바깥을 도는 오솔길 안쪽에 슬며시 앉아 있다. 작은 절집과 좁은 길, 급한 비탈에 일군 작은 채소밭이 서로 기대어 있다.
상무주(上無住)란 ‘지극히 깊은 깨달음’이란 뜻으로, 여기서 40년 가까이 머물고 계신 스님의 풍모에서 도인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법당 마루에 앉아 돌담 너머 저멀리 지리산과 구름이 뒤섞이는 풍경을 바라본다. 이 그림을 매일 본다면 나도 도가 트이지 않을까? 암자를 나와 길 모퉁이의 널다란 소나무 바위에서 수묵화같은 지리산을 한번 더 알현하고 길을 간다.
상무주암에서 문수암(文殊庵)까지 1㎞는 쉽게 내려서지만, 군데군데 경사가 급하고 물기가 많은 곳이 있어 미끄럼을 조심해야 한다. 적막하고 어두운 숲속길이 답답하다 싶을 즈음, 갑자기 터억! 나타나는 ‘쪼끄만’ 암자와 탁 트인 전망에 와~! 하며 내려선다. 큰 바위 아래에 축대를 쌓아 만든 좁다란 땅에 살짝 들어선 법당이다. 절이라기 보단 외가집 사랑채같이 정겹다. 몇 년 전까지 계셨던 노스님도 외가집 할아버지같이 자상한 분이셨다.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스런 허름한 나무의자에 앉아 가까이 우람한 산자락과 멀리 첩첩한 산체와 그 위에 빨리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지리산 입체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이 굉장한 풍경을 공짜로 보고, 이리 마음이 두근거리니, 돈 한푼 안드는 신선놀음이다. 큰 바위굴에서 나오는 물 한 모금으로 몸 안을 식히고, 물 한 바가지로 몸 밖을 식힌 후, 암자를 내려선다.
다시 1㎞, 골목길 같은 산길을 내려서면 산자락의 허리에 자리한 삼불사(三佛寺)다. 문수암과 비교하면 터가 넓고, 여러 건물들이 있어 상대적으로 ‘있어 보이는’ 절이다. 살림집 같이 평범하게 생긴 법당 앞에 앉으니, 왼쪽으로 지리산 바깥 산들과 마을이, 오른쪽으로 멀리 천왕봉에서 하봉-추성리로 흘러내리는 능선의 실루엣이 부드럽다. 여기서 보면 슬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 가보면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는 험로다. 저 아래엔 마을과 강과 도로가 아른거리고, 앞산은 새잎들의 파스텔 톤 연녹색이며, 먼 산은 푸르스름하고, 산 사이사이로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있다. 칠암자 코스에서 풍경시합을 한다면 1, 2등을 다툴 그림이다.
삼불사에서 약수암까지 2.4㎞는 심심한 오솔길 끝에 널직한 산길이 나오고, 내려갈수록 동네 뒷동산 풍경이다. 이리저리 에둘러가는 길이 지루할 즈음 약수암에 도착한다. 절의 물이 얼마나 맛있으면 약수암(藥水庵)일까? 두 개의 돌확(水盤)에 담겨 흐르는 물 한 모금 넘겨보고 고개를 갸우뚱 해본다. 산 꼭대기에서 맛본 ‘차가운’ 약수물과 비교되는 것인가? 밍밍한 느낌이다.
돌계단 위 보광전(普光殿)에 부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조각한 목각(목조탱화)이 있다. 11분의 옷자락 주름까지 세밀하게 조각하고 금칠을 한 기교와 정성이 놀랍다. 노란색 절집의 반질반질한 마루에 엉덩이 붙이고, 몸은 벽에 기대고, 햇빛 부서지는 마당 끝 채소밭을 내려다 본다. 길을 재촉해야 하는데, 코 끝에 바람이 일며 살살 졸립다.
약수암에서 나와 편안한 산책로와 불편한 콘크리트 임도를 걷다가, 논밭과 어우러진 실상사(實相寺)에 이른다.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實相)은 곧 자연(自然) 아닌가? 지리산에 가장 어울리는 절 이름이다. 산에 있는 다른 절과 달리, 실상사는 낮은 땅에 낮게 엎드린 자세다. 높지만 낮게 보이는 지리산의 자세와도 같다.
