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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만 바라보는 자
참고말씀: 마17:2; 눅9:28,29,31
읽을말씀: 막9:1-50
주제말씀: 막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첫째, 오직 예수님만 보면서 믿음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막9:8)
예수님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기 있다고 하셨는데,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1절)
이는 무엇을 염두에 두신 말씀입니까? 며칠 후에 있을 변화산 사건입니다. “엿새 후에...”(2절 상) /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눅9:28 상) 예수님은 누구를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까?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세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2절 중) 왜 올라가셨습니까? 기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눅9:28 하)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 옷이 광채가 나며 희어졌으며,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3절) /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9:29) /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17:2 하)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게 되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마17:2 상)
그 때 누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엘리야와 모세입니다. “이에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4절) 무엇에 관해서 나누었습니까?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입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눅9:31) 그러나 잠시 후에는 결국 누구만 보였습니까?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8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신앙생활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 찬송가의 가사처럼 말입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새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3절)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님은 세 사람에게 무엇을 말씀해주셨습니까? 당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과 어제 본 것들을 그 때까지 함구할 것입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 것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9절)
산 아래에서는 나머지 제자들이 누구에게 에워싸여 있었습니까? 큰 무리입니다. 또한 누구와 변론하고 있었습니까? 서기관들입니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과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14절)
무엇 때문에 변론 중이었습니까? 한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니 능히 고치지 못한 점 때문입니다. “무리 중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17,18절)
예수님은 그 아들을 고쳐주시기 전에 그 아비에게 무엇부터 촉구하셨습니까?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나와서 믿음을 가질 것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19절) /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22-24절)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따로 무엇을 가르쳐주셨습니까? 믿음의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즉 믿음으로 기도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8,29절)
둘째, 겸손하고 관용을 베풀며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9:50)
예수님은 갈릴리를 지나실 때 제자들에게 무엇을 두 번째로 말씀해주셨습니까? 당신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30,31절)
그런데도 제자들은 이것을 깨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32절) 그러기에 오히려 길에서 무슨 논쟁을 펼쳤습니까? 누가 크냐는 것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33,34절)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습니까? 겸손과 섬김입니다. 즉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되, 어린아이까지도 섬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35-37절)
요한이 어떤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면서도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금했다고 하자,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38절)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습니까? 관용의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39,40절)
또한 어떤 자마다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습니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 곧 서로 영접하고 대접하는 자마다 하나님 앞에서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41절)
그리고 무엇을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셨습니까?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일입니다. 즉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42절)
그러면서 어떤 각오로 이 같은 일을 삼가라고 하셨습니까? 만일 내 손과 발, 눈 등이 우리 자신을 범죄하게 하면 이를 찍어버린다는 각오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또는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또는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또는 실족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43-49절)
그러려면 결국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 화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50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겸손하고 관용의 마음을 가지며 서로 화목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겸손과 관용, 화목의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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