이 절에서 색다른 전각은 약사전(藥師殿)이다. 예쁜 꽃살문에 눈요기하고, 육중한 철(鐵)불상에게 합장하고, 그 뒤에 이호신 화백이 그린 ‘지리산 생명평화의 춤’ 탱화를 구석구석 들여다 본다. 현대화와 동양화가 융합된 칼라풀한 그림에 지리산의 자연과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다.
절터에 풍수지리적인 기운이 있어,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설이 있었다. 그래서 약사전 불상이 천왕봉 너머로 일본의 후지산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절 마당에서 상봉(천왕봉)-중봉-하봉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지리산의 기운을 느껴본다. 절을 나와 속세와 경계를 이루는 개울을 건너기 전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돌장승이 큰 눈으로 나를 꿰뚫어 본다. 나는 잡귀가 아니야! 하고 얼른 세속으로 나아가며 13㎞에 7시간쯤 걸린 순례길을 마무리한다.
이처럼 칠암자 길은 지리산 안에서 지리산을 보며 걷는 길이다. 외로운 산길에 문득문득 나타나는 암자와 낙락장송과 바위와 야생화를 보며 경외심을 느끼는 사색의 길이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안개가 짙고 어두워도, 생명·평화의 지리산 풍경을 가슴으로 보며 걷는 명상의 길이다.
그러니 떠들썩한 단체산행이 아니라 서너명이 온 듯 안온 듯 스치되, 울림과 여운이 남는 수행의 길이 되기를 바란다. 지리산과 부처님이 내 준 길을 즐기되, 절 안쪽은 스님들의 조용한 기도처로, 길 바깥은 야생동식물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로 배려하는 공존의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연을 닮아가는 것…참된 수행의 길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지리산 칠암자길
광주매일신문 기사 등록일 : 2016. 08.02(화)
지리산은 높고 깊다. 큰 산 지리산은 수많은 절을 품고 있다.
화엄사와 천은사·연곡사를 비롯해 쌍계사와 칠불사, 대원사와 실상사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절들이 지리산에 기대어 둥지를 틀고 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찰 말고도 지리산 곳곳에는 암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몇 시간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암자들도 있다. 유명한 사찰처럼 화려하거나 근엄하지 않아도 거기에는 청정한 기운이 있고, 부처의 향기가 스며있다.
지리산 삼정산 능선에는 일곱 개의 사찰·암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일곱 개에 이르는 사찰과 암자를 순례하는 길이 ‘지리산 칠암자길’이다. 양정마을에서 1시간 쯤 오르면 영원사에 도착한다. 영원사는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영원사로 들어서기 전, 나는 골짜기의 청아한 물소리에 세속의 떼부터 씻는다.
해발 920m에 자리를 잡은 영원사는 창건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건립해 절 이름도 영원사라 했다고 한다. 영원사는 한때는 큰 사찰이었다. 너와지붕을 한 선방이 9채에 100칸이 넘었으며, 이곳을 거쳐 간 고승도 많았다. 부용, 서산, 청매, 사명당, 지안, 설파, 상언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스님들이 109명이나 영원사를 거쳐 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법당에는 두류선림(頭流禪林)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지리산을 두류산, 방장산 등으로도 부르니 두류선림은 지리산에 깃든 선원이라는 뜻이렷다. 법당 앞에 서니 지리산 주능선에서 삼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부드럽고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숲이 싱그럽다. 근래에 지은 건물 가운데에서도 청매조사 부도탑만이 수백 년 동안 영원사를 지키며 서 있다.
나는 영원사를 출발해 사찰 옆 골짜기를 따라 상무주암으로 향한다. 숲속의 나무들이 부처라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가냘픈 새소리는 목탁소리다. 그러니 산은 거대한 절집이나 다름없다. 나는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원시림 속에서 만행(萬行)을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법어처럼 대자연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즐긴다. 여기에는 나를 억누르는 어떠한 구속도 없고, 욕망도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능선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씩 지리산 주능선이 유장하게 다가온다. 나무에 걸린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라 쓰인 문구가 법어처럼 다가온다. 세상에 태어나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살다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우리는 탐욕에 찌들어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을 딛고 올라서야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삼정산(1천225m) 9부 능선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상무주암(1천162m)에 도착한다. 웬만한 산 정상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다보니 암자는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주말이면 가끔 등산객이 지나고, 신도들이 예불하러 올 뿐 평상시에는 사람 한 명 구경하기 힘든 암자다.
삼정산을 등지고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상무주암은 최상의 수행처로 알려져 있다. 상무주(上無住)란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다. 머무름이 없다는 것은 특정한 상(相)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행하라는 뜻일 터. 이 작은 산중암자는 보조국사 지눌이 처음으로 문을 열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문수암으로 향한다. 산수국 향기를 따라 내려가니 녹색 양철지붕을 하고 있는 문수암이 기다리고 있다. 해발 1천60m 고지에 있는 문수암은 거대한 바위 아래에 새집처럼 소박하게 앉아있다. 바위는 석굴을 이루고 있고, 석굴에서는 석간수가 콸콸 쏟아진다. 부처님이 주는 불유(佛乳)라 생각하고 마시니 마음의 떼가 시원하게 씻어지는 것 같다.
“처사님은 주말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요?” 암자에 계시던 노스님이 인기척을 한다. 스님은 주말도 아닌 평일에 만난 등산객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합장을 한 채 스님께 반배를 하고나니 암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 한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스님이 오미자차 한 잔을 대접한다. 차 한 잔 마시는 데 암자 앞으로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노스님은 1982년에 문수암에 들어와 34년 동안 여기에서 기거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문수암 스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삼불사로 향한다. 문수암에서 500여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삼불사는 작고 소박한 암자 수준의 절이다. 비구니사찰로 작은 산신각도 갖추고 있다. 삼불사 마당에 서니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리산 북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아져 산청 경호강으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엄천강이 내려다보인다. 암자로 다가오는 산과 하천을 바라보며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수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삼불사를 출발해 삼정산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와 약수암으로 들어선다. 약수암은 백장암과 더불어 실상사의 오랜 수행처다. 요사채가 있는 마당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보광전이 건너편 삼봉산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보광전에는 정조 9년(1782)에 제작된 목조탱화(보물 제421호)가 봉안돼 있다. 높이 1.8m, 폭 1.9m에 이르는 목조탱화는 아미타불과 여덟 보살, 두 명의 비구가 상하 2단으로 조각돼 있다. 목조탱화는 천이나 종이에 그린 일반적인 불화와는 달리 나무에 불상을 조각해 만든 탱화다.
약수암을 나와 1㎞ 남짓한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산속 임도를 벗어나자 평지가 나오고, 그 평지 위에는 실상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천왕문을 통과하자 정면으로 실상사의 중심전각인 보광전과 석등(보물 제35호),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이 넓은 마당 뒤편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중생을 맞이한다.
보광전 앞에 서니 천왕문 뒤로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실상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삼봉산이, 남쪽에는 삼정산이 자리를 잡아 여러 산봉우리들 가운데 핀 연꽃 같다. 더군다나 실상사는 천왕봉을 마주보고 있어 지리산의 정기가 실상사로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가 창건했다. 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유서 깊은 사찰이다. 보광전 옆 약사전에는 실상사 창건 당시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거대한 철조여래좌상(보물 제41호)이 천왕봉을 응시하고 있다.
실상사를 나와 해탈교를 건너려는데, 돌장승 두 기가 배웅을 해준다. 지리산 칠암자길 순례를 마치고 해탈교를 건너 이제 속세로 나간다. 지리산 천왕봉은 여전히 세상으로 나가는 나그네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부처는 절에만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발 딛고 사는 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당부하는 듯하다.
※여행쪽지
▶지리산 칠암자길은 지리산 삼정산능선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일곱 개의 절과 암자를 순례하는 길이다. 음정마을→도솔암→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까지 이어지는 순례길은 13.9㎞로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IC→인월→실상사 앞→마천면 소재지 직전 가흥교→삼정리 음정마을(양정마을)
지리산 삼정산 7암자 탐방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